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특집: 판데믹과 문화정책②] 문화기획자 그리고 사회적경제

CP_NET 2020. 5. 6. 17:31

6년 동안 맡았던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의 이사장직을 내려놓으면서 쉬는, 그리고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대표가 3번째 바뀌는 건강한 조직이 될 것이고 조합원들이 조합의 일을 나누어하면 신임 이사장에 책임이 집중되지 않는 상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우리 조직에 문화기획자가 몇 없다. 그 몇 없는 기획자 중 하나가 나였다. 이후 몇 개월은 쉬었지만 조합의 일을 같이 기획하고 몇몇 사업은 주도적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연말에 보니 내가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했던 일의 양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없었다. 일을 쉬면서 새로운 일을 상상하는 순간은 있었지만 꿈꾸었던, 휴식과 공부가 있는, 그런 시간은 없었다. 일을 나누고 함께할 기획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 같은 문화기획자는 집중해서 일하는 시간이 6~7개월이다. 5월부터 11월이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축제 등 공연 기획을 진행하는 등 본격적으로 일하는 시간이다. 그 외의 시간은 무엇일까? 12월은 정산과 결과보고의 시간(이건 단체 내부의 결산과 보고의 시간과 연결되어 있다.) 예산을 만드는 시간, 겹치기는 하지만 11월부터 3월까지는 각종 공공재원 기금을 신청하는 시간이다. 문화기획자들과 문화단체들에게 이 싱그러운 봄은 춘궁기이다. 일은 없지만 사람을 만나 기획을 해야 하고 다양한 재원을 우리가 하려는 목적사업과 맞는 것인지 고민한다. 몇몇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기획서, 기금을 쓰고 선정되려 노력한다는 표현을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이런 기금과 기획 사업을 통해서 결과를 내려는 목표는 정해져 있다. 잘못 생각하다 기금을 신청하고 선정되면 개인 혹은 단체 기획자들이 생각했던 과정과 결과를 내지 못해 난처해지고 다시는 기금사업 하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하게 된다. 우리 단체에서 진행했던 사업 중, 기획자에 대한 비용지출 항목 자체가 없고, 단체 상근을 하는 기획자는 비용을 받을 수 없거나 또는 비용이 있을 경우도 1일 최고 5만원인 교육영역의 공공영역의 사업이 대부분이다. 교육이건 창작이건 예술가들과 기획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데 기획자의 자리가 없다. 그런데 이 문화기획자들이 1년에 6~7개월 활동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남고 있는 것일까?

 

 

올해가 더 힘들 뿐

 

난 연말 건강검진에서 당뇨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202012일부터 아침에 일어나 약을 먹기 위해 아침식사를 하고 체중감량을 위해 저염식단과 식사량을 줄이고, 술 담배를 모두 끊었다. 이런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을 만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쉽지 않았지만 약 2개월 동안 이 원칙을 지켰다. 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약은 계속 먹고 있다.) 주변에서는 독하다는 말을 들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가까운 친구들은 나를 배려해서 술 약속 등을 내게 알리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마셨고(^^;) 웃기지만 낯가리는 성격이라 집 옆 운동장 나가는 것이 좀 고민이었는데 사람이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걷고 달리기만 하면 되었다. 연초에 하기로 한 사업들이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만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만나지 않고 메일과 메신저 그리고 전화로 소통하고 마무리했다. 파주에 살면서 1달 교통비(버스, 지하철, 자동차 주유비)5만원이 채 안 됐다.

 

코로나 19로 인해 삶의 현재 모습도 많이 바뀐듯하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이 맘이 편하고 안 쓴 사람을 보면 한 번 더 쳐다보거나 거리를 둔다. 굳이 사무실에 가지 않아도 되면 가지 않고 재택 근무를 권한다. 평소 보지 못한 공연을 홈페이지, 핸드폰으로 보고 앞으로 그런 공유방식은 많아진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언택트의 시대가 오고 시장에서는 관련 주가도 관심을 받고 있다. 온라인으로 쇼핑을 하고 회의와 심사도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최근 비대면 온라인으로 문화예술교육방법론 연구에 대한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나 같은 문화기획자들은 어떤 전환기를 겪게 될까?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엮어서 무형이든 유형이든 문화 예술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설계자들을 기획자라 부른다. 하지만 난 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대면하는 관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일상에서 온오프라인 공동체는 어떤 모습이 될까?

 

1월에 진행하던 순회공연 취소되었다. 6회의 청소년수련원 캠프 프로그램 중 22일 차에 참가자들에게 보여주는 문화공연이었다. 19년에 관람한 청소년들의 만족도가 높아 올해 초에 추가로 진행하는데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전국의 공연이나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는 상황이었다. 연 초 춘궁기를 우리(자바르떼 조합원 : 문화예술인, 문화기획자)가 버틸 수 있는 봄 행사가 얼마만인데 매일, 매 순간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코로나19 추세를 바라보았다. 그나마 운이 좋아 5회 진행하고 마지막 1회는 취소되었다. 하지만 취소된 1회에 대해서는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문서화된 계약이 없었다.

 

1월부터 여러 고민과 상관없이 도처에서 나와 우리 단체에 대해 설문조사를 응해달라 했다. 핸드폰 문자와 메일로, 그리고 전화로 코로나 19로 인해 얼마나 힘들어졌는지, 작년보다 얼마나 더 힘들어졌는지 수치로 알려 달라 한다. 그래야 정책에 반영되고 지원이 가능하다고 한다. 단체 대표를 맡았던 6년간 매해 비슷한 내용의 설문을 연 10회 이상 응했다. 조사 기관들도 비슷하다. 중앙부처냐 지자체냐, 중간지원기관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질문 문항이 많고 적음의 차이만 있다. 매년 같은 어려움과 상황을 이야기하고 개선을 이야기하지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행인지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 아니면 원래부터 우리와 함께 했던 어려움에도 다시 일어나려는 사람들과 기금 신청을 하고 선정되었다. ‘우리는 너무나 힘들고 어렵고 그럼에도 다시 하려고 한다. 우릴 뽑아 달라.’라고. 생각해보면 매년 국가, 지자체, 자치구 재단들의 공공재원을 활용해서 활동하려는 문화예술단체들과 예술인들의 상황은 올해와 다르지 않았다. 올해가 더 힘들 뿐이다.

 

3월 말, 자바르떼 조합원들과 만났다. ‘1월부터 3월까지 수입이 0원이다.’ , ‘단체의 매출도 0원이다.’,‘버티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라는.’ 말들이 이어졌다. 1월 중순과 22월쯤에는 지나가는 것인 줄 알았던 상황이 우리의 삶과 일을 멈추게 했다. 조합에서는 이 시기를 어떻게 넘어갈 수 있을지 다양한 재원, 지원 사업을 알아보았고 좋은 결과로 선정도 되어 최대한 많은 조합원, 문화예술인들이 작은 일이나마 함께 해 수익을 나누려 한다. 일시적인 지원사업과 대출로는 버티는 것은 일회용 밴드와 같은 처방전이지만, 버티면서 다음을 기약하게 하는 마중물들이 많이 필요한 시기다.

 

 

선택지가 조금 더 있지만

 

사실 올해도 늘 있는 춘궁기인 줄 알았는데, 빙하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든다. 올해 주변의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 협동조합들 중 특히 공연예술 및 문화기획분야 단체들은 1/4분기 매출이 거의 발생되지 않았고, 6월까지의 일 또한 아직 예정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모지역에서는 올 초 선정된 사업을 상반기에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반납하라는 상황도 있었다.) 각 지자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코로나19 대책 기금사업에 선정된 곳은 약간의 숨통은 틔울 수 있겠지만, 하반기에도 비슷한 상황이라면 버틸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다행히 곳곳에서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경제 영역의 서비스를 선구매하는 방식의 자조적인 운동들이 진행되고 있고1),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가장 먼저 열리는 팝업창에 다양한 코로나19 대비 사회적경제 지원책을 안내하고 있다2). 각종 지원책이 쏟아져 나오고, 경영이 힘든 자영업자와 사회적경제 기업들에게 대출의 장벽을 낮춰서 지원한다고 한다. 코로나 19로 인한 2019년 대비 현재 경영 악화를 증명하는 과정이 있지만, 예술가 개인이나 단체보다는 선택지가 더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상황은 좋은 것인가? 최근 상황을 보면 하반기는 좀 상황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지만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 2020년의 매출에 직격탄을 맡은 문화예술분야의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대부분 자본구조가 취약하고 공공재원(기금)을 활용하는 사업을 주로 하는 단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많지 않다. 사회적경제인들의 카톡방에서는 '이번 달까지는 버틸 수 있지만 다음 달부터는 급여를 줄 수가 없어요' '대출을 알아보고 있어요'라며 현재의 어려운 상황이 공유된다. 그런가 하면 ‘사회적경제 영역에서는 함께 고용을 책임지자' '해고는 안 된다'라며 이 위기를 버텨내자는 말들을 서로에게 건넨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경제는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국가가 세밀하게 곳곳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여, 민간이 당사자의 문제, 사회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는 경제구조라 생각한다. 이런 공공의 역할을 자임하는 사회적경제 당사자 조직들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그 혜택은 사회구성원 전반에게 돌아오는 구조다. 이 구조가 수익성이 높았다면 대기업들이 뛰어들었을 거다.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코로나19로 더욱 힘들어진 상황에서도 함께 고용에 대한 책임과 지속하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미세먼지 없는 하늘은 너무나 맑아졌다. 생각할 시간도 많아지고 책도 읽고 새로운 기획을 고민할 시간이 생겼다. 함께 버티고 새롭게 모색하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가 지나면 문화기획자들의 노동도 노동으로 인식하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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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근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 전 이사장, 현재는 기획이사로 문화기획사업, 문화예술 사회적경제 멘토링(컨설팅)을 담당하며, 은평구에서 동네 기획자이고, 집에서는 서열 마지막, 고양이 집사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