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문화정책리뷰]는 문화정책 현장의 다양한 연구진, 필진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협업'을 운영합니다. '협업'은 참여하는 연구진, 필진들이 독립적으로 기획 진행하고, [문화정책리뷰]는 발표를 돕습니다. 앞으로 문화예술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담론 작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① “생활문화에 관한 집단적 학술 글쓰기를 시작하며”
② “생활문화에 대한 비판적 질문: 생활문화와 공동체 가로지르기” 권수빈
③ “‘여전히 거버넌스’를 위한 잠시 멈춤: ‘생활문화정책’과 거버넌스의 부침들” 채태준
④ “생활문화 다시보기: 주체” 나보리
⑤ “생활문화와 지역문화의 개념적 중첩과 정책적 난제” 성연주
⑥ “생활문화 정책의 공백: 국제 이주민들과의 생활문화를 위하여” 김태윤
일상의 다양한 활동을 일컫는 ‘생활’과 지리적 단위로서의 ‘지역’은 겹치기 힘든 개념이다. 생활은 무엇을 하는지, 그 유형과 종류, 양태와 방식을 말하는 것이고, 지역은 어디에서 하는지, 그 공간과 장소, 범위와 면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지역 안에서 생활이 이루어지겠지만 둘은 서로 다르다.
그런데 문화정책 담론, 기관, 조직, 사업의 면면을 보면 생활문화와 지역문화는 동의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정책 장에서 또 학술 장에서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법, 제도, 조직, 정책, 사업 등 모든 측면에서 생활문화와 지역문화는 같은 목적을 지향하는 것으로, 또는 생활문화가 지역문화에 속한 개념으로 정의되며, 생활문화를 특정 지역(대부분 행정구역)에 연결하거나, 지역문화 프로그램에서 필수 요소의 하나로 시민을 연계하는 방식이 종종 진행된다.
그렇다면 생활문화와 지역문화는 같거나, 비슷한 것일까? 만약 비슷하다면 왜 우리는 구태여 생활문화와 지역문화를 별개의 개념, 정책, 사업으로 분리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 이런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우선 생활문화와 지역문화가 실제 얼마나 개념적으로 중첩되어 있는지, 여러 현상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생활문화와 지역문화의 불편한 동거
첫째, 법제도에서 생활문화는 지역문화진흥법의 한 조항으로 담겨 있어 마치 생활문화가 지역문화에 속한 하위 개념인 것처럼 설정되어 있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지역문화진흥법은 제2장을 ‘지역의 생활문화진흥’에 할애하여 생활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여기에 따르면 생활문화란 ‘지역의 주민이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자발적이거나 일상적으로 참여하여 행하는 유형ㆍ무형의 문화적 활동’으로 주체를 ‘지역주민’으로 명시한다는 점에서 지역적 경계를 강조한다.
둘째, 조직적 측면에서 지역문화진흥원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지역문화진흥원은 중앙정부 수준에서 지역문화 정책을 입안, 수립, 집행하는 지원기관으로, 2016년 5월 생활문화진흥원으로 출범하였다가 2017년 12월 지역문화진흥원으로 개명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내가 이를 ‘사건’이라 명명하는 이유는 라도삼(2018)의 글에 잘 드러나 있는데, 생활문화와 지역문화에 대한 이론적 토대나 개념적 논의가 충분하지 않던 상황에서 <문화가 있는 날> 사업의 수행 주체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생활문화진흥원으로 변경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기획재정부 및 국회의 질의와 제안 때문에 별도의 공론화 과정 없이 한 중앙기관의 이름이 달라졌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기관의 정체성, 곧 개념의 정체성이 모호했음을 방증한다.
셋째, 사업적 측면에서 다시 지역문화진흥원을 살펴보자. 2020년 10월 현재 지역문화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사업은 홈페이지 기준 16개이다. 이 중에서 사업명에 생활문화를 전면 드러낸 사업은 <생활문화센터>, <생활문화동호회>, <생활문화공동체> 세 개이다. 중앙정부의 핵심 생활문화 사업 전부를 지역문화진흥원이 주관한다는 점, 게다가 그 외의 지역문화진흥원 주관 지역문화 사업 대부분이 시민 참여, 시민 대상 프로그램 개발 등 시민 주체를 핵심으로 하여 생활문화와 비슷한 결을 보인다는 점은 한 조직 안에서 생활문화와 지역문화가 혼란스럽게 얽혀있음을 보여준다.
넷째, 중앙과 광역 문화예술 공공기관이 주관하는 사업은 실제 실행 단계에서 대부분 기초문화재단으로 내려온다. 그런데 막상 기초문화재단(자치구문화재단, 시 문화재단)으로 내려오면 생활문화니, 지역문화니 하는 정책적/개념적 구분은 힘을 잃는다. 이미 도서관, 문화강좌 등에서 시민을 주요 참여자로, 주체로, 행위자로 설정하던 입장에서 생활문화란 허울 좋은 개념에 불과하고, 문예회관을 운영하거나 지역축제를 개최하며 주로 지역주민을 관객으로 맞이하던 입장에서 지역문화란 억지로 행정구역 기준의 ‘지역’에 동시대적 문화 정체성을 덧씌우려는 노력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정책현장에서 생활문화와 지역문화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생활문화 담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지역에 머물러 있고, 지역문화 논의 곳곳에서 생활문화가 강조하는 시민 주체가 튀어나온다. 그렇다면 이론적 차원에서는 어떠한가? 문화정책연구모임 ‘행간行間’은 이 기획 시리즈의 여는 글에서 생활문화가 개념화되는 데에 ‘연구’의 기능이 강력하게 작동했다고 짚은 바 있다. 생활문화에 관한 학술적 글쓰기에서 과연 지역문화의 자리는 어디인지, 생활문화와 지역문화가 교차하는 이론적 지점을 논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자료를 검토하였다.
가장 우선으로 본 자료는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 제정 이후 출간된 논문 중 생활문화와 지역문화를 함께 논한 글이다. 생활문화 동호회(강준수, 2020), 농촌 지역 공동체(윤소영, 2014), 지역 전통문화 단체(정지은·장웅조, 2020), 지역축제(이의신, 2018), 커뮤니티아트로서의 연극 작업(이인순, 2017), 특정 지역주민(임재현·한상헌, 2019) 등 논문들의 대상은 유형과 규모, 방법론이 제각각이었다. 다음으로 현재 생활문화정책의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담긴 『생활예술』 책의 지역성 논의를 검토했다. 마지막으로 최근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한 <2019 생활문화정책 2.0 수립연구> 보고서를 살펴보았는데, 장르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의 방향 전환을 핵심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생활문화와 지역문화의 접점을 살펴보기에 적절한 보고서라고 판단했다.
검토한 6편의 논문은 생활과 지역을 일종의 보완재로 제시한다. 이를테면, 강준수(2020)는 시민예술 공동체의 태동을 프랑스 68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 현대사회의 공동체는 더는 국가나 지역에 귀속되기 어려우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다고 밝힌다. 윤소영(2014)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장소 기반 공동체(place-based community)에서 공간 기반 공동체(space-based community)로의 전환을 제안하며 ‘물리적인 경계만으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동질적인 자아 영역으로 인식하는 곳’이 생활문화의 공간이 된다고 말한다. 즉, 만약 전통적인 농경사회처럼 지리적 범위에 근거해 생산활동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사회적 관계와 여가 활동이 펼쳐진다면 굳이 생활문화를 논의할 필요가 없지만, 현대사회의 개인화와 파편화로 인해 자연스러운 물리적 유대관계가 깨지면서 생활문화가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데 기여한다는 의미이다.
여기까지 본다면 생활문화 논의에서 지역은 의도적으로 또 효과적으로 소거된 것처럼 보인다. 지역성이 약화되어야 생활문화의 가치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이다. 6편의 논문 중 다수는 생활문화 활동을 독립변수로, 지역문화 활성화 및 지역문제 해결을 종속변수로 설정하여 지역주민의 자발적인 문화예술 활동 참여가 그들이 사는 지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로 이야기를 끝맺음한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되는 긍정적인 영향은 흔히 언급되는 공동체성이나 사회자본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역에 대한 자부심, 지역 정체성 확립, 지역주민의 건강과 복지(강준수, 2020), 지역사회 소속감, 공유된 추억의 생성(정지은·장웅조, 2020) 등 아주 개인적인 수준의 경험과 감상부터 집단 수준의 효과까지 다양한 지표를 모두 포함한다. 다시 말해 지역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생활문화정책 및 사업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생활예술』 의 논의 또한 위 논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문화예술은 시민들에게 지역적 정체성과 문화를 창조하는 주체로 역능하는 자원’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시민성, 지역성, 예술성 간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메커니즘으로 드러내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예술성은 수월성의 잣대로 서열을 매기거나 미학적인 고고한 가치를 부여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술성 대신 ‘소통의 과정을 촉진하고 매개하는 에이전시’로 정의된다. 그런 점에서, 삼자 간 관계는 솔직히 말하면 수평적이지 않다. 예술성을 재정립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이렇게 예술성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민 주체’의 존재와 그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맥락화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이 책에서 지역성은 뒤따라오는 개념에 해당한다. 시민 주체를 의미하는 시민성과 전통적 엘리티즘을 전복한 예술성의 기치 아래 지역성은 경계, 범위, 대상, 구역의 모호하지만 포괄적인, 추상적이지만 상당히 행정적인 개념으로 작동하여 시민성과 예술성을 보완한다.
그런 맥락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면 생활문화와 지역문화의 경계 짓기는 더욱 혼란스러운 과제로 여겨진다. 장르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의 전환을 표방한 <2019 생활문화정책 2.0 수립연구>는 지역, 마을, 골목, 일상 등의 단어를 소환해 지역 생태계에 기초한 00지역문화, 00거버넌스의 활성화를 제안하고 있다. 그런데 이 논의를 보며 드는 의문은 마을이나 골목으로 가기 위해 왜 자치구란 이름의 지역을 경유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서울문화재단이 자치구 자치구 문화재단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기에 행정적/정책적 목적으로 자치구가 곧 지역이라는 점은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 행정구역 단위의 정책이 이 보고서에서 의도하는 진정한 상향식 모델을 추진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실제로 이 글을 위해 인터뷰한 생활문화 매개자들은 지역의 생활문화 주체(대부분 동호회)들이 왜 함께 다 같이 모여서 거버넌스 테이블을 만들어야 하는지 매개자 본인도, 생활문화 주체도 항상 의문을 가졌다고 말한 바 있다. 이들에게는 각자의 문화예술 활동과 소속감을 가진 ‘나의 단체’가 중요할 뿐 이 활동을 더 큰 지리적/지역적 단위에서 공감하고 연대할 협치형 또는 거버넌스형 조직체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예술’과 ‘생활정치’
상술한 논의를 소략해보면, 현상적으로는 마치 생활문화가 지역문화에 속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학술 논의에서 양자에 대해서는 논점에 따라 그 상관관계가 소거되기도 하고 양자의 인과관계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인과관계는 정책의 강력한 정당성과 공공성의 증거로 기능한다. 예술가 및 작품 지원이 정량/정성적 효과를 뚜렷하게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특정 지역을 경계로 하여 소수의 시민 참여와 지역사회 변화의 관계를 구체적인 사례, 참여자 설문, 기타 정량적 지표로 환원해 설명하면 예술계에 종사하지 않고 별로 이해도가 낮은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스토리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런데 한편 생활문화와 지역문화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증명한다는 미명 하에 일종의 본심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논점을 제기해보고 싶다. 그 본심은 위의 제목에 적은 시민예술과 생활정치로 요약할 수 있다. 관련 논문들을 리뷰하면서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강준수(2020)와 이인순(2017)의 글에서 생활문화나 생활예술 대신 ‘시민예술’이란 용어를 사용한 점이었다. 이인순은 덧붙여 “지역의 특수성에서 예술의 특수성을 도출해 낼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 주장에 상당히 공감이 갔던 이유는 생활문화나 생활예술의 주체를 특정 시민(=지역주민)으로 한정했을 때, 즉 지역사회에서 세금을 내고 다른 주체들과 함께 시공간을 공유하는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권리를 강조하면, 여기에서 발화된 예술은 자연스럽게 지역성을 축으로 작동하게 된다. 한편 시민의 주권적 권리가 사회적으로 합의되어 존중받고 지지받고 있기에 여기서 발현하는 시민의 자발성은 긍정적인 사회적 동력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시민에는 당연히 시민이자 주민으로서의 예술가도 포함된다.
그런 점에서 생활정치는 생활문화, 지역문화를 모두 포함한 광의의 문화정책 개념이 추구하는 진정한 종속변수로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지방자치제도가 나름의 방식을 체계화하고 관 주도에서 민관 협치나 협력으로 정치의 방식이 재구성되는 요즈음 지역주민에게 나의 지역, 나의 생활은 모두 정치의 영역으로 재편되고 있다. 우리 아이가 진학할 학교를 정하거나, 지역주민과의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거나, 또는 우리집 앞에 마을버스를 만들고 집 근처 공원에 벤치 하나를 놓는 것에 이르기까지 무작정 정부의 시혜적 손길을 기다리던 과거와는 달리 우리는 이제 직접 제안하고 참여해서 예산을 설정하고 가시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시대로 돌입했다. 일종의 거대한 공공시장(public market)이 형성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그 공공시장에 예술가의 자리, 문화예술을 즐기는 시민의 자리, 그리고 지역문화정책의 자리가 협소하다는 것이다. 마을공동체, 청년정책, 도시재생, 사회적경제 등 공공시장의 각 영역들이 점차 세를 키우고 확장해가는 현실에서 문화예술영역의 자리는 어디인가. 때로는 그 각각의 영역에 침투해서, 또는 거리를 두고 문화예술의 영역을 키워가던 사람들에게 이제 공공시장을 두고 제각각의 영역들이 경쟁하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생활문화정책 2.0 수립연구>는 지역 중심으로의 전환을 위한 방법론으로 사회적경제, 생태 환경, 교육, 육아, 마을공동체 등 지역사회 다른 영역으로의 확장, 연계, 결합을 제안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솔직하게 생활정치의 영역에서 제안하고 참여하고 싸우라고 요구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런 움직임을 주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가와 참여적 시민의 역할이고 그런 주체들 간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시민문화/예술(생활문화/예술 대신)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짚고 싶은 건 생활문화와 지역문화가 바라보는 ‘생태계’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생활문화정책 2.0 수립연구>는 지역 생태계 안에서 생활문화의 자리를 찾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최근 단행되는 지역문화 사업 대부분은 다양한 조사, 연구, 아카이브 작업을 통해 생태계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치중되어 있다(서울문화재단 N개의서울 사업 참조). 그런데 현장에서 보면 생활문화는 아마추어 또는 일반인 중심, 지역문화는 예술가나 기획자 중심으로 주체를 이분화하여 생태계를 왜곡되게 바라보게 만든다. 생태계는 ecosystem이란 어원이 보여주듯 연속적이고 유동적인 체제로 관계성과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것이 핵심이다. 인터뷰에서 만난 생활문화 매개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생활문화 정책에 예술가/기획자의 자리는 없다고 토로했다. 최대한 예술가/기획자의 전문성/정체성을 삭제하고 배제해 철저한 ‘매개자’의 역할로 거듭나는 것이 사업 내내 요구된 지점이었다고 말했다. 만약 두 정책/사업 모두 생태계를 거시적이자 순환적 관점에서 바라봤다면 누구 하나만을 주체로 드러내는 오역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치추구형 문화정책으로의 전환
이제 최종적으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래서 생활문화와 지역문화는 같은가, 다른가? 나의 대답은 두 개념(=정책)은 다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 개념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업의 영역에서 보면 중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역 공연장에서 소수의 시민을 모집해 함께 무용 공연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했다면, 사업의 가치를 어디에 두었는지에 따라 생활문화가 될 수도, 지역문화가 될 수도, 또는 생활문화이면서 동시에 지역문화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2010년대 중반 본격화된 두 개념과 정책은 한국 문화정책 담론이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체제에서 가치지향형 체제로 전환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생태계에 대한 균형적 관점의 부재는 정책설계에서 특정 주체나 조직, 사업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해 결국 문화정책의 전환이 아닌 개념간의 대립 또는 개념 안의 대립으로 담론을 제한해 버린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그런 과정에서 우리 문화(예술) 생태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실제 시민들의 삶이 더 문화적으로 바뀌고 있는지, 예술가들이 지역에서 더 환영받으며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는지 충분히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참고문헌>
강윤주·심보선 외. 2017. 『생활예술』. 살림.
강준수. 2020. “지역의 자발적 시민예술 공동체의 역할을 통한 생활예술 활성화 방안 고찰.” 관광연구저널 34(1), 5-25.
라도삼. 2018.2. “소리소문없이 출범한 지역문화진흥원 – 소리를 지르며 문제를 푸는 행정이 필요하다” 문화+서울 2018년 2월호 이슈&토픽.
서울문화재단. 2019. 『2019 생활문화정책 2.0 수립연구』.
윤소영. 2014. “지역의 문화예술단체를 매개로 형성된 생활문화공동체 활성화 사례 연구.” 창조산업연구 1(1), 43-60.
이인순. 2017. “시민예술과 지역문화재생으로서의 연극 – 도시 안산을 중심으로.”드라마연구 51, 35-64.
이의신. 2018. “지역축제가 생활문화 확산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문화와융합 40(7), 73-108.
임재현, 한상헌. 2019. “지역 생활문화활동의 사회적 가치에 관한 연구.” 지역과문화 6(3), 55-77.
정지은, 장웅조. 2020. “지역문화 근간으로서 생활문화의 사회적 가치 연구.” 지역과문화 7(3), 1-21.
--------
성연주. 문화사회학 연구자,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운영단. 이론과 현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지역문화, 청년예술 등의 여러 주제를 사회학적으로 연구한다. 문화정책연구모임 행간에서 이론이 튼튼한 연구자 되기를 목표로 함께 공부하고 있다. (euniceseong@gmail.com)
문화정책연구모임 '행간行間'. 문화정책을 함께 공부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의 다학제적 연구모임이다. 문화정책씬 내의 연구 담론이 공론空論인 -논쟁과 응답의 부재- 시절에, 학술장의 ‘유령’으로 남지 않겠다며 공론公論-함께 논쟁을 통해 의미를 매개하기-을 시도한다.
'"협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협업 ‘행간行間’: 문화정책연구 다시쓰기 ⑦]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떻게 문화정책연구자가 되는가 - 생활문화 글쓰기 경험을 바탕으로 (0) | 2021.04.05 |
---|---|
[협업 ‘행간行間’: 문화정책연구 다시쓰기⑥] 생활문화 정책의 공백: 국제 이주민들과의 생활문화를 위하여 (0) | 2020.12.03 |
[협업 ‘행간行間’: 문화정책연구 다시쓰기④] 생활문화 다시보기: 주체 (0) | 2020.11.05 |
[협업 '오롯위드유': 사법적 판단 너머, 무용계는 무엇을 할 것인가] 성폭력 대응시스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 (0) | 2020.10.21 |
[협업 ‘행간行間’: 문화정책연구 다시쓰기③] ‘여전히 거버넌스’를 위한 잠시 멈춤: ‘생활문화정책’과 거버넌스의 부침들 (0) | 2020.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