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특집: 판데믹과 문화정책 ③] 판데믹과 사회문화적 위기, ‘K-방역’은 무엇의 이름인가

CP_NET 2020. 6. 7. 22:37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이렇게 국뽕이 충만한 적이 있었나 싶다. ‘K-방역말이다. 남한의 코로나19 대응을 앞 다퉈 극찬하는 서구 언론은 확실히 낯선 광경이었다.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짚어두자. ‘K-방역성공을 확정하는 건 아직 이르다. 긴장을 늦추면 순식간에 상황은 바뀔 수 있다. 유럽과 한국의 입장이 역전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이 5월 연휴를 앞두고 계속 경고해왔지만 정부는 외부의 칭찬에 도취돼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했고, 결국 이태원 클럽을 진원으로 확진자가 다시 폭발적으로 늘었다. 순차적 개학을 실시한 20205월 말 현재, 감염 상황은 그야말로 살얼음을 딛는 듯 불안하다.

 

좋든 싫든 코로나 19는 지구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 파괴력은 가히 20세기 초 대공황의 충격을 넘어선다. 벌써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예측하는 책과 글이 쏟아지고 있지만, 백신과 치료제조차 나오지 않은 지금 대다수 예측은 그저 불안과 공포를 애써 감추려는 단말마에 불과하다. 이 글에서는 K-방역의 초기 성공배경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눠 살펴보고, 판데믹 시대 사회문화적 위기의 성격을 간략히 짚어보기로 한다. 의료인과 정치지도자의 역량은 따로 논하지 않고 사회적 조건만으로 한정한다.

 

 

K-방역 초기 성공의 네 가지 배경

 

첫째는 한국 특유의 정보환경이다. 정보환경이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모바일 통신 인프라, 완전히 디지털 데이터화 된 국민 의료정보, 압도적으로 높은 비현금 결제에 따른 실시간 결제 정보, 모든 공간에 촘촘히 깔린 폐회로 카메라(CCTV), 거의 통제되지 않고 자유롭게 웹상에 유통되는 뉴스와 정보 등등. 이런 정보 환경은 국가의 방역 능력에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인구로서의 개인이 가진 정보뿐 아니라 소비자로서 개인의 정보 또한 세세하게 파악 가능하기 때문에 글자 그대로 핀 포인트동선 추적이 가능해진다.

 

둘째는 안전 감수성(safety sensitivity)이다. 안전 감수성이란 글자 그대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감각이다. 일부 외국 언론은 한국이 강한 국가주의가 남아있는 통제사회여서 철저한 방역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보도하기도 했지만, 무지한 지적이다. 한국형 방역 모델은 중국과는 전혀 다르다. 시민의 자발적 협조 없이는 작동 불가능하다. , K-방역에는 시민 개개인의 높은 안전 감수성이 요구된다. 지금이야 방탄소년단과 ‘K-방역으로 주목받는 한국이지만, 1990년대까지 한국은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 어처구니없는 인명사고로 외신에 오르내리던 나라였다. 여러 대형 사고를 경험하면서 법과 제도가 조금씩 개선되었고, 어쨌든 평균적 안전 감수성도 꾸준히 고양되었다. 2008년 광우병 시위는 식품에 대한 안전 감수성이 집단행동으로 폭발한 사례였다.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시민의 안전 감수성은 전례 없이 예민해졌다. 사스와 메르스의 유행을 겪으며 공공 방역 시스템이 정비되고 안전 관련 특별법들이 잇따라 통과된 바탕에도, 시민의 높아진 안전 감수성이 있다.

 

셋째는 제도적·물적 기반이다. 이는 앞서의 안전 감수성과도 직결된 것이기도 하다. 한국은 최근 수년간 다양한 감염병의 유행을 겪으며 제도 및 시설, 장비들을 차츰 갖추게 됐다. 특히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서울 주요 병원에 연쇄 감염이 일어나 사회적 패닉으로 이어진 직후 감염병 관련 법안이 대폭 손질됐고, 관련 부서가 신설되는 등 질병관리본부의 권한도 강화되었다. 또한 감염병 환자 치료용 음압격리병상을 확대 설치하기로 하고 국가지정 격리병상 수용 인원도 늘리기로 결정한다. 메르스 사태 이후 발간된 <메르스 백서>는 감염병 대응과 관련해 전례 없는 총체적 성찰과 제안을 담은 성과였다. 이 백서는 수년이 지나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도 참조되는 중요한 자료가 됐다. 이러한 제도적·물적 기반과 안전 감수성을 통틀어 공동체의 공통자산으로서의 감염병 경험이라 묶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넷째는 요소 투입형 체제다. ‘요소 투입형이란 말은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한국 등 아시아 경제성장 모델을 논할 때 언급했던 개념이다. 쉽게 말해 물량을 쏟아 부어 성장을 견인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에 상반되는 것으로 생산효율과 질을 높여 성장하는 생산성 주도형이 있다. 한국 경제는 아시아 네 마리 용시절에 비해 상당히 바뀌긴 했으나, 재벌개혁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실패하면서 사회 전체 차원에서는 요소 투입형 시스템이 지배적이다. , 여전히 사람을 장시간 갈아 넣어이윤을 짜내는 구조로 경제가 굴러가고 있다. 방역 현장의 노동 역시 저임금 노동자, 관련 공무원, 일부 의료인들을 살인적인 업무 스케줄에 따라 투입하는, 전형적인 요소 투입형이다. 최근 여러 언론에 방역은 성공했을지 몰라도 의료는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의료인, 특히 환자가 가장 가까이서 가장 혹독한 노동을 감내하는 간호사의 번아웃(burn-out, 과도한 노동으로 인한 극심한 탈진 현상)’은 모든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쓰다 버리는 소모품 취급을 당하다 아예 병원을 떠나는 간호사들이 부지기수였다. 김수련 간호사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5년 전 메르스를 경험한 간호사들이 지금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간호사들이 너무 지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병원이 나를 착취하는 곳이라 생각하게 되니, 개선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간호사라는 직업을 벗어버리고 싶어 하죠.” 이들의 상처는 K-방역을 과연 성공이라 말할 수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되묻게 만든다.

 

K-방역은 위험이 아래로 흘러내려 집중되는 위험적하사회의 특성을 그대로 답습한다. 의료인의 위험과 고통은 간호사에게 집중되고, 코로나 감염의 위험 또한 원격근무가 불가능한 가장 취약한 계층에 집중됐다. 청년 김용균이 일하다 숨진 서부발전은 산업재해로 사람이 사망하면 발전사 정직원은 1.5, 하청 직원은 1, 발전시설 건설 노동자가 숨지면 0.2점을 깎았다. 최근 5년간 공공기관 발주공사 재해가 가장 많았던 기업은 코레일이었는데, 특히 선로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감사원이 조사해보니 코레일은 열차 접근 경보기를 정규직에게만 지급했음이 밝혀졌다. 한국은 여전히 OECD 최악의 산재 사망 국가다. 그 죽음의 절대다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시민의 안전 감수성이 높아지고 감염병 대응 인프라도 확연히 진보했음에도, K-방역을 온전히 긍정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다수의 안전을 빌미로 소수의 존엄과 생명을 희생시키는 사회는 옳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위기는 평등하지 않다

 

판데믹 시대의 위기를 다들 걱정하지만, 위기의 강도는 평등하지 않다. 심지어 어떤 이들에게 이것은 위기조차 아니다. 오히려 막대한 돈을 벌 절호의 기회다. 문재인 정권은 코로나 사태를 빌미로 극소수 재벌에게 돈뭉치를 안겨줄 원격의료를 추진하려고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원격의료는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다수 시민의 의료복지나 응급환자의 치료와 무관하다. 원격 진료가 전면 허용되면 관련 재벌은 막대한 수익을 거두는 반면 의료 공공성의 가치나 시민의 정보인권에는 되레 해가 된다. 큰 재난 앞에서 모두가 황망할 때 공공 부문을 사유화하고 친기업적 규제 완화를 신속히 집행하려는 정권을 보면서 나오미 클라인이 말한 재난 자본주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판데믹은 서로가 운명공동체임을 자각하고 커먼즈, 즉 공통적인 것을 더 넓게 만들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반면에 모든 것을 사적 소유의 대상으로 만들어 서로 간의 격벽을 높이 세우는 프리바토피아(privatopia)언택트 감시사회를 전면화할 수도 있다. 빨간 약을 먹을 것인가, 파란 약을 먹을 것인가.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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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 사회비평가. 대학에서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커뮤니케이션학으로 박사과정 중이다. 기자와 공무원을 거쳐 읽고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지은 책으로 <소수의견> <88만원 세대><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