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차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코로나19 예술포럼’을 대상으로 하고, 그 외 서울문화재단 등 지역문화재단에서 진행한 토론회의 발제문과 리뷰를 참조해 작성했다. 상당히 방대한 양이고 문서보다는 유튜브 등 영상으로 남은 자료를 참조한 탓에 개개 토론회에 대한 비평이라기보다는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유형들을 분류하고 그에 따른 의견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덧붙인다.
우선 ‘코로나19 예술포럼’을 1차적인 대상으로 삼은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현상에 대한 토론은 해당 현상을 가장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주가 되는 것이 맞다. 실제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수많은 코로나19와 관련한 토론회는 이런 형태들이다. 그러니까 서로가 잘 알지 못하는 현장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그로 인해 각각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 무엇인지 들어본다는 것. 서로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는 것을 토대로 어떻게 하면 문제의 해결까지는 아니어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해보는 자리다. 그런데 이런 자리가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첫째는 ‘진부화’다. 새로운 이야기가 사라진다. 개별 사례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달라질 순 있어도 동일한 원인의 유사한 사태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실제로 비대면의 대안으로 이야기되는 온라인 환경의 필요성은 이제 완전히 식상한 대안이고 시장이든 해외든 ‘부럽지?’ 정도의 시연이 아니라면 현장에 있는 예술인들에게는 다가오는 내용이 아니다. 당장 휴대폰만으로도 구축할 수 있는 실용적인 팁이 아닌 다음에야 해외 어떤 공연단체의 영상이나 후원페이지는 의미가 없고, 스스로 구축할 역량도 부족한 상황에서 공공지원을 요구하는 사업자 민원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로 인해 더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은 ‘체념의 공모’다. 지역 토론회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인데 결국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결론들이다. 사실 현재 예술지원사업의 구조가 가지고 있는 경직성은 1973년의 <문화예술진흥법>이 주요한 골자 변화 없이 예술로 간주하는 장르만 확대해왔을 뿐이라는 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만들어진 예술지원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예술인들 간에 파편화된 경쟁구조 만이 아니다. 오히려 이후에 등장한 예술인복지체계나 생활예술 지원사업이나 다양한 예술공간 사업들조차 <문화예술진흥법> 체계에서 만들어놓은 지원 구조를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사업의 종수는 많지만 공통의 문제가 반복된다.
과거 의제거나 시연장이거나
이런 두 가지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타개하기 위해서는 상향식의 의견수렴만으로는 안된다. 아무리 많은 현장의 목소리가 모이더라도 결국 그것이 현재의 구조를 바꾸는 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의견의 양적 축적으로만 남을 것이다. 결국 진부화나 체념의 공모가 가속될 뿐이다. 이 점에서 ‘코로나19 예술포럼’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이 포럼에는 한국의 문화예술정책의 주요 실행 기관들이 공동주최로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이 포럼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위기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제도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권한을 가지고 있는 곳은 권한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라는 방향을 내놓을 의무가 있다. 단순한 의견 청취는 시혜적인 사업구조를 더 공고하게 만들 뿐이다. 이야기를 그렇게 듣고도 바뀌는 것이 없다면 이 많은 토론회는 대체 무엇 때문에 열리는 것인가.
현재 ‘코로나19 예술포럼’은 3차례 진행되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주관한 1차 포럼은 그야말로 범위와 방향을 정하는 것이었다. 연구기관에서 주관한 만큼 제도 변화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나왔다. 1차 포럼 발제문은 이후 2차, 3차 포럼의 ‘코로나19의 영향’이라는 발제가 무색할 정도로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현상을 드러냈다. 따라서 2차, 3차 토론회는 앞선 토론회의 현황 파악을 전제로 해서 무엇을 바꿀 것인가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코로나19 사태가 2020년 상반기에 예상치 못하게 등장한 특이점이라면 해당 특이점을 수용할 수 있는 변화의 내용들이 좀 더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했다. 아쉽게도 2차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시행한 토론회는 중요한 쟁점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없는가’에 대한 토론회에 가까웠다. 한 참여자가 토론회 말미에 ‘이야기를 듣다 보니 답답한 마음이 든다’고 토로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현장은 코로나19라는 예외상황에 놓여 있었으나 다루는 의제는 2018년부터 논의되어온 예술인 고용보험제도의 맥락에만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2차 토론이 현재의 상황에서 과거의 토론회를 하는 느낌이었다면,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진행한 3차 토론은 시연장 같은 분위기였다. 각각 공연과 미술 쪽을 분리해 진행했는데 특히 미술 쪽의 논의는 온라인 경매제도에 대한 논의로 집중되었고, 미술작품의 온라인 전시에 대한 기술적인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 오히려 댓글로 지금과 같이 갤러리를 정점으로하는 경매시장이 미술정책의 핵심이 되고있는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답답하리 만큼 논의는 ‘온라인’이라는 기술 논의에 한정된 면이 컸다.
‘코로나19 예술포럼’은 9월 17일로 예정되어 있는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의 4차 포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5차 포럼, 한국문화예술교육흥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주관하는 6차 포럼에 이어 12월 9일 종합포럼이 예정되어 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알겠지만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토론회는 없다. 가장 권한이 많은 정부 부처의 주관 토론회가 없다는 것, 이것이 수많은 현장 매개형 코로나19 토론회가 점차 진부해져가는 원인 중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단순히 의견을 듣는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스스로의 권한을 어떻게 활용하고 또 바꿀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내놓아야 하는 시점인데 정작 공동주최기관에는 들어가 있음에도 주관하는 토론은 없다. 아마도 전체의 토론회를 관장하고 있고 또 그 이야기들을 참조해서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정도의 태도겠지만, 이 역시 아무런 대책이 나오지 않으리란 것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권한과 책임을 두고 이야기할 때
다시 코로나19가 심각한 단계에 왔다. 하반기에는 조금이라도 숨통을 틀 수 있을까 기대했던 예술계는 오히려 더 심각한 한파가 몰아친다. 그나마 주저했던 폐쇄도 손쉽고 재빠르게 시행되고 예정했던 행사의 취소도 순식간이다. 예술인의 생존을 위한 기술보다 더 빠르게 예술행정의 안전함을 택하는 기술이 진화했다. 아마 이런 상황이라면 앞으로의 포럼 역시 진부화나 체념을 넘어서긴 힘들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권한을 가지고 있는 기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이상적인 예술지원정책의 역할에 대한 그림을 내놓으면 좋겠다. 현재까지 사업을 시행하고 또 평가한 입장에서 만약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면 현재 각각 어떤 대책들을 내놓겠는지 예술인들 앞에서 설명하면 좋겠다. 그것들의 실행여부를 예술인들에게 묻고 함께 연대하지고 제안하면 좋겠다.
우리가 현재 처한 위기는 전 세계가 어느 때보다 가장 풍요로운 시기의 위기다. 다만 그 풍요가 과거와 같이 승자독식, 지금은 알 수 없는 성장의 발판 등 같은 곳에 계속 쓰이고 있어 그렇지, 예술지원 예산만 하더라도 가장 많은 시기다. 이제는 쓸모가 없거나 불필요해진 것들을 걷어 내면 다른 곳에 쓸 재원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풍요의 시대에 빈곤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역설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포스러운 것이어야 한다. 도대체 그 풍요는 어디로 가고 있단 말인가. 이제까지 우리가 열심히 갈아넣어 지구 자체를 위기로 만들면서까지 만들어놓은 풍요는 다시 나뉘어져야 한다. 이 말은 지금 할 수 없는 것들이라면 과거 어느 시점에서도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단지 재원문제 만이 아니라 권한과 더불어 책임 역시 그렇게 나눠져야 한다. 그 전제에서 다시 코로나19와 함께 하는 예술정책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단, 지금은 더 많은 상향식의 현장 토론이 아니라 이제는 다양한 구상들이 하향식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매번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을 만든다는 소리도 지겹다. 어차피 안 할 것이면 그럴 바에야 당신들의 최선을 가지고 토론을 하자는 것이다.
---------
김상철. (사)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블랙리스트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혁신을 위한 TF위원, 제1기 현장소통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문화/예술 재정과 예술활동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특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언] 균열과 긴장의 담론장을 위하여- 사회적 의제로서의 문화정책 (0) | 2020.09.10 |
---|---|
[특집: 판데믹 이후, 전환을 위한 의제 ①] 삶을 재구성하는 공론장으로서의 정책 (0) | 2020.09.10 |
[특집: 판데믹과 문화정책 ④] 시대착오적인 미디어 산업 욕망의 총체 (0) | 2020.07.02 |
[특집: 판데믹과 문화정책 ④] 모두가 비난하되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완벽한 정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 문화관료의 가상 독백 (1) | 2020.07.01 |
[창간1주년기념 편집위원 방담] “문화정책과 담론” (0) | 2020.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