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소연 편집장 |
[문화정책리뷰]가 발행 1주년을 맞았다. 한 달에 한 번 다섯여섯 꼭지로 페이스북 페이지로만 배포되는 소박한 매체인 데다가‘문화정책’이라는 한정된 주제였지만 꾸준히 독자들에게 가 닿았던 것 같다. ‘할 수 있는 일’을 ‘최소한의 적정선’으로 발행해왔다. 이제 겨우 1년이지만 스스로 자축하면서, 함께 해준 독자들에게 감사하면서, 지난 1년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편집위원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더 많은 이야기, 더 많은 논쟁, 더 다양한 필자 그리고 현장과 더 가까이 등등 ‘문화정책 담론 형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앞으로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 보기로 다짐한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사회: [문화정책리뷰]는 지난 해 7월 1일 첫 호를 발행했다. 그리고 지난 6월에 12호를 발행했으니 매월 빼먹지 않고 발행했다. (격려의 박수) 매체를 기획할 때 생각이 난다. 제호를 좀 발랄한 컨셉으로 가자고 했는데 서로 머리를 싸매도 뾰족한 수가 안 나왔다. 결국 무색무취한 ‘문화정책리뷰’가 되었다. (웃음) 1주년을 맞는 소감과 그동안 [문화정책리뷰]에 대한 주변의 인상적인 리뷰가 있다면 함께 이야기해달라.
김상철: 그저 한 해를 지내왔을 뿐인데 시간의 한 매듭이 만들어진 것 같다. ‘어, 벌써 1년?’ 이런 느낌이다. 가장 흥미로운 평가는, 우리가 발행한 글을 “내 생각과 같다”고 인용하는 SNS 상의 표현들이다. 아, 우리가 저 말들을, 아직 끄집어 나오지 않은 생각들을 함께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보람도 느낀다.
김정원: 코로나19로 6개월을 잃어버린 기분이라 1주년이 실감 나지 않는다. ‘호외: 판데믹과 문화정책’에 대해 재정적 지원이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없다. 대체로 기획이 시의적절하다, 현재 상황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고 유의미하다는 평을 받았다. 특정 사업이나 조직, 장르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주제에 관해 계속적으로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김민규: 할 수 있을 때 한다는 것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필요한 일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스스로도 자극을 받는 1년이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분들에게서 페이스북에서 봤다고 응원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사에서 던진 질문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리뷰가 가장 듣고 싶다.
안태호: 몇 해 전부터 매체를 만들자고 염신규 소장에게 이야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일은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이지 말로 되는 게 아니다. 아무튼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필자 추천을 많이 하게 된 점이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았다. 물론, 나만 알고 있던 사람들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통로가 된다는 게 보람 있었다. 매체에 대한 인상적인 리뷰는 모 기관의 중간관리자가 ‘호외: 판데믹과 문화정책’을 두고 “현 상황에서 가장 돋보이고 재빠른 활동”이라고 평한 것이다.
염신규: 2015년부터 한국문화정책연구소를 맡아 운영하면서 늘 용역형 연구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있었다. 연구소 운영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긴 했지만 연구소 설립 목적이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긴 했다. 그래서 2017년에는 정책 담론에 대한 이야기 모임을 만들어보기도 했고 이런저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지속하는 데에는 현실적으로 재정적인 측면이나 인력에서 한계가 있었다. 여전히 재정과 인력의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편집위원회가 협업의 틀이 되면서 지속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인상적인 리뷰는, 일단 이런 매체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에 대한 상찬을 들었을 때. 한편으로 기쁘고 보람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판의 공론장이 정말 많이 메말랐구나 란 생각이 들어 서글프기도 했다.
사회: 김민규 위원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의 의미’를 말씀하셨는데, 욕심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했던 것 같다. 매호 6개 내외의 기사를 발행했다. ‘이슈’는 주제를 정하고 관련하여 두 세명의 필자들의 글을 실었다. 시의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정책의 난제들’처럼 현안을 분석하기보다는 현안들에서 반복되는 문제들에 주목하고자 했다. 연재로 나가고 있는 ‘데이터리뷰’ ‘도시와 문화정책’도 그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5호(2019년 11월호)부터는 칼럼을 추가했다. 지난 1년 간 발행한 기획이나 기사 중 좋았던 것, 아쉬웠던 것을 뽑는다면?
(이구동성) 호외!
김상철: 사회 재난 시기에 호외를 발행했던 것이 단연 백미였다. 내가 쓴 글이 한없이 부끄럽고 후회된다.
김민규: 시의성을 생각하면 최근 호외를 편성했던 것이 적절했다. 처음 처음 겪는 상황에서 이야기 소통이 더욱 필요한 시기에 가능한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려고 한 것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또 연재기사 기획도 좋았다. 아쉬운 것이라면 담당한 꼭지가 좀 민망하다.
안태호: 역시 판데믹 호외가 가장 두드러진 기획이었다. 아쉬운 점은 연재기사의 안정성이다.
김정원: ‘데이터리뷰’가 좋았다. 정책과정에서 데이터가 갖는 의미를 환기했다. 아쉬운 기사는 ‘호외: 판데믹과 문화정책’이다. 좀 더 다양한 현장을 심도 있게 소개하고 싶었는데 성에 차지 않는다.
염신규: ‘호외: 판데믹과 문화정책’이 기동성 있었다는 점에서 가장 돋보였다. ‘도시와 문화정책’도 한계가 있었지만 문제의식의 단초는 건드렸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여전히 필자 풀을 더 넓히고 다양한 시각을 담아내는 것에서 아쉬움이 있다.
사회: ‘호외’는 웹진이라는 매체 형식, 또 민간연구소 발행이라는 점에서 의사결정과 실행의 기동성 등등으로 가능했던 것 같다. 또 지난 5호부터 ‘칼럼’을 시작하면서 웹진이 기획기사만이 아니라 문화정책현장을 담으려고 했던 기획 방향이‘판데믹’이라는 위기상황에서 구체화되었던 것 같다. 매체로서 현안에 대응하는 좋은 경험이었다. 기념을 빙자하여 자화자찬으로 흐르는 것 같은데, 매체를 발행하면서 한계랄까, 부족함도 느꼈을 것 같다.
안태호: 원고료가 아쉽다. 재정상황이 뒷받침된다면 디자인이나 시스템은 물론, 필자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데에 더 떳떳할 수 있을 것 같다. 실무에 대한 최소한의 보수도 현실화하면 좋겠다.
염신규: 당연히 재정적 아쉬움인데 연구소 경영자로서 할 말이 없다. 연구소 재정이 워낙 빠듯한 상황에서 정기후원 같은 걸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공공지원도 고민하고 있는데 현재의 공공지원 구조가 갖고 있는 한계점에서 매체의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함께 고민해보고 싶다.
김민규: 재정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이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는 한계로는 규모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서 규모는 물량적인 측면이 아니라 대상 범위와 내용을 확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모든 것을 다루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고 정책담론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서 담을 그룻이 더 커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갑작스러운 욕심을 앞세우기보다는 지속성이 더 중요한 시기이긴 하다.
김정원: 독자와의 소통이 매우 아쉽다. 웹진이 갖는 일상적 소통에 너무나 소극적인 것이 매체의 특성이 되어버린 것 같아 아쉽다. 방명록, 답글이 많이 달리면 좋겠다.
김상철: 한계나 아쉬움은 없다.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적정선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유지하지 못하면 사실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버인가?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생각한다. 최소한의 적정선.
사회: 창간을 준비하면서 문화정책의 담론 부재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이에 대한 진단이 다를 터인데, 각자가 생각하는 문화정책 담론은 무엇인지, 담론 부재라는 진단에 동의하는지, 담론 부재가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김민규: 이야기는 언제 어디에나 있다. 문제는, 인지를 못하거나 흘려버리거나 나아가 외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정책 영역은 커지고 있는데 그만큼 이야기는 소통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다. 담론 부재는 이야기의 부재가 아니라 이야기 파악과 소통의 부재라는 생각이다. 흩어진 이야기들 사이를 연결하고 질문을 만드는 과정이 담론의 과정이 아닐까 한다. 정책에서 흔히 언급되는 6하 원칙(5W1H)를 제기하는 순환이 필요한 것 같다. “어떻게“라는 질문은 많은데 ”왜“라는 질문은 점점 작아지는 것은 아닐까? 근원적인 질문을 찾는 것이 발목 잡기가 아니라 신발끈을 새로 묶는 것이길 바란다.
김상철: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SNS 시대 아닌가. 하지만 이야기의 묶음이 담론은 아니다. 담론은 갈등이고 정반합의 새로운 창조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여전히 담론의 부재가 맞다. 갈등이 없는 사회는 변화의 이유가 없듯이 담론이 없는 문화정책은 정체된다. 그리고 정체된 문화정책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예술인과 엇나간다. 그런 엇나감은 대개 예술인들에게 생채기를 남긴다. 복잡해 보이지만 간단하다. 정책 담론의 부재는 정책을 사회적 흉기로 만든다.
안태호: 정책사업에 대한 불만이나 요구사항들이 묶이는 게 아니라 흩어지고 만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 터라 일간지에서 센세이션 하게 다루는 방식이 아니라 업계 내에서 진중하게 사안을 다루는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현안이나 이슈에 머무르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정책이 지향하는 방향이나 철학의 근본을 묻는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그게 되겠냐는 이유로, 뜬구름 잡는다는 이유로 언제나 기본을 묻는 래디컬함이 사장되는 것 같다.
염신규: 문화정책이란 것이 단기적인 대책이나 솔루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개인적 입장이다. 정책이은 일종의 치수 사업 같은 것으로 흐름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사회가 겪고 있는 문화적 문제와 닥쳐올 근미래에 대한 고민을 일정한 관점을 가지고 예측하며 대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재 문화정책은 현실에 대한 천착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사업의 협소한 틀에 지나치게 갇혀 있다. 거칠게 얘기하자면 현재의 한국 사회정책은 경제정책에 제 분야가 온통 종속되어 기능할 뿐이다. 문화정책도 마찬가지다. 주변화되어 있고 기능적으로 사고하는 것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패러다임으로서의 문화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김정원: 철학의 부재다. 사업 위주, 성과평가 위주의 매너리즘에 빠진 정책이 이름만 바뀐 채 재생산되고 있다. 담론을 생산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학계, 현장의 예술가, 생활예술가로 변신한 시민들이 모두 예산을 따기 위한 활동에만 매진하고 있는 것 같다. 사업목표, 사업성과와 별개의 담론 생성이 없는 예술은 AI의 예술활동으로 대체될 것 같다.
담론 부재의 현실에서
사회: 1주년 기념 방담인데, 매체라는 것이 지속성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라 할 때 이제 막 출발한 셈이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문화정책리뷰]가 앞으로 노력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말해달라. 또 문화정책 담론 형성이라는 점에서 매체 발행 외에 필요한 작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듣고 싶다.
김민규: 지금은 지속적이고 정기적인 발행의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화정책리뷰]가 정기적으로 발행되고, 독자와 필자들에게 언제나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인식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일 것 같다. 매체 발행 이외에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정기적인 토론회, 간담회 등인데 이는 기존에서도 많이 하는 일반적인 작업이다. 물론 정기적인 토론회, 간담회를 진행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직 특별한 아이디어는 없지만 좀 더 현장과 쉽게 연결되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왜? 현장은 항상 다시 돌아와야 하는 곳이니까.
김정원: 백가쟁명과 같은 토론회를 지면에서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필진이 좀 더 개방적이면 좋겠다. “[문화정책리뷰] 편집진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런 편집자 주를 꼭 달아놓아야 할 만큼 다양한 의견이 펼쳐지면 좋겠다. 반론이나 동의의 답글이 주렁주렁 달리고.
안태호: 새로운 이들이 문화정책 담론의 자장 안에 들어올 수 있게 문호를 개방하면 좋겠다. 지역의 목소리를 포함해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담론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체에서 다룬 주제들을 포럼을 통해 외화 시킨다든가, 특정 주제 하에 모음집을 온/오프라인의 형태로 발행한다든가 하는 활동들이 추가되었으면 한다. 물론, 재정을 해결하는 게 먼저겠지만.
김상철: 더 많은 갈등을 만드는 것이다. 대신 개싸움 말고 각자가 고민할 수 있는 멋진 상처를 남기는 싸움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파이터를 발굴하고 양성할 필요가 있다. 좀 지나면 문화정책담론의 재생산을 위한 강좌 사업을 진행했으면 좋겠다. 물론 나는 아니고, 다른 분들이 그걸 해주면 좋겠다.
염신규: 문화정책에 대하여, 대중들의 관심은 높지 않다. 정책이란 게 다 그런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복지정책만 해도 이제 “보편적 복지 & 선별적 복지” 같은 정책적 논쟁이 대중들에게 상당히 각인되지 않았는가. 그런 점에서 문화정책의 논쟁과 어젠다들을 어떻게 대중들- 물론 당장 그 폭은 제한적이겠지만 –의 공론장에 띄울 수 있는가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고 본다. 우리끼리 아무리 얘기를 해봐도 시민사회의 공론장에서 반향을 얻지 못하면 실질적으로 힘을 얻기 힘들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정책과 일상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다소간의 공허한 간극을 좁히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정부 정책 선전이나 형식적 숙의를 넘어서는 민간 주도의 토론회나 정책연구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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