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시대를 거치고 있는 동안 정부를 중심으로 한 통치 집단은 지속적으로 이에 대한 정책 수단을 꺼내놓고 있다. 초창기에는 방역 대책이 중점적으로 이루어졌고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긴급지원금 같은 사회정책이 만들어지고 경제정책이 등장하고 있다. 정부의 산업부처를 중심으로 포스트 코로나, 이른바 ‘코로나 이후’라는 이름이 붙어서 쏟아지고 있는, 그러나 포장만 살짝 바뀐 개발과 성장 중심의 정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대략 두 가지 측면에서 답답증이 올라온다. 우선 첫 번째, 지금 우리의 단계가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쉽사리 떠들어댈 상황인가라는 의구심이고 두 번째는 그렇게 등장하는 정책들이 전환이나 녹색 같은 시대적 트렌드에 따른 포장을 쓰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기술 중심적이고 끝없는 성장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정책들은 코로나 이전부터 준비되던 것들이었다. 자본과 산업의 요구에 의해 준비되던 정책 카드들이 코로나 판데믹이란 위기의 파도를 만나서도 좌초되지 않고 오히려 순풍에 돛을 단 듯 도착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권의 어떤 성격을 떠나서 우리 체제가 가지고 있는 견고한 친자본, 성장 위주 성향의 견고함에 어떤 경이감마저 들 지경이다.
한국판 예술 뉴딜? 하고 있었거나, 하고 싶었던
각설하고 이런 상황에서 문화부처에서도 코로나 시대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3차 추경 예산사업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았던 ‘한국판 예술 뉴딜’이다. 이 사업은 미술가·예술가들을 활용하여 주민공동시설에 벽화·조각 등을 설치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759억원)를 골자로 하며 이밖에도 공연예술 인력 3000명 채용 후 문화예술단체 파견(288억 원), 주요 관광지 2147개소에 방역지킴이 지원(354억 원), 전국 500여 개 소규모 공연장에 방역지킴이 배치(31억 원) 등을 담고 있다. 이 사업은 예술계가 당장 너무 어려우니 공공사업을 통해서라도 돕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으나 현장의 반응은 그다지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을 중심축으로 놓고 급격히 성장하는 미디어환경과 과학기술을 비대면 시대 문화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는 정책사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역시도 관련 산업계를 제외한 현장에서는 크게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각자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입장들이 있지만 예술 현장에서 이런 정책들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이전부터 우려와 비판적 목소리가 먼저 터져 나오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단 예술뉴딜의 경우, 우려와 비판의 논지는 예술계의 어려움이 당장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비대면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좀 더 깊숙이 따져보면 매우 다층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에 대한 대응책은 단발적인 인력 파견 사업 중심의 용역형 사업으로 짜여져 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다. 게다가 사업의 수혜 대상 자체가 예술계에서 극히 일부에게 국한될 수밖에 없으며 사업 방향 자체도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특히 가장 중심에 서 있는 공공미술의 경우, 지난 십 수년 이상의 사업과정에서 그 취지가 공동체 기반의 예술사업의 취지가 잘 살아나지 못한 채 공급형 문화사업으로 정형화되어온 측면이 강하며 이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그에 대한 어떤 반성적 성찰이 결여된 채 코로나 상황에서 손쉬운 예술정책사업의 통로로 채택되지 않았나라는 날 선 비판도 있다.
한편 VR, AR 등 문화에 대한 기술기반 정책에 대한 비판은 이런 정책 기조가 딱히 코로나를 통한 비대면 상황에 대한 대응책이라기보다 수년간 주무부처가 자신들의 주요 정책사업으로 가져가고 싶어했던 것을 코로나 상황에 맞춰 다시 꺼내놓았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는 것에서 우선 출발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쪽으로 정보 통신을 축으로 한 기술기반 산업의 육성을 일원화시킨 이후 문화부는 더이상 하드웨어와 기술에 관한 산업 진흥을 전면에 가져가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1990년대 중반 이후 문화산업국(현 콘텐츠정책국)을 중심으로 부처의 영향력을 키워온 문화부 입장에서는 이를 상당한 타격으로 받아들이고 박탈감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과주의 행정구조에서 문화부가 타 부처에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주요한 정책 기능을 빼앗겼고 예산 경쟁에서도 불리한 조건에 놓이게 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반대편에서 선 입장에서 문화부는 콘텐츠 산업의 내용적 측면을 채울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진흥에 힘을 쓰면 되지 않겠냐는 얘기를 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그리고 현재의 한국 정책 환경에서 이런 원천적으로 계량화하기 힘들거나 긴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 요구되는 정책사업은 환영받기 힘든 조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문화부가 어떻게든 과기부가 주도하고 있는 기술기반 산업에 대해 뭔가 연계지점을 만들어놓고 자기 사업을 지속하고 싶어 하는 것은, 부처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는 바가 있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처 입장에서의 얘기다. 여기에는 문화부가 과연 산업진흥부서로서의 성격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뒷퉁맞은 질문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문화부를 넘어서 정부 전체의 성격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사회문화정책도 내놓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문체부는 6월 24일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따뜻한 연결사회를 위한 비대면 시대의 문화전략'을 발표했는데 이것은 ▲ 사람 중심의 디지털 연결 문화 조성 ▲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 활성화 ▲ 사람과 사회의 연결 기반 강화 등 3대 추진전략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여가문화와 사회활동이 비대면 방식으로 재편되고, 사회적 고립감이 증대되고 있는 현상에 대하여 디지털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문화격차'를 해결하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내용을 살펴보자면 우선 ‘디지털 연결 문화조성’은 디지털 환경에 맞는 다양한 인문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고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한 온라인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를 개발·보급하는 등 온라인으로 즐길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과 플랫폼을 확대한다는 등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부분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공연·전시의 실황 중계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 환경에 맞는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고 온라인 환경에 익숙지 않은 사용자를 위해 박물관·미술관 등 문화시설과 지역의 유휴 공간 등을 활용해 첨단기술 문화체험공간을 조성하겠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전반적으로 앞서 언급한 첨단 기술기반 문화정책, 이른바 문화기술 정책을 공공사업의 외피를 씌워서 지속하겠다는 내용으로 해석된다.
그 외에 ‘사람과 사람 연결 활성화’의 문화돌봄사 제도 도입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화·체육 활동을 활성화하는 것을 골자로 통합문화이용권(문화바우처) 사업 확대와 공동체 기반 생활문화 활성화 등을 사업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단편적으로 보면 할 수도 있는 사업들이지만 기본적으로 현재의 공급형 생활문화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사업들의 나열이고 특히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문화돌봄사 제도의 경우 아주 오래전부터 문화부가 추진하고 싶어 했던,, 그래서 문화기본법이나 국민여가활성화기본법 같은 2010년대 이후 문화 관련 법 제정 때마다 부처에서 적극적으로 법제화하려 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던 문화복지사 제도를 또 다른 버전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사람과 사회의 연결기반 강화’는 지역사회에 다양한 연결 공간을 조성하겠다는 것인데 문화도시와 유휴 공간 문화 시설화 등을 통해 공간재생을 지원하고, 지하철역, 도심광장, 학교도서관 등 접근이 쉬운 지역 공간을 문화적으로 탈바꿈해 지역공동체에 기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문화도시나 유휴공간의 문화적 활용 활성화, 생활문화공간 조성 정책은, 정말 딱히 논평할만한 것이 없다. 최소한 2010년 이후로 어떤 정권이 들어섰을 때도 비슷한 얘기들을 앞세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반적으로 거칠게 평을 하자면 다른 부처와 크게 다를 바 없이 문화부의 코로나 대응책이란 것은 실상 부처에서 기존에 하고 있거나, 추진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나 반발 때문에 진행하지 못했던 것을 코로나 대응의 세트로 다시 구성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물론 그 중에는 필요하지만 예산을 가용할 수 없어서 못했던 것도 있고 과거에는 시급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필요해진 것도 존재할 것이다. 게다가 각론에 대한 성급한 논평이나 비판을 하기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야 하는데 현재까지의 발표는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것에 가깝다. 그러나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구조나 내용을 전반적으로 훑어볼 때 이런 정책의 형성이 문화예술계, 아니 더 나아가서 한국 사회의 전반의 일상적 조건이나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는 문화정책적 개입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요구하는 현장, 자원을 나눠주는 정부라는 프레임
소위 ‘현장’에서 정부의 문화 분야 대응정책이 나올 때마다 열띤 환영이나, 노고에 대한 치사가 나오는 대신 우려와 비판이 튀어나오는 것이 단지 문화예술계가 뭘 해줘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습적인 불평불만세력이기 때문일까? 정부(문화부)를 포함한 문화정책가들이 오랜 시간 동안 짜 놓은,, 일종의 전제 조건으로서의 문화정책 프레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문화정책의 판때기(프레임)라고 의식하는 시스템 자체가 닫혀서 사회가 굴러가며 끝없이 내놓고 있는 당면한 문화 이슈와 무관한 자기 완결적 구조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과 불경한 상상은 코로나 판데믹이라는 상황에 부딪치며 조금 더 예민하게 도드라지는 것일 뿐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십여년 전쯤 어떤 문화부 관료에게 사석에서 들었던 당황스러운 얘기가 문득 떠오른다. “XX법만 만들어지면(그래서 XX제도만 도입되면), 한국의 문화정책은 완벽해져요.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문화정책이 잘 갖춰진 나라가 없어요.” 그 관료의 황당한 자신만만함에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하여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곤 한다. 물론 이것이 문화부의 입장이라고 일반화시키기는 곤란하겠지만 정부의 문화행정가들이 문화정책을 인식하는 방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문화정책의 시좌(視座)는 국가에 위치해 있다. 국가를 운영하는 시스템의 한 부품, 혹은 윤활유로서의 문화정책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근대 국가로서 대한민국이 수립되던 제헌헌법 시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헌법상의 문화국가의 원리에서 연유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의 문화정책에서 국가는 문화를 책임지는 주체인 동시에 문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주체로 위치가 설정되어 있다. 그것 자체는 대부분 근대 이후 민주주의 국가들이 취하고 있는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까닭에 개인 간의 계약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각 주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미국 정도를 제외하면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문화정책이 특별하거나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국가 주도 문화정책 프레임의 문제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한국이 근대 국민국가로 형성되어가는 과정에서 시대마다 국가 문화정책에 착종되어온 문제들, 예컨대 관료주의, 폐쇄적 민족주의, 기능적 민간동원방식, 성장만능주의, 그리고 계량적 성과주의의 문제들이 여전히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어느 시점까지는 권위적 개발 국가 주도의 문화국가의 원리에 대한 반성적 성찰로 문화생태계의 자율성에 기반한 새로운 형태의 문화국가를 상상해보자는 흐름이 존재했던 것 같다. 그런 상상에서도 결국 문화정책을 담아내는 중심 플랫폼은 결국 정부였다. 정부를 바꾸면, 즉 정권을 바꾸면 문화정책의 문제들이 해결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위기의 국면을 거치며 다시 한번 가슴 저리게 떠오르는 고민들을 꼬리잡기 하듯 따라가 보면 과연 국가가 문화에 관하여 어디까지 개입하는 것이 적정한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늘 부족하여 요구하는 현장과 그 위에서 자원을 나눠주며 개입하는 정부(행정)라는 프레임을 해체하는 상상은 어떤 위치성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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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신규.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겸임교수.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문화예술분야에서 발을 들여놓았으며 창작자, 기획자, 정책활동가 등 깊이 없이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았다. 최근에는 문화정책(제도) 연구와 문화 연구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작업들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관심 있는 분야는 국민국가 성립 과정에서의 문화적 제도화의 문제, 노동자 문화정체성에 대한 비전형적인 방향에서의 탐색 등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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