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특집: 판데믹과 문화정책] 도시는 멈췄고, 예술가들은 유령이 되었다

CP_NET 2020. 4. 6. 13:43

섬유의 도시, 사과의 도시, 미인의 도시, 폭염의 도시. 대구라는 도시는 유난히 많은 수식을 가지고 있다. 과거, 대한민국 3대 도시이자 가장 많은 대통령을 배출하고 대기업을 태동한 도시라는 자부심이 있었으나 그 자부심은 곧 독재자의 도시이자 보수, 아니 수구꼴통의 도시라는 비난으로 바뀌어갔다. 물론 동양의 모스크바, 10월 항쟁과 인혁당 사건의 중심지이자 전태일 열사를 배출한 도시이기도 하다며 정체성을 유보해달라는 항변도 있다.

 

어쨌거나 2020년 대구는 갑자기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대구코로나라는 용어를 매체에서 사용할 정도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행을 상징하는 국제도시로 격상(?)된 것이다. 대구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압도적으로 많은데다 국회의원 선거 시기와 절묘하게 겹치는 바람에 정치진영주의가 추가되어-특히 대구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일부 정치성향의-한국인의 상상 속에서 사이비종교에 점령당한 데다 뇌구조가 괴이한 변이를 일으켜 극단적보수성향 인종들이 살고있는 사이비, 아니 사이버도시로 자리매김되어 버렸다.

 

 

대구코로나=신종역병+지역혐오+사이비종교+정치진영주의

 

온갖 혐오와 음모론, 저주의 악다구니가 쏟아져도 대구시민들은 자가격리에 가깝게 동선을 줄여나가고, 행동지침을 지켜내면서 조용히 불안한 일상을 버텨냈다. 대구의 보수성, 변화를 거부하는 특질이 나름 쓸모를 발휘한 순간이랄까. 얼마 후, 위기상황이 한 꺼풀 벗겨지면서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회적거리두기혹은 극단적 자가격리상황이 누군가에는 불편함에 머물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로 차별적 습격을 하고 있었다. 재난이 장기화 되면서 바쁜 일상 속에서 둔감하게 스쳐 지나쳤던 도시구성원들의 위치와 격차가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무원과 자영업자,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무료급식이 끊긴 쪽방주민, 일용직 노동자 등등. 일목요연하게 배치된 자본계급과 사회적위상이 가시화되는 와중에 우물쭈물하며 어디에 가서 줄도 서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일군의 시민들이 있다. ‘예술가라는 애매한 좌표를 찍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코로나19의 대유행 속에서 순식간에 도시는 멈춰버렸고, 예술가들은 유령이 되었다. 엄습하는 공포와 생존을 위한 절박한 대응 속에서 예정된 공연과 전시, 교육 등이 하나 둘 결국엔 몽땅 취소되고 말았고, 급기야 이 도시에서는 예술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숙주에 기생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예술가야 말로 이 도시에서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가 아닌가?’하는 자조까지 맴돌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에게 재정적 타격은 부차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원래 예술가들의 수입은 쥐꼬리만한데다 들쭉날쭉했고, 연초는 보릿고개로 불릴 정도로 예술계 비수기이다. 돈이 없어도 살아내는 기술만은 최고인 예술가들에게 금전적인 타격보다는 예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닥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나서 똬리 튼 절망과 처량함이 더 크게 밀고 들어왔을 것이다.

 

필자는 때때로 자신을 문화예술활동가라고 소개하곤 한다. 직접 예술행위를 하지는 않지만 필요에 따라 예술기획, 예술가 조직, 현장 실무까지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예술의 사회적 쓸모를 높여내는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돌이켜보면 지역사회가 요동칠 때마다 예술가들의 쓸모는 도드라졌다. 대구지하철참사, 세월호참사와 같은 사회적 비극 앞에서나 영남대병원 노동자 고공농성, 이랜드 불매운동과 같은 계급투쟁과 인정투쟁, 국정농단과 같은 민주주의의 실현의 맨 앞줄에는 늘 우리의 자리가 있었다. 그러나 역병 앞에서 문화예술활동가들과 예술가들은 한없이 무기력 할 수밖에 없다.

 

먹고사니즘 이후의 예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야 여흥으로써 문화예술로 눈을 돌릴 수도 있다는 상식(?)을 일컫는 이야기다. 칼국수집은 평소에 10그릇을 팔다 코로나19사태 이후에 2그릇을 판다지만 예술가들의 활동은 10에서 0으로, 존재에서 부존재로 급락했지만 현실에선 일개미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베짱이 신세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마주한 무기력한 나날들 앞에서 스스로에게 수 많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우리는 왜 예술을 하는가? 자아실현을 위해서? 먹고살기 위한 노동의 일종인가? 우리는 왜 대중과 만나는 것에 집착하는가? 이건 애정결핍인가? 그냥 내가 관종인가? 내가 일을 잃으면 누가 책임져 주는가? 우리는 공금을 지원받지 않으면 예술활동을 할 수 없는 기생충인가?

 

잡다한 질문들과 예술무용론에 몸서리치면서도 예술가들이 본능적으로 다른 활동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경제적 능력은 없지만 아메바 같은 생존력을 지닌 일군의 예술가들은 사회가 권유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거부하고 물리적 거리두기만을 용인하며 특유의 오지랖을 떨기 시작했다. 가수가 직접 바느질하여 마스크를 만들어 이주여성쉼터에 기부하고, 연극배우가 김밥을 말아서 노숙인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불안한 직업을 모면하기 위해 수많은 재주를 익힌 예술가들의 의외의 쓸모가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마치, 예술을 할 수 없다면 다른 어떤 행동을 해서라도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려는 몸부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젊은 예술가들을 시작으로 온라인 영상플랫폼을 활용하여 SNS에 공연실황을 올리거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드러내는 챌린지가 소소하게 유행하기도 했다. 코로나 대처법을 노래로 만들어 공유하거나 공연실황을 영상화하여 공유하는 활동은 문화기반시설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대구 출신 예술인을 중심으로 서울의 예술가들이 대구를 응원하는 특별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계급적 차별에 저항하는 차원에서 국내 최초로 강제격리된 집단주거시설인 한마음아파트 주민을 대상으로 콘서트를 기획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예술가라는 유령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코로나의 도시를 배회하고 있다.

 

 

드러난 예술행정의 말간 민낯

 

대구는 지난 십수년간 오페라, 뮤지컬 등 대형공연예술을 중심에 두고, 문화산업에 치중한 예술행정을 지향했다. 이로 인해 대형공연예술의 유통활성화와 시장성은 확보되었으나 지역예술생태계를 떠받치고 있는 기초예술의 자생성은 바닥을 치고 있다. 코로나19의 유행 속에서 기초예술의 목은 한층 더 조여 왔으며, 우리는 다시 한번 예술행정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대구의 예술행정이 코로나19 유행에 대응한 첫 번째 활동은 예산 삭감이었다. 예술단체에 약속된 민간단체경상보조금을 일괄 30퍼센트 삭감하였으며 상반기에 예정된 축제와 행사들의 일괄 취소, 하반기 행사들은 대폭 축소하여 시민들의 생계자금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국비 매칭으로 유치할 계획이었던 영화후반시설까지 시비확보를 위해 반려시켜버렸다. 이어서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긴급생존자금(상법 및 개인사업자 중 상시근로자 5인미만, 3년평균 매출액 30억원 이하)에 예술가들을 끼워 맞추는 방법이 있을지 예총과 민예총에 묻는 것을 대책이라고 내놓았다. (단체의 자격요건, 고정적 수입증명, 직원고용, 세금신고, 피해증명 등을 따져본다면 예술가들을 위한 연계지원은 요원하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대구시 문화정책과, 예술인지원센터 등과 크고 작은 서너 차례 회의를 거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놀랍게도 대구의 예술행정은 어떤 예술가들이 어떤 군락을 이루어 이 도시에 분포되어 있는지, 예술가들이 어떻게 경제적 대안을 만들고 생존해왔는지 거의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예술행정이 민간을 파악하고 소통하는 방식은 철저하게 예총으로 대변되는 거대예술조직으로 일방통행하고 있었다. 근대화 이후에 설정되어 예술대학에 의해 권력화된 장르와 단체들에 대한 소극적 대응에서 한발도 나가지 못했다. 그 외에 문화재단 지원금으로 활동해온 예술가, 예술인복지재단의 등록예술가 정도가 예술행정의 가시권에 들어갈 수 있었다. 탈장르화 된 다원예술그룹, 진입체계가 다른 독립예술그룹, 활동영역을 특화한 사회적경제그룹, 민간인프라와 콜렉티브 등의 역동적 분화와 연결성은 알고 있지도, 파악할 준비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예술행정은 그동안 수많은 정책을 개발하는 듯 하였으나 유네스코지정 음악도시와 같은 화려한 타이틀 수집과 국비 매칭을 통한 각종 시설과 기관유치 외에는 보조금을 나눠주거나, 대구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대중적인 대형이벤트를 계획하는 활동 이외의 영역으로 좀처럼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공무원들은 순환보직으로 문화예술과 관련된 부서에 배치되었지만 그들이 예술가들의 입장에 서서 적극적으로 예술가들을 대변하리라는 기대조차 서지 않았다. 슬프게도 국비 확보를 위한 각종 계획서에 그들이 남발하던 예술생태계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조사되거나 연구된 적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염병시대에 지속가능 한 딴따라질을 위해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19, 2년에서 3년을 주기로 크고작은 전염병이 지속적으로 우리의 일상을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속가능한 예술활동을 위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부족하나마 길고긴 코로나19 기간 동안 고민했던 대안을 나열해본다.

 

비정기적 스토브리그, 더 나은 창작의 추진력을 얻기 위한 한껏 움크림

예술가들이 1년 내내 창작을 하거나 발표를 하지는 않는다. 일정한 준비기간을 거쳐 창작을 하게 되는데, 이번 코로나19 유행과 같은 사건이 벌어지면 계획한 일정이 흐트러지면서 타격을 입게 된다. 공중으로 날아가버린 시간들을 비정기적으로 닥치는 감염병 재난 상황을 더 나은 창작물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으로 변환할 준비를 해놓는다면 어떨까? 기존의 창작물을 더 단단히 다져내기 위해 다듬는 기간 또는 창작의 단초를 마련하기 위한 재충전, 늘 다음 프로젝트로 미뤄놓았던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구축해나가는 기간으로 말이다. 이런 시기에는 발표성과를 기준으로 지원하던 기존 문화예술진흥기금을 간략한 준비과정을 점검하여 지원할 수 있도록 재난대응 창작준비금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기획개발, 집단교육을 위한 비대면 인프라 연구 및 구축으로 확장될 수도 있겠다.

 

비대면 결과물, 예술협업으로 새로운 모색

공연과 전시 등은 물리적 거리를 좁히기 힘들지만 책, 음반, 영상과 같은 비대면 매체로의 전환을 모색할 수도 있다. 영화가 아트북으로 다르게 표현되거나 연극이 대본집으로 출간되기도 한다. 시와 음악을 레코딩하거나, 창작의 뒷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기도 한다. 감염병 재난이 오면 예술가들과 예술 관련 종사자들의 협업으로 장르를 넘어 비대면 매체로 변경된 발표를 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한 기획지원과 협업을 위한 종사자 정보 및 매칭체계와 인프라구축을 시도한다면 좋겠다.

 

상호부조, 예술인으로 등록되지 못한 예술가들을 위한 최소한의 연대

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 등록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여 창작준비금 및 각종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는 미등록예술가들, 사각지대의 예술가들이 있다. 이들에게 감염병 재난은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다. 행정이 지원하기 꺼려 하는 이러한 예술가들을 위해 예술가들이 민간영역에서 상시적인 기금마련 및 특별기준을 통한 상호부조체계를 구축하는 시도도 유의미할 것이다.

 

예술생태계의 정기적 조사와 다면적 가치연구

문화예술, 혹은 예술로 묶여 불려지지만 예술의 현황과 생태는 그야말로 다종다양하다. 감염병재난 속에서 예술가라는 특수한 직업군이 가지는 경제적인 지표는 물론, 부가적인 가치에 대한 조사와 다면적 가치연구는 다양한 지원체계를 수립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재난 시기에 일괄적으로 삭감된 예산이 예술가에게서 시민으로 가는 한계를 극복하고, 예술영역에서 선순환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또한, 비수도권 지역예술의 특수한 생태계를 면밀히 파악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 재고, 예술가들의 의견그룹

지난 정권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블랙리스트 파문이 있었고, 국회의원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예술가를 대변하는 후보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러한 현상은 예술의 사회적가치가 더 이상 하락할 곳이 없음을 반증한다. 예술의 가치에 대한 인정투쟁과 그에 따른 분배투쟁은 진보문예활동가의 영원한 숙제였다. 이제는 더 이상 활동가들의 숙제가 아니라 예술가들을 효과적으로 조직하고 사회적 발언을 높여내기 위해 기존의 조직테두리를 넘어선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예술진흥, 지원, 공공구매. 예술가들의 의견은 어떻게 모아지고 전달되는가? 행정 담당 공무원이 전문가이고 예술가를 대변하는가? 예술가들은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것인가? 선순환을 위해서는 기획에 따른 지원금이 아니라 기본소득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전염병시대 증언으로서의 예술

전염병이라는 미지의 공포가 불러온 각종 혐오의 한가운데에 대구라는 도시가, 대구의 한가운데에 예술가들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든 생존하여 쏟아지던 증오와 편견을 창작물로 재현해야 한다. 혼란한 시대에 더 선명하게 보여지고, 더 잔인하게 드리워진, 다른 세상을, 완전히 달라진 무언가를.

 

 

 

 

한상훈

()대구민예총 사무처장. ()스트릿컬쳐팩토리 이사.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 이사. 대구문화예술현장실무자정책네트워크 대표. 다원예술과 거리문화에 관심이 많은 대구의 문화활약(?). 다양한 현장실무자들의 사방팔방 연대를 힘으로 삼아 오늘도 최전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