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링하러 끌려간 치과에서 충치를 발견하듯이, 전염병으로 인한 장기적 예외상태는 우리 시대의 숨은 질환을 찾아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난 여름, 서울의 한 구(區)에서 발표한 예술인 긴급지원 안내에 따르면, 긴급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었는데, ‘공공프로그램 강사료 지원 수혜자’가 그 중 하나였다. 여기서 멀쩡하게 고용한 강사를 ‘강사료 지원 수혜자’라고 표현한 그 대목이 바로 우리 시대의 질환이다. 우리가 구청장을 ‘세비 지원 수혜자’라고 하지 않고 구청 직원을 ‘봉급 지원 수혜자’라고 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받는 급여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반면 문화강좌 강사들을 ‘강사료 지원 수혜자’라고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급여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 아니라는 의미로 보인다. 그 급여는 지원금 명목의 수혜일 뿐이라는 것이 공공기관의 속마음 아닐까.
이 문제를 잠시만 생각해보면 벌거벗은 임금님을 모른체하 듯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진정한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각급 광역문화재단들이 편성한 각종 공모사업에는 적당한 커리어를 쌓은 미술가들이 해마다 산더미 같은 서류를 보낸다. 그들 중 일부는 거의 랜덤으로 전시지원 또는 창작지원을 받아 아무도 보러 오지 않는 전시를 열어 적당한 커리어에 한 줄을 더 추가할 수 있다. 초대권을 남발해야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객석을 채울 수 있는 연극이나 무용도 그러하고 일부 비주류 음악도 비슷하다. 이들 비상업적 예술가집단은 점점 더 예술지원에 의존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지원을 받는 것을 마땅히 여긴다. 자신들의 작업이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반면 정부와 공공기관의 내심은, 지원금 없이는 지속적인 예술활동이 불가능하고 더러는 생계의 위협을 겪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베푸는 수혜일 것이다.
예술, 예술의 가치, 예술지원
이 차이를 말하기에 앞서 문화정책이라는 것을 처음 시행한 서구 1세계의 발전과정을 보자. 19세기에는 예술의 발달을 곧 문명의 척도로 보고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을 세워나간 한편 예술가에게 우월한 가상의 지위를 부여했다. 20세기 초반과 중반에는 국민을 예술을 통한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대신 예술 향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고 예술분야에 공적 지원을 늘렸다. 20세기 후반에는 국가 혹은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한다는 명분 아래 예술지원기관들을 민영화하고 자율운영에 맡기고 문화예술 예산을 크게 감축시켰다. 200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는 문화의 공적 성격을 재발견하면서 문화다양성, 문화민주화 등의 개념이 등장했다. 그리고 온갖 시도 끝에, 최근에는 공공의 예술지원 자체의 실제 효과를 의심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문화정책의 양상이 문화예술을 보는 관점의 변화에 따라 두 세기에 걸쳐 변화해왔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우리 할머니는 스타워즈에 나오는 요다와 거의 똑같이 생겼는데, 그런 우리 할머니도 한국 사회가 압축성장으로 인해 여러 시대가 혼재된 중층근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문화예술이 독재체제하 금지 또는 검열의 대상이었거나 국정 프로파간다의 수단이었다가, 국가의 강력한 영향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90년대에 이른바 ‘팔길이 원칙’에 근거한 예술지원제도가 도입되어 현재까지 오고 있다. 그런데 이 ‘팔길이 원칙’은 서구에서 거의 100년 전에 시작하여 이미 과거에 폐기 또는 시정된 것으로서, 한국 또한 오늘날의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지원주체와 지원대상 모두 원칙과 다른 모색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사정이다. 요는 서구사회가 19세기부터 장장 두 세기에 걸쳐 겪은 변화를, 우리는 단지 수십 년 만에 몰아서 경험하였으며, 이전 시대의 모델이 제대로 검토 또는 극복되지 않은 상태로 누적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19세기적 예술관념이 우리사회에 남아있음은 예술가 상(像)을 통해 알 수 있다. 예술가는 여전히 일반 직업군과 구별되는 특이한 인간 부류로 취급되곤 하는데, 일반기술과 분리된 예술개념이 한국에서 유독 강하기 때문이다. 이 관념은 예술가 스스로에게도 일부 내면화되어있다. 이를테면 현실적으로는 장식품으로서의 회화를 생산하는 미술가라고 해도 그의 작업을 공예나 웹툰 등과 동일하게 간주하면 즉각적으로 반발할 것이다. 한편 19세기적 예술개념이 사회일반에 아직도 작동하는데 비해, 국가의 예술지원제도는 20세기형 복지국가=문화국가 모델에 근간을 두고 있다. 이 갭 때문에 예술지원은 국민의 문화향유에 이바지하는지 실증되지 않은 상태로 반복된다. 또 진보정당들은 예술인의 노동가치와 생계보장 등의 이유로 문화예산 확대를 공약하고, 예술인단체 중 일부는 문화의 공공성을 주장한다. 입장과 견해의 차이 때문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의 문화예술 개념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세 문단 앞에 짧게 언급한, 예술지원정책의 실제 효과를 의심한다는 서구의 최근 움직임을 짚어본다. 노르웨이의 문화사회학자인 페르 망세트는 “문화정책의 끝?”(International Journal of Cultural Policy 2020년 26호)이라는 글에서, 오늘날 서구사회의 공공문화정책이 직면한 일곱 가지 도전 사항들을 꼽았다. 첫째는 문화민주화가 사실상 실패한 것. 둘째는 구닥다리가 될 것이 분명한 문화와 기관을 당국이 계속 지원하는 것. 셋째는 지원을 받아도 전문예술인이 계속 가난한 것. 넷째는 문화 생산과 유통은 점점 세계화하고 있는데 공공문화정책이 국가 단위로 시행되는 것. 다섯째는 문화예술지원을 정당화하기 위해 문화분야 외에 미치는 유익한 효과를 점점 더 많이 주장하고 있는데 그러면 다른 기관이 문화 문제를 담당해도 된다는 것. 여섯째는 공공기관이 문화부문을 관료적 울타리 안에 가두는 것. 일곱째는 문화재정 증액을 요구하기 위해 예산이 정체되었을 때의 문화 발전을 무의미하게 취급하는 것이다.
이 사항들은 우리에게도 검토의 필요성이 있다. 우리의 문화정책 모델이 아직 여기까지 도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초강력 21세기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원고 분량을 유지하기 위해 일곱 가지 사항 중 두 번째만 이야기해본다. 르네상스 이전에는 회화나 조각 등이 집 짓기, 노 젓기, 씨 뿌리기 등과 구분되지 않는 일반기술이었음은 타타르키비츠를 인용하지 않아도 예술계통 전공자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면 회화나 조각 등은 왜 특정 시기에 갑자기 일반기술과 분리된 예술이 되었나? 상징화가 아닌 사실화가 나오면서 커다란 시각적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시각이미지가 없었던 시대에, 예를 들어 내륙지방에서 태어나 평생 살아온 사람은 바다를 그린 회화작품을 보고서 거의 마법과 같은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예술의 독점적인 지위는 19세기 후반에 정점을 찍고 20세기 초중반까지 유지됐다. 예를 들어 연극 오타쿠이자 부업으로 경제학을 했던 케인즈의 시대에는 넷플릭스나 유튜브는 커녕 TV도 없었다. 국가가 팔길이 정도를 유지하면서 예술, 특히 연극을 지원해야 한다는 케인즈의 이상은, 그때는 연극예술이 가장 발전된 미디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 과거에 일반기술과 구별되는 ‘순수예술’이었던 것들의 역할은 뉴미디어에 대체되고, 그 사회적 영향력도 급격히 감소했다. 이제 내륙지방에 태어난 사람이라 해도 어디서든 바다 풍경을 볼 수 있으므로, 바다를 그린 회화작품은 이전과 같은 마법적 기능을 상실했다. 비슷한 일이 미술뿐 아니라 다른 모든 예술에서 일어났다. 그리하여 더이상 진귀한 볼거리가 아니게 된 예술은 점점 더 관객이 감소해, 자립기반을 잃고 공공지원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실이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이 작금에 서구사회가 맞닥뜨린 현실인데, 우리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날 예술지원의 문제는 이러하다. 첫째로 지원대상 예술의 가치가 과거와 같지 않아, 납세자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향유한다는 것(공적가치를 잃었다는 것). 둘째는 시대에 따라 예술로 규정되는 매체 또는 활동의 범주는 변하게 마련이고 이미 변화를 겪고 있음에도 문화당국이 직접 예술의 범주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예술에 지원을 계속해야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지원 없이는 일부 예술의 존속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공공기관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자. 다수의 공모/지원 프로그램들이 같은 프로그램의 ‘지원 혜택’을 이전에 받은 사람에게는 반복지원을 거절한다. 수혜를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주겠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관련 공공기관의 역할이 수혜를 나누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예술지원은 수혜가 아니다, 그렇다면
문화예술에 대한 한국의 공공지원과 예산 규모는 해마다 늘어왔다. 현재 우리의 GDP 대비 문화예술예산 규모는 세계 1위인 프랑스를 바짝 뒤쫓고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만큼 성장하는 동안에도 예술지원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명확한 합의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어떤 예술을 지원할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단지 관성적으로 시행되어왔고, 관련 공공기관은 수혜를 준다는 속마음을 별로 숨기지 않으며, 예술가들은 거기에 의탁한다. 예술지원이 단순 수혜에 불과하다면 어째서 예술가집단만이 다른 직업군, 다른 계층과 별도의 지원을 받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그렇다, 예술지원은 수혜가 아니어야 한다. 그것은 예술가를 아무 효과도 기대하지 않는 불필요한 용역사업에 배당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소득을 증빙하는 서류에 매달리게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렇다면 짧은 질문을 몇 가지 던져보자. 예술지원의 주요 목표가 예술 자체의 발전과 창작의 자유를 늘리기 위한 것이어야 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사회에 이로운 점이 무엇인지를 재차 물어야 할 것이다. 예술지원 목표가 수용자의 문화수준을 높이고 예술을 통한 고양을 이루기 위함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이 정녕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진짜 효과가 있는지를 재차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예술지원이 예술의 내재적 가치와는 무관한 또다른 공공적 기능을 목표로 하는 것인가? 그것은 초강력 21세기에도 논의할 가치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글의 분량은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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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상. 서울민예총 운영위원. 제3의목소리회 운영위원. 前 4.3 70주년 서울시사업 연출감독. 미술과 미술사를 공부하고 펑크밴드를 하다가 공연기획 일도 하게 되었다. 한국일보에 4년간 칼럼을 연재했다. “쟤는 왜 저럴까”할 때의 “쟤”를 맡고 있다. 지구의 평화를 위해 타문화를 탐색하고 교류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가끔은 그를 통해 한국사회를 돌아보기도 한다. 난세를 폭풍처럼 살다간 영웅호걸들의 삶을 동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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