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

[협업 ‘행간行間’: 문화정책연구 다시쓰기①] 생활문화에 관한 집단적 학술 글쓰기를 시작하며

CP_NET 2020. 9. 10. 13:30
편집자 주: [문화정책리뷰]는 문화정책 현장의 다양한 연구진, 필진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협업'을 운영합니다. '협업'은 참여하는 연구진, 필진들이 독립적으로 기획 진행하고, [문화정책리뷰]는 발표를 돕습니다. 앞으로 문화예술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담론 작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생활문화에 관한 집단적 학술 글쓰기를 시작하며”
② “생활문화에 대한 비판적 질문: 생활문화와 공동체 가로지르기” 권수빈
“‘여전히 거버넌스’를 위한 잠시 멈춤: ‘생활문화정책’과 거버넌스의 부침들” 채태준
“생활문화 다시보기: 주체” 나보리
“생활문화와 지역문화의 개념적 중첩과 정책적 난제” 성연주
“생활문화 정책의 공백: 국제 이주민들과의 생활문화를 위하여” 김태윤

 

 

 

문화정책연구모임 행간行間은 함께 문화정책을 공부하는 젊은 연구자들의 모임이다. 줄과 줄 사이를 가리키는 행간이 의미의 공백과 여백이라면, '행간行間'은 문화정책을 공부하지만, 학술장으로부터 성원권을 획득하지 못한 신참자들의 존재 조건에 관한 제유이기도 하다. ‘학문후속세대라는 기만적인 이름은 학문세대로 진입하는 좁은 문 앞에 줄서 기다리길 요청하고, 문을 열고 들어갈 순서를 조금이라도 더 앞당기기 위한 도덕으로서 각자도생이 정언명령인 시절에, 우리는 문화정책을 공부한다. 문화론적 전회로 일컫는 90년대, 그리고 문화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스스로를 학술장의 소장 학자로 정체화했던 당대의 신참자들이 제도와 시민사회 내에서 자리를 잡거나 유학길에 오른 이후, 2000년대 백화점이 된 대학은 문화를 접두어 삼은 학과들을 찍어내고전시했다. 제도교육이 기업화 혹은 (부정확한 언표지만)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 변모했다는 진단 속에서, 학술장 속 문화의 이 유례없는 흥행이란 비판적 성격을 탈각시키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이처럼 황폐화 된 것이 제도적 조건이라 한다면, ‘90년대적 세례를 받은 앞선 시기의 문화 그리고 문화정책 연구자들은 현장이 아닌 이론으로 관심을 옮기거나, 빠르게 문화(정책)연구의 종말을 선언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서로의 결과물과 연구에 대해 성실히 읽고 또 비판하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응답하는 공론장의 부재라는 것 속에서, ‘비판적 문화의 탄생-흥행-종말은 조용한 방식으로 행해졌다. 이것이 오늘날 문화정책 연구가 놓인 조건이라면, 우리는 여전히 문화정책 씬에서 문화, 그리고 문화정책을 통해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개입하길 소원하는 젊은 연구자들이다.

 

의미 없음으로서의 공백이 아닌 행간行間의 두 번째 의미, 의미와 의미 사이를 매개하거나 의미들 사이의 미증유로서 '행간行間'은 개별적으로 작업을 해왔던 우리가 함께 있음을 통해 실천하고픈 방향을 노정한다. 올해 1월 우리는 모임을 시작하면서 서로가 그동안 개별적으로 해왔던 연구들을 소개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했다. 분과학문 공동체 내에서 응답받지 못했던 서로의 고민과 관점들을 나누며 학술장 속 고립감을 해소했다. 사회학, 행정학, 문화연구 등 우리가 지닌 다학제적 스펙트럼은 각각의 작업을 보다 성찰적으로 조명할 수 있게 해주었다. 비단 각각의 연구를 더욱 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었다. 이는 우리가 왜 문화정책을 연구하고 싶은지, 문화정책 내에 어떠한 담론에 반하고 싶은지에 관한 공통의 감각을 벼려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우리 각자의 연구뿐만 아니라, 선배 문화정책 연구자들의 작업을 검토하며 그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심문에 부치고 싶은지 톺아보았다. 상반기 동안의 이 지난한 과정을 거친 뒤 우리는 우리에게 행간行間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문화정책의 공론空論-논쟁과 의미의 부재 - 시절에, 학술장의 유령으로 남지 않고픈 젊은 연구자들은 공론公論-함께 논쟁을 통해 의미를 매개하겠다-을 시도하고자 한다.

 

 

생활문화를 공통 학습 주제로 정하기까지

 

우리는 2020년 한 해 동안 함께 공부하고 글을 쓸 주제로 생활문화(생활예술이라 불리기도 한다)’를 선택했는데, 이런 선택에 이르기까지 경쟁이 된 다른 주제나 구성원 간의 이견은 별로 없었다. 그만큼 생활문화는 행간行間의 설립 취지 및 운영 목적에 걸맞은 주제이기도 했다. 그 이유를 하나씩 나열해보면, 우선 우리는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문화정책 분야/용어 중 생활문화만큼 유연성과 모호성이 큰 주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 생활문화는 상당히 가변적이라는 말인데, 이를테면 생활문화를 개인의 성장으로 보는지, 특정 지역의 지역성/공동체성 개발로 보는지에 따라 생활문화의 정의, 용례, 실태, 목적이 모두 달라진다.

 

한편 이런 특성은 학술적 접근을 하기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생활문화는 지역문화, 문화향유, 커뮤니티아트, 거버넌스, 예술가의 정의, 매개자 등 문화정책의 첨예한 주제가 모두 얽혀있어 다양한 학술적 해석과 이론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또한 생활문화는 문화정책 패러다임 중 문화민주화에서 문화민주주의로의 가치 전환이 실제 정책 용어와 사업으로 구체화되는 한국적 방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판단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생활문화가 하나의 정책사업에 대한 분석을 넘어서 문화민주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이론적 분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주제라고 보았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세미나를 하고 논의를 했는지

 

미리 설정되어 있던 구체적인 목표나 방법은 없었다. 각자의 지향과 문화정책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균형을 이룬다면 나머지는 크게 개의치 않는 점이 지난 9개월간 이 모임을 지속시켜 온 공통된 태도였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첫 두어 번 동안은 모임의 기초적인 방향을 잡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기도 했다. 문화정책의 고전을 읽을지 혹은 트렌드 분석을 시도할지, 세미나를 할지 혹은 돌아가며 강의를 할지, 즉각 구체적인 성과를 도모할지 혹은 모임의 방향을 더 정교하게 할지 등이 빠짐없이 언급된 뒤에야 조금씩 모임이 정착되고 세미나가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개인 발표 1회 및 생활문화 관련 자료와 관심사를 접목한 쪽글을 매번의 과제로 정하고 나니, 3주마다 모이기로 한 것은 상당히 빠른 주기였다. 학위 논문이나 학술사업 연구계획서를 포함한 여러 글에서 생활문화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공공기관의 생활문화 관련 연구보고서와 사업 자료도 함께 챙겨 보아야 할 선행연구 자료들이었다.

 

생활문화는 시의적인 주제이기도 했다. 초기의 생활문화는 정부 주도 문화예술정책과 순수 혹은 고급 예술 사이에서 시민과 주민의 영역을 발견해 공공성 또는 공동체라 명명했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더 지역적이고 일상적인 영역까지 그 잠재력이 부각되고 있다. 여기서 만약 지역마다 차별화된 생활문화의 사례가 있다면, 이들은 해당 지역의 특성에는 잘 부합하겠지만 과연 어떤 기준에서 이들을 예술이나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반대로 생활문화를 폭넓게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장애인, 이주민 등 소수자들과의 접점은 어떻게 넓혀갈 수 있을까? 혹은 생활문화는 문화정책의 자장 안에서 특정한 시민사회를 형성시켜왔던 것은 아닐까? '행간行間'의 모임에서는 이와 같은 질문들이 오갔다.

 

생활문화가 가변적임을 염두에 두고 이후부터는 심층면접을 통해 실제 정책 시행과정과의 간극을 줄여보고자 했다. 3년차 자치구 매개자, 전직 장르 매개자, 공공기관의 전 생활문화사업 담당자를 만나 각자의 위치에서 구상하고 경험하는 생활문화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정책의 추진력, 본인 역할의 범위, 주체들 간의 차이 속에서 생활문화가 모호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행간行間이 인식하는 현 생활문화의 가장 큰 한계 혹은 문제는 무엇인가

 

생활문화를 주제로 정하고 공부하면서 우리가 느꼈던 생활문화의 가장 큰 한계는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정책 설계와 집행의 방향성이었다. 몇 안 되는 연구들이 정책적 지침과 같이 활용되고 있으며, 현장에서는 지침을 학습하고 이에 따라 사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생활문화에 관한 문화정책씬 내 비판적인 담론 형성을 위한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부족했음에도, 생활문화의 수행은 몇몇 연구들에 이론적 근거를 기대고 있음에 만족한 듯 보이며 정책에 대한 다른 목소리와 대안은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자발성, 시민성 등 자유로운 참여와 개입이 생활문화의 핵심 준칙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탑다운 방식의 정책 추진은 더욱 모순으로 느껴졌다.

 

또 한 가지 크게 느껴지는 한계는 생활문화가 지역문화, 예술교육 등 다른 문화정책 분야와 차별화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물론 생활문화의 개념과 대상이 지역 또는 교육과 겹칠 수 있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생활문화만의 특성이 드러나는 정책/사업이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만약 생활문화의 주체를 일반 시민으로 이해하는 것이라면, 생활문화정책에서는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더욱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 생활문화정책은 정책의 수행에 주 관심을 두고, 생활문화의 주체인 시민에 큰 관심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한편 생활문화는 특정한 지역의 사례가 일종의 롤모델이 되어 다른 지자체의 생활문화정책으로 이식되는 과정을 통해 성장했다. 그리고 이런 사례가 롤모델의 위치로 격상하는 데에는 연구의 기능이 강력하게 작동했다. 학술적 글쓰기를 통해 사례는 이론화, 정형화, 정책화, 사업화의 대상으로 변모했다. 이때 학술적/정책적 연구물은 사례를 비판적으로 또는 정밀하게, 정치하게 검토하기보다는, 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위해 현장을 정전화 하지 않았는지 우리는 고민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시도는 어쩌면 한 번도 본격적으로 논쟁되지 않았던 -놀랍게도 이 생활문화 르네상스속에서 한 번도 본격적으로 심문에 부쳐지지 않았던- 생활문화에 관해 비판적 질문을 던지는 일과 같다.

 

 

행간行間이 시도하는 세부 주제들

 

우리는 생활문화의 이론적 근간을 재검토한다는 취지에서 특정 지자체/기관의 정책 또는 사업에 관한 분석은 최대한 지양했다. 대신 우리가 지향점으로 삼은 것은, 생활문화와 관계된 이론적 테마를 키워드의 형태로 뽑고, 이를 중심으로 제기할 수 있는 비판적 논의를 최대한 꺼내놓는 것이었다.

 

여는 글에 이어 12월까지, 행간行間은 멤버 다섯 명의 개별 글과 전체 기획을 내부적으로 진단, 평가하는 마무리 글을 내놓을 예정이다. 먼저 권수빈은 생활문화를 공동체라는 주제어를 통해 살펴볼 예정이다. 생활문화정책에서 공동체가 목적, 조건, 방법 등으로 활용되는 이질적인 맥락을 주목하기 위해서다. 공동체가 소멸했다는 전제와 생활문화 활동으로서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다는 대안의 기획들을 비판하기 위해, 생활문화정책 내에서 공동체가 주조되는 방식과 조건화의 맥락들을 두루 살펴볼 것이다.

 

다음으로는 채태준은 생활문화 정책의 흥행을 통치 혹은 협력의 방식으로서 2000년대 이후 부상한 거버넌스 기획의 맥락과 함께 살펴본다. 본질주의적으로 생활문화 정책의 성격을 노정하는 것이 아니라-‘이건 결국 통치야!’- ‘사회적인 것이 재편되는 일련의 흐름을 문화정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례로서 생활문화정책을 살핀다. ‘새로운 공동체-참여 모델이라는 낭만적 언표와, ‘사회적인 것을 포획하는 제도의 기획이라는 단정적 회의론 양자에서 모두 확인되는 생활문화정책의 효과를 살핀다.

 

나보리는 생활문화의 주체에 집중하여 살펴본다. 생활문화 활동을 하는 사람은 누구이고, 이들의 생활문화는 지역문화와 문화교육과 차이를 가지는지 살펴보며 생활문화 주체를 기준으로 이들이 지향하는 생활문화 활동에 대해 고민해 본다.

 

다음으로 성연주는 생활문화와 지역문화를 양대 키워드로 삼았다. 지역문화진흥원은 생활문화진흥원으로 출범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한 뒤 지역기반 생활문화 정책을 운영 중이다. 이처럼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생활과 지역의 관계에 관해 과연 이 둘의 연계성을 공고히 해주는 이론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는지, 혹은 두 개념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인지, 또는 일부분에서 겹치는 것인지 등의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해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태윤은 생활문화 정책과 초문화적인 현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관심을 가지며, 이주민을 중심으로 한 지역문화, 공동체문화, , 제도 등을 아울러 생활문화와의 관계를 상호문화주의의 관점에서 주목한다.

 

여기서 제시한 행간行間의 시도는 결코 생활문화(정책)의 정답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이론의 적용, 다채로운 해석, 자유로운 사고의 확장을 통해 문화정책씬에서 시도해볼 만한 새로운 공론公論의 방식을 함께 만들어가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번 기획에서 당신이 찾은, 읽은, 그리고 발견하게 될 다양한 행간들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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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연구모임 '행간行間'. 문화정책을 함께 공부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의 다학제적 연구모임이다. 문화정책씬 내의 연구 담론이 공론空論-논쟁과 응답의 부재- 시절에, 학술장의 유령으로 남지 않겠다며 공론公論-함께 논쟁을 통해 의미를 매개하기-을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