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문화정책리뷰]는 문화정책 현장의 다양한 연구진, 필진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협업'을 운영합니다. '협업'은 참여하는 연구진, 필진들이 독립적으로 기획 진행하고, [문화정책리뷰]는 발표를 돕습니다. 앞으로 문화예술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담론 작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문화정책연구모임 ‘행간行間’의 [문화정책의 유행]입니다. 특정 개념 및 분야가 유행하며 문화정책 장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현상에 관한 비판적 논의를 펼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① [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두 번째 작업을 시작하며- 문화정책을 ‘유행’이라 명명하기
② [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정책 키워드 별 예산 추이와 사회적 영향의 상관관계에 대하여_ 나보리
③ [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현장’이라는 유행에 대한 예비적 고찰_ 채태준
④ [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담론이자 전략으로서의 공공성_ 권수빈
⑤ [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거버넌스, 수평적·민주적 조직문화에 대한 갈망_ 성연주
⑥ [협업‘행간行間’: 문화정책의 유행] 청년문화부터 지역문화 정책까지, ‘○○ 하는 사람’을 찾아서_ 김태윤
유행이 될 수 있는 것이 행동양식이나 사상이라면, 정책 분야에서 유행의 발생이 부자연스러운 일만은 아닐 수 있다. 정책은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책에서 유행이 있다면 가장 크게 관여될 주체는 정부이다. 특정 주제가 문화영역의 정책에서 유행한다면, 정부는 그것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자원을 배분하는 것으로 관심을 표현할 것이다. 언론에서 그 특정 주제를 많이 이야기한다면 이 주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나 활동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는 지표가 된다.
문화 정책 분야에서 유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이 나타났는지, 어느 주제가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를 정부의 계획과 자원 배분, 언론의 기사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정부의 활동에 집중해서 살펴본다. 부처별로 정리된 예산자료의 확보가 2009년부터 가능하므로 자료의 기준과 시기를 맞추기 위해 2009년부터 2022년까지의 자료를 활용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주요업무계획의 반복되는 ‘키워드’
정책 의제 형성을 위해 정부가 연초 업무계획으로 제시하는 계획서에는 정부의 주요 관심사가 나타나 있다. 연도별 업무계획 내용을 통해 가장 많이 나타나거나 또 여러 년도에 걸쳐서 나타나는 키워드가 있는지 알아보고자 2009년~2022년 문화체육관광부 주요업무계획의 추진과제를 모두 수집하여 전체 기간 동안 2회 이상 나타난 키워드들을 추렸더니 다음과 같았다. 이 키워드들은 2개의 정권 이상에서 나타나는 키워드로 ‘콘텐츠’와 같이 국 단위 사업 범위에 포함되어 당연하게 출현하는 키워드들은 제외하였다. 키워드를 유형화하면 다음과 같다.
가치: 공정
세계: 글로벌, 한류, 교류
사업: 유통, 저작권, 생태계, 인력
예술가: 창조, 창작
장소: 공간, 지역
삶: 생활, 복지, 향유
기타: 남북
공간(2011, 2012, 2015년 등장), 창조(2011, 2012, 2015, 2016년 등장)는 유사한 정치성향의 정권별로 반복하여 나타난 키워드였으며, 생활문화(2017-2020년 등장, 그 이전에는 ‘생활 속 문화’)도 마찬가지였다. 동일한 키워드가 업무계획에 재등장하는지 고려했지만, 하나의 키워드가 정권이나 시기별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생활’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는 ‘생활 속 문화’로 접근해 왔으나, 2018년부터 ‘생활문화’로 조어되어 사용되었다. ‘생활문화’는 일찍이 1993년까지 문화부의 국 명칭이기도 했다.
키워드 별 정부 예산 규모와 보도 규모 비교
주요업무계획을 통해 도출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2009년부터 2022년의 세출자료 중 지출 세부사업 예산편성 총액 자료를 분석했다. 상위 구분들보다는 실제 정책사업의 단위에 가까운 세부사업을 분석의 기준으로 삼았다. 예산의 단위는 천 원, 2020년을 100으로 기준점을 삼아 물가변동을 반영하여 비교하였다.1)
주요업무계획에서 도출한 키워드들은 예산 세부사업명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 중 ‘공정’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키워드들이 포함된 세부사업 예산의 연도별 총액의 변화를 살펴보았더니, 특정 연도에만 나타나거나, 예산 규모의 증감에서 경향성이 보이지 않는 경우들이 있었다. 각각의 상황을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특정 연도에서만 나타나는 키워드: 글로벌, 한류, 생태계, 남북, 창조
변화 양상에 일정한 패턴이 없는 키워드: 교류, 유통, 인력, 공간, 지역, 생활, 복지, 향유
정부 세부사업에서 나타나는 키워드들의 예산 규모가 사회의 관심 수준과 연계성이 있는지 알아보려면 보도 규모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온라인으로 검색 가능한 뉴스 기사 중 2009.1.1.~2022.12.31. 기간 동안 정부예산에서 특정 연도에서만 나타나거나 일관되지 않은 변화 양상을 보였던 키워드를 검색하고 문화로 분류된 기사의 연간 기사 수를 파악하였다.
연도별 기사 수가 가장 많은 키워드는 지역으로 평균 6만 건 이상이었다. 지속적으로 기사수가 증가하는 키워드는 글로벌, 생태계, 향유이다.
주요업무계획에서 도출된 키워드들의 정부예산규모 연도별 추이와 언론보도기사수의 연도별 추이의 상관성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정부예산과 기사 수의 흐름이 서로 비슷한 추이를 보이는지, 선행 혹은 후행하는지 비교하였다. 대부분의 키워드에서는 정부예산과 보도 건수 간의 상관성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몇몇 키워드는 상관성을 보인다.
‘한류’는 예산규모와 기사 수가 2018년까지는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교류’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유사한 흐름을 보이지만 그 이후로는 상관성을 보이지 않는다. ‘지역’은 2013년~2015년의 경우 언론보도 기사 수가 예산보다 1년 정도 후에 비슷한 패턴을, 2019년부터는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복지’는 2018년까지 예산과 언론보도에서 유사한 흐름을 보였지만 그 이후로 예산 증가추세를 보이는 동안 언론기사 보도 수는 줄어들었다. ‘향유’는 2019년을 기점으로 예산 증가추세를 보였지만, 언론에서는 2009년부터 꾸준히 언론기사 보도수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창조’는 2013년~2015년 사이 언론보도가 가장 많이 나타났는데 예산은 2015년부터 커지더니 2016년 가장 큰 규모를 보였다가 줄어든다. 언론보도가 정부예산규모에 선행하는 패턴이다.
전반적으로 예산 규모 추이와 기사 건수 추이가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바로 기사화되어 언론을 통해 안내하거나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는 언론에서의 언급이 선행되고 그 이후 정부에서 사업적 접근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지역’과 ‘한류’는 대체로 국가에서 주도해 운영하던 사업과 관련한 기사들이 보도되고 있으며 꾸준히 상관성이 갖는 추이를 보인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복지’와 ‘교류’는 2017년~2018년도까지 정부예산규모와 언론보도가 유사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 이후에 그렇지 않은 것은 정부정책과 언론의 관심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 오른쪽 축은 언론보도수(건) 왼쪽 축은 정부예산(백만원)으로 나타내었다.
사회적 영향력에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업무계획과 예산을 통해 정부가 가장 관심을 보여 왔던 키워드와 그 자원배분에 대해 살펴보았다. 정권 별로 사용하는 용어와 관심사가 구별되는 것으로 보이고, 일부는 그 관심사가 예산에 반영되었다. 다만 가치를 표현하는 ‘공정’, ‘나눔’, ‘소통’ 등은 예산에 표현되지 않는 등 계획상의 관심을 자원의 배분과 관련짓기 어려웠다. 예산 규모의 추이와 기사 수의 추이가 비슷한지 살펴본 결과 ‘지역’, ‘한류’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사업운영과 진행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영역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화 정책에 유행이 있다고 한다면 문화 분야의 많은 활동들이 정부의 주도 및 영향력이 큰 한국 맥락에서 정부의 영향력 아래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정권별로 정부의 관심사가 다르게 나타나거나 이어지는 경우들이 있으며, 그 관심사에 대해 예산으로 뒷받침하는 경우들은 많지만 언론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회의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일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좀 더 정교하게 주체를 구분해서 살펴봐야 하겠지만 전반적인 추세를 통해 본 문화 정책 영역에서의 유행은 일부 존재 가능성이 있으며 그를 주도하는 주체가 정부일 수 있다.
* 이글은 서울문화재단 예술연구활동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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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리. 문화정책연구자. 미술이론과 행정학을 공부했고 문화예술조직 운영관리, 정책효과, 예술주체, 취향과 미디어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 문화정책연구모임 '행간行間'에서 동료들과 함께 문화정책을 배우며 생각을 나누고 있다.
문화정책연구모임 ‘행간行間'. 문화정책을 함께 공부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의 다학제적 연구모임이다. 문화정책씬 내의 연구 담론이 공론空論인 -논쟁과 응답의 부재- 시절에, 학술장의 ‘유령’으로 남지 않겠다며 공론公論-함께 논쟁을 통해 의미를 매개하기-을 시도한다. (권수빈, 김태윤, 나보리, 성연주, 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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