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

[협업 '오롯 위드유': 사법적 판단 너머, 무용계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함께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 무용계 미투 운동에 연대한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다

CP_NET 2020. 7. 27. 12:48

 

편집자 주: 무용인희망연대 오롯 위드유(이하 오롯 위드유)는 "사법적 판단 너머, 무용계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5차례에 걸쳐 집담회, 워크숍, 세미나 등 현장연구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술공동체, 그중에서도 무용 생태계의 관점에서 성폭력 문제를 바라보고, 미래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오롯 위드유는 현장연구모임을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자 리뷰를 게재하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오롯 위드유가 기획하였으며 [문화정책리뷰]가 함께 발행하고 있습니다. 오롯 위드유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문화정책리뷰]는 앞으로도 다양한 문화예술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담론 작업을 소개하는 "협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무용인희망연대 오롯 위드유(이하 오롯 위드유)는 2020년 하반기에 「사법적 판단 너머, 무용계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현장 연구모임을 진행한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과는 별개로, 현장에 발 담그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왜 아직도 많은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반복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세미나, 토론, 워크숍 등을 통해 이어가려 한다. 총 5회의 모임 중 첫 번째로 지난 7월 9일, 합정동에 위치한 댄서스라운지에서 ‘성 평등 실천을 위한 연대 그리고 예술’이라는 제목의 비공개 집담회가 열렸다. 현대 무용가 류00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법정 투쟁을 일여 년간 지지, 연대해온 오롯 위드유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무용가 3인을 초대해, 연대하게 된 계기와 주변의 반응, 그 활동이 작업에 미친 영향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이 집담회에는 이민진(페미플로어), 최기섭(프로젝트 이인), 이슬기(무용 이론 전공) 등 인터뷰이 3인을 비롯하여 오롯 위드유의 박성혜(무용평론가), 김서령(독립프로듀서), 김윤진(무용가), 김유진(문화기획자), 천샘(무용가), 권이은정(무용가), 김고운(프리랜서기획자)이 참여했다.

    

  

 

연대인 모집 공고 보고 바로 참여 결심

방청 참여나 연대를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당신 잘못했다’고 가해자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자리에 있고 싶어서

    

김서령(오롯 위드유/사회자) 초기부터 방청연대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해 준 연대인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탄원서를 쓰고 방청연대 활동에 참여하며 지지를 표명했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

    

이슬기(연대 무용가)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다. 피해자가 학교 후배였다. 교내에서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암묵적으로 돌고 있었고, ‘자기를 믿고 따르는 제자에게 어떻게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지?’ 하며 분노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는 것은 섣부른 행동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 작년 6월 기사를 통해 오롯 위드유의 성명서를 보게 되었다. 연대에 참여할 분들을 모집한다는 그 한 문장을 보고 바로 참여를 결심하게 되었다.

    

최기섭(연대 무용가) 사건은 기사로 처음 알게 됐고, 페이스북을 통해 오롯 위드유를 알게 됐다. 재판 방청석에 자리함으로써 가해자에게 ‘당신은 잘못했다’라고 표명하는 누군가가 되고 싶었다. 무용계의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위력을 경험했음에도 잘못된 것을 개선하기보다 순응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고, 억압적인 문화 속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고 생각했다. 피해자에게 마음으로 빚지고 있다고 느꼈다. 방청연대로 참여해서 힘이 되고 싶었다.

   

이민진(연대 무용가) 재판 방청 참여나 연대를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오롯 위드유 방청 연대 참여 모집’이 보여서 신청했다. 나는 졸업한 직후였지만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만약 내가 다니는 학교에 피해자가 있었더라면, 나라면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피해자가 사건 당시엔 나이가 더 어렸다는 말을 듣고 ‘정말 그건 아니지 않나’하며 분노했다.

    

김윤진(오롯 위드유) 세 분의 첫 마디에서 연대의 힘이 확 느껴졌다. ‘연대를 안 할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 너무도 선명하다. 다른 세대의 언어를 듣는 기분이다. 물론 나 역시 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해자와 동갑이고 알고 지낸 사람으로서 또 지금까지 무용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묵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신이 잘못했다고 질타하고 싶었다’는 말은 내 감정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나의 경우 처음 재판장에서 가해자를 만났을 때 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고 위축되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사건에서는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에게도 다가가기 어렵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르면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학습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두려움과 용기는 상반되는 것 같지만 두려움을 뚫고 용기를 내는 어떤 순간들과 두려움에 갇혀서 용기를 못 내는 상황들이 함께 얽혀 있음을 본다. 용기와 두려움 그사이 어떤 지점에서 연대를 촉발하는 힘이 있지 않을까도 다시 묻게 된다.

    

 

    

김서령 무용계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류 씨와 자연스레 알고 지냈다. 공연장에서, 회의 자리에서 가끔 만났고, 내가 기획했던 공연이나 축제에 출연하기도 했었다. 현장을 지키는 몇 안되는 중견 예술가였고, 그런 활동을 응원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그가 가해자로 기사에 나왔을 때 충격이 컸다. 내 주변의 많은 무용인들이 그러했고, 지난 시간과 관계들이 부정 당하는 것 같은 기분에 오랜 기간 힘든 마음이었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두려움 속에서 도움이 절실했을 피해자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방청연대에 한번도 나가질 못했다.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김유진(오롯 위드유) 개인적으로 류 씨와는 친분이 없다. 그러나 미술계 성추행 사건으로 알려진 Y를 알고 있고, 여성들 누구나 그렇듯 일상 속에서 성폭력은 비일비재했고 류 씨보다 더 심각한 성폭력 사례도 직접 보았다.

    

피해자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마치 무성영화처럼 소리가 들리지 않는 풍경을 고등학교 때부터 목격해 왔다. 그래서 김지은 씨가 뉴스에 나오던 날이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무성영화가 갑자기 유성영화가 되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갑자기 사람들에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일까 놀라웠다. 과거에는 남자 동료들에게 주변에 성폭력이 흔하다고 이야기하면 믿지 않았다. 직접 목격한 성폭력임에도 예외적인 사건으로 취급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남자 동료들이 지금은 이해한다. 중요한 변화이다.

    

김지은씨 미투 이후, 세상은 원래 이런 건가 하며 멈춰있던 시간을 꺼내서 살펴보았고, 성폭력 관련 모임, 세미나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류 씨 사건에 대응하기 위한 비대위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 비대위가 오롯 위드유가 되었다.

    

오롯 위드유가 작성한 성명서에는 피해자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지 않다. 2차 가해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성폭력 사건으로 연대를 요청할 때 피해자가 겪은 일을 선정적으로 나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피해 사실을 말하지 않았음에도 선뜻 서명해주고 오롯 위드유에 연대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시대가 달라진 것을 실감했다.

 

    

연대를 바라보는 우려 섞인 시선에 대해

우리도 이렇게 연대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

    

김서령 연대에 참여하며 용기와 두려움이 공존했을 거로 생각한다. 어떤 감정이 들었나?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이민진 방청연대에 2~3번밖에 참여하지 않았다.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엄청난 것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무용계에서 안다고 할 수 있는 분들은 다 여기 계시기도 하다. 방청 연대 외에도 SNS로 오롯 위드유의 포스팅을 공유하고 있었다. 공유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정보가 공개되기 때문이다. 주변 반응은 연령대에 따라 달랐다. 20대 중후반 커뮤니티에서는 이 사건이 잘 알려져 있었기에 어떻게 되었는지 진행 상황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40대분들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입장이니?”라며 내 생각을 묻거나 혹은 ‘운동에 관심 있는지’ 조심스레 묻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람 말고 다른 사람도 그랬잖아”라며 추가 제보를 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최기섭   류씨와 이해관계가 많지 않다. 나 역시 방청 연대를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무용계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이기에 이해관계가 크게 얽히지 않은 나라도 참여해야지 생각했다. 물론 류씨의 특강을 들은 경험은 있어서 학교에서 만나던 사람을 법정에서 마주치게 되니 움찔하게 되는 순간은 있었다. 그럼에도 연대에 참여해 자리를 지키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고 싶었다. 주변의 반응은 대부분 문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에 동조는 하지만 깊이 관여하려고 하진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김윤진 연대를 바라보는 시선과 반응이 세대에 따라 다르다는 지점이 흥미롭다. 의견을 표명하지 않은 사람들과 공동작업을 하게 되거나 지원을 통해 만나게 된다면 어떨지, 혹시 불이익을 당할지에 대해 고민한 적은 없는가?

    

최기섭 지원금을 받는 것 자체가 쉽지 않으니 그런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법정에서 류 씨와 눈이 마주쳤을 때 ‘무용계에서 먹고 살며 강의도 나가고 오래 일하고 싶은데, 잘 버틸 수 있을까?’ 싶은 순간은 있었다. 이 사람은 교수였고 측근이 무용계에 힘이 있으니 이래저래 영향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이슬기 사건 관련 기사를 SNS에 공유하며 피해자와 같은 학교 출신의 후배들이나 동료들에게 ‘우리가 이렇게 연대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직접 연락을 돌리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은 우선 피의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했고, 같이 화를 내며 동조해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 연대 참여 표명에는 부담을 느끼고 사건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가해자가 강의를 나갔던 S 대학은 소규모에 폐쇄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류 씨의 아내인 L 교수가 학과장으로 있다. 피의자와 그의 측근들이 무용계에서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피해자에 대한 지지 표명을 하면 행여 자신에게 위력을 행사하진 않을지, 그로 인해 피해를 보지는 않을지 두려움을 느끼는 듯했다. 실제로 후배를 통해 피의자 측근 중 한 사람이 ‘오롯 위드유에 서명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이외에도 “우리 선생님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판결이 나올 때까지 중립을 지키겠다는 입장도 있었다.

    

김윤진 두려움을 꺼내면 용기로 바뀌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류 씨는 자신이 ‘위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으나 사실상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다. 방금 나온 ‘오롯 위드유에 서명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발언이 바로 그 위력의 증거다. 또 2심까지 선고되어 유죄가 확정된 이번 사건에 지금까지 아무런 입장 표명을 하고 있지 않은 가해자 소속 협회들을 보면 피해자나 무용인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이것이 가해자를 묵인하는 위력의 구조로 작동하는 것이 아닌가 묻고 싶다.

    

  

김서령 무용계 안에서 힘을 가진 가해자 측근들의 옹호나 묵인 속에서 2차 가해와 또 다른 위력이 형성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가 활동하는 무용계의 현장과 그 안에서의 힘의 작용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과거에는 무용대학을 중심으로 무용계가 움직였다. 공공지원의 수혜도 교수님이나 동문단체에 치우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독립예술가과 단체들이 무용계 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곳에는 현장의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가 닿지 못하고 있다. 무용계를 작동시키는 현장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있고 그 안의 벽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다.

    

    

아직은 멀게 느껴지는 곳,

흥미로운 작업이 이어지는 공연장,

예고에서부터 시작되는 관계의 장 등

무용계 현장에 대한 다양한 정의

    

김서령 각자가 생각하는 무용계의 현장, 중심은 어디인가?

    

이슬기 20대 중반으로 내 또래는 현장에 아직 들어가지 않았다고 본다. 현장은 저 너머에 있고 협회, 단체에 속한 사람들이 중심을 이끌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기섭 무용계 현장은 공연장이나 작업을 하는 공간, 흥미로운 작업이 이어지는 만남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생각하는 현장이란 개인 페이스북 타임라인 같은 개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스북은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골라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득 다른 곳을 보니, 협회·단체들은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을 이어가며 공고하게 지붕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나는 나만의 현장에서 경험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 괴리감이 꽤 크다.

    

  

이민진 현장이 공연장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사실 그 현장이 시작되는 지점은 예고에서부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방청을 하고, 페미플로어 활동을 하며 이런 모임들이 탁상공론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연대 활동이 분명 의미 있지만, 여전히 학교에 가면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학교라는 현장에 있는 학생들은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 학생 때는 춤에 대한 열정이 너무 커서 적어도 대학교 3학년이 지나야 학교가 전부가 아니란 걸 알게 된다. 졸업하고서야 제대로 들을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는 눈과 귀가 생긴다는 게 너무나 안타깝다. 또한 여전히 지원금은 교수님에 의해 좌우되기에 그 굴레에서 전혀 나오지 못하고 있다. 상당수의 독립예술가도 예고에 강의를 나가고 워크숍을 하려면 교수님의 호출을 기다려야 한다. 교수님에 의해 생계가 이어지는 구조이다.

    

김윤진 각자가 생각하는 현장의 의미가 다르다. 누구는 독립안무가 중심의 창작씬이고 누구한테는 협단체 중심의 장일 수 있고 누구에게는 대학 중심의 교육기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용계 각각의 현장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실핏줄처럼 연결되어있다는 점이 이 문제를 개인이 아닌 무용계 공동체의 문제로 봐야 하는 지점이다.

    

김서령 학교에서 비판적 사고가 어떻게 실종된다고 생각하나?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이민진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비판적 생각을 하는 걸 두려워한다는 걸 느꼈다. 교내에서 혹은 다른 학교에서 사건이 터질 때마다 평소에 소신 발언을 해 온 몇몇 인물들을 불러서 현장 체크를 하듯이 이것저것 물어봤다. “이제는 무용하면서 만지지도 못하겠네”라는 말을 했고, 익숙해진 기존의 것들이 무너지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예고에서 오로지 무용만을 바라보고 힘들게 예대에 들어온 학생들은 교수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그래서 문제의식이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특히 한국 무용이나 발레는 예고에서 만들어진 관계가 대학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힘든 도제식 교육을 버텨온 사람들에게 비판의식을 가지라고 하는 게 맞는 건지, 강요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내가 선배라고 후배들에게 섣불리 무어라 하는 것도 이상할 수 있겠다 싶었고, 그들이 성장하면서 스스로 배워갈 거로 생각하기도 했다.

    

    

사람이 좋다고 평등하고 안전한 작업 환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장치와 규칙이 필요해

    

김서령 연대 활동을 통해 관계나 생각, 작업에 미친 영향이 있었나? 변화된 지점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슬기 연대 활동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이 꺼리거나 조심스러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례로 친한 후배가 졸업 작품을 올렸는데 나를 초대하지 않아서 이유를 물었더니 피의자 측근으로부터 “‘까불지 말라’고 전하라”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걸 듣고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고 느꼈다. 연대 활동을 후회한 적은 없지만 두려움을 느낀 적은 물론 있다. 그러므로 피해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굳건하게 활동을 지속하는 오롯 위드유의 연대에 감동했다. 나처럼 피해자와 같은 학교에 다닌 가까운 이가 신빙성을 더해서 연대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

    

천샘(오롯 위드유) 슬기 씨가 피해자와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는 것이 위드유에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피해자가 힘들었던 건 믿었던 사람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때 유일하게 연락된 사람이 슬기 씨였다. 피해자가 은인이라고 말했고, 이를 계기로 몇몇 사람을 얻었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 관계는 정리되었다고 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왜 행동하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김윤진 ‘까불지 말라’는 명백한 협박이고, 듣는 이에겐 현실에 기반을 둔 공포로 다가온다. 우리가 말하는 것에 정당성이 확보되면 그들이 두려워하기 시작하리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뒷배가 버티고 있어야 하고 긴밀히 접속할 수 있는 연대가 필요하다. ‘까불지 말라‘ 이상이 될 수 없는 건 오롯 위드유 연대가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자신이 다음의 뒷배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존재 자체로 있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가해자들과 그 측근들이 함부로 못 하지 않겠나.

    

최기섭 작업할 때 여성 차별적인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고, 토론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 작업이 평등하고, 억압 없는 환경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장치와 합의가 마련돼야 한다. 같이 작업하는 무용수와 관계가 좋고, 사람이 좋거나 착하다고 해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건 아니다. 예전 안무 작업 때 개인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무용수이지만 막상 작업을 시작하니 장치와 합의가 없어서 생기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지금은 작업 전에 규칙을 만들어서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규칙은 ‘연습을 시작하고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장치가 있어야 작업 환경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이민진 무용계 행동강령을 만들 때 변수가 매우 많았다. 일정하지 않은 환경과 상반신 노출, 촬영 동의 등 하나하나를 규칙으로 제도화하려니 힘들었다. 행동강령을 만들어 보기 전엔 정말 아무 생각 안 하고 공연했다는 것을 느꼈다. 무용수인 나도 이런데, 안무가는 더 규약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동안 과정에 대한 단계적인 고려가 없었다는 것을 느꼈다.

    

    

학교에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수업이 생겨서 어린 학생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길

중립이 제일 나쁘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무엇인지 고려가 필요해

공론화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져야

    

김서령 이 글을 보게 될 사람들에게 지면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이민진 학교에 있을 때는 그 관계가 전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게 안타깝다. 이 사건이 있기 전 아는 선배를 통해 들은 얘기가 있다. 학원에서 엠티를 갔는데 다른 여성들의 몰카를 찍은 남자 선배가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사람이 크게 제지를 당하거나 처벌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후에 더 큰 사건의 가해자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무용계에 남자가 부족하여서 생태계 안에서 잘못이 발견되어도 묵인되고 있다. 일상이 쌓이고 커져서 사건이 터진다. 어린 학생들이 이걸 보고 위험한 사람을 멀리할 줄 알고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문제의식이 생기면 좋겠다. 예술 교양 수업처럼 성 인지 감수성에 대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는데 교수님들이 안 좋아한다고 들었다. ‘예술가의 젠더교육’이 어느 대학에서 폐강됐다고 들었다.

    

최기섭 수많은 미투 운동에도 무용계가 잠잠해서 이상했는데 오롯 위드유가 눈에 보이는 움직임을 만들어줘서 감사하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한데 ‘중립이 가장 나쁘다’고 생각한다. 나쁜 말을 하는 사람들은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에 싸울 수 있는데 중립을 취한 사람들은 실체마저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다’는 말이 가장 정치적인 선언인데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은 정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만적이다. 사람들이 오롯 위드유의 활동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조건들을 보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이슬기 사실 이번 재판에서 피의자에게 2년 형이 선고된 것이 내 기준에서는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해자는 2년 후면 복귀할 수 있겠지만 피해자는 수년을 시선과 비난을 감수하며 살아왔고, 편입해서 희망찬 꿈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했는데 그것을 짓밟아 버렸기 때문에 고통의 비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오롯 위드유와 함께 연대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2년이라도 받아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롯이 더 커지고, 공론화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지면 좋겠다.

    

김서령 힘을 많이 받는 말이다.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연대 활동을 시작했지만, 무용계 안에서 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 시선과 뒷말에 대한 두려움이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도 이렇게 같이 갈 수 있는 후배들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다. 그래서 ‘최소한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구나’라는 다짐을 다시 하게 된다.

    

    

故 최숙현 선수 사건을 보고 주변 사람들의 연대에 큰 의미 느껴

오롯 위드유가 무용계에 신뢰 망을 깔아주는 역할을 했으면

관심 사람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채널이 있으면

    

김서령 끝으로 오롯 위드유에 제안하고 싶은 것이나 함께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슬기 한 친구가 오롯 위드유 연대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다가갈 수 있는 정보와 루트가 있으면 좋겠다.

    

최기섭 최숙현 선수 사건을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몇 차례 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는데도 “너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말에 결국은 돌아가셨다. 가해자에 맞설 각오는 이미 했었을 거라고 보는데, 그분을 죽음으로까지 몰아간 건 함께해 주지 않은 주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무용계 학생들에게도 기댈 곳이 필요하다. 오롯 위드유가 그런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텀블벅과 같은 곳에 프로젝트를 올린다면 어떨까. 오롯 위드유라는 존재가 큰 힘이지만 제도까지 마련되면 더 좋을 거 같다. 자기 목소리에 귀 기울여줄 무용계 선배들, 동료들이 모이는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천샘 연대 및 모임이 공론화 돼서 다음 단계들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오롯 위드유 및 현장 연구모임에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참 좋을 거 같다.

    

김서령 무용인 희망연대 오롯이나 오롯 위드유 모두 동료, 선후배들과 함께 현장의 문제들에 연대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모임이다. 현장을 개선하기 위한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동료들이 동참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함께 고민해 나가겠다. 최근 공공기관이나 재단 등에서도 현장 거버넌스를 통한 예술현장의 안전망 구축에 대한 여러 논의들이 이어지고 있다.  

    

김유진 기관 외에도 신뢰할 만한 민간 활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말고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고 같이 나서주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믿음을 주는, 함께 편하게 얘기해 볼 수 있는 신뢰 망을 깔아주는 자리를 만드는 역할을 오롯 위드유가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세 시간에 걸친 집담회가 아쉽게 끝났다. 연대에 대한, 무용계 현장을 바라보는 서로의 시선 사이에서 안전한 무용계를 만들고자 하는 오롯 위드유와 젊은 예술가 세 명의 끈끈한 열정이 느껴졌다. 앞으로 총 네 번의 오롯 위드유 현장연구모임이 계속해서 진행된다. 두 번째 모임은 7월 31일(금) 오전 11시, 댄스라운지에서 열리며, 건강한 예술 창작활동을 위해 각자의 단체에 맞는 자치규약을 마련해보는 워크숍이 마련되어 있다. 자세한 사항은 오롯 위드유 페이스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안전한 활동을 위한 무용(예술)자치규약 만들기] 워크숍 안내

 

  일시: 2020.7.31(금) 11:00-14:00
  장소: 댄서스라운지 (독막로7길 64, 3층)

 

1. 무용계 내 단체들의 규약 적용사례 보고
  _장혜진(혜진장댄스)
  _서경선(툿 네트워크)
  _윤상은(페미플로어)
  _천샘(오후의 예술공방)

 

2. 나에게 맞는 창작규약 만들기

 

<무용계 내 행동강령>의 메뉴얼과 위 단체들의 규약 샘플을 바탕으로 자신의 상황에 맞는 규약을 직접 만들어 모둠 토론 및 발표

 

*신청(선착순 20명) http://naver.me/x5LCoHm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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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희망연대 오롯 위드유.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의 분과위원회로 반성폭력 연대활동 등 성평등한 예술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