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

[협업 ‘행간行間’: 문화정책연구 다시쓰기③] ‘여전히 거버넌스’를 위한 잠시 멈춤: ‘생활문화정책’과 거버넌스의 부침들

CP_NET 2020. 10. 7. 11:14
편집자 주: [문화정책리뷰]는 문화정책 현장의 다양한 연구진, 필진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협업'을 운영합니다. '협업'은 참여하는 연구진, 필진들이 독립적으로 기획 진행하고, [문화정책리뷰]는 발표를 돕습니다. 앞으로 문화예술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담론 작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생활문화에 관한 집단적 학술 글쓰기를 시작하며”
② “생활문화에 대한 비판적 질문: 생활문화와 공동체 가로지르기” 권수빈
③ “‘여전히 거버넌스’를 위한 잠시 멈춤: ‘생활문화정책’과 거버넌스의 부침들” 채태준
“생활문화 다시보기: 주체” 나보리
“생활문화와 지역문화의 개념적 중첩과 정책적 난제” 성연주
“생활문화 정책의 공백: 국제 이주민들과의 생활문화를 위하여” 김태윤

 

 

 

이 글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문화정책 내에서 각각 분야와 형식으로서 등장해, 2010년대를 거치며 결정적 지위를 획득한 생활문화정책거버넌스에 관해 다룬다. 서로 다른 두 언표가 동시기 어떻게 얽혀 있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서로의 의의를 지탱하고 있는지를 살핀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수행한 생활문화사업을 중점에 두되, 오늘날 문화정책 장에서 생활에서 출발한 거버넌스’, 그리고 생활을 겨냥한 문화적 기획을 시도할 때 발생하는 쟁점들을 범박한 수준일지라도 더듬어보고자 한다.

 

 

두 갈래의 길

 

흐름 하나. 당신은 기억하는가. 문화정책에 있어서 소위 전환기를 말이다. 90년대적 세례를 받은 문화연구혹은 문화에 관한 아카데미의 관심을 자양분 삼았던 2000년대 초중반의 상황을 말이다. 반영적인 것으로서의 문화로부터 형성적인 것으로서의 문화로, 현실을 왜곡하는 거울로서 제한된 상부구조인 문화에서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으로서의 문화로, 문화의 지위가 격상되던 그 시절을 말이다. 2000년대 초중반 문화정책은 문화의 민주화를 지난 시절의 패러다임으로 정의하고, 새로운 과업으로서 문화민주주의를 꺼내든다. 고급문화 혹은 올바른 문화를 더 공평하게 보급하는 것으로부터, 문화라는 모호하고 넓은 개념으로 통칭되는 일련의 실천들에 내재한 위계관계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창작자와 수용자, 고상한 것으로서의 예술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서의 문화-를 심문에 부치는 야심찬 기획을 기억한다. ‘문화민주주의라는 언표를 통해 등장하지 않았을지라도, 그 시절의 당신은 접근성 확장’, ‘전문 예술가 중심’, ‘예술 작품의 결과에 집중했던 지난시절로부터, ‘지역과 지방’, ‘평등’ ‘참여 과정에 중점을 둔 새로운 정책 체계로의 이행을 어렴풋이 감각하고 있었다.

 

흐름 둘. 2000년대,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 새롭게 재편된다. 제도적 권력의 반대편에 위치하거나, ‘제도-아님을 상징 삼아 자신의 자리를 확보해오던 시민사회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제도 또는 행정과 보다 복잡한 관계를 맺게 된다. ‘민과 관의 이 복잡한 관계는 경제적 차원에서 사회적 경제라는 이름의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위기관리 메커니즘으로 해석되기도 했으며, 시민사회와 국가행정 사이의 보다 긴밀해진 관계에 관해서는 '사회를 집어삼키는 제도의 통치성(Governmentality)'이라는 기민한 반응 혹은 냉소가 이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시민사회와 국가 사이의 관계는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는데,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행정의 형식이자 참여의 이름은, 통치라는 본래의 의미를 성찰하거나 탈각시키며 함께 다스림을 의미하는 협치를 상징하는 단어로 정초된다. 1997년 발표된 유엔개발계획이 설명하듯 거버넌스는 시민사회와 그에 속하는 집단들이 정책의 결정에 참여하는 과정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정책을 수립하거나 운영하는 과정에서의 방향의 전환 - Top-Down으로부터 Down-Top-을 상징하는 단어다. 거버넌스라는 통치의 형식은 행정과 민간이 만나는 시점의 전환 -행정이 수립한 정책의 수혜의 순간에서가 아니라, 정책을 기획하는 앞단의 순서로의 전환- 이자, 행정과 민간이 만나는 방식에 관한 전환 - 정책의 대상으로서 민간이 아니라, 정책을 함께기획하는 자로서 민간으로의 전환 -을 의미키도 했다.

 

창작자로부터 참여자로, 아니 예술창작자와 수용자의 경계를 심문에 부치는 이 같은 이행은 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으로의 전환을 의미키도 했다(이 패러다임 전환의 기획은 무릇 많은 운동이 그렇듯, 지난 시절과 도래해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항의 대립구조를 통해 체계화하고. 이들을 하나의 기표에 응집시키는 것이리라). 동시에 거버넌스라는 언표가 지시하듯 이 일련의 전환은 그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형식에서의 전환이기도 했다. <지역문화진흥법>의 제정은 이 두 흐름 속에서 진행되었는데, 이때 지역이라는 단어는 강력한 구심력을 지닌 중앙과의 종속적 관계를 통해 정의되는 지방으로서의 의미 외에도, 인간 개인이 삶을 실천하는 일상적 공간을 동시에 의미키도 했다.

 

<지역문화진흥법> 내에서 지역의 주민이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자발적이거나 일상적으로 참여하는 문화적 활동으로 정의되는 생활문화의 핵심 개념이 앞선 문화정책의 패러다임 전환과 관련된 개념들 - ‘참여’,‘지역’,‘일상’ -과 긴요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문화정책이 겨냥하거나 출발해야 할 공간이 더욱 미시화 된 것일까, 아니면 비로소 시민의 삶의 공간으로서 문화정책의 지향과 출발점이 진정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고민케 된 것일까, 지난 하고 지리멸렬한 일상으로서의 생활, 공동체의 붕괴와 일상적 삶의 위기 속에서 비로소 복구되어야 할 것으로서의 생활이 이제 문화와 만난다. 생활은 언제고 문화적 실천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이 생활문화라는 언표는 그 대당관계에 전문가의 문화(예술적 실천)을 설정해두며 나름의 자리를 확보했다.

 

 

거버넌스의 시절에 태어난 생활문화정책

 

억압-저항이라는 기존의 정치적 이해관계와는 상이한 새로운 국가-시민사회의 관계성을 상징하는 거버넌스는 문화정책과 관련해 상이한 수준들 속에서 언급되면서 (다른 부처에서 거버넌스가 그렇듯) 혼탁한 방식으로 사용되어왔다. 이때 문화정책의 영역 내에서 중앙집권적 의사결정구조의 쇄신이라는 거버넌스 기획은 무엇을 중앙과 주변으로 설정할 것인가에 따라 서로 다른 용례를 지닌 듯 보인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관계의 재조정이 거버넌스로 설명되다가도(장웅조, 이다현 2018), 다시 지역 내에서도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의 문화재단 관계의 문제로 거버넌스가 언급된다(백옥선, 2017). 한 단위 더 좁힐 경우 좀 더 익숙한 용례를 마주하는데, 지방자치단체 혹은 지역문화재단과 지역 주민들로, 중심과 주변의 관계를 설정한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오늘날 생활문화정책으로 불리우는 정책들에서 거버넌스가 등장하는 맥락과 함께 읽힌다.

 

지방정부 혹은 지역 내 문화재단과 지역주민 간의 관계와 상호적 실천으로서 거버넌스는 부상하는 지역문화에 관한 관심과 함께, 축제를 비롯한 지역의 문화사업 행사의 기획에 주민의 참여를 담보하는 것이 절차적 쇄신뿐만 아니라 더 나은 결과물적 혁신을 보여줌을 주장하기 위해 언급되기도 했다(문태현, 2005), 더 나은 결과물(문화산업)을 위한 거버넌스라는 발전주의적 혐의를 지닌 일부의 담론을 제하면, 다수의 연구들은 문화정책 내에서 거버넌스가 일종의 지역네트워크를 조성하는 일과 닿아있음에 합의하고, 이 같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들이 문화행정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지역 내 문화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지역 내 민간기관, 대학, 기업, 시민 등 문화의 이해관계자들 간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이 네트워크가 지방정부의 정책집행 과정에 참여하여 더 나은 정책 집행을 가능케 하도록 돕는 연구(손예령, 2019)가 그 예다.

 

주지할 것은 (특히 서울의 경우) ‘생활문화정책이 문화정책의 수립과 운영의 자리에 주민을 접합시키는 것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초 담론화 과정에서 생활문화정책은 거버넌스 자체이자 거버넌스를 배양할 수 있는 능동적 시민 만들기기획으로서 기반정책의 징후를 지니고 있었다. 전자가 거버넌스를 생활문화정책의 추진 방향(협치)으로 보고 있다면, 후자의 경우 생활문화정책을 거버넌스에 참여 가능한 지역의 주체들을 발굴할 수 있는 정책으로 언급한다. 생활문화정책 설계와 관련된 연구에서 거버넌스는 올바른 추진방식으로 제시될 뿐만 아니라, 가장 완숙한 모델(‘성숙기’)에서 생활문화공동체로부터 발아되어 이르러야 할 결실로서 언급된다(백선혜, 라도삼, 조윤정, 2016). ‘거버넌스의 발전된 형태를 위해 생활문화정책이 일종의 윤활유로서 지역사회 주체들 간의 친밀성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식이다(윤소영, 2014).

 

 

생활문화정책의 체계들과 거버넌스-하기

 

서울문화재단은 2017년 재단 내 생활문화지원단을 신설하며, 비로소 서울형생활문화정책을 출범시킨다. 서울형 생활문화정책이라는 패키지는 생활문화 활성화 지원’/생활문화공간지원/생활문화기반지원 등의 세 단위로 사업의 방향이 나뉘는데, 공간지원이 생활권 및 장르에 따른 거점형 공간지원이라면 기반지원과 활동지원은 (과거 생활예술 매개자FA로 불리웠던) 생활문화활동가들을 양성해 지역 내 생활문화 실천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서로 얽혀있다. 흥미로운 것은 생활문화 활성화 지원의 대상으로 삼는 생활문화의 형태를 지역-거버넌스모델과 장르 모델로 나눈다는 점이다. , 위댄스와 오케스트라를 포함한 예술-장르적 활동과 자치구와의 협력 하에 지역주민과 생활문화협의체를 구성하고, 해당 네트워크를 통해 생활문화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지역-거버넌스 모델이 나뉘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기획을 준비하며 만나본 FA를 비롯한 정책관계자들은 같은 생활문화정책으로 묶이지만 지원형식이 장르이냐, ‘거버넌스이냐에 따라 완전히 상이한 정책의 성격과 지위를 갖는 듯 언급하기도 했다. 특히 FA들은 장르인지, 거버넌스인지 특히 장르 내에서도 어떠한 장르에 속하는지에 따라 상이한 경험을 하게 되며, 이는 그들의 업무의 규모, 자율성, 활동에 관한 의지와 동력 등에 영향을 미쳤다. 이때 거버넌스라는 단어는 다소간 물화物化된 방식으로 등장했다. 참여자들은 지역거버넌스 말고, 오케스트라나 댄스라는 식으로 자신이 활동하는 방식을 설명하곤 했는데, 이는 해당 사업 내에서 FA들에게 거버넌스가 민과 관 사이의 소통의 형식이 아니라, 물화된 방식으로서 지원대상의 형태로만 체감되는 측면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더해 거버넌스가 중심을 이룬다거나, ‘문화재단에서는 (내가 활동하는 방식이 아닌) 거버넌스에 집중하고 싶은 것 같다는 코멘트가 나오기도 했는데, 이는 FA를 비롯한 참여자 내에서 정책적 지원의 내기물(Stake)을 두고 거버넌스 대 장르라는 경쟁적 구도가 설정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생활예술의 개념적 발원지는 분명 시민의 일상적 삶에 개입하는 문화정책을 목표로 삼았다. 이때 시민의 일상적 삶 속 문화는 고급문화와 그렇지 않은 문화를 구분하는 테제와의 단절로서 문화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문화민주주의 속에 위치했을 것이다. 허나 정책이 현시되는 순간에 (어쩌면 본질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왜곡은 반동적으로 생활 속 예술과 그 반대편에서 지역-문화라는 이원화된 지원체계를 구성하고, 이 이항의 구조는 문화예술 지원체계 내에서 지난 하고 고루한 이합 대립적 상징체계로 흡수된다-그래서 문화냐? 예술이냐?-. 거버넌스 대 장르, 문화 대 예술, 시민 대 예술.

 

 

거버넌스-’를 어떻게 할까

 

다시 두 흐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문화예술계 내에서 예술 대 문화, 생산자와 수용자, 예술가와 시민,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등 문화정책 내 위계화된 이항구조에 개입하길 고민하던 이들이 있었다. 동시에 문화정책 수립과 운영 차원의 변화로서 거버넌스를 비단 형식이 아닌 체계의 변화로서 고민한 이들이 있었다. 중앙에서 지방으로, 중앙에서 자치구로, 중앙에서 시민으로 문화정책의 개입해야 할 공간과 참조점이 모두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생활은 비로소 문화정책의 대상으로 변모한다. 생활 속에서 문화를 추구하는 일, 생활 속에서 문화를 매개로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일, 생활 속에서 문화를 매개로 구성된 네트워크가 행정과 협상하는 일이 이제 생활문화정책의 과업이 된다. 이때 서울의 생활문화정책이 겪고 있는 어떤 부침은 두 흐름 속에서 태동한 정책이, 그것이 현시화되는 과정에서 문화민주주의에 반하는 이원적 구조와, 민관의 관계의 전환으로서 거버넌스가 아니라 지원형태로서 물화된 거버넌스로 이해되는 (불가피한) 부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부침은 동시에 문화정책 내에서 소위 혼파망混破忘의 용례로서 사용되어 온 거버넌스라는 용어에 관해 이제 성찰할 단계가 왔음을 알리는 사건이다. 본질적인 영역으로 질문을 돌려야 한다. 거버넌스를 왜 해야 하는가. 거버넌스의 효과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허면, 민간과의 수평적 소통이란 것은 가능한가. 언제 예술가 혹은 시민은 문화정책을 두고 지방정부 혹은 문화재단과 수평적위치에 놓이게 되는가. 예술과 문화적 전문성이란 것이 재정초 될 때인가, 행정적 전문성을 민간과 예술인이 습득할 때인가, 예술인과 시민문화가 비로소 민간의 튼튼한 네트워크를 갖게 될 때인가. 이 일련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을 지나치지 않고, 우리는 그저 좋은 행정좋은 절차로서 거버넌스를 수사로서만 활용해도 괜찮을까. 일종의 부흥회를 지나 아직도 거버넌스냐묻는 이들에게 여전히 거버넌스라고 말해야 하는 우울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잠시 멈춤이 아닐까. 잠시간 거버넌스말하기를 멈추고, 거버넌스의 이름표를 달고 나온 문화정책들과 그 효과를 찬찬히 검토해보는 일이 아닐까.

 

 

<참고문헌>

문태현 (2005) 지역혁신을 위한 문화정책거버넌스의 성공요인 분석. 한국행정논집

백선혜, 라도삼, 조윤정(2016). 서울시 생활문화예술동아리 활성화 방안. 서울연구원

백옥선 (2017). 지방자체단체와 지역문화재단간 거버넌스 실태분석. 문화정책논총, 31(1), 130-156

손예령 (2019).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을 위한 문화거버넌스 체계에 관한 연구. 문화정책논총. 33(2), 137-166

윤소영. (2014). 지역의 문화예술단체를 매개로 형성된 생활문화공동체 활성화 사례 연구. 지역과 문화, 1(1), 43-60

이의신 (2018). 지역축제가 생활문화 확산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문화와 융합, 40(7): 73-108

장웅조, 이다현(2018), 문화예술활동 지원을 위한 지역과 중앙의 공유 거버넌스-미국의 지역예술위원회와 문화재단의 활동을 중심으로, 문화경제연구, 21(1), 6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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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태준.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문화연구를 공부하고, 청년활동가 동료들과 청년오픈플랫폼Y에서 활동하고 있다. 청년담론, 청년정책, 퀴어서사, 아포칼립스 서사 등을 연구해왔고, 문화정책연구모임 '행간行間'을 통해 비로소 본격적으로 문화정책(연구)를 배우는 중이다.

 

문화정책연구모임 '행간行間'. 문화정책을 함께 공부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의 다학제적 연구모임이다. 문화정책씬 내의 연구 담론이 공론空論-논쟁과 응답의 부재- 시절에, 학술장의 유령으로 남지 않겠다며 공론公論-함께 논쟁을 통해 의미를 매개하기-을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