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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두 번째 작업을 시작하며- 문화정책을 ‘유행’이라 명명하기

CP_NET 2023. 6. 13. 16:08
편집자 주: [문화정책리뷰]는 문화정책 현장의 다양한 연구진, 필진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협업'을 운영합니다. '협업'은 참여하는 연구진, 필진들이 독립적으로 기획 진행하고, [문화정책리뷰]는 발표를 돕습니다. 앞으로 문화예술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담론 작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문화정책연구모임 ‘행간行間’의 [문화정책의 유행]입니다. 특정 개념 및 분야가 유행하며 문화정책 장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현상에 관한 비판적 논의를 펼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① [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두 번째 작업을 시작하며- 문화정책을 ‘유행’이라 명명하기
② [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정책 키워드 별 예산 추이와 사회적 영향의 상관관계에 대하여_ 나보리
③ [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현장’이라는 유행에 대한 예비적 고찰_ 채태준
④ [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담론이자 전략으로서의 공공성_ 권수빈
⑤ [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거버넌스, 수평적·민주적 조직문화에 대한 갈망_ 성연주
⑥ [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청년문화부터 지역문화 정책까지, ‘○○ 하는 사람’을 찾아서_ 김태윤
 

행간行間2023년 시도하는 연구 주제는 문화정책의 유행이다. 문화정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일상적으로 요즘은 어떤 정책이 중심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행간이 그간 연구해 온 생활문화를 비롯해 다원예술, 공공예술, 지역문화, 문화도시, 청년예술과 같은 정책개념들이 그 예다. 이 개념들은 그것이 확산된 당시가 바로 연상될 만큼 개념의 범람뒤 남겨진 흔적이 상당히 짙다. 행간은 이 현상, 즉 어떤 정책개념이 확산, 범람하며 중심을 차지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님을 주목하게 되었다. 이에 문화정책에서 특정 개념이 마치 정당하게 지원되어야 할 개념인 양 자리 잡는 과정과 그 경향, 추세, 흐름을 유행이라 명명하고 비판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우리는 문화정책의 유행 아래 모종의 아이러니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 아이러니란 실제 예술 현장의 다양한 실천, 수행, 역동을 유행이 된 문화정책이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문화정책 및 사업과 연구의 첫 단계는 예술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일에서 시작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문화예술의 변화와 흐름을 반영하여 공적 지원이 필요한 영역을 발굴하고 개척하기 위해 현장의 변동을 예민하게 읽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 정책 및 사업, 연구에 반영된 경향성이 복잡다단한 현장의 변동을 반영했다기보다 소수의 경향성이 다수를 대변하거나 그들에 의해 생산되는 등 재배치, 집중화되는 현상을 종종 목도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반영된 현장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말하는지 알 길이 없으며 오히려 현장은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신화적 대상이 되곤 한다.

 

그렇다 보니 개념의 불확실성이나 이해관계자들의 다소간 논쟁에도 불구하고 특정 개념이 문화정책에 관한 공론의 방향을 계속적으로 추동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개념이 애초에 무엇을 의미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비판적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보다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것이 무엇이어야만 하는지에 골몰해 있다. 이처럼 문화정책의 유행은 특정 개념이 공적 지원의 필요성을 근거로 몸집을 불리는 과정에서 정당성을 부여받는 행위들과 같이 나타난다. 예컨대, 이 분야는 반드시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 이것이 지금 시대 문화정책의 새로운 필요성과 의의를 반영한다는 논리들이다. 이 논리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토론회, 좌담회, 담론집, 연구논문, 정책 지원을 위한 공모()에 이르기까지 개념 논쟁은 계속된다. 이 과정에서 유행은 문화정책 현장의 변동이나 흐름을 반영하는 말이 아니라 때로 그것을 넘어 앞질러 나가는 것이 된다.

 

나아가 유행은 특정 개념이나 관심사를 자원배분 등 시각적물리적으로 많은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하면서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 자원확보를 위한 사회적 동조가 이루어지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이때 중요한 점으로 주체가 떠오른다. 유행이라는 단어 자체에는 주체의 활동에 대한 방향성이 한정되어 있지 않지만, 특정한 행동이나 생각을 추종하는데 기여하는 자원이나 주체가 존재하기 마련이며, 사회적 동조나 확산에도 주체들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문화정책에서 유행이 실제적으로 나타난다면, 그 유행에는 반드시 주체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누가 문화정책의 유행을 이끌고 따라가는가? 그 상황은 분야별, 가치별로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이나?

 

예컨대, 유행을 주도하는 주체가 정부라면 특정 시기에 특정 정책 및 사업이 더 많이 시행되거나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정부가 가진 관심사를 연간 계획에 포함하고 그 계획의 실현 의지는 정책 계획과 집행을 위한 예산 배분으로 표현할 수 있다. 자원 배분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 무엇인지 파헤쳐보면 유행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닌 여러 방법을 통해 형성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또는 유행을 주도하는 주체가 예술가 집단이라면 이들의 활동과 그로 인한 영향력이 언론에 보도되고 이들 활동을 함께 하거나 따라가는 예술가 집단이 늘어나 정책사업에서 특정 활동에 관한 내용이 두드러질 것이다.

 

이처럼 문화정책의 유행은 문화정책에 관여해 온 주체들 즉 정부, 언론, 대중, 연구자, 예술가, 이익집단 및 단체가 각자의 전략적 의도와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특정 개념의 위상을 주도하거나, 공모하거나, 뒤쫓아 가는 모든 형국을 말한다. 그렇다면 문화정책의 유행을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가? 또 그것은 어디에서 두드러지게 등장하는가?

 

 

담론discourse이라는 렌즈로 문화정책을 살펴보기

 

문화정책의 계획, 운영, 평가의 타임라인은 곧 1) 특정한 주체가, 2) 특정한 정책 대상을 호출하며, 3) 특정한 정책개념을 통해서, 4) 특정한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책이란 자원을 분배하는 과정이자 특정한 종류의 정체성을 생산하는 재현정치의 측면을 지니는 셈이다. 우리는 문화정책과 관련한 숱한 유행들을 돌아보며, 질문의 방향을 누가 무엇을 위해서 특정한 대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호출하는가’로 옮기려 한다. 어떠한 과정을 거치며 문화정책 내에서 특정한 개념에 관한 집합적인 믿음이 생산되는지, 생활예술이나 공동체, 지역문화와 청년예술 등 동시대 문제적 현장으로서 진실효과를 획득한 이 개념들이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를 말이다. 푸코가 논한 담론분석의 틀을 변주하여 유행의 탈신비화를 위해서 우리는 유행을 구성하는 네 요소를 각각 질문해 볼 것이다.

 

첫째로, 주체는 정책을 수립하고 호출하는 이의 문제다.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이가 누구인지의 문제다. 둘째는 대상의 문제다. 문화정책에 비추어볼 때 이는 정책대상으로서 예술인이 어떻게 특정한방식으로 호출되는지를 살피는 일을 가리킨다. 예컨대 문화정책은 그간 예술인을 경제적으로 취약한 존재, ‘공동체재건의 매개자, 역능을 지닌 예비 창업가 등으로 불러왔다. 한편 대상의 성격을 노정하기 위해서 활용되는 지식 역시 존재한다. 이는 개념의 문제다. 개념은 특정한 활동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지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결정한다. 문화정책 장 안에서는 다원예술, 공공예술, 생활예술, 시민예술, 지역문화 등의 개념들이 쇄락과 등장을 반복해 왔다.. 네 번째는 전략의 영역이다. 이는 전적으로 해석적인 과정이며, ‘정책은 동시대 예술인들의 어떤 조건을 반영하고 또다시 재구조화하길 기대하는가에 관련된다. 담론으로서 문화정책이 동시대 발휘하는 효과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유행을 정의하기: 인과관계, 정당성에 개입하는 주체와 담론

 

문화정책 내 어느 지점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며 유행이라 이름 붙여볼 수는 있다. 그러나 거꾸로 한발 더 나아가 유행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유행이란 말을 듣고 문화정책을 연상하기도 쉽지 않다. 유행의 개념 안에 문화정책에 꼭 들어맞는 어느 구체적 의미가 있어서 그에 부합하는지 아닌지 따지면 그것으로 충분할 만큼, 이 관점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도대체 유행이란 그 자체로 무엇이며, 우리는 왜 하필 유행을 선택했고, 과연 이는 적절한 선택일까?

 

아마도 이에 답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다. 일상적인 구어 이상으로 유행의 정의를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이번 연재에 한정적으로나마 유행의 개념을 정의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연재를 가로질러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고 부여하기 위한 행간行間의 의지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상술한 논의들을 종합해보고자 한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유행의 정의를 먼저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특정한 행동 양식이나 사상 따위가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의 추종을 받아서 널리 퍼짐. 또는 그런 사회적 동조 현상이나 경향.

 

일시적으로라는 말에서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유추할 수 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추이를 추적하는 것은 사회과학을 비롯한 정책연구의 통시적·시계열적 방법론에서 정석으로 여겨오고 있다. 이 방법론들은 변화추이 속에서 인과관계를 도출해내고자 하며, 그 결과 인과관계가 설득력 있다고 받아들여지면 이에 기반한 정책은 자연스럽게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이 절차까지는 유행을 내세워 비판적 관점을 드러낼 소지가 그다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행간行間의 문제의식은 선형적인 인과관계만이 아니라 ‘어느 순간’ 신화적 대상으로 변모해 버린 현장이라든가, 전적으로 ‘해석적’인 과정으로 귀결하는 문화정책 일련의 흐름 등으로 더 뻗어 나아간다. 문화정책은 단순히 시간 흐름에 의한 문화예술 변화를 반영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때로는 더욱 앞지르며 이 변화를 주도하기도 한다. 즉 어느 (문화)정책과 해당 주요 개념이 성립될 때 통시적·시계열적 인과관계만으로는 정당성을 담보하기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을 할 수 있으며, 정도 차이가 있더라도 정책은 직접 인과관계에 개입해 들어가고 재구조화를 해낸다. 이 논의를 보다 상세하게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국가 단위 정책부터 학술 장까지를 가로지르며

 

그렇다면 유행이라 명명한 문화정책은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 장르, 또는 기관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수많은 사례 속에서 이번 기획을 통해 행간이 주목하고자 하는 분야는 무엇인가?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유행의 흔적은 정책 및 사업의 제목, 슬로건, 또는 테마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보리의 글은 대통령의 정부업무계획 속에 드러나는 문화정책의 유행을 추적한다. 캠페인화된 문화정책과 실제 여기에 투입되는 예산, 그리고 공론화되는 언론의 말 사이에서 무엇이 연결되고 또 무엇이 특정한 경향성을 보이는지 탐색한다. 또한 공공성(권수빈), 거버넌스(성연주), 청년예술 및 문화(김태윤)처럼 특정 시대 또는 특정 지형을 연상시키는 개념에 관한 글도 이어진다. 이 단어들은 물론 일회적이 아니라 꾸준히 문화정책 장에서 사용된다는 점에서 누군가는 유행이라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특정 시기에 갑자기 부상하고 확산하며 여러 담론을 양산해 왔다는 점에서 유행으로서의 문화정책을 보기에 적절한 사례들이라 생각하였다. 한편 채태준의 글은 어떤 정책 및 사업 영역으로서의 유행이 아닌, 지원사업과 병렬적으로 배치되어 함께 작동하는 학술/연구 장인 예술경영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국 예술경영의 역사적 흐름과 경향 속에서 우리가 다루는 유행이 과연 연구자들에게는 어떤 관점에서 접근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행간行間은 2021년 처음 시도한 공동작업인 <생활문화에 대한 글쓰기>에서 ‘현장과 이론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문화정책 연구의 목표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기획 역시 현장과 이론의 적확한 결합을 위한 우리의 또 다른 시도이다. 문화정책의 유행은 현장과 이론 사이의 디커플링(decoupling)에서 촉발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튼튼한 이론적 기반에 근거한 현장’, 그리고 현장의 생생한 역동을 반영한 이론이 있을 때, 자연스러운 시대적 응답이자 반영으로서의 문화정책이 존재할 것이며, 이런 문화정책은 미래 한국 사회에서 예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정당성으로 작동하지 않을까. 이런 우리의 바람과 함께, 이제 독자 여러분들을 국가 정책부터 학술 장까지를 가로지르는 유행의 단편들 속으로 초대하고자 한다.

 

* 이글은 서울문화재단 예술연구활동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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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연구모임 행간行間'. 문화정책을 함께 공부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의 다학제적 연구모임이다. 문화정책씬 내의 연구 담론이 공론空論-논쟁과 응답의 부재- 시절에, 학술장의 유령으로 남지 않겠다며 공론公論-함께 논쟁을 통해 의미를 매개하기-을 시도한다. (권수빈, 김태윤, 나보리, 성연주, 채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