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처마다 실적이 낮다고 할당방식으로 재택근무를 하라니. 햐 정말 미친 것 아닌가. 철없는 주무관들은 재택근무가 곧 휴가인 것처럼 여기지만 정말 모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쉬더라도 절대로 우리의 일을 누군가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택근무하고 오면 또 야근을 해야겠지. 참 한심하다. 어쨌든 집에서 일하려면 전자결재시스템에 들어가야 하니 몇 가지 등록 절차를 마쳐야 한다. 물론 잘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2.
일주일만에 사무실로 왔더니 메모가 잔뜩이다. 당장 재택근무 때 위쪽의 요구라며 코로나19에 대한 예술인 지원대책을 마련하라는 요구부터 처리해야 한다. 벌써 닦달이 시작되었다. 아니 코로나19 탓에 회의도 몽땅 취소한 마당에 어떻게 예술인들의 요구사항을 확인해서 정책으로 만드냐고? 어이없지만 지난 1차 추경 때도, 2차 추경 때도 예술인에 대한 지원 정책이 없다는 이유로 꽤나 민원이 들어갔나 보다. 그래서 뭔가 변변한 것이라도 있는지 그쪽에 들고 갔다던 요구 내용을 봤는데 별개 없다. 예전에 다 한 번씩 했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차피 발표 시점을 정해놓고 준비하는데,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다. 일단 주무관들을 쪼아서 전화로라도 협단체에 연락해서 요구사항을 확인하라고 해야겠다.
3.
이럴 줄 알았다. 주무관들이 들고 온 내용이 몽땅 돈 달라는 내용이다. 손실보전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구체적인 방법이 없다. 그냥 이만큼 손해를 봤으니 절반만이라도 보전해달라는 이야기다. 세상에, 그렇게 돈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벌써 했겠다. 다음 주에 발표라 주중에 안이 확정되어야 하니 적어도 내일까진 예술인 지원정책에 대한 구상을 만들어야 한다. 어차피 부처내 협의, 또 부처 간 최종 협의를 하다 보면10개 중에 1~2개 정도만 반영될 것이다. 그것도 기재부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예산안의 근거를 물을 것이고 그래서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따질 것이다. 예술단체에다가는 기재부 탓을, 기재부에다가는 예술인 탓을 해야 하는 처지가 참 고달프다.
4.
하,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고 티켓지원 사업에 대한 저항이 적다. 당장은 사업자들이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원대상 선정이 까다롭지 않다. 게다가 1+1 방식이니 ‘무조건 퍼주기 아니냐’는 기재부 논리를 방어하기도 용이하다. 지난 번 메르스 때 한번 썼던 것이고 평가를 보니 사업자들은 좋아하는데 공연하는 당사자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었나 보다. 다행스럽게 공연업계에서 발언력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업자이거나 사업자와의 친소관계를 고려해 뭐라 하기 힘든 이들이다. 관련 언론들도 결국 공연업계가 살아야 예술인들도 산다는 입장이니 여론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사업의 성과에 대한 평가야 나중 일이고, 그때 되면 후임자가 잘 막겠지 뭐.
5.
그래도 형식은 갖추라니까 의견수렴은 한다. 그래서 주무관들이 세팅한 자리에 갔더니 익숙한 얼굴들이다. 몇 마디 덕담을 하고 난 후 이야기를 듣는다. 다들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얼마나 구체적으로 어렵냐고 물어보니 그걸 왜 자기네들에게 묻냐고 한다. 문체부가 알아서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아니, 협단체장이 모르는 걸 우리가 어찌 아나. 일단 조사해야 하는 것은 다음으로 넘기고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해달라 하니 융자라도 저리에 받을 수 있게 해 달란다.. 아니 사업자가 있으면 이미 하고 있는 중소기업 융자를 받으라 하니 그런 게 있냐고 반문한다. 이번에도 글렀다. 그래도 내일은 현장 예술인 단체들을 보기로 했으니 그 땐 사정이 나을까 모르겠다.
6.
아니, 지방자치단체 어려운 이야기하고 문화재단들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뭘까 싶다. 그렇다고 이걸 보조사업으로 내려도 당장 실효성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또 돈만 주고 책임을 떠넘긴다고 할 것 같은데. 이 참에 예술인기본소득을 고민하자고? 말이야 맞는데 이게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문체부가 안을 만들어서 가져오란다. 안을 만들려고 만났더니 안을 가려오라니 참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은 의견수렴은 했으니까 몇 가지 자문 의견을 덧붙여서 기존에 정리했던 것에 보태서 올려야겠다. 코로나19 지원대책을 이야기하는데 고용보험법만 잔뜩 이야기를 하고 가면 어쩌라는 걸까.
7.
그래도 정부 발표안에 문화예술 지원대책이 부각되어 발표되었다. 다행이다. 기본적으로 언론보도는 잘 된 것 같다. 개중 약간 비판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이쪽이나 그쪽이나 대책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니 일단은 넘어가자. 문화산업 쪽은 그래도 K-pop이니 뭐니 엮어서 가면 규모도 크게 갈 수 있는데 당최 예술 쪽은 뭘 해도 생색이 나기 힘들다. 그렇다고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고 구체적인 대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산하기관들도 자체 사업들을 만들어내느라 정신이 없고. 어쨌든 한 꼭지 들어갔으니 일단은 구색은 맞춘 것 아닌가 싶다.
8.
다행히 아직 국회 구성도 안 되었으니 딱히 부담스러운 상황은 아니구나 싶다. 7월에 인사이동 있으면 그것 핑계로 조금은 시간을 벌 수 있겠구나 싶다. 그나저나 또 그린뉴딜은 뭔 말인가 싶다. 당장 코로나19 대책도 초기라 더 다듬어서 후속조치도 해야 하는데, 갑자기 그린 뉴딜을 할 테니까 부처별 세부사업 들을 만들어서 내라고 한다. 아 진짜, 그냥 비대면 상황에 맞춰서 그동안 밀었던 VR하고 엮어 가지고 온라인 공연 시스템 구축 뭐 이런 걸로 하면 되려나. 내년도 예산 요구안도 정리해서 마무리해야 하는데 진짜 답이 없다, 답이 없어.
9.
맨날 예술현장 어쩌구 하는데 도대체 예술 현장이 있기는 한 건가 모르겠다. 언제나 보는 사람만 보고 또 비슷한 이야기만 반복하는데, 뚜렷한 제안도 없이 욕만 먹으니까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일단 여름 지나면 국감도 있고 예산심의도 있으니까 일단 넘어가야겠다. 내일은 고용노동부랑 예술인고용보험 시행령과 관련해 회의도 있는데 그간에 어떻게 논의되어왔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무슨 이야길 하나. 그냥 고용노동부가 주무 부처니까 알아서 만들어주면 제일 좋겠구먼.. 그래도 시간이 가면 결국엔 하게 되어있으니까 대충 욕만 크게 먹지 않게 역할을 하면 되겠지.
10.
저희도 정말 힘들어요. 위에선 계속 대책 내놓으라고 채근만 하지, 뭐 뾰족한 것도 없이 계속 내놓으래요. 그래서 예술단체들 이렇게 만나면 서로 다 자기 장르 이야기만 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그래서 각각 필요한 사항들 정리해서 발표하면 사업이 나열식이라 한계래요. 요구를 나열식으로 주길래 이 중 뭘 빼고 넣고 하기가 그래서 다 포함했더니 또 그걸 가지고 뭐라 해요. 구체적인 대안이 없으니까 기존에 하고 있었던 사업 중에서 간단하게 증액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건 알아주면 좋겠어요. 문득문득 돈을 이렇게 써도 되는 건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어쨌든 정답은 아니어도 오답 역시 아니니 적절하게 가는 거죠 뭐. 어쨌든 코로나19 시기에도 우리 괜찮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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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사)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블랙리스트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혁신을 위한 TF위원, 제1기 현장소통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문화/예술 재정과 예술활동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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