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특집: 판데믹 이후, 전환을 위한 의제 ③] 예술의 공공의존성

CP_NET 2020. 10. 6. 08:38

판데믹을 장기간 겪고 있는 문화예술계의 위기국면은 그간 별로 주목하지 않았거나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급한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며 간과해왔던 문화정책의 몇가지 불편한 부분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국제적으로도 매우 발빠르고 적극적으로 코로나 위기 상황에 대처한 한국 정부 행정조직의 모습은 문화예술 분야에 있어서도 예외없이 발빠른 조치들을 들고 나오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편으로 이런 조치들이 적지않은 정부 예산의 긴급한 투입을 요하는 것이고 평소와는 다른 행정의 긴급성을 갖고 행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다이나믹하고 즉각적인 솔루션을 들고나오는 모습은 과연 한국 관료조직이 기민하다는 감탄을 토하게 하는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의 반응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 나라의 문화정책, 문화행정이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꼬여있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도 솔직한 소회다. 차라리 현장의 지원조직이 자체적으로 진행했던 긴급조치들이 보다 실효적이란 표현을 듣고 있는 것을 보면 문화정책의 공급 구조가 갖고 있는 비대함과 난삽함을 어디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무척 고민스러워지기도 한다.

 

어떤 디테일한 각각의 사안을 떠나, 아주 근본적으로 고민스러운 것은 이제 확실하게 이 나라의 대다수 예술 집단이 공공에 대한 의존도가 심각할 정도 높아져 있다는 체감이다. 산업적인 경쟁력이 있는 분야로 판단되어 시장 경쟁 구조 안에서 회전하고 있는 극히 일부의 분야를 제외하고는 공공의 지원사업이 멈추는 순간 전반적으로 활동이 정지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니, 극히 그 일부에 해당하는 시장이 있다고 여겨지는 분야조차도 공공 의존성이 지나치게 높아져있다는 것을 또 한번 보여줬다. 물론 대부분 예술경영의 첫 번째 장에서 다루고 있듯 현대사회에서 복제를 통해 대량으로 유통되는, 소위 문화산업 분야를 제외한 예술활동의 민간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근본적으로 극히 제한적이다. 활동을 만들어가는데 들어가는 비용에 대비하여 수익률이 현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활동을 만들어가는데 들어가는 비용이나 그것이 갖고 있는 가치, 희소성으로 따지자면 현재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예술은 유통되어야 하지만 이미 유사한 복제물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그런 경쟁의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지원에 대한 필요성이 인정되어온 것이다.

 

여하간 예술활동을 원하는 이들과 그것의 향유를 원하는 이들이 있고 그 활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기반으로 해서 말이다. 실제 한국보다 훨씬 기초예술 활동의 누적된 역사가 깊은 서구 사회에서도 시장에서 스스로의 생존과 재생산을 이뤄내고 있는 예술활동집단은 극히 드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10여년 전 쯤에 이탈리아의 교육 연극 분야 사회적 협동조합의 케이스들을 조사하다가 놀랐던 점이 협동조합이란 경제조직의 형태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분야와는 달리 소비자의 직접 구매력으로 재생산되는 구조가 결코 아니란 점이었다. 그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경쟁력은 콘텐츠의 질과 사회적 파급력이지 티켓 판매의 가능성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 활동 자원의 70% 가까이를 공공지원을 통해 확보하고 있었다. 다만 한국의 케이스와 다른 것은 공공지원의 루트가 훨씬 다양하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설계되어 있다는 차이가 존재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 예술계가 보여주고 있는 공공의존성의 문제 역시 단지 공공에 수치적으로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하는 문제가 아니다. 공공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가의 문제다. 문예진흥원이 거의 유일한 예술지원조직으로 존재하던 시절에 비해 예술에 대한 지원 방식이나 트랙들은 외형적으로 훨씬 다양해졌고 예산규모 자체도 매우 커졌다. 창작 활동 지원은 각 광역 문화재단을 통해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향유와 매개에 대한 지원은 그보다도 훨씬 더 많아졌다. 예술인복지재단의 파견예술인 사업과 같은 형태의, 예술가와 다양한 사회적 활동의 결합을 지원하는 형태도 존재하고 있으며 아르떼를 통한 예술교육과 연관된 활동에 대한 지원도 존재한다. 그뿐만 아니라 도시재생, 문화도시 등 지역 관련 활동에서도 연계 프로그램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예술지원 트랙들이 만들어져 왔다. 그런데 이런 외면적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반복되는 관성이 있다.

 

매우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공급자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행정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지원이란 단순한 얘기가 아니다. 정책을 공급하는 이의 관점에서 성과의 지표가 설계되고 그 지향 안에서 지원의 효율성과 파급력이 평가되는 구조란 얘기다. 한마디로 예술인이 자기활동에서 필요한 자원을 공공에서 지원하고 있다기보다는 공공조직에서 자기 미션에 따라 진행해야 하는 사업의 자원으로 예술가들을 활용하는 측면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객체화시키는 이러한 지원구조는 당장 그 활동을 통한 생계와 최소한의 재생산을 유지하고 있는 예술 집단이나 개인에게 활동의 젖줄이 되어온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나 장기적으로 예술 활동의 자발성이나 본질적 창조활동에 있어서는 굴레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특히 코로나19 상황 같이 공공조직들이 기존의 지원트랙을 잘 굴리기 어려운 조건이 주어졌을 때 예술활동이 일시에 함께 정지되고 출구가 막혀버리는 동맥경화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술지원의 주체

 

물론 문화체육관광부 등 문화행정조직들도 수 년 전부터 예술 활동의 자생력 강화라는 표현을 입버릇처럼 거의 모든 예술정책계획 안에 집어넣어왔다. 하지만 거의 개선된 점은 없다고 본다. 그리고 앞으로도 문화부가 상상하는 방식의 자생력 강화는 이뤄지기 힘든 부분이라고 본다. 왜나하면 그러한 정책들에서 자생력의 관점 자체가 지나치게 경제적인 부분에 집중되어있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듯 현대사회 어디에도 소수집단이나 개인을 제외하고 예술활동이 경제적 자생력을 얻는 경우가 거의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 오히려 이런 경제적 자생력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접어야 한다. 몇 년 지원하고 그 이후로는 알아서 살아남으라 식의 지원은 어떤 성과도 얻어내기 어렵다. 특히 존재하지 않는 시장의 자생력에 대해 마치 사회적 경제조직(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이 문제 해결의 솔루션처럼 제시되는 것은 상당히 황당한 노릇이기조차 했다. 오히려 그런 실현 불가능한 경제적 자생력을 대체할 수 있는 공공 예술지원의 다른 명분을 찾아야 한다.

 

예술지원을 통한 사회적 가치의 실현이란 개념도 많이 사용되고 있기는 한데 경제적 자생력 획득만큼 황망한 것은 아니지만 일정하게 한계가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사회적 가치란 말이 붙는 순간, 실제로 사회적 가치에 대한 폭넓은 해석이나 접근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협소한 목적의식적 예술 활동에 대한 지원, 문화예술활동을 도구적으로 바라보는 지원으로 곡해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다양한 갈등을 해결하고 사회구성원을 통합하는 예술이란 식으로 말이다. 실제 예술 활동이 갖는 가장 큰 사회적 기능은 사회의 통합성을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 은폐된 사회의 불편함을 호명하고 환기해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정과 그에 따른 지원환경은 필요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지금과 같이 일차원적으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풍토에서 벗어나는 것이 선제되어야 한다.

 

문제는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 바뀌더라도 예술지원의 주체가 달라지지 않는 한 조금 더 나은 공급형 지원정책일 뿐,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결국은 문화예술계가 주체가 되는 지원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예진흥원의 틀을 벗고 문화예술인들이 주도하는 민간자율기구로 전환되었던 시점의 문제제기들에 대하여 다시 복기할 필요가 있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예술위원회와 같은 형태의 민간주도 예술지원조직을 요구했던 것은 문화부로부터 기금을 받아서 잘 나누어주는 수준의 조직을 상상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자기 책임성을 갖고 문화부를 포함한 다양한 공공과 민간의 조직들과 파트너십을 갖고 재원 마련부터 거버넌스, 지원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이고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조직에 대한 상을 그렸었다. 현재의 모습은 그런 구상에서 한참 멀어진 형국이다. 코로나 사태와 문예진흥기금 고갈과 같은 외부적 조건을 겪으며 어떤 변화의 싹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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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신규.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겸임교수.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문화예술분야에서 발을 들여놓았으며 창작자기획자정책활동가 등 깊이 없이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았다최근에는 문화정책(제도연구와 문화 연구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작업들을 고민하고 있다특히 관심 있는 분야는 국민국가 성립 과정에서의 문화적 제도화의 문제노동자 문화정체성에 대한 비전형적인 방향에서의 탐색 등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