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특집: 판데믹 이후, 전환을 위한 의제 ①] 삶을 재구성하는 공론장으로서의 정책

CP_NET 2020. 9. 10. 14:47

 

 

전염병의 위기 속에서 세 계절을 보내고 있지만 위기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2월 말 닫혔던 국공립 제작극장들은 5월 잠깐 열렸다가 다시 닫히고 7월에 공연을 재개했다가 8월에 다시 닫혔다. 국공립극장들이 객석문을 열고닫기를 반복하는 동안 민간극장은 마스크를 쓰고 문진표를 작성하고 극장 방역을 하고 객석 띄어 앉기를 하면서 공연을 이어갔다. 질병관리본부 역시 극장을 비롯한 문화예술시설이 방역에 취약한 고위험 시설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공립 제작극장의 문을 걸어 닫는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 메시지만을 발신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회활동은 제한적인 조치가 있더라도 중단되지 않았던 반면 문을 닫은 극장은 전염병에 취약한 장소라는 메시지도 함께 발신된다. 하지만 판데믹 이후에도 공연을 계속해 왔던 민간극장에서 객석 전염 사례는 없었다. 신뢰할 만한 임상실험 결과다. 방역수칙을 지킨다면 객석은 전염병에 취약한 공간이 아니다. 상업공연은 다른 수칙은 지키더라도 객석 거리두기 없이 공연을 진행했다. 직접 극장에 가본다면 안정적인 매뉴얼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그간 극장을 두고 벌어졌던 논의에서 간과되었던 것은 제작과정이다. 국공립제작극장들은 극장문이 닫힌 중에도 리허설을 진행했다. 민간단체 역시 공연을 취소하거나 중단한 경우도 있지만 리허설을 거쳐 공연을 올렸다. 리허설에서의 방역수칙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객석 방역에 비해 주목되지 않았고 안정화되어 있지는 않다. 리허설은 공연 중 객석에 비해 참여 인원의 밀도는 낮지만 격렬한 신체의 움직임이나 빈번한 접촉이 있게 마련이니 전염에 노출되기가 쉽다. 당장 이번처럼 사회 전반의 바이러스 밀도가 높아지자 제작과정에서 감염이 일어났다. 객석 감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공연만이 아니라 방송 등 영상물 제작과정도 마찬가지다.

 

1월 말 판데믹이 시작된 이후 문화예술계는 공황에 가까운 위기상황이다. 극장 문이 닫히고 축제가 취소되었다. 공연을 진행한다고 해도 객석 거리두기로 매출은 반토막이다. 극장을 계속 찾는 관객들도 있지만 위축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국공립문화시설 폐쇄 조치만을 내린 것은 아니다. 문체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각 시도 및 지역문화재단 등에서는 코로나19긴급지원 명목의 여러 공모사업들이 시행되고 있다. 생활자금 긴급 대출부터 공연장 인력지원사업까지. 지원 규모나 수혜대상이 한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업설계에서 현장의 상황과 부합하지 않는 점 등 지적은 있지만, 위기 대응을 위한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판데믹이라는 이 유래 없는 위기는 이미 우리에게 존재하는 지원전달체계와 지원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긴급지원은 온라인 등 발표 형식을 열어둔다지만 기존 제작지원사업을 긴급 편성한 것에 가깝다. 국공립극장은 문을 닫고, 지자체의 행정조치는 극장 안에서도 2M 거리두기를 하라든가, 50인 이상 실내 모임을 금지하는 등 민간극장들의 노력으로 마련해 온 객석 방역마저도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코로나19 긴급지원은 다시 작품을 만들고 공연을 올리는 데에 대한 지원이다. 얼마 전 발표된 온라인제작지원을 비대면 예술활동이라 분류하겠지만,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은 대면활동일 수밖에 없다. 물론 꼭 모여서 리허설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 인력지원사업은 사업장 출퇴근을 스파트폰의 위치기반 앱으로 체크한다고 한다.) 열어두었으니 예술가의 상상력을 발휘하라는 것일테다.

 

 

기록과 진단

 

[문화정책리뷰]는 지난 4월부터 판데믹과 문화정책을 주제로 특집과 호외를 발행해왔다. 급박하게 변하는 상황에서 호외는 별도의 간기 없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기록과 분석을 담았다.

 

코로나19 감염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던 지난 3월 대구지역 문화예술계의 상황(한상훈 도시는 멈췄고, 예술가들은 유령이 되었다), 해외의 코로나19 대응 현황(장수혜 각국 문화예술계 코로나19 긴급 대응 정책 동향, 이시카와쥬리 일본 예술인들이 코로나 시대를 살아남는 법, 연대), 국내의 코로나19 관련 긴급 지원 분석(박진명 탐색의 시기, 성과지표도 재구성해야, 성연주 온라인 긴급토론회 <코로나19 문화예술 긴급지원정책 평가와 제안> 리뷰, 박경동 코로나19 대응 문화정책에 대한 비판적 검토, 오정은 영역과 절차의 한계, 지역 편차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 위기 대응 정책이 문화시설(미술관) 지원기관(지역문화재단) 그리고 예술가(정책대상)의 일상에서 어떻게 교차하고 있는지(백기영 위기의 '일상'” ), 바이러스 차단을 위해 문을 닫기보다는 방역과 공연활동 병행을 위해 검토할 사항들에 대한 제안(조형준, 전염병의 시대 공연장은 어떻게운영되어야 할까 ), 창작자 제작자 극장운영 상주단체 등 공연예술계의 다양한 분야와 역할이 코로나19의 상황에서 어떤 위기와 불안 속에 있는지 혹은 위기 대응에서 충돌하는지(전윤환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공연예술계 멀티 페르소나의 분열, 등 문화예술 분야 위기 대응 현장을 소개해왔다.

 

전염병으로 문화예술활동이 현저히 위축된 현재 예술의 의미를 다시 묻는 글들도 있었다. 온라인 콘텐츠로 전환될 수 없는 전시의 실재와 체험(조숙현 코로나 시대 예술가의 생존법), 대면 비대면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아닌 더 구체적이고 촘촘한 관계에 대한 성찰(양진호 어느 인문 수기手記, 코로나 이전부터 늘), 비대면 온라인 콘텐츠로 대체될 수 없는 감각의 문제(양혜정 제한된 감각의 열망은 어디로 향하는가) 등등 판데믹 이후 상황이 문화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예술가들의 상황에 대한 기록에도 주목했다. 판데믹 직후 우리의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불안(이연주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 ), 창작환경의 변화(이동근 문화기획자 그리고 사회적경제) 이강현 잃어버린 자기만의 방, 정인혁 코로나19가 남긴 자국), 불안과 위기에서도 서로 손을 잡는 연대의 순간들(이병기 코로나19가 내게 준 것들) 등은 통계나 제도로 발견할 수 없는 판데믹의 문화예술현장이다.

 

한편 급박하게 변화하는 상황에서도 문화정책의 관점에서 위기를 진단하고 전환의 방향을 모색해왔다. 지금의 위기는 무엇인지, 위기를 극복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판데믹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위기의 극복인지, 전환의 방향은 무엇인지, 문화정책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단이다.

 

코로나19가 드러내고 있는 문화정책의 민낯에 주목했다. 긴급지원의 필요와 당위를 넘어 위기 대응에서 드러나는 문화정책의 문제적 지점을 분석했다. 코로나19 위기 대응의 난제들이 실상 판데믹이라는 위기에서 비롯된다기보다는 기존 문화정책의 허약한 담론과 전달체계에서 비롯되는 바를 살폈다. (김소연 안전하게 그리고 책임을 함께 나누며, 염신규 예술지원정책의 기저질환, 김상철 예술지원정책은 없다) 전환에 대한 여러 진단에도 불구하고 판데믹 이후 발표되고 있는 정부 정책이 방향성을 잡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검토도 진행했다. (염신규 환영받지 못하는 문화정책을 통과하는 고민들, 김상철 모두가 비난하되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완벽한 정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 문화관료의 가상 독백, 성상민 시대착오적인 미디어 산업 욕망의 총체)

 

한편 문화와 예술이 사회통합의 기제에 머물지 않고 전환의 시대에 무엇을 하고 있고 할 수 있는지를 찾고자 했다. (박권일 판데믹과 사회문화적 위기, "‘K-방역은 무엇의 이름인가, 염신규 통찰의 시간이 왔다)

 

 

변화의 단단한 토대를 찾아

 

여전히 긴급지원이나 문화예술시설 개관의 논리가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을 위로한다는 역할을 근거로 하고, 기술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지난 5개월간 이 지면을 통해 전개한 논의들은 그러한 문화정책 담론의 허약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논의가 현재는 무기력하고 미래는 없다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현실에 대한 회의는 근거 없는 희망이나 낙관을 경계하는 관점과 태도다. 판데믹 이후의 전환이 이전의 회복이 아닌 삶을 재구성하는 근본적 변화를 말한다면 변화의 단단한 토대를 찾고자 한다.

 

우리는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판데믹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분석에서 문제적 지점은 좀 더 명료해졌다. 무엇보다 그간의 문화정책 담론이 정책대상으로서의 문화에 한정되어왔던 데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필요하다. 예술에 대한 도구주의적 관점에 대한 비판이 정의되지도 합의되지도 않는 예술의 자율성에 머물고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정책목표에 대한 논의로 한정되는 것은 문화정책 담론이 예술과 예술활동의 파생으로서의 문화만을 맴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정책이 어떻게 국가통치의 도구를 넘어 스스로 자기 삶을 재구성하는 공론장이 될 수 있을까. 여전히 질문은 계속되지만 우리의 질문은 이제 조금 달라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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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문화정책리뷰] 편집장.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연극평론가. <컬처뉴스> <weekly@예술경영> 편집장을 지냈다. 커뮤니티와 아트’ ‘삼인삼색 연출노트’ ‘극작가리서치워크숍 등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연극비평의 대상으로 정책을 비평하는 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