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

[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현장이라는 ‘유행’에 대한 예비적 고찰

CP_NET 2023. 6. 13. 16:30
편집자 주: [문화정책리뷰]는 문화정책 현장의 다양한 연구진, 필진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협업'을 운영합니다. '협업'은 참여하는 연구진, 필진들이 독립적으로 기획 진행하고, [문화정책리뷰]는 발표를 돕습니다. 앞으로 문화예술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담론 작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문화정책연구모임 ‘행간行間’의 [문화정책의 유행]입니다. 특정 개념 및 분야가 유행하며 문화정책 장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현상에 관한 비판적 논의를 펼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① [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두 번째 작업을 시작하며- 문화정책을 ‘유행’이라 명명하기
② [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정책 키워드 별 예산 추이와 사회적 영향의 상관관계에 대하여_ 나보리
③ [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현장’이라는 유행에 대한 예비적 고찰_ 채태준
④ [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담론이자 전략으로서의 공공성_ 권수빈
⑤ [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거버넌스, 수평적·민주적 조직문화에 대한 갈망_ 성연주
⑥ [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청년문화부터 지역문화 정책까지, ‘○○ 하는 사람’을 찾아서_ 김태윤
 

 

문화정책과 관련한 텍스트를 읽을 때마다 자주 마주치는 단어가 바로 '현장'이다. 현장은 그 어원에서 특정한 사물, 사건, 인간 등이 나타나는 공간을 가리킨다. 이 단어, 문화정책 장 안에서는 특정한 이항대립의 용례로 사용된다. 현장에 맞지 않는 정책, 현장을 모르고 설정된 추진체계, 현장을 반영치 못하는 예산 규모 등이 그 용례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이론 또는 연구의 반대편으로서 현장이 등장할 때다. ‘보다 현장 중심적인 이론과 연구가 필요하다’, '동시대 문화연구와 관련한 지식체계들이 현장의 이야기를 소거하고 있다', '현장을 반영하는 학술적인 담론과 개념이 필요하다'. 문화정책의 언저리에 있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거나, 읊어보았을 문구다.

 

문화정책의 연구실천이 현장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비판은 끊이지 않는데, 문화정책과 관련한 연구프로그램들은 현장을 상징적인 자원으로 삼아 여타 분과학문과 자신을 구별해 왔다는 점이야말로 역설적이다. 예술경영의 사례로 이를 알 수 있다. 예술경영학의 국내 도입과정에 관한 내러티브에서 현장은 주요 꼭지다. 1)1980년대 이후 문화예술이 독립적 정책분야로 간주되기 시작하며 예산, 프로그램, 공간 등의 양적 팽창이 이뤄지고, 2) 그 과정에서 전문인력의 수요가 증가하며, 3)이 수요를 매개하기 위해 예술경영(문화정책학)은 대학원 내에 도입되었다는 식이다(박신의, 2014; 박양우, 김유리, 2011; 임학순, 2009; 황서이, 2019 등등). 이때, 학계는 현장의 요구수요-에 따라 구획된 전문성공급-이다. 예술경영에 관한 서사는 언제나, “그 출발은 예술 현장의 요구로부터” (박신의, 2014; 5)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예술경영은 문화정책의 현장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는가. 그때마다 주로 거론되는 것은 다학제성 또는 간학제성이다. 다른 영역들과 구별되는 문화예술계의 특수성이 있기에 기존의 분과학문적 렌즈를 사용한 연구는 현장을 담을 수 없으며, 때문에 다학제적/간학제적 연구가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예술경영이다(예술경영이 되어야한다)며 서사는 마무리된다. '학제 간 연구'는 예술경영이 문화정책과 관련한 다른 분과학문적 접근들에 비해 지니는 변별적 특징이나 강점인 셈이다(박정배, 2020). 사실, 예술경영은 그 기원에서부터 전통적 분과학문체계의 틈에서 나온 학제적 실천으로, 특히 현장의 어떤 필요를 매개하기 위해 등장한 실천으로 스스로의 역사를 써 왔다. 그때 주로 언급되는 것은 보몰과 보웬의 1966년 예술경영에 관한 시론적 책(Performing arts: art and the economic dilemma)이었고, 수익성이 낮은 예술 사업의 생존을 위해 기존 경영기술과는 다른 접근으로 '예술경영'이라는 학제적 접근이 생겨났다는 식이다.

 

예술경영은 오늘날 문화정책과 관련한 장 내에서 독점적 지위를 지니는 듯 보인다. 몇몇 학술지들은 KCI(한국학술지용색인) 등재지가 되었고, 대학 내에서 대학원 및 학부 프로그램으로 제도화 역시 상당 부분 진행되었다. 경험적이고 주관적인 차원 또한 덧붙여둔다. 주변에서 문화행정에 몸담았던 이들이 전문성을 쌓기 위해 예술경영 전공으로 진학하는 모습을 자주 발견해 왔다.. 예술경영의 위치 또는 자의식을 다른 차원으로 어림잡아볼 수도 있다. 2009년 수행된 임학순의 연구는 예술경영 연구동향을 살피기 위해 학술지 <예술경영연구> 수록 논문을 연구대상으로 설정했다. 한편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수행된 황서이의 연구는 국내 예술경영 연구동향을 살피기 위해 '문화정책논총', '문화경제연구', '예술경영연구', '문화산업연구', '인문콘텐츠'(황서이, 2019; 45)를 분석했다. 이 모든 학술지, 그리고 그곳에 실린 연구들을 예술경영연구로 간주해도 괜찮을까? 연구대상 설정에서의 변화는 예술경영의 현재적 조건-지배적 위치-을 반영할 수도, 또는 간학제연구실천이라는 하나의 형식을 '문화예술 정책과 관련한 보편적 연구프로그램'으로 다시 쓰는 형성적인 재현정치를 보여줄 수도 있다.

 

 

정말 현장과의 괴리가 문제일까?

 

현장성을 자원 삼은 학술프로그램의 시절, 현장성을 자원 삼은 예술경영이 제도화된 시절에도 왜 현장에 관한 문제제기는 지속될까. 이론과 현장의 괴리를 메워야 한다는 당위에서 등장했으며, 현장을 위한 문화정책적 전문성을 지닌 인력을 양성해 왔고,, 동시에 간학제적 접근으로 분과학문과는 다른 유연함을 지녔다고 자부하는 예술경영의 시절, 대체 왜 문화정책과 관련한 이해관계자들 내에서 현장 대 이론, 현장 대 학술, 현장 대 연구로 구성된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변주되는 중일까. 나는 예술경영의 연구 경향을 파악하기 위해 개별 연구들을 (푸코 식의) '담론'으로 간주하고, 주체/대상/개념/전략의 차원에서 정리해 보는 공동연구를 기획 중이다. 본 고에서는 그에 앞서 예술경영이 '현장'을 인용하거나 바라보는 관점에서 특정한 종류의 쇄신이 필요하지 않을지에 관해 물음을 던져보고자 한다.

 

오늘날 이론과 연구실천의 영역에 '현장을 반영하라'라는 목소리는, 문화정책의 장에서 무언가 어긋나 있음을, 누군가 대의되지 않고 재현되지 않음을 알리는 목소리이며 동시에 날것 그대로가 아니라 해석을 요구하는 징후(symptom)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나는 '현장을 반영하지 못하는 동시대 연구'는 외려 '현장과 연구 사이의 밀착'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괴리가 아니라 밀착이다. 고약한 말장난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동시대 연구가 특정한 현장들과 직접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지역문화, 생활문화, 문화도시, 창조도시 등에 관한 개념화와 실제 정책 현장에서의 설계는 거의 한 몸처럼 움직인다. 연구가 설계한 개념은 빠르게 정책의 수립으로 이어지고, 다시 해당 정책의 당위를 보론하기 위한 사례연구나 보고서들이 등장한다. 현장과 이론 사이에는 거의 불화가 없다.

 

거의 대부분의 문화정책연구는, 현장에서 어떻게 이론 또는 개념의 원안이 구현되었는지를 열심히 찾아 헤맨다. 특정한 개념이 현실을 해석하는 데에 적합하거나 미달하는지에 관한 이론적인 쟁투는 거의 찾기 힘들다. 연구 속에서도 현장은 결코 개념과 불화하지 않는다. 현장은 (마치 요술처럼) 이론이나 개념과 거의 합치한다. 연구자는 특정한 개념이나 정책의 당위에 이미' 동감하고 동의하고 감화되어있다. 연구는 그저 '이론이나 개념을 통해 현장의 현재적 수준-지금의 생활문화적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공통체는 나왔나/청년예술은 얼마나 대안적인가/거버넌스는 실현되었는가'를 발견하길 원하는 식이다. 거꾸로 생활문화라는 개념 그 자체, 문화정책이 '발아'시키길 원하는 공동체란 무엇인지에 관한 비판, 청년예술이라는 개념의 문화정치적 의미, 거버넌스라는 신드롬에 관한 비판적 진단은 연구의 영역에서 거의 행해지지 않는다. 차라리 그것은 문화정책의 담론장 내에서 칼럼과 비평의 몫으로만 간주된다. 정책목표의 실현정도 등에 관한 연구들, '정책목표의 차원에서 문화정책이 어떻게 잘/못 구현되었는가'에 관한 연구들이 문제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책목표로 일컬어지는 특정한 개념, 이론, 문제설정에 관한 함구, 무관심, 조용함이 있다는 게다. 이런 비판/응답의 문화가 문화정책연구의 장에는 거의 없다.

 

더불어 간학제적 연구는 본질주의적인 대안성을 지니는지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간학제이기에 문화예술영역을 더 잘 볼 수 있다? 문제는 어떠한 방식으로 간학제적인가의 차원이다. 외려 간학제적 프로그램들의 경우, 그들 나름의 과학성에 관한 입장연구형식으로 따지자면 이론과 방법론의 영역-을 견지하지 못한다면 분과학문들 간의 경계를 어지럽히며 창발적 앎을 추구하는 이단자로서 긍정적 효과보다는, 각각의 분과학문 내의 규범적인 질서를 충실히 따르는 식의 계승자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다수의 예술경영을 쇄신하길 시도하는 논문들은 결론부를 '예술경영 나름의 이론적이고 방법론적인 쇄신이 필요하나 이는 아직 미진하다'며 마무리한다(대표적으로 김인설(2014)의 연구가 그렇다). 예술경영은 제도화된 프로그램이지만, 그것은 하위분과적 제도화가 아닐까. 사회학 내의 예술경영, 커뮤니케이션학 내의 예술경영, 행정학 내의 예술경영. 이런 환경에서는 문화정책을 연구하는 개별 연구자들 간의 진지한 학술적 교류나 이해가 일어나기 어렵다. 이는 예술경영보다는 경영학, 사회학, 행정학 등의 분과학문 공동체 내에서 개별 연구에 관한 소통이 쉽기 때문은 아닐까? 더불어 개별 작업의 ‘학술적인’ 성취 역시 예술경영보다는 각 분과학문 내에서 이룩하는 것이 쉽기 때문은 아닐까?

 

궁금하다. 간학제성의 장점이 오늘날 현장에 적확히 적용되어 빛나는 사례가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분과학문적인 지식생산의 틀과 정말 변별적인 특징을 지닐까. 전통적 분과학문의 문제의식 내에서 그저 연구대상만 문화정책으로 설정한 뒤, 간학제라는 포장을 씌우는 것은 아닐까. 간학제성이 유명무실하여 다른 분과학문들과의 구별 짓기를 위한 상징적인 의미만을 지닐 때, 간학제성이 형식이나 상징적 차별점으로서만 기능할 때(학제적이기에 사회학보다, 경영학보다, 행정학 또는 정책학보다 더 대안적이라는 식의), 현장이라는 예술경영의 구호는 그 나름의 과학성을 발전시키지 않아도 되는, 과학성의 결여를 포장하기 위한 방패가 된다.

 

 

'현장'을 떨어뜨려 놓기, '현장'으로부터 독립하기

 

외려 필요한 것은 현장과 이론을 떨어뜨려놓을 수 '있는' 역량이다. 오늘날 문화정책과 관련한 연구실천들의 문제는 현장과의 괴리가 아니라, 현장을 상대화할 수 있는 영역이 없기 때문이며, 현장으로부터 독립적인 그것은 현장으로부터 분리되었다거나 유리되었다는 말과는 다르다- ‘연구의 영역이 없기에 때문이다. 정책이해관계자들에게서 들려오는 '현장'이라는 단어는 날것 그대로의 현실보다는 해석을 원하는 증상이다. 오늘날 예술경영은 그 구절을 탈신비화하는 데에서 고전하는 중이며, 외려 현장을 유행으로 만들고 있다. 오늘날 연구의 영역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현장은 부정확한 단어다. 논의를 진척시키기보다 정지하게 만들고, 지식의 과학성에 관한 필요를 상쇄할 도구이며, 복잡한 상황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대체하는 연구의 만능열쇠다.

 

 

* 이글은 서울문화재단 예술연구활동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발행합니다.

 

 

 

<참고문헌>

김인설. (2014). 문화예술경영연구에서 정성적 연구의 당위성과 향후방향.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 학술대회>. 39-47.

박신의. (2014). 문화예술경영 연구 영역과 방법론 개발의 전망. <문화예술경영학연구>. 7(2). 3-21.

박양우, 김유리. (2011). 융합시대의 예술경영 연구 방향에 대한 탐색적 시론. <예술경영연구> 20. 53-84.

이승엽. (2009). 예술경영학의 연구영역과 접근방법. <예술경영연구>, 14, 7-28.

임학순. (2009). 우리나라 예술경영 연구경향 분석: “예술경영연구의 수록 논문을 중심으로. <예술경영연구>. 14.49-71.

황서이. (2019). 한국 예술경영 연구의 동향 변화.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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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태준. "문화연구자. 세대문화, 수집문화, 영상문화 등에 관심이 있다. 문화정책연구모임 '행간'에서 활동 중이다.

 

문화정책연구모임 '행간行間'. 문화정책을 함께 공부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의 다학제적 연구모임이다. 문화정책씬 내의 연구 담론이 공론空論-논쟁과 응답의 부재- 시절에, 학술장의 유령으로 남지 않겠다며 공론公論-함께 논쟁을 통해 의미를 매개하기-을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