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특집: 판데믹과 문화정책] 안전하게 그리고 책임을 함께 나누며

CP_NET 2020. 4. 6. 13:19

지난 달 마지막 주말 갑자기 날아든 서울시 공문으로 공연계는 혼란에 빠졌다. “‘사회적 거리두기실천을 위한 공연장 잠시멈춤 및 감염예방수칙 엄수 협조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은 6대 감염예방수칙을 엄수할 것, 만약 이를 어길 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거 300만원 이하의 벌금과 공연강행으로 확진자 발생 시 확진자 및 접촉자들에 대한 진단과 치료, 방역 등의 비용에 대해 구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금요일 갑작스레 공연 관련 협단체에 발송된 이 공문은 6대 수칙을 엄수해야 할 각 공연장이 이를 수신했는지에 대한 확인도 없이 언론을 통해 서울시의 현장점검이 알려졌다. 공문은 SNS를 통해 공연계에 빠르게 퍼졌는데 언제부터 언제까지 이 조치를 따라야 한다는 것인지, 벌금과 구상권은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 등 공문의 근거와 내용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다.

 

공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6대 감염예방수칙 중 관객 간 그리고 객석 무대 간 2m 거리 준수 외 나머지 사항들은 이미 민간공연장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모든 공연장이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그러나 내가 직접 공연을 관람했던 50석 미만의 공연장에서는 매우 엄격하게 지키고 있었다.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등에서 손소독제, 체온계 등 공연장 상비를 위한 물품 협조와 공연장 소독 등의 협조가 있었지만,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어떠한 근거와 기준으로 공연과 공연장을 운영할지에 대해서는 기준도 안내도 없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공공극장들은 문을 닫았고, 민간극장들은 질병본부의 감염예방수칙에 준하여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대책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2m 거리두기가 사실상 공연장 폐쇄조치와 다름없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 조치가 적절한지 부적절한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방역은 전문가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위기 상황에서 창작자도 시민으로서 사회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 조치에 따를 것인지 아닌지를 개개인이 선택에 맡길 것도 아니니 강력한 권고를 위해 처벌을 환기할 수 있다. 그러나 위기 상황일수록 무엇보다 혼란을 최소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상황의 급박한 전개를 이해한다하더라도 조치에 앞서 그것이 미칠 파장에 대한 고려와 대책은 있었을까? 공연관계자의 혼란만이 아니다. 그간 민간의 자체적인 노력이 삭제된 이러한 행정은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고 혼란을 초래한다. 시민들은 우리 사회 어딘가에 방역에서 방치된 공간이 있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함께 방법을 찾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과 처벌을 앞세우는 것. 과연 어느 것이 사회적 거리두기의 강력한 실천에 도움이 될까. 서울시의 행정은 조치의 적실성에 앞서 방역에서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중요한 원칙에 충실하지 못했다.

 

 

이후가 아니라 지금

 

한편 서울시의 ‘협조요청’은 그동안 방치되어 있던 극장에 대한 공공정책의 개입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극장에 대한 정책은 공공극장 폐쇄뿐이었다. 이 역시 극장에 대한 정책이라기보다는 극장이 다중이용시설로 표백되어서 취해진 조치다. 많은 공공극장은 문을 닫고 공공제작은 취소되거나 기약 없이 연기되었다. 그 와중에 민간극장과 민간제작은 자체적 판단으로 위기에 대응하고 있었다. 비록 과정의 아쉬움이나 협력이 아닌 처벌을 담고 있다는 문제는 있지만 전염병 상황에서 극장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에 대해 공적 영역이 기준을 제안하는 것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는만큼 정책적 판단과 대응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전염병 위기 이후 문화정책은 공백상태다. 서울시의 협조요청에 대한 반발은 시민의 의무보다 자신의 활동을 중시하는 예술가들의 이기적 반발이 아니다. 전염병 위기 이후 공공극장 폐쇄 등 공적 영역은 잠시 멈춤이 아닌 완전 멈춤의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도 민간은 위기에 대응하고자 노력해왔다. 노력은 단지 공연을 강행한다 아니다만의 문제가 아닌 창작활동 전반에 걸친 것이다. 그 노력의 과정에서 정책은 공백에 가까웠다.

 

극장의 문제도 그렇다. 극장을 닫을 것인가 열 것인가는 단지 극장 공연 기간에 대한 취소 여부가 아니다. 어떤 공연이든 관객 앞에 서기 전 리허설을 한다. 기간, 과정, 내용은 일반화가 어려울 만큼 천차만별이지만 공연은 리허설을 거쳐 관객을 앞에 두고 완성된다. 그러니 공연의 취소 여부는 그 앞에 있는 창작과정을 포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판단도 포함된다. 관객은 급감하고 다중이용시설이라는 사회적 압박 속에서 감염수칙을 지키기 위한 진행 비용 상승을 감수하면서도 공연취소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수 주, 수 개월 혹은 그것을 훌쩍 넘는 프리프로덕션과 리허설 활동을 함께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흥행을 목적으로 한 장기공연들이라면 창작활동 전반에 대한 고려보다는 수익의 문제가 더 클 것이다. 공연 수익은 제작자의 것만이 아니라 공연에 참여하는 배우 스탭 공연진행 등등의 인건비가 되고 생존 수단이 된다. 전염병의 위험을 막는 것도 중요하고 삶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대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에는 코로나19에 따른 지원사업 변경사항에 대한 안내가 공지되어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업기간 변경 승인, 공연취소의 경우 이미 지출된 비용에 대한 인정, 사업포기의 경우 패널티 제외 등등이다. 취소 변경 등이 코로나19로 인한 것임을 증빙하는 것은 공연단체의 책임이다. 예술가 예술단체들이 판단하고 책임지고, 지원기관은 그에 따른 손해를 축소할 수 있는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리허설만이라도 혹은 무관중 공연이라도 진행해야 할까? 고민스러울 것이다. 지원제한이라는 패널티를 없애는 것만으로 공연 취소를 선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공연을 연기하는 경우도 문제다. 언제 일지 모르지만, ‘이후가 오고 연기되었던 공연들이 제작된다면 혼란은 불 보듯 뻔하다. 배우 스탭 공연장에 대한 수요는 폭발할 것이다. 현재 사업기간 연장을 검토하고 있다지만 확정된 내용은 없다. ‘이후가 언제부터 시작될지 모르니 이를 정해둘 수도 없을 것이다. (이글을 쓰던 중 서울문화재단은 2020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 선정 사업에 대해 연내 사업추진이 어려울 경우 내년 630일까지로 사업기간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어떤가. 지난 달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코로나19 피해대책은 소극장제작지원과 관객지원이다. 관객지원은 메르스 피해지원을 그대로 베꼈다. 당시 메르스 피해 지원으로 시행된 1+1 티켓 지원은 횡령 등등 부작용을 낳았고, 창작현장으로 제대로 흘러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대책은 이후의 정책이지 현재의 정책은 아니다. 이미 시행된 제작지원도 실행을 못하고 있는데, 지금 당장 소극장제작지원을 실행할 수도 없고, 전염병의 와중에 관객들에게 극장에 가라고 관람료 지원을 할 것도 아니다. 또한 관객 지원의 경우는 시장활성화 정책이라 할 것인데, 코로나19 피해대책으로 수익을 다투는 시장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적절한지, ‘어떻게투입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근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신종이지만 정책은 낡은 것을 꺼내놓고 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창작준비금지원사업, 코로나19 예술인 특별 융자 사업은 지원기준을 완화하고 지원대상을 확대했지만 상황의 심각성에 비추어 부족하다.

 

극장만이 아니다. 미술관, 박물관 등도 문을 닫고 축제는 속속 취소된다. 문화예술을 테마로 한 축제가 아니더라도 축제에는 많은 문화예술 프로그램들이 있다.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들이 닫혀 있는 것이다. 정책은 이후를 얘기하고 있지만, 나라 밖의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이 상황의 끝을 알 수 없다. ‘이후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올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끝이 쉽게 오지 않으리라는 것은 이미 자명하다.

 

 

긴급지원이 필요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서울시와 인천시 등이 예술가 예술활동에 대한 긴급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서울문화재단은 ‘코로나19 피해 긴급예술지원’ 공모를 시작한다. 피해 지원이라는 점에서 몇 가지 제한을 두었다. 코로나19 피해 예술인에 한정되며, 긴급지원이라는 점에서 지원사업 수혜경험이 없는 예술가를 우선 선정한다는 것이다. 지원금은 인건비와 대관료에만 사용해야 한다. 이외에도 서울시가 관리하는 문화예술시설의 대관료, 임대료 등의 면제 감면이 있다. 인천시와 인천문화재단은 중위소득 100% 이하 예술가를 대상으로 한 예술인 긴급재난지원금과 더불어 온라인 예술활동 지원사업’ ‘대관료 환불 피해 지원등을 우선 시행한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활동중단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술인, 예술단체에 대해 이후가 아닌 지금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우선 반갑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과 구별되는 점은 생계지원과 더불어 활동이 현저히 위축된 예술가들의 예술활동에 대해 지원하고자 고민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려도 없지 않다. 서울문화재단 긴급예술지원 사업은 코로나19 피해예술인으로 한정하고 지원사업 수혜 경험이 없는 이들을 우선하고 온라인 발표 등을 작품 발표 방식을 열어두는 등 코로나19 상황에서의 긴급지원이라는 점이 반영되었지만 창작활동 즉 제작 공모지원사업이라는 점은 일반적인 예술활동 공모지원 사업과 같다. 무관중 공연이든 온라인 상영이든 제작의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조치들, 공공극장 폐쇄, 축제 취소, 민간소극장 2m 거리두기 포함 감염예방수칙 준수 등은 관객에 대한 안전만 고려될 뿐 창작자들의 안전에 대한 대책은 빠져있다. 가장 먼저 문을 닫은 국공립극장이나 국공립예술단체들 중에는 극장 문을 닫은 채, 아직 취소되지 않은 공연에 대한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은 집단적 작업이고 일상생활보다 격렬한 신체동작과 접촉을 동반한다. 마스크를 쓰고 무대와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관객보다 연습과정이나 무대 위 창작자들의 감염 위험은 더 높다. 얼마 전 한 뮤지컬 공연의 출연 배우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출연진 전수조사 결과 확진자가 추가되었다. 일본에서는 개막 직전 연출가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개막이 미뤄졌다. 일단 개막을 연기했지만, 공연이 개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작품 발표 방식도 열어두고, 제작과정에서 대면방식을 피한다거나 대면 리허설을 진행하더라도 감염예방수칙을 엄격히 지킬 것이고 지켜야 한다. 하지만 감염병 위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인 데다가 이 감염력 높은 바이러스가 규칙의 준수만으로 감염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는 것 아닌가. 물론 신중히 판단하고 기획하고 진행하겠지만, 활동의 위축으로 경제적 빈곤과 존재적 위기에 빠져있는 예술가 예술단체들이 지원사업을 수행하면서 위험에 더 노출되지는 않을지 불안한 것이다. 그리고 지원금의 수혜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위험을 감당하는 것 즉 위험을 예방하는 것은 오롯이 예술가들의 몫이다.

 

또 기준을 완화하고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선별의 과정을 두고 있는데, 그 기준도 모호하다. 지금과 같은 예술활동지원사업은 기본적으로 우수한예술활동에 대한 지원이다. ‘우수한의 기준은 사업에 따라 다르지만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에 공적 자원을 지원하는 공공성의 근거는 그렇다. (코로나19 피해지원이라고 하지만 빈곤을 증명하고 받는 경제적 약자에 대한 지원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제한된 상황에서 우수한활동을 시도하거나 기대한다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 그렇다고 최대 2천만원의 공적 자금을 공공성과 공정성의 기준 없이 지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대상을 확대한다 하더라도 선별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피해지원이라면 굳이 제작공모지원 방식이어야 할까. 자부담비율을 두지 않는다고 해도 제작의 책임은 온전히 예술가와 예술단체에 있다. 지금과 같이 활동이 제한된 상황에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제작의 어려움도 함께 감당해야 한다. 또한 지원효과의 확대를 위한 것일 터인데, 지원사업 수혜 경험이 없는 예술인 예술단체를 우선한다니 이미 지원사업에 선정된 예술인 예술단체들은 사업을 진행하지도 못하고 긴급지원에서도 멀어진다는 문제가 남는다.

 

감염병 위기에 대한 대응이 피해에 따른 경제적 빈곤을 증명하는 생계지원에만 머물지 않고 예술활동으로 이어지게 하려는 고민은 이해된다. 생계지원도 필요하지만 현저히 위축된 예술활동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물론 감염병 이전과 같은 활동은 불가능하겠지만, 감염병예방수칙을 지키면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창작환경의 토대가 붕괴되는 것을 막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기존 지원사업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발표 형식을 다양화하는 것만으로 안전한 창작활동을 유도할 수 있을까. 활동이 위축되고 피해가 크니 긴급지원이 필요하긴 하지만 지금과 같은 예술활동지원의 형식이라면 발표 형식을 다양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예술활동이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대책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리허설은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창작자 자신을 감염으로부터 차단하고 그럼으로써 지역 전파를 막을 수 있을까. 안전한 창작을 위해 공공의 협력이 필요한 일은 없을까. 지원도 중요하지만, 혼란과 불안을 막고 안전한 환경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예술가의 생존이 공존해야 한다.

 

 

위기 대응은 흔들리는 일상을 붙잡는 것

 

현저한 활동의 위축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과 더불어, 우선 확정된 예산이라도 현장으로 흘러들아갈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미 확정된 예산이라면 기존의 방식을 따를 것이 아니라 위기에 대응하는 합리적인 방안을 만들어 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쪽에서는 예산을 잠가두고 다른 쪽에서는 긴급한 예산을 만들고 사업을 기획하는 것보다 기존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예를 들어 공공제작의 경우, 공연을 취소하거나 연기되더라도 일정한 개런티를 시기에 맞춰 지급하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다. 속속 취소되고 있는 축제의 경우에도 위기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합리적으로 조정된 개런티 혹은 계약금을 지급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초중고 개학이 연기되고 결국 온라인 개학을 맞은 지금 수많은 예술강사들에게 책정되어 있는 임금은 어떻게 되어 있나.

 

이미 선정된 지원사업의 경우에도 언제 올지 모를 이후를 기다리며 연기하기보다는 지금 실행하고자 할 때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긴급지원 사업의 경우 우수한 창작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창작환경이 붕괴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이미 선정된 단체들의 경우에도 위기 상황에서 예술인 예술단체가 좀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창작과정의 안전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지원한다든가 사업변경의 폭을 확대하고 활동의 결과에 대해서도 변경할 수 있도록 정책이 먼저 선택지를 넓혀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프리프로더션 결과물 보고만으로도 지원액의 일정 비율을 집행하는 등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공적 지원이니 사업성과 보고 내용이 공공성, 프리프로덕션 자료 공유 등을 갖추는 정도의 기준은 필요할 것이다. 물론 이후를 기다리겠다는 데에 대한 선택도 열어두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 활동이 위축되어 있는 예술가들이 사회적 거리두기의 수칙을 준수하면서도 활동할 수 있는 방식들을 열어두어야 한다. 지금이야 말로 예술활동에 공적 보조가 필요한 위기다.

 

지금은 위기 상황이고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문제들이 터져 나온다.. 이럴 때일수록 합리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혼란과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과 역할이 필요하다. 문체부가 할 일이다. 문체부는 중앙정부 예산과 사업만 관리할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 관련 예산에 대한 합리적이고 적정한 기준과 방식을 마련하고 이를 기관 및 지자체에 제안함으로써 위기 상황 문화예술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지역축제의 경우 축제가 취소되면서 축제를 운영하는 문화재단은 참여자들에게 일정한 개런티를 지급하고자 했으나 지자체가 관련 예산을 방역 예산으로 전용하면서 어떠한 대책도 마련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럴 때 문체부의 합리적인 정책제안과 강력한 권고가 있다면 지역문화재단이 할 수 있는 일은 더 많을 것이다.

 

물론 긴급지원과 같은 대책도 필요하다. 그런데 지원도 중요하지만 안전도 중요하고 공적 자금이 투여되는 만큼 공공성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과 같은 지금과 같은 기존 작품제작지원 방식이 아닌 공공근로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활동의 우수성 등을 근거로 선별하여 공적 자금을 지원하기보다는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공공근로 사업으로 임금을 보장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기존 인력, 예산, 기간 부족을 이유로 미루어두었던 실태조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창작환경에 대한 치밀한 조사 등에 예술가들을 고용하는 것이다. 정책의 중요한 근거를 생산하는 것이니 사업의 공공성도 확보되고 가난을 증명하고 받는 구호가 아니라 노동에 대한 임금을 받는 것이니 실질적인 지원 효과가 있지 않겠는가. 기존 지원사업을 집행하는 것이 지원선정작에 한정되고 파급력이 낮다는 비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원사업의 사각지대에 있는 예술가들 등 지원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도깨비 방망이 같은 대단히 효과적인 방안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제안하는 여러 안들이 실제 적용에서는 다시 여러 문제들을 만들 수도 있다.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이 위기의 상황에서 어떻게 흔들리는 일상을 붙잡을 수 있는가 이다. 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일상을 완전히 지우고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위기에 대한 대응이 아니다. 위기가 위기인 것은 일상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위기에 대한 대응은 일상을 흔드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기존의 사업들이 합리적인 방식으로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위기가 만들어내는 예외적 상황에 대응하는 것. 사실 이 긴 글은 이 이야기가 전부다. 물론 앞으로 전염병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고 지금 같은 제한된 상태로나마 활동을 지속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여러 위험에 대비하면서, 그러나 지금 할 일은 해야 하는 것이다.

 

 

드러난 문제, 해결할 문제

 

글을 쓰는 중 계속 새로운 소식들이 날아온다. 경남도에서도 예술인 긴급지원을 발표했고 강원문화재단은 사업기간과 관계없이 지원사업의 조기 교부를 시행한다는 발표다. 지금까지 발표된 지원책 중 가장 주목되는 발표는 국립국악원의 발표다. 국립국악원 소속 예술단원이 전통국악을 소개하는 온라인 콘서트 일일국악을 민간에서 활동하는 개인 전통 공연 예술가로 확대한다. 선정된 예술가들에게 공연 출연에 따른 사례비와 공연 영상 콘텐츠를 무상 제공한다. 또 전통 공연예술단체의 무대도 공연 영상으로 제작해 온라인으로 배포할 계획이다. 단체에도 출연료 지급과 영상 콘텐츠 제작을 무상 지원한다. 국립국악원의 발표가 주목되는 것은 민간에 제작의 책임을 맡기고 제작비를 보조하는 방식이 아니라 제작의 책임을 공공극장이 맡고 참여자들에게 출연료를 지급하는 방식이라는 것, 공공극장의 인프라를 활용하여 제작과정에서 협업이 이루진다는 것, 좀 더 안전한 공공극장에서 진행된다는 것 등이다.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되면서 문을 닫은 공공극장을 보면서 우리의 공공극장은 공적 재원으로 공연을 제작하여 관객들에게 공급하는 역할에만 머물러 있을 뿐 민간 예술계와의 연계도 예술생태계에서의 역할도 미미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온라인 서비스의 경우도 그렇다. 나라 밖 예술기관들의 온라인 서비스는 비대면 서비스로 준비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국공립극장, 국공립단체들이 공적 자금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홍보하고 공연하고 내리는, 민간제작사와 다를 바 없이 운영되는 것과 달리 극장은 공공문화예술시설들은 관객을 위한 교육이든 아티스트 협업이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한다. 온라인 서비스는 집에서도 공연을 즐기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도록 안내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공개되고 있는 공공극장들의 온라인서비스가 우려되는 점은 거의 기록용으로 촬영된 영상들이라는 점이다. 또한 온라인서비스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의 저작권, 배우 등 무대 위의 퍼포머만이 아니라 연출 디자이너 무대감독 등 공연제작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저작권리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이번 위기가 공적 재원으로 공연을 공급하는 데에 머물러 있는 공공극장의 역할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러나 이번 위기가 보여주는 더 중요한 현실이 있다. 바로 우리 사회의 예술지원이 취약한 민간제작의 토대에 무관심한 채 대증적 방법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공적 지원이 이루어지지만, 그것은 제작을 '보조'하는 것일 뿐 규모의 크든 적든 제작의 책임은 예술가 예술단체가 떠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가 오니 그 책임의 무게가 그대로 드러난다. 적지 않은 공적 재원을 투입하면서도 그것이 안정적인 창작환경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재의 예술지원정책에 대한 근본적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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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문화정책리뷰] 편집장.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연극평론가. <컬처뉴스> <weekly@예술경영> 편집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