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특집 : 판데믹 이후, 전환을 위한 의제⑥] 지역문화재단, 불능의 알리바이 구조 넘어서기

CP_NET 2021. 1. 6. 09:51

현행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은 지방정부가 설립하는 출자출연기관의 목적에 대해 명시하고 있지 않다. 다만 부분적으로 제3조에서 경영의 기본원칙만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출자출연기관의 기능과 목적은 그것을 설립하는 지방정부와 지역사회에서 부여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여기서 범위를 출연기관 중 하나의 유형으로 지역문화재단으로 좁혀서 본다면 <지역문화진흥법>을 참조할 수 있다. 법의 제5장은 지역문화재단의 설립에 관한 사항을 담고 있는데, 특히 제19조를 통해서 지역문화진흥에 관한 중요 시책을 심의 지원하고 지역문화진흥 사업을 수행하기 위하여지역문화재단을 설립 운영하도록 규정했다. 즉 기능으로서는 심의와 지원을 하고 목적으로서는 지역문화진흥 사업을 하는 곳인 셈이다.

 

1997년 경기도에서 최초의 광역문화재단이, 그리고 1998년에 강릉시에서 최초의 기초문화재단이 설립된 이후 지속적으로 지역문화재단이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지역문화진흥법>이 만들어지기 전인 2014년까지 행정안전부가 고시한 출연출자기관 목록 중 문화재단은 53개소에 달해 1년에 3.1개의 문화재단이 만들어졌지만, 2019년 기준으로 설립된 문화재단은 81개소로 28개 증가해 1년에 5.6개의 문화재단이 만들어졌다(이는 이후에 살펴볼 전국 문화기반시설 백서에서 제공하는 기관의 숫자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법률의 직접적인 영향 유무는 판단하기 어려우나 지역문화에 대한 관심이 한편으로는 중앙정부 차원의 법제정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지방정부 차원의 문화재단 설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낮은 제도화, 높은 인적 요인 의존도

 

현재 설립되고 있는 지역문화재단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2019년 조례 개정을 통해서 기존 예술의 전당이 문화재단으로 전환된 의정부시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의정부시는 2007년에 재단법인 형태로 예술의 전당을 설립해 운영하다가 2019년에 이를 포함하여 문화재단을 새롭게 설립했다. 그런데 조례의 폐지와 제정의 방식이 아니라, 기존 조례의 개정 방식으로 진행했다. 조례의 명칭이 바뀌는 것인데도 신규 제정이 아니라 개정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예술의 전당이라는 단어를 문화재단이라는 단어로 변경하는 것 외의 변경 사항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존에 예술의 전당이었던 것이 문화재단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은 자치구 차원에서 설립되는 기초문화재단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도서관 운영과 문화시설관리를 전담했던 시설관리인력의 통합 외에 어떤 기능이 부과되는지 알기 어려운 재단들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기존의 시설관리 위주의 문화시설 운영을 재단 운영으로 전환하면서 달라지는 것들이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달라지는 것이 없다. 조직 내적으로 보면 기존의 시설관리 직군의 폐쇄성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게토화되고 조직 외적으로 보면 설립 주체인 지방정부에 대한 자율성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2014<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된 이후 지역문화재단 설립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지만 이를 문화재단 조례 상 근거로 삼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과거에는 근거 법령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법 제정 이후에도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점은 현행 지역문화재단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때때로 조례가 무엇이 중요하냐 실제로 운영되는 방식과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협력이 더 중요하지, 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이 역시 지역문화재단이 처해 있는 다른 한계를 보여준다. 공공기관 임에도 불구하고 공적인 기능과 역할에 대한 논의 없이 만들어놓고 잘 운영하면 된다고 하는 관점 말이다. 낮은 제도화는 결과적으로 높은 인적 요인에 대한 의존도로 나타나게 되는데 역설적이게도 이런 취약성이 오히려 문화기관의 자율성이나 독특함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이는 공공기관이 지향해야 하는 최소한의 기능성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주는 것이다. 개인 사업체라도 사장 개인의 경영능력에만 의존하는 경영방식을 권장하기 어려운데 최소한의 공적 기능을 목표로 설립된 공공기관이 대표자의 성격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도 적절하다 보기 힘들다. 조례 상의 명확한 기능과 역할에 대한 근거가 부재하다는 것과 인적요소에 대한 과도한 의존구조는 분리된 2가지 문제가 아니라 동일한 문제의 상이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현재 지역문화재단이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또한 누가 용이하게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인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지역문화재단의 정당성 구조를 살펴보자. 정당성 구조란 어떤 정책이나 사업의 우선순위에 대한 합의 구조로 볼 수 있다. 보통 공공기관이 가지고 있는 정당성 구조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법제도다. 즉 법이나 조례에 하도록 되어있는 기능은 최고의 우선순위를 가진다. 하지만 법제도 상의 기능이 모호하거나 일반적일 경우 이에 대한 해석이 중요해진다. 민주적인 구조일수록 해석의 다양성과 합의의 투명성이 보장된다. 즉 민주적 구조는 이것도 저것도 다 포함시켜 기계적인 형평성을 맞추는 과정이 아니다.

 

대다수 문화재단은 이사회의 형태를 채택함으로서 합의제 운영구조를 표방한다. 또한 민간재단으로서의 법인격에 따르도록 함으로서 자율운영과 책임을 명확하게 한다. 형식적으로 보면 이사회+민간재단법인의 성격은 과거 직속기관으로 운영되어온 문화시설에 대해서도 새로운 방식의 운영구조를 도입하고, 또한 전문인력을 통한 문화예술사업의 질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이사회 구조는 역설적으로 대부분의 지역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방자치단체장이 차지함으로서 비전문가 운영체계로 퇴행한다. 거기에 해당 지방정부의 순환직제 담당 공무원이 당연직 이사로 들어온다. 이런 이사회 구조는 지방자치단체의 실국장회의보다도 못한데 오히려 출연기관의 조건을 생각하면 하청업체에 원청사장이 참여하는 꼴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문화재단의 사업은 대개 지방정부의 담당부서에서 떨어뜨리는 위탁사업이나 대행사업을 수행하는 기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전문성을 위해 문화재단에 채용된 전문가들이 고작 6개월에서 1년 정도 직무를 할 뿐인 순환보직제 지방정부 공무원의 지시를 따른다는 점이다. 왜 안 그러겠나? 원청 사장이 이사장이면 원청의 대리가 하청기업의 사장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한국의 기업문화 아닌가? 이런 일들이 지역문화재단의 구조에서 버젓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런 구조가 지속되면 지역문화재단에 있는 소위 전문가 그룹들의 인질 현상이 발생한다. 그러니까 지역문화재단에서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묘한 희생자 정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역문화재단이 가져야 할 정당성 구조가 생존 자체로 대체되는 기묘한 정서적 담합이 만들어진다. 현재 정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역문화재단 차원에서 괜찮은 내부 거버넌스 구조를 가지거나 혹은 참여형 사업구조를 가진 곳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개방적 사업구조와 개방적 거버넌스 구조는 권한의 수준에서 전혀 다른 개념임에도, 공통적으로 지역문화재단 자율성을 진단할 때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개방적 사업구조는 사업을 진행하는데 사업참여자의 의견을 듣는 과정이지만 개방적 거버넌스는 기관 자체의 정책과정에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과 연관된다. 하지만 이미 재단 내부에 진입해 있는 기획자 혹은 당사자 직원들의 생존과 고민이 절차적 정당성 과정을 상징적으로 대체해버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역문화정책 생태계의 진공상태

 

지역문화재단이 선출직 공직자의 악세사리로 전락할 수 있는데는 취약한 제도적 근거가 놓여 있다. 적어도 <지역문화진흥법>에 근거한 재단의 기능을 고려했다면 지역문화진단이나 최소한의 현황 진단이 전제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지역문화재단의 설립 타당성은 컨설팅업체들의 급조된 보고서로 만들어진다. 지역문화재단이 선출직 단체장의 악세사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회사를 차리고 나서 뭘 만들어 팔지 생각해보자는 식이니 그렇게 만들어지는 지역문화재단이 제 기능을 할리 만무하다. 그런데 이런 기관의 대표자들은 대개 일을 할 사람들이 아니라 선출직 단체장과의 관계를 고려해 보상 차원에서 배려된 인사들이 문화예술계라는 이유로 채워진다. 문화재단의 이사회는 흡사 동호회 모임에 더 어울리는 덕담의 자리로 전락하고 사무처의 하소연이 채워진다. 6개월 혹은 1년짜리 순환직 공무원의 이해도에 따라 재단 사업 구조의 수준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그야말로 재단의 실무진들은 영혼을 끌어모아 외부 자원을 끌어온다. 외부 자원의 규모가 커질수록 기관의 조직적 역량보다는 외부 사업을 더 영리하게 끌고 올 수 있는 전문인력의 필요성이 높아진다. 이런 순환구조가 가속하면 지역문화정책 생태계는 진공상태로 진입한다.

 

출연출자기관들의 정보공시 자료가 공개되는 클린아이에 따르면 지역문화재단들이 순 적자로 운영되는 곳은 거의 없다. 재정 상의 어려움이라는 것이 현재 지역문화재단의 구조를 전부 설명해주진 않는다는 말이다. 부실한 제도화의 근거와 높은 수월성에 대한 기대가 기묘하게 상생하고 있는 불능의 구조가 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공공기관의 덕목은 최고의 수월성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돌멩이가 있어도 작동되는 최소한의 기준 충족에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재한 상황에서 서둘러 만들어진 지역문화재단은 그야말로 전례에 의한 관행적 기관이 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지역문화정책에 있어서 지역문화재단은 있으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진공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떻게 하면 이런 진공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까? 이질적인 공기를 주입하면 된다. 조직의 내부적 논리나 관점을 앞세우면 이미 직렬화된 도서관 직제나 시설관리 직제를 우회하고, 지방자치단체에서 넘어온 사업들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아예 문화재단이 없다면 곤란한 것에서 부터 생각하고 이것을 핵심기능으로 하는 지역문화재단 상을 새롭게 만들자. 이를 위한 운영구조와 거버넌스 형태에 대한 상을 그려보자. 어디까지나 지역문화재단은 지역문화를 위한 공동의 도구이자 공동의 자원이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지금 길을 잃으면 수단이 목적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논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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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블랙리스트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혁신을 위한 TF위원, 1기 현장소통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문화/예술 재정과 예술활동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