특집 43

[특집: 판데믹 이후, 전환을 위한 의제⑩] 도착하지 않은 편지에 대하여

일상적인 상황이 갑자기 깨지고 변화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에 매우 힘들게 다가온다. 아무리 평소에 우리가 자신의 일상을 지긋지긋하게 여기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상 그 관성적인 반복에 상당히 익숙해져있으며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닥치면 그 변화의 방향이나 내용이 어떻든 간에 일단 적응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그런데 그 힘듦을 어느 정도 견뎌낼 수 있다면 새로운 상황에 대한 적응력이 생긴다. 뿐만 아니라 그 전까지 익숙함 때문에 무심하게 지나쳤던 일상의 어떤 미세한 부분들을 갑자기 발견하게 된다. 관성이 주는 지루한 편안함, 혹은 무의식적 노력에 의해 지켜지는 삶의 일상적 감각에 균열이 가고 강요된 낯설게 보기는 삶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한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19가 가져온 판데믹..

특집 2021.06.06

[특집: 판데믹 이후, 전환을 위한 의제⑨] 코로나19 긴급지원사업 리뷰: 재난 대응을 너머 ‘뉴노멀’

1년 전을 돌아보면, 당시 문화예술계는 패닉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지난 해 1월 코로나19 위기대응이 시작되면서 관객이 급감하기 시작한 데다가 2월 대구의 폭발적 감염으로 문화예술활동은 정지되다시피 했다.. 이미 막을 올린 공연들도 관객이 없어 공연을 포기하거나 준비 중이던 공연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게다가 국공립문화예술시설들이 일제히 문을 닫으면서 극장 등 문화예술활동은 전염병에 취약하다는 사회적 메시지까지 각인되던 상황이었다. 모든 예술활동이 중단된 것은 아니지만 제한적이나마 일상적 활동을 유지하던 사회 다른 분야에 비하면 거의 락다운과 다름없었다. 예를 들면 한국소극장협회가 운영하는 대학로티켓닷컴 등록 공연을 기준으로 지난해1월부터 4월까지 대학로 52개 공연장의 공연취소율은 1월 34..

특집 2021.05.21

[특집: 판데믹 이후, 전환을 위한 의제⑧] 코로나19 문화정책 담론장은 어떻게 전개되었나

판데믹 2년 차를 지나고 있다. 올해도 예술인재난지원금 등 기존 예술지원 사업 외에 코로나19 관련 긴급지원사업들이 발표되고 있다. 여전히 예술활동은 제한적인 데다가 방역단계를 따라야 하니 상황은 불안정하다. 여러 차례의 감염 파고를 겪으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극장은 물론이고 민간극장에서도 객석거리두기가 더 강화되고 있다. 그래도 판데믹 1년 차에는 폐쇄로 일관하던 공공문화예술시설이 방역매뉴얼을 정비하고 그에 따라 제한적으로라도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방역당국의 매뉴얼과 현장의 간극은 크고 혼란과 불안정은 상존하고 있다. 지난 한해 긴급지원사업만으로 분주했던 것은 아니다. 문화예술계와 예술인들의 피해상황을 전하는 기사들이 판데믹 기획으로 발행되었다. 예술활동이 제한되면서 뉴스 매..

특집 2021.04.07

[특집 : 판데믹 이후, 전환을 위한 의제 ⑦] 공론장을 위한 전제들

얼마 전 전문가 위원으로 참여했던 경인아라뱃길 공론화위원회가 종료되었다. 이 공론화위원회는 명칭 그대로, 매우 잘못 추진되었던 경인아라뱃길 사업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를 공론화시켜 그 방향을 잡는 것을 목적으로 환경부 주관 하에 만들어진 위원회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약 2조 7000억원의 국가재정을 투입하여 대대적으로 진행한 경인아라뱃길 사업이 추진 당시 기대효과로 주장되었던 물류 운송 등의 기능에서 예상대비 8% 정도 수준에 이르는 아주 미미한 효과밖에 거두지 못하고 있는 반면, 하천 수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공론화위는 물환경생태, 물류, 관광레저, 거버넌스의 4가지 분과로 이루어졌으며 2년이 넘는 기간동안 매월 1회에서 2회의 회의가 진행되었다. (코로나19 상황 이후에..

특집 2021.03.03

[특집 : 판데믹 이후, 전환을 위한 의제⑥] 지역문화재단, 불능의 알리바이 구조 넘어서기

현행 은 지방정부가 설립하는 출자출연기관의 목적에 대해 명시하고 있지 않다. 다만 부분적으로 제3조에서 경영의 기본원칙만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출자출연기관의 기능과 목적은 그것을 설립하는 지방정부와 지역사회에서 부여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여기서 범위를 출연기관 중 하나의 유형으로 지역문화재단으로 좁혀서 본다면 을 참조할 수 있다. 법의 제5장은 지역문화재단의 설립에 관한 사항을 담고 있는데, 특히 제19조를 통해서 “지역문화진흥에 관한 중요 시책을 심의 지원하고 지역문화진흥 사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지역문화재단을 설립 운영하도록 규정했다. 즉 기능으로서는 심의와 지원을 하고 목적으로서는 지역문화진흥 사업을 하는 곳인 셈이다. 1997년 경기도에서 최초의 광역문화재단이, 그리고 199..

특집 2021.01.06

[특집 : 판데믹 이후, 전환을 위한 의제⑤] 길을 따라가는 문화정책, 그 이후

그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2020년도 어느덧 마지막 장까지 왔다. 수 차례 이 지면에서 언급해왔지만 판데믹이라는 상황은 우리 사회, 나아가서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래없는, 여지껏 경험해보지 못한 사회적 활동의 제약을 던져줬다. 세계가 일시에 멈춰버리는 듯한 체감을 던져준 올 한해의 경험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 우리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변화시킬지 아직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에 머물러있다. 이런 지독하게 낯선 현실 세계의 체험은 대면상황에서의 상호체험을 통한 관계형성과 감각과 심상의 공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문화예술계 전반에 있어 당장 매우 큰 어려움을 던져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매우 예외적인, 낯선 상황은 우리가 그동안 지당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던 문화와 예술의 사회..

특집 2020.12.03

[특집: 판데믹 이후, 전환을 위한 의제④] 우리 시대의 예술지원제도

스케일링하러 끌려간 치과에서 충치를 발견하듯이, 전염병으로 인한 장기적 예외상태는 우리 시대의 숨은 질환을 찾아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난 여름, 서울의 한 구(區)에서 발표한 예술인 긴급지원 안내에 따르면, 긴급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었는데, ‘공공프로그램 강사료 지원 수혜자’가 그 중 하나였다. 여기서 멀쩡하게 고용한 강사를 ‘강사료 지원 수혜자’라고 표현한 그 대목이 바로 우리 시대의 질환이다. 우리가 구청장을 ‘세비 지원 수혜자’라고 하지 않고 구청 직원을 ‘봉급 지원 수혜자’라고 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받는 급여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반면 문화강좌 강사들을 ‘강사료 지원 수혜자’라고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급여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 아..

특집 2020.11.05

[특집: 판데믹 이후, 전환을 위한 의제 ③] 예술의 공공의존성

판데믹을 장기간 겪고 있는 문화예술계의 위기국면은 그간 별로 주목하지 않았거나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급한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며 간과해왔던 문화정책의 몇가지 불편한 부분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국제적으로도 매우 발빠르고 적극적으로 코로나 위기 상황에 대처한 한국 정부 행정조직의 모습은 문화예술 분야에 있어서도 예외없이 발빠른 조치들을 들고 나오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편으로 이런 조치들이 적지않은 정부 예산의 긴급한 투입을 요하는 것이고 평소와는 다른 행정의 긴급성을 갖고 행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다이나믹하고 즉각적인 솔루션을 들고나오는 모습은 과연 한국 관료조직이 기민하다는 감탄을 토하게 하는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의 반응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 나라의 문화정책, 문화행정이 ..

특집 2020.10.06

[선언] 균열과 긴장의 담론장을 위하여- 사회적 의제로서의 문화정책

우리는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문화정책과 예술정책에 대해 가능한 다양한 발화들을 담아보려 했다. 지면의 한계, 우리 역량과 지평의 부족과 협소함으로 말미암아 때로는 편협한 시각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고 어떤 치우침, 혹은 경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이 상생, 경쟁하는 것으로부터 문화정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무의미한 작업은 아니었다고 본다. 어떤 치우침이 있을지언정 그것이 특정한 이해관계를 관철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추상적이나마 한국문화정책연구소와 [문화정책리뷰]가 추구하는 문화민주주의와 현재적 의미에서의 예술적 진정성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제도적 변화를 촉발시키고자 하는, 공공성이란 대전제를 접어둔 적은 없다. 그리..

특집 2020.09.10

[특집: 판데믹 이후, 전환을 위한 의제 ①] 삶을 재구성하는 공론장으로서의 정책

전염병의 위기 속에서 세 계절을 보내고 있지만 위기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2월 말 닫혔던 국공립 제작극장들은 5월 잠깐 열렸다가 다시 닫히고 7월에 공연을 재개했다가 8월에 다시 닫혔다. 국공립극장들이 객석문을 열고닫기를 반복하는 동안 민간극장은 마스크를 쓰고 문진표를 작성하고 극장 방역을 하고 객석 띄어 앉기를 하면서 공연을 이어갔다. 질병관리본부 역시 극장을 비롯한 문화예술시설이 방역에 취약한 고위험 시설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공립 제작극장의 문을 걸어 닫는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 메시지만을 발신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회활동은 제한적인 조치가 있더라도 중단되지 않았던 반면 문을 닫은 극장은 전염병에 취약한 장소라는 ..

특집 2020.09.10

[특집: 판데믹 이후, 전환을 위한 의제 ②] 진부화와 체념의 공모구조

이 글은 1차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코로나19 예술포럼’을 대상으로 하고, 그 외 서울문화재단 등 지역문화재단에서 진행한 토론회의 발제문과 리뷰를 참조해 작성했다. 상당히 방대한 양이고 문서보다는 유튜브 등 영상으로 남은 자료를 참조한 탓에 개개 토론회에 대한 비평이라기보다는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유형들을 분류하고 그에 따른 의견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덧붙인다. 우선 ‘코로나19 예술포럼’을 1차적인 대상으로 삼은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현상에 대한 토론은 해당 현상을 가장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주가 되는 것이 맞다. 실..

특집 2020.09.10

[특집: 판데믹과 문화정책 ④] 시대착오적인 미디어 산업 욕망의 총체

지난 6월 22일 정부는 제12차 정보통신전략위원회(위원장 : 국무총리 정세균)를 통해 (이하 )을 발표했다. 이 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해 기획재정부,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워회,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그리고 고용노동부까지 총 7개 부처가 합동으로 이름을 올렸다. 방송을 비롯한 미디어 영역에 대하여 개별 부처 차원을 넘어 정부 부처 합동으로 발표된 정책안은 2017년 12월 19일, 문화체육관광부·방송통신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고용노동부·공정거래위원회가 합동으로 발표한 (이하 ) 이후로 약 2년 66개월 만에 발표되는 것이지만, 이 두 정책 안의 분위기는 결코 같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임기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점차 가속화되는 ‘절충적 방향’, 또는 쉽게 방향을 정하지 ..

특집 2020.07.02

[특집: 판데믹과 문화정책 ④] 모두가 비난하되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완벽한 정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 문화관료의 가상 독백

1. 부처마다 실적이 낮다고 할당방식으로 재택근무를 하라니. 햐 정말 미친 것 아닌가. 철없는 주무관들은 재택근무가 곧 휴가인 것처럼 여기지만 정말 모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쉬더라도 절대로 우리의 일을 누군가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택근무하고 오면 또 야근을 해야겠지. 참 한심하다. 어쨌든 집에서 일하려면 전자결재시스템에 들어가야 하니 몇 가지 등록 절차를 마쳐야 한다. 물론 잘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2. 일주일만에 사무실로 왔더니 메모가 잔뜩이다. 당장 재택근무 때 위쪽의 요구라며 코로나19에 대한 예술인 지원대책을 마련하라는 요구부터 처리해야 한다. 벌써 닦달이 시작되었다. 아니 코로나19 탓에 회의도 몽땅 취소한 마당에 어떻게 예술인들의 요구사항을 확인해서 정책으로 만드냐고? 어이없지..

특집 2020.07.01

[창간1주년기념 편집위원 방담] “문화정책과 담론”

사회: 김소연 편집장 참석: 김민규, 김상철, 김정원, 안태호, 염신규 일시: 2020년 6월 22일 ~ 28일 (온라인) [문화정책리뷰]가 발행 1주년을 맞았다. 한 달에 한 번 다섯여섯 꼭지로 페이스북 페이지로만 배포되는 소박한 매체인 데다가‘문화정책’이라는 한정된 주제였지만 꾸준히 독자들에게 가 닿았던 것 같다. ‘할 수 있는 일’을 ‘최소한의 적정선’으로 발행해왔다. 이제 겨우 1년이지만 스스로 자축하면서, 함께 해준 독자들에게 감사하면서, 지난 1년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편집위원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더 많은 이야기, 더 많은 논쟁, 더 다양한 필자 그리고 현장과 더 가까이 등등 ‘문화정책 담론 형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앞으로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 보기로 다짐한다. 할 수 있는 일을 하..

특집 2020.07.01

[특집: 판데믹과 문화정책 ④] 환영받지 못하는 문화정책을 통과하는 고민들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를 거치고 있는 동안 정부를 중심으로 한 통치 집단은 지속적으로 이에 대한 정책 수단을 꺼내놓고 있다. 초창기에는 방역 대책이 중점적으로 이루어졌고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긴급지원금 같은 사회정책이 만들어지고 경제정책이 등장하고 있다. 정부의 산업부처를 중심으로 포스트 코로나, 이른바 ‘코로나 이후’라는 이름이 붙어서 쏟아지고 있는, 그러나 포장만 살짝 바뀐 개발과 성장 중심의 정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대략 두 가지 측면에서 답답증이 올라온다. 우선 첫 번째, 지금 우리의 단계가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쉽사리 떠들어댈 상황인가라는 의구심이고 두 번째는 그렇게 등장하는 정책들이 전환이나 녹색 같은 시대적 트렌드에 따른 포장을 쓰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기술 중심적이고 끝없는 성장을 전제하고 ..

특집 2020.06.30

[특집: 판데믹과 문화정책 ③] 판데믹과 사회문화적 위기, ‘K-방역’은 무엇의 이름인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이렇게 ‘국뽕’이 충만한 적이 있었나 싶다. ‘K-방역’ 말이다. 남한의 코로나19 대응을 앞 다퉈 극찬하는 서구 언론은 확실히 낯선 광경이었다.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짚어두자. ‘K-방역’ 성공을 확정하는 건 아직 이르다. 긴장을 늦추면 순식간에 상황은 바뀔 수 있다. 유럽과 한국의 입장이 역전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이 5월 연휴를 앞두고 계속 경고해왔지만 정부는 외부의 칭찬에 도취돼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했고, 결국 이태원 클럽을 진원으로 확진자가 다시 폭발적으로 늘었다. 순차적 개학을 실시한 2020년 5월 말 현재, 감염 상황은 그야말로 살얼음을 딛는 듯 불안하다. 좋든 싫든 코로나 19는 지구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 파괴력은 가히 20..

특집 2020.06.07

[특집: 판데믹과 문화정책 ③] 위기의 '일상'

풍경 하나, 어느 미술관 여느 때 같으면 가족 단위 관람객으로 북적거렸을 6월 어느 날의 오후 미술관은 한산하다. 미술관 입구엔 “코로나19 예방과 확산방지를 위해 모든 시설이 약 2주 동안 임시 휴관을 한다”는 문구가 관람객의 발길을 가로막는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내린 공공 및 다중이용시설의 임시 사용중단 조치에 따라 올해 들어 두 번째로 취해진 조치다. 더 많은 관람객을 주문받던 미술관에서 관람을 제한하거나 폐쇄해야 하는 낯선 풍경이 벌어졌다. 미술관이 만든 전시는 개점휴업 상태이거나 관람객을 마주할 일이 없이 철수될 위기에 놓였다. 큐레이터는 개막일정에 맞추어 전시를 준비하지만, 언제 관람객에게 선보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때문에 전시들은 전보다 더 인터넷과 가상공간을 떠돌아다닌다. 사실, ..

특집 2020.06.07

[특집: 판데믹과 문화정책②] 문화기획자 그리고 사회적경제

약 6년 동안 맡았던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의 이사장직을 내려놓으면서 쉬는, 그리고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대표가 3번째 바뀌는 건강한 조직이 될 것이고 조합원들이 조합의 일을 나누어하면 신임 이사장에 책임이 집중되지 않는 상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우리 조직에 문화기획자가 몇 없다. 그 몇 없는 기획자 중 하나가 나였다. 이후 몇 개월은 쉬었지만 조합의 일을 같이 기획하고 몇몇 사업은 주도적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연말에 보니 내가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했던 일의 양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없었다. 일을 쉬면서 새로운 일을 상상하는 순간은 있었지만 꿈꾸었던, 휴식과 공부가 있는, 그런 시간은 없었다. 일을 나누고 함께할 기획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 같은 문화기획자는 집..

특집 2020.05.06

[특집: 판데믹과 문화정책 ②] 조급한 마음을 읽어보는 위기의 데이터

판데믹. 영화에서나 있는 가상적 상황이라고 여겼던 그 상황은 실재가 되어 마주하고 있다. 한 계절을 통으로 속절없이 흘려보내고 있는 가운데,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의 준칙이 되고 있다. 사회 제 분야와 모든 업종에서 힘든 나날을 지속하고 있는데, 대면과 사회적 밀착을 전제로 하는 문화예술 분야는 초토화라는 단어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만큼 극단적인 상황이다. 문화예술은 원래 그랬다는 것이 위안조차 되지 못할 정도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판데믹 이후의 문화예술은 달라질 것이고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예술인으로서 생존한 이후의 이야기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중앙정부, 지자체, 지역문화재단 등 공공영역에서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진행하고 있다. 지원 규모, 지원 방식, 지원 대상 등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

특집 2020.05.06

[특집: 판데믹과 문화정책 ②] 예술지원정책의 기저질환

한 다리 건너 지인 중 민주시민교육 분야에서 일하시는 선생님이 있다. 그분은 촛불 이후, 소위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지역자치, 거버넌스에 대한 강조가 다시 시작되면서 매우 바쁘게 이런저런 민주시민 교육 프로그램, 지역 거버넌스 프로그램을 정부와 지자체의 요구에 의해 진행해왔다. 그런데 그분이 최근 한통의 문자를 받았다. 신용카드 회사로부터 온 카드대금 연체 문자였다.. 바쁜 것만큼의 액수는 아니지만 이런저런 공공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며 받아오던 보조금이나 용역비가 코로나 사태 이후로 끊기다 보니 은행 잔고가 부족했던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각종 교육이나 행사가 불가능해졌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봉급 생활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상황이겠지만 프리랜서들에게는 매우 흔한 일이다. 뭐 이처럼 춥고..

특집 2020.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