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특집 : 판데믹 이후, 전환을 위한 의제⑤] 길을 따라가는 문화정책, 그 이후

CP_NET 2020. 12. 3. 11:17

그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2020년도 어느덧 마지막 장까지 왔다. 수 차례 이 지면에서 언급해왔지만 판데믹이라는 상황은 우리 사회, 나아가서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래없는, 여지껏 경험해보지 못한 사회적 활동의 제약을 던져줬다. 세계가 일시에 멈춰버리는 듯한 체감을 던져준 올 한해의 경험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 우리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변화시킬지 아직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에 머물러있다. 이런 지독하게 낯선 현실 세계의 체험은 대면상황에서의 상호체험을 통한 관계형성과 감각과 심상의 공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문화예술계 전반에 있어 당장 매우 큰 어려움을 던져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매우 예외적인, 낯선 상황은 우리가 그동안 지당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던 문화와 예술의 사회적 의미와 이를 둘러싼 공공정책의 지향에 대하여 평소에는 미처 하기 힘들었던 고민들을 일깨워준 계기이기도 하다.

 

 

국민국가 형성과 국가주도 문화정책

 

지난 호 [문화정책리뷰]에 실렸던 손이상의 글에서([특집 : 판데믹 이후, 전환을 위한 의제]우리 시대의 예술지원제도에서 끄집어낸 문제의식도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손이상의 글은 역시 코로나 판데믹 상황이 다시 호명한 예술지원제도의 문제를 건드리며 우리가 수 십년 간 참고해 온, 아니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모방해온 서구 1세계의 문화정책과 예술지원 제도를 고찰한다. 손이상의 글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서구사회에서 19세기 전후한 시기, 그러니까 소위 근대국민국가 체제가 출발한 시점에서 예술의 발전을 국가의 책무로 삼고 지원한 것은 다분히 국가의 예술적 역량을 국가의 역량과 등치시키는 발상에서 시작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국민국가체제를 갖춘 영국이나 프랑스 등은 자신들의 문화적 우수성을 주장하며 이를 세계표준, 요즘으로 치자면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담론화시켰다.

 

그런 점에서, 일부에서 굉장히 오해되고 있는 것이지만 문화를 둘러싼 두 가지 상반된 듯 보이는 입장, 소위 민족주의적 시각과 보편주의적 시각은 사실 한 몸에서 출발한 쌍생아와 같다. 빠르게 근대국민국가를 성립하고 제국으로 성장한 국가들이 자신들이 과거들, 그러니까 왕가와 귀족, 그리고 종교에 의해 유럽의 경계를 넘어서 지배되던 질서를 넘어서는 지점에서 사용한 것이 민족주의라면 스스로가 새로운 지배질서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무렵 스스로를 세계의 새로운 표준이라고 주장하며 내세운 것이 소위 서구적 보편주의인 것이다.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에 속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인데 계몽주의의 연장선에서 등장한 예술과 학문의 역량, 즉 문화의 역량이 19세기 이후 세계 체제에서 각국의 포지션을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문화국가를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곤 하는 백범 김구의 문화강국론(“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은 결코 예외적이거나 독창적인 주장이 아니었다. 국민국가로 들어서는 경로에 놓여있던 많은 후발 국가의 지도자들이 예술의 힘이나 학문의 발전을 막 성립된 국가의 일차적 목표로 삼는 발언이나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20년대 오스만제국 해체 이후 터키(튀르크)공화국을 세운 케말 파샤 초대 대통령은 총검으로, 무기로, 그리고 피로써 승리한 우리 군대는 승전 이후에는, 문화, 과학, 철학 그리고 경제의 전장에서도 또한 승리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라는 발언과 함께 과학, 문화, 교육의 발전을 국가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이슬람 종교지도자들과 충돌해가면서까지 문자개혁을 하는 등 강경한 정책을 단행했다. 우리와 시기적으로는 비슷하게 근대국가로서 독립한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는 그 자신이 건축가이기도 했으며 새로운 국가의 기반마련을 위해 문화적 토대를 만드는 것에 엄청난 관심을 기울였고 그래서 수카르노 시대의 문학 창작, 언어학 연구, 고전 번역이 국가 재정 규모에 비해서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꽤 유명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해방과 건국 이후 한국 사회의 문화정책에 대한 오랜 비판인 지나친 국가주도성과 이에 따른 국가주의 프로파간다로의 치중은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없다. 국민국가의 형성과정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역사적 과정의 여러 변종 중 하나였을 뿐이다.

 

 

복지사회담론과 사회발전전략의 한계

 

그런 점에서 최소한 노골적인 성장형 개발 국가 시대를 거쳤던 대략 1980년대 이전의 문화정책에 대해서는, 물론 세부적인 내용 측면에서 독재권력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던 점이나 방법론의 측면에서 검열과 지원을 통한 통제적 국가장치 중심으로 중속시켰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시사점을 찾아내고 고찰하는 것이 현재 시점에서도 유의미하지만, 그럼에도 불가하고 불가항력적인 측면을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오히려 더 문제가 되는 지점은 소위 경제적인 성장이 이루어지고 제도적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30, 40년간의 문화정책과 예술지원제도가 가지고있는 한계들이다.

 

다소 뭉뚱그려졌지만 국민국가 형성기의 문화정책이 대부분 예술과 학술의 성장을 국가가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뒤처지지 않는, 혹은 위계 구조에서 우위에 서는 문화선진국으로 향해간다는 입장이었다면 1950년대 이후, 그러니까 2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고 미국과 소련을 정점으로 한 냉전체제가 수립된 이후 소위 주요 국가들의 문화정책들은 일종의 케인즈주의라 얘기될 수 있는 복지국가론에 입각한 문화복지정책의 확산이었다. 이런 시대 흐름에서 계몽주의적 측면에서 문화에 대한 전통적 사고, 중산층 교양의 확산이라는 리비스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 문화의 민주화였다면, 이에 대응으로 성장하는 대중사회에 좀 더 주목하고 이들의 문화 역동성을 강조한 입장이 문화민주주의의 입장이었다고 하겠다. 이런 입장들이 가장 번성하며 왕성하게 정책적 흐름을 만들며 제도화되었던 것이 서구사회에서는 1960년대부터 20세기 후반에 이르는 시기였을 것이다. 엇비슷한 시기에 한국 사회에서는 국가 프로파간다로서의 문화정책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는 시대적 한계에 놓여있었다. 이런 간극은 국민국가로서의 출발 자체가 엄청난 시차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쏟아져 들어온 문화정책의 다양한 흐름들은 손이상의 지적처럼 서구사회가 19세기부터 장장 두 세기에 걸쳐 겪은 변화를 우리는 단지 수십 년 만에 몰아서 경험하는 마치 흰 토끼를 따라갔다가 이상한 나라에 갑자기 던져진 소녀의 혼란을 격렬하게 체험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20세기 초반 유행했던 스페인독감이 많이 비교되곤 한다. 여러 가지 유사한 지점들도 존재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감염의 이동경로와 속도이다. 100년 전의 스페인 독감은, 1차 세계대전과 시기적으로 겹치며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낳았고, 바로 그 세계 전쟁 시기와 겹쳤던 이유로 그 피해의 정확한 범위를 알 수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현재와 비교할 수 없이 인류 사회의 물질적, 비물질적 이동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형태의 동시 확산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한 지역에서 맹위를 떨치다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고, 다시 또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형태로 피해를 양산하다가 사멸했다. 반면에 코로나19 바이러스는 10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의료시스템과 인류의 영양 상태가 좋아진 상황에서 극단적인 피해(사망률)가 줄어든 반면에 확장된 이동성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되는 형태로 순식간에 전환되었다. 비슷한 듯하지만 매우 다른 양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문화정책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알게 모르게, 사실은 대놓고 따라왔던 서구사회의 문화정책 역시 그 한계에 대한 지적이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다. 손이상이 주목하고 있는 페르 망세트의 글에서 언급된 서구 공공문화정책의 일곱 가지 도전에 담긴 문제의식이 벌써 우리 사회에도 도착해 있다는 것이다. 일개 문화정책가의 입장에서 따져보면 억울한 노릇이긴 하다. 그 세계에 비해 출발이 훨씬 늦고 이제 간신히 프로파간다 중심의 국가주의 문화정책에서 벗어나 시민주도 문화향유, 예술인들의 권리와 같은 복지사회 담론에 기반한 문화정책을 미흡하게나마 제도화하고 있는 상황에 도달하고 있는데 현실은 훨씬 더 먼저 앞질러서 미끌어져 가버린 셈이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손이상이 지적하듯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어떤 근대적 이미지가, 우리 입장에선 솔직히 보편 정서 속에 제대로 정립되기도 전에 낡은 것이 되어버린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정책을 통해 현장을 바꿀 수 있다는 이상을 얘기하기에는 현장이 먼저 다른 방향으로 재구성되어버리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아니 무엇을 할 수 있나. 계속 해체되어가고 있는 복지사회 담론과 사회발전 전략에 근거하여 문화정책의 방향을 세우는 것은 일정한 한계에 도달했다고 본다. 그런데 또한 복잡한 것은 당장 그 이후를 얘기하기에는, 거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경유해야 할 사회적 체험의 과제들도 간과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예술의 정체성, 예술인의 존재, 예술의 사회적 가치, 예술의 공공성, 문화적 자율성과 다양성 등에 대하여 다수가 상식선에서 공감하는 이미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전제로 한 정책을 설계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그 이후를 얘기하는 것은 또 다른 함정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파생적 관계성에 주목할 때

 

당장 어떤 답을 간명하게 내리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문화정책의 성과를 기술적인 방법으로 포장해내는 관성에서 벗어나서 현실 세계에서 체감되는 아주 기초적인 예술과 문화의 제반 문제에 대하여 미시적인 관찰과 탐색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화기관들이 주도하는 지원사업 위주의 문화향유사업이 일반적 의미의 문화향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미미하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뭐 투입되는 예산을 보자면 그것이 정책 집행자의 잘못이나 정책 설계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그런 극히 제한된 수혜 대상 이상으로, 문화예술정책을 펼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여기서 수혜대상을 단순히 늘리는 게 해법이 아니다. 오히려 기관의 문화향유사업이 잠재적 수혜대상인,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규모의 사회집단의 자발적 문화향유를 활성화하는 파급효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하여 맥락과 인과 관계, 경로, 사회적 공감에 이르는 파생적 관계성을 만들 수 있는가의 부분이 공공정책에서는 오히려 더 중요하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문화 향유가 시민 개개인의 생에 어떤 변곡점이나 계기를 형성하는지, 혹은 아닌지에 대하여 정책가나 행정가가 아닌, 시민들 스스로 심상의 서사를 형성하고 나눌 수 있는 계기를 주는 방향으로 큰 틀에서는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지원, 아니 단순히 예술지원을 넘어 사회에서 예술가가 존재하고 활동하는 방식에 대한 공공정책의 개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어느 선진적 사회를 따라잡기 위한, 당위로서의 문화정책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코로나19 판데믹은 세계의 불완전성에 대해 새로운 각성을 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주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형식의 변화를 대응하는 동시에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추동하는 문화정책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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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신규.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겸임교수.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문화예술분야에서 발을 들여놓았으며 창작자기획자정책활동가 등 깊이 없이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았다최근에는 문화정책(제도연구와 문화 연구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작업들을 고민하고 있다특히 관심 있는 분야는 국민국가 성립 과정에서의 문화적 제도화의 문제노동자 문화정체성에 대한 비전형적인 방향에서의 탐색 등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