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문화정책리뷰]는 문화정책 현장의 다양한 연구진, 필진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협업'을 운영합니다. '협업'은 참여하는 연구진, 필진들이 독립적으로 기획 진행하고, [문화정책리뷰]는 발표를 돕습니다. 앞으로 문화예술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담론 작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① “생활문화에 관한 집단적 학술 글쓰기를 시작하며”
② “생활문화에 대한 비판적 질문: 생활문화와 공동체 가로지르기” 권수빈
③ “‘여전히 거버넌스’를 위한 잠시 멈춤: ‘생활문화정책’과 거버넌스의 부침들” 채태준
④ “생활문화 다시보기: 주체” 나보리
⑤ “생활문화와 지역문화의 개념적 중첩과 정책적 난제” 성연주
⑥ “생활문화 정책의 공백: 국제 이주민들과의 생활문화를 위하여” 김태윤
문화정책의 예술지원사업은 대개 구체적인 대상을 두고자 한다. 청년이면 청년, 중견이면 중견, 원로면 원로, 장르면 장르, 취약계층이면 취약계층 등. 그에 비해 생활문화 정책은 참여와 접촉에 상당히 광범위하고 개방적이라는 첫인상을 준다. 지역문화진흥법에 근거해 단체, 동호회, 시설을 지원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지역 주민들을 위한 것이라는 게 생활문화 정책이 핵심적으로 내세우는 점이어서, 기본적으로 생활문화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행정구역의 거주민 또는 지역 정체성이 부각된다면 누구나가 주체로 전제된다고 상정해보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생활문화 정책이 작동하는 모양이 그처럼 원론적이지는 않다는 게 ‘행간行間’이 앞선 글에서부터 꾸준히 얘기해오고 있는 바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국제 이주민과 관련되어서는 문화정책 내에서 생활문화보다 주로 ‘문화적 다양성(cultural diversity, 이하 문화다양성)’의 영역에서 접근해오고 있다(이정은, 2017). 실제 생활문화 정책은 시설 운영이나 이미 조직된 단체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작동하면서도 그 안에서 예술가와 시민의 개념, 역할이 경합하면서 성원권의 경계와 재편, 그리고 그 협소함에 대해 물음이 계속되고 있다. 그 가운데, 국제 이주민들 역시 지역 주민으로서 생활문화 정책에 얼마나 접촉하고 참여하느냐 하는 물음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였다.
생활문화 정책과 문화적 다양성의 빗나감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통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지역문화진흥법」 제2조1)과 같이 형성적인 정체성을 중요시하는 관점과 각 개인의 성원권을 규정하는 국가적 관점의 충돌 사이에서 「문화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이 문화정책에서 국제 이주민들을 위한 완충지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발간한 문화정책백서 《창의한국》(2004)에 각각 포함되었던 지역문화와 문화다양성은 2014년에 이르러 나란히 법으로 제정되었다. 지역문화가 지방분권에 관해 화두가 되었다면 문화다양성은 국제 이주민의 유입 증가에 따른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과 맞물린 것이었다. 한국은 2010년에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의 비준국이 되면서 국제 이주민을 대표적으로는 이주노동자와 같은 사회경제적인 관점에서 문화적인 관점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김정순, 2012).
이전까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던 이주노동자, 국제결혼이주자를 대상으로 한 ‘이주민 문화향수실태조사’가 문화다양성법 제정 이후 북한이탈주민, 성소수자, 장애인, 타종교인을 포함해 ‘문화다양성 실태조사’에 통합, 확대되었으며, 2016년 전라남도를 시작으로 하여 현재까지 19개 지방자치단체 조례가 제정되어 행정적 근거를 갖추는 등 문화다양성을 핵심으로 하여 문화정책 체계의 변화가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서울에서 이주 노동자와 중국 조선족들이 초기에 가장 많이 밀집한 구로구에서는 비교적 빠른 시기인 2017년 11월 문화다양성 조례를 제정하며 이후 토론회, 상영회 등 문화다양성 주간 행사를 개최해오고 있다. 이주 배경 작가들이 참여하고 대림동 곳곳에서 진행된 설치미술 전시 〈C TOWN – 별 일 없는 동네〉는 대림동을 우범지역으로 묘사했던 영화 〈청년경찰〉에 대한 반대급부의 성격을 갖고 영화 개봉 이듬해에 진행되었는데, 이 역시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표적인 문화다양성 사업인 무지개다리사업을 통해 진행되었다.
국제 이주민들이 참여하고 그들의 문화와 예술을 지원하면서 정책의 목적에도 부합한다면 생활문화 정책이든 무지개다리사업이든 구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로서 그렇다는 것이고, 지역문화진흥법이 지역의 형성적인 정체성을 중요시하며 주민을 위한다는 것을 원론적인 입장으로 취하는 한 여전히 생활문화 정책과 문화다양성의 이분적인 구도는 계속해서 구별을 재생산한다. 게다가 문화다양성은 다소간 우산 개념과 같다. ‘세계 문화다양성 선언’에 국제 이주와 다문화주의가 주요한 배경이 되었고 문화다양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맞지만, 문화다양성은 소수자들 전반의 인권과 문화에 더 포괄적인 강조점이 있기 때문이다. 특정 소수자와 약자를 우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타당한데, 자칫 그 목적이 모호해지거나 성원권을 갖는 자국민은 생활문화 정책, 외국인 등 성원권의 경계가 모호한 이들은 무지개다리사업으로 그 대상이 극단적으로 이원화될 수 있다. 그래서 문화다양성 정책이 소수자들의 문화 각각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리라는 원대한 취지를 표방하지만 정작 생활문화정책과의 접점은 요원한 채 다문화주의가 문화다양성의 표상같이 답습된다면 이는 역행이 아닐 수 없다.
엄밀한 조사는 아니지만 내 활동 배경이 되는 영등포, 구로 일대에서 국제 이주민들의 문화실천과 정책적 접점들을 관찰해보았을 때, 생활문화 정책은 가시적이지 않았다. 예를 들면 소상공인 지원 같은 경제적 지원, 외국인에게도 자격과 권리를 확대하는 법적인 지원은 정책의 목표와 대상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반면 문화적 실천의 경우는 어떤가. 문화적 실천을 국제 이주민의 참여를 중심으로 보면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국제 이주민 개인이 지원과 별도로 직접 해내는 경우, 한국인 기획자가 지원기관을 통해 문화 사업을 설계한 뒤 국제 이주민은 참가만 하는 경우, 지자체에서 지역의 복지 증진과 환경 미화 차원에서 이주민 공동체의 참여를 진작하는 경우 등이 있다. 이처럼 국제 이주민의 문화적 실천은 여러 갈래로 흩어진 채 생활문화정책과의 접점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목표는 모호하다. 문화정책 관계자 역시도 생활문화 사업에 국제 이주민들의 참여를 위한 캠페인이 더욱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태주었고, 여타 국제 이주민들에게 넌지시 물어보았을 때에도 생활문화 정책을 알고 있거나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뿐만 아니라 생활문화 정책의 배경이 되었던 연구들 역시 국제 이주민들의 문화 실천이나 그들로 하여금 새롭게 형성되는 문화에 관해서는 약간의 관련성만 담고 있을 뿐이다. 생활문화 정책의 초기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생활예술》(강윤주·심보선 외, 2017)은 1부의 관련법 소개에서 「문화기본법」 → 「지역문화진흥법」 →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로 이어지는 법제적 흐름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 제기하는 문제의식이 드러나지 않는다. 해외 생활문화 개념과 사례를 소개한 부분에서도 실리콘밸리문화협회의 ‘이주민 참여 예술’ 보고서를 소개하지만 한국 내 국제 이주민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아시아 국가와 지역에 대한 참조는 풍부하지 않다는 점에서 위 보고서는 비전문가 중심의 생활예술의 개념화와 정책적 사례를 찾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2019년 생활문화정책2.0 수립연구》(2019, 서울문화재단)에서는 다문화 인구와 외국인 증가 따른 다양성을 서울의 변화 중 하나로 지목하고 있지만 이러한 구성원의 변화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지 못한 채 지역 중심으로 생활문화 정책을 재편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렇듯 생활문화 정책은 현재 비전문가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축을 전환하는 흐름에 있고, 그러한 가운데 국제 이주민들은 지역에 거주하면서 문화적 실천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음에도 둘 사이의 관계는 아직까지는 많은 접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원주의와 상호문화주의
생활문화 정책이 주민들을 위한 것이고, 주민에는 국제 이주민도 포함되지만 관점을 뒤집어 국제 이주민들을 먼저 염두에 두면 매우 복잡한 상황들이 놓여 있다. 문화를 언급하기에 앞서 「국적법」 「다문화가족지원법」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출입국관리법」 등이 복합적으로 그들의 주민 됨을 결정하며 재외동포, 결혼이민자, 국적취득자, 아동청소년, 유학생 등으로 각기 다른 자격과 제한된 권리를 갖게 된다. 문화실천에 있어서 정책적 근거 및 사법 체계적 구분은 상위로 갈수록 문화체육관광부 대 교육부, 법무부, 여성가족부 등으로 나누어진다. 같은 말이지만 이는 결국 성원권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말이다.
다원주의는 세계 문화다양성 선언에도 등장하고 다문화주의에도 중요한 배경이 되는데 문화 다원주의, 다원주의적 다문화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양성을 근거로 해서, 문화 다원주의는 문화권 등 권리의 분배를 핵심으로 하고(Unesco, 2001), 다문화주의는 다원주의를 통해 통일성이나 동화주의 인종 정책을 벗어나 각 문화의 공존을 논의하지만 사회적인 갈등과 분쟁 역시 예고된다(이용재, 2010). 예를 들어, 다원예술이라고 했을 때 주로 여러 예술 장르 간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세계문화다양성 선언의 문화다원주의는 사회 각 계층 간의 관계를 말하지만, 다문화주의는 노동력의 수입과 같은 통치 전략 또는 약자로서 소수 인종이나 외국인들의 사회적 안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한다. 즉, 다문화주의에 관해서는 국제 이주민들의 체류, 주거, 노동, 혼인 등에 관한 문제들을 제외하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문화주의 정책은 성원권의 경계에 대한 것으로 결국 문화정책, 예술정책이 아니고 현재의 생활문화 정책 및 무지개다리사업의 구분은 최선의 상태라고 보아야 할까. 우선은 다문화주의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비판과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시도들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문화주의가 소수자들 사이의 차이를 간과하거나, 오히려 고립을 더욱 고착시킨다는 주장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국 화교들은 대표적인 국제 이주민으로 정착한 지100년 이상이 흘렀다. 현재의 한국 화교들은 앞선 세대가 이주해온 것과 달리 출생과 성장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문화가족지원법」 역시 2008년 제정된 이후 개정을 거듭하며 아동에서부터 점차 청소년의 교육에 대한 내용을 포함해오고 있는데, 한국 화교뿐만 아니라 이제는 이미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많은 자녀들이 성인이 되는 시기에 들어섰다. 이들에게는 오히려 외국 어딘가에 있는 조상의 고향이 더 낯선 곳일 수 있다. 이들을 계속해서 다문화주의의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지, 다문화주의의 경계를 다시 설정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상기의 상황은 지역문화, 생활문화 정책 차원에서보다는 국제 이주민들을 환대하는 점진적인 태도로서 교육의 중요성에서 더 활발하게 논의되고 공감받아왔다.. 내가 근무하는 곳과 같은 건물에 있는 부동산 주인아저씨는 대림동에서만 사업을 영위하며 두 자녀를 대학까지 보낸 한국인인데 지난 시간 국제 이주민들과 생활권을 같이 해 살아왔던 것을 더듬어 ‘다문화주의를 원론적으로는 동의하지만 기성세대에게는 이미 다르게 살아왔던 습속의 차이가 있어서 현재 아동·청소년들이 교육과 성장에서부터 함께 지내는 경험을 통해 미래에 다문화주의가 더 완전하게 이루어지리라고 본다’는 의견을 들려준 바 있다. 이처럼 다문화주의에 동의하더라도 문화적 공동체의 소속감을 구별 짓는 태도는 인근에 거주하는 국제 이주민들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유사한 문화적 정체성을 갖는 이들끼리 공동체적인 소속감을 갖는 것은 오히려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민들의 인식에서 다문화주의는 문화의 혼성화를 반드시 포함하는 것은 아니면서 교육을 통한 장래의 가치로 자리매김해 있다. 이러한 유보적인 현실을 반영하듯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학계와 교육계 일각에서는 다문화주의 교육의 보완으로 상호문화 교육이 대두하는 등 서로 다른 문화들이 병렬적으로 정체(停滯)됨을 넘어서기 위한 교육적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홍종열, 2012).
상호문화 교육은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듯 상호문화주의(interculturalism)를 바탕으로 하는데, 다문화주의에서 소수자들과 문화적 정체성이 그저 병렬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상황에 대한 비판으로 그 필요성이 제기된다. 상호문화주의는 문화들 간의 접촉을 전제하고 그 결과 혼성적인 문화의 형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다문화주의의 대안으로 주목받는다(최병두, 2014). 사실 혼성화에 관해서는 문화다양성이나 다원예술로 살펴보면 특정 계층이나 장르 중심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미 다원주의에 전제된 것이지만, 이렇게 별도로 상호문화주의를 고안해야 하는 상황은 다문화주의에서 혼성화의 실패 또는 적어도 그 취지가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다문화주의가 국제 이주민들의 사회적 안전에 방점이 있다면, 상호문화주의는 교육에서의 미래지향적인 목표는 물론 현재 문화의 혼성화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상호문화주의는 유럽에서 다루어 온 철학과 제도를 소개하며 한국에 도입되기 시작했는데, 아직 관련법은 따로 없고 그래서 다문화주의와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다르게 하겠다는 것인지 한눈에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상호문화주의가 소개되는 과정에서도 외국인 이주의 오랜 역사를 근거로 문화다양성을 적극 표방하는 유럽 연합의 기조를 주로 참조하거나(홍종열, 위의 글), 반대로 서양 철학에서 배태되었지만 이 역시 지역적인 것의 하나로서 내부의 유럽 중심주의를 극복하려 하는 의견(주광순, 2018) 등 입장이 분분하다. 공통적인 배경으로는 국제적인 인구 이동 및 통신에 의한 연결을 포함한 세계화로 인해 지역, 민족, 국가 간 근대성의 차이가 두드러져 각각에 기반한 정체성이 쇠락하고 있음이 지적된다(Cantle, 2012/2020). 다문화주의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면 상호문화주의가 다소 2차적인 것으로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접두사인 ‘inter-’에 부합하는 개념과 실천들은 사실 곳곳에서 접할 수 있던 것들이기도 하다. ‘internet’, ‘interchange’, ‘interface’, ‘internationalism’, ‘interdisciplinary’ 등등. 일 대 다, 다 대 다의 연결에 주목하는 말들이다.
다문화주의가 한 체제 내에서 이질적인 문화들을 수용하고자 하는 정책적 목적을 가진다면, 상호문화주의에 대한 설명은 이동성을 바탕으로 해서 유동적으로 형성되는 정체성을 다룬다. 앞서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을 통해서도 성원권의 성격이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변화하는 지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 더욱 폭넓게는 더 이상 인구의 재생산을 낙관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도 국제 이주민들의 유입을 환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맞닿는다. 최근 프랑스에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말미암아 자국민이든 외국인이든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이 문제시되는 상황들을 봤을 때 국제 이주 등을 바탕으로 한 상호문화주의의 시사점을 한국에 국한하여 생각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근대성이나 민주주의의 정도를 가늠하기에 앞서 이동성과 유동성은 다방향적이고 동시대적인 의제로 떠올랐다.
상호문화도시와 지역문화진흥법의 문화도시
생활문화 정책이 초기에 비전문가들의 예술에 초점을 맞추었다가 점차 지역, 마을, 동네 등 미세한 단위의 생활권까지 주목하는 것으로 시선을 옮기는 과정에서, 국제 이주는 특별히 예술도 아니고 동네보다는 더 광역적인 경로로 이루어져서 어쩌면 처음부터 정책의 의도와 초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활문화 정책이 예술의 사회적 가치, 지역마다의 문화적 정체성 같은 보편적인 성질들을 표방하는 만큼 국제 이주민들이 사업 대상에서 나눠지거나 일시적, 단발적인 참여에 그친다면 본래 취지와 부합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생활문화 정책은 전방위적인 기치를 내걸고 있다. 그래서 아마도 시민과 소수자들을 계층별로 범주화하는 대신 포괄적인 문화적 환경 자체에 대한 접근으로써 문화도시 지정에 관한 내용이 지역문화진흥법에도 담겨 있을 테고, 생활문화 정책과도 구조적으로 연결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지방 분권에서부터 시작하여 지역, 마을과 같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장소를 문화적 실천의 배경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상호문화주의가 유럽 중심주의를 극복하고자 유럽 외의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갖는 지점과도 궤를 같이 한다.
지역문화진흥법의 문화도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도시심의위원회를 통해 지정되는데, 이 문화도시는 유럽의 문화 수도, 아메리카의 문화 수도,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등과 같이 도시를 문화적 자산으로 환원하여 사회, 경제적 활성화를 도모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때 도시는 지역적인 특징 및 국제 사회에서의 차별화를 담보하는 것으로서 중요하게 여겨지며, 지역문화진흥법에서도 드러나듯이 생활문화시설 등을 포함해 문화를 배태하는 범주로서 공간의 역할과 위상이 날로 더해져 가고 있다.
앞서 창조경제와 창조도시 정책이 도시 공간을 적극적으로 주목해 왔다. 공업, 제조업이 쇠퇴하는 데 비해 문화산업이 성장세가 두드러지자 이를 바탕으로 한 창조경제가 저성장 및 실업에 대한 돌파구로 각광받으면서 동시에 도시 공간의 재생 및 재편에서도 탈공업화를 정보화산업 및 문화산업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흐름이 유럽과 북미를 넘어 아시아에서도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 후반부터 이러한 흐름 속에서 창조경제와 창조도시 정책을 받아들여 왔는데, 이때 이른바 창조계급들이 창조산업의 기수로서 새롭게 호명되고 국제 이주민들 또한 다양성의 표상으로 인정받았지만 그 목적은 문화의 상품화 및 국제 무역의 증가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최병두, 위의 글).
이에 비해 공간의 중요성을 두고 문화연구의 공간적 전회가 가리키는 것은 보다 원초적인 의미의 가능성이다. 공간은 고정적인 용기가 아니라 관계로 지탱된다. 도시 문화란 해당 도시를 거니는 것과 같은 일상적 행위들을 통해 관계를 구성하고 해체하는 것이다. 즉, 선험적이거나 고정적인 것이 아닌 행위의 가능성으로서 강조된다(신지영, 2011). 그러한 점에서, 상호문화주의에 입각해 유럽평의회에서 시행하는 상호문화도시 계획의 주안점이 어디에 놓일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상호문화도시는 서양에서 국제 이주민 밀집지역의 주거 격리가 도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대응으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사회 공간적 재배치와 접촉을 위한 제도 및 정책 구상으로 시작되었다(최병두, 위의 글). 한국에서도 2020년 2월 안산시, 10월 서울시 구로구가 유럽평의회로부터 상호문화도시로 지정되며 시행되기 시작했다. 다문화주의가 국가 체제를 배경으로 하는 것에 비해 도시 공간을 배경으로 전환한 것 외에 정책적으로 얼마나 다르고 어떤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며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상호문화도시가 국가 체제가 아닌 도시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공간적 전회에서 도시 문화는 도시에서의 행위들의 관계에 따라 달라지며, 다시 상호문화주의는 초국적이고도 초지역적인 이동성에 의해 유동적으로 형성되는 정체성을 다룬다. 이상의 논거를 따랐을 때 도시와 도시 사이의 연결을 상호문화도시, 더 응용해서는 문화도시 내 생활문화 정책의 한 축으로 설정해본다면 어떨까? 우선 그와 유사한 정책이 시행되었던 바는 있다. 바로 2000년을 전후하여 한국과 중국의 동향마을 간에 있었던 접촉과 교류다.
동향마을이란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족 1, 2세대들이 모여 살면서 한국에 있는 그들의 고향 마을에서 이름을 따와 붙인 마을이다. 한중 수교 이후 교류가 증가하며 발견되어 자신들의 마을 이름을 중국에서 발견한 한국의 지역민들의 관심이 높았다. 이들은 중국의 동향마을 주민들과 고향의 옛 정체성을 공유하기를 기대했지만 이미 본인들이 달라진 것 못지않게 한국, 중국, 북한의 여러 지역 정체성이 혼재된 동향마을을 발견했고 그 차이를 조선족들이 갖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이라는 서사로 환원시켰다. 중국의 동향마을은 그 형성부터가 국가가 부재했던 시기가 배경인 탓에 조선족들은 국가보다 지역 정체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식민지 백성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소수민족으로 편입되고 개혁개방, 한중수교, 도시화와 산업화 등을 거치며 동향마을은 점차 해체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양측 동향마을의 초지역적인 접촉에도 개입하여 조선족들은 이 사이에서 임금 격차에 따른 경제적 기회를 찾고자 했고, 한국의 기업들은 세계화 시대의 조류에 본인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장 이전 등을 한 결과 조선들의 중국 동향마을 이탈을 유발했고 마을의 해체가 가속화되었다(조명기, 2017).
동향마을들의 이야기가 도시와 도시의 연결의 관점에서 생활문화 정책이나 상호문화도시에 긍정적인 사례를 제공했다고 할 수는 없겠다. 문화의 혼성화 또는 도시 활성화가 일어났다기보다는 오히려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의 영향과 근대성의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양 측의 이해관계가 수렴된 것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이 지점들에서 생활문화 정책이나 상호문화도시가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지 시사점을 갖는다고 볼 수도 있겠다. 도시와 도시 간의 협력적 관계를 도모한다든지, 선입견이나 편견에 기반한 지역 정체성을 쇄신한다든지, 국가적 층위에서 세분화하기 어려운 부분에 접근한다든지. 바로 그 지점들에서 지역문화진흥법이 말하는 형성적인 지역 정체성과 상호문화도시에 내재된 다원주의의 문화의 혼성화를 동시에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상호문화주의적인 생활문화 정책에 대하여
앞서 생활문화 정책이 비전문가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이는 생활문화 정책의 거시적인 변화로, 특히 법적 근거가 지역문화진흥법인 점에서 지역 중심으로의 변화는 합목적성을 갖는다. 따라서 《2019년 생활문화정책2.0 수립연구》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상호문화도시 또는 도시와 도시의 연결에 관해 몇 가지 의견을 보태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다문화주의 정책에서 살펴보았듯 한국인 선주민과 국제 이주민들은 서로를 동질적으로 여기지 못하고 있고, 정책 참여가 활발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제 이주민들과의 접점을 어떻게 넓힐 것인지에 대하여 우선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은 사람과 언어다. 국제 이주민들이 문화적 소속감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점에서 그 내부자의 자리를 ‘생활문화 활동가 양성사업’, ‘생활문화포럼 운영’에 마련하고 ‘생활문화 활동가 양성사업’에는 상호문화 교육을 더하며 ‘생활문화캠페인 운영’에는 그들의 모국어를 반영하여 생활문화 정책을 소개하고 참여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이때 ‘온라인 플랫폼’이 또 다른 진입장벽이 되지 않게끔 국제 이주민들에게 친숙한 환경을 구축하거나 그들이 실제로 자주 사용하는 플랫폼을 연동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국제 이주민들의 실제 생활문화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다. 그동안 국제 이주민들의 전통문화에 관해서는 지원이나 기회가 곳곳에서 있었고, 현대적인 장르 예술의 경우 유학생들이 두각을 드러내기도 한다. 결국 국제 이주민들의 노동, 주거, 체류, 결혼 등 실생활과 관련된 실천으로 생활문화 정책의 기준을 조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결혼이주여성들의 모임 등을 발굴해 점차적으로는 ‘생활문화 장(場) 마련사업’에서 기획자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생활문화정책이 한국어와 협치에 모두 능한 이들 안에서 폐쇄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그렇지 못한 국제 이주민들과 어떤 생활문화 사업이 가능할 것인지 기초적인 실험을 위한 ‘생활문화 실험실 운영’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된 국제 이주민들은 출신지와 주거지를 자주 왕래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으므로 본격적인 도시와 도시의 연결에 관해서도 고려해볼 수 있다. ‘생활문화 활동가 양성사업’을 통해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그 내용을 반영한 ‘통합 서울 생활문화 브랜드 구축’을 비교적 우선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겠다. 더 나아가서는 해외 도시와 정책적인 호환이 이루어져 ‘공공공간의 생활문화 프로그램 및 공간 운영 지원’에서 상호 인력 파견 또는 교환 프로그램이라든지, ‘생활문화 협력공간 인증제’를 통한 각종 자원의 순환까지 된다면 생활문화 정책 내에서 상상할 수 있는 상호문화주의적인 실천은 웬만큼 아우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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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윤. 문화연구자. 대중음악을 공부하다가 음악이 지역적인 실천과 국제적인 실천이 뒤섞인 산물임을 뒤늦게 알고 문화적인 교차점들에까지 관심을 넓혀 연구하고 있다.
문화정책연구모임 '행간行間'. 문화정책을 함께 공부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의 다학제적 연구모임이다. 문화정책씬 내의 연구 담론이 공론空論인 -논쟁과 응답의 부재- 시절에, 학술장의 ‘유령’으로 남지 않겠다며 공론公論-함께 논쟁을 통해 의미를 매개하기-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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