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사반세기 정도의 역대 대통령 선거공약을 통해 문화정책의 흐름을 되짚어보는 소소한 작업을 지난 몇 달간 진행했다. 제20대 대선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당면한 선거공약을 분석하는 대신 되돌아보기를 했던 것이 누군가에는 한가하거나 회피적인 태도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스스로 역시 ‘우리가 뭔가를 피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자조적인 입장에서의 자문자답을 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런 주제를 선택한 것이 단지 당면한 현실을 빗겨가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런 우회적이지만 다소 불가피한 선택은 대강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한 가지는 이번 선거에서, 그리고 그 이전 선거에서도 더 이상 문화정책분야에서의 발화(공약)가 문화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에서 숙련되어 만들어진, 그리고 무엇보다 각 정치세력의 국가운영 전략과 맞물린 접근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지금까지 현대적 국민국가의 제도로 형성되어온 문화정책은 이미 어느 정도는, 그것의 내용적이고 디테일한 완성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거의 완성되었고 동시에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으며 그래서 이제 다시 “다음 스텝”을 이야기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음에도 여전히 동어반복적인, 고도성장 국민국가의 관점에서의 문화정책 이상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그 해법을 제도의 고현학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탐색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러한 고민은 약 15년쯤 전에 주어진 어떤 상황에서 출발한 것이기도 하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2007년 말 대통령 선거 당시 모 후보자 캠프에 있던 지인들로부터 문화분야 선거공약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상당히 당혹스러운 부탁이었는데 일단 일주일만에 대통령 선거공약을 뽑아내 달라는 게 황당했고, 더욱 곤란했던 것은 개인적으로 그 후보자를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그 이의 국가운영에 대한 비전이나 철학을 잘 알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부탁을 한 지인에게 “정치적으로 그 후보를 지지하지도 않고, 국정운영 방향을 잘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문화정책 공약을 만듭니까?”라고 되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아니 그냥, 문화예술계에서 좋아할 만한 것이나 원하는 것들 있잖아요? 그런 걸로 10개 정도만 뽑아줘요.”
물론 이 경우는 다소 극단적인 경우지만 선거 캠프에서 문화정책공약이 만들어지는 방식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 이후, 꽤 유력정당 후보 진영의 문화분야에 잠깐 관여했을 때도 엇비슷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캠프가 꾸려지고 문화 어쩌구 특위 비슷한 게 만들어졌지만 거의 대외적 명망가와 주요 이해관계자들을 섭외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졌고 선거공약은 한두 명의 정책가들이 붙어서 속전속결로 급조되었다. 물론 이 와중에도 강력하게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어필하는 몇몇 헤비스피커들의 주장 일부가 제대로 된 토론이나 여과 없이 그대로 담기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선거란 것이 기본적으로 우군을 많이 만드는 것에 집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설사 그 주장들이 어떤 보편적 공익성보다는 지엽적 특정 분야의 이해관계에 집중되더라도 배제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최소한 후보자와 정당의 문화에 대한 기본적 입장이나 원칙 속에서 조정되고 녹여져야 하지만, 문제는 정당에 그런 입장과 원칙, 방향 자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보수정당이건, 자유주의 정당이건, 진보정당이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정당들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한데 일상적인 정책 기능이 상당히 유명무실하다. 언론이 생산해내는 보수/진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정책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별다른 큰 차이로 존재하지 않는다. 여전히 메인스트림에서 국가의 운영원리는 성장에 대한 무비판적인 독려이고 문화는 그 하위 범주이거나 그것을 포장하는 이데올로기 장치, 미사여구의 포장으로 정치에서 소모된다. 오래전부터 팽배해있는 보수건 진보이건 문화정책은 별 차이가 없다는 식의 인식은, 바꿔 말하면 현재의 문화정책이 솔루션이라고 불리는 기능적 소모품 이상의, 가치지향을 담은 사회 운영의 원리로 받아들여지지도 그 역할을 부여받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기능적 소모품으로서의 문화정책
이런 상황은 2000년대 초반 참여정부 시기를 지나고 나서 특히 심해진 측면이 있다. 다름 아니라 참여정부 시기에 만들었던 “창의한국” “새예술정책” 등의 문화예술정책비전에서 사실상 현대국가에서 제도적으로 다뤄져야 할 문화정책의 영역을 거의 모두 열거해 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중에는 아이디어 차원에서 머물렀던 것도 많고 현장에서의 촘촘한 시도와 실험, 평가를 통해 내용적 속살을 채워나가야 하는 것이 숱하게 많았지만 일단 “표제어”들은 대부분 던져진 셈이다. 그 상황 자체는 긍정, 부정을 따질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었다. 가뜩이나 현대 국가로의 성립이 늦게 이뤄진 상황에서 건국과 함께 바로 큰 전쟁을 겪고 20년 가까운 재건의 시기를 보내고 난 이후,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제도 차원에서 문화정책이 다루어지기 시작한 상황에서 그래도 현대국가의 문화정책의 기본 틀 비슷한 것을 갖추는데 30년 정도 걸린 셈이니 어찌보면 상당히 빠르게 이루어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시간적 숙성의 과정을 충분히 겪으며 현장과 함께 형성된 정책들이 아니다 보니 그냥 수사적 표현이거나, 지엽적 정책 사업이어서 극히 일부에게만 체감되거나 실효적인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이긴 하다. 약간 거칠게 비유하자면 밥상에 뭔가 굉장히 많이 차려놓기는 했는데 그 어느 것도 충분히 먹을만하게 조리되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게 한국 문화정책의 지난 십 수년간의 풍경이다.
그리고 그것은 문화체육관광부로 상징되는 제도권 문화행정과 여야를 막론한 기성 정치권의 비의도적인 공생구조에서 연원 했다고 본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문화산업 진흥을 통해 일련의 가시적 (주로 경제적 지표상의) 정책 효과를 맛본 제도권 문화행정은 2000년대 초반부터 제기된 사회적 관점에서의 예술의 성장과 문화의 사회적 효용에 주목하는 정책 제안을 표면적으로는 대부분 수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관점의 정책 제안을 문화산업을 통해 거뒀던 것과 같은 계량지표적 정책성과로 전환해보고자 꾸준히 시도했다. 예컨대 2000년대 초중반 열심히 시도되었던 예술산업 육성정책도 넓게 보면 그런 흐름에 놓여있다. 문화산업을 통해 계량적으로 얻어낸 경제성과만큼 기초예술분야에서도, 문화예술교육에서도, 문화예술의 사회적 경제에서도 성과를 얻어내거나, 최소한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접근이 해당 정책의 속성에 잘 부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행정의 이런 접근이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는 것이, 계량지표적인 성과를 만들지 못하면 예산 당국으로부터 재원을 이끌어내기 힘들고 의회나 정치권을 설득하는 것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어떻게 포장하더라도 문화분야에서 산업적 메리트가 있는 극히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그런 성과를 창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사회복지영역과 같이 어느 정도 공공적 지출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를 만들어간 시간적 누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해야 할 일이라고 던져진 과제는 수십 가지인데 제한적인 예산과 인력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뭔가 했다는 티를 내야 하는 실무적 고충 속에서 정책과제는 당대의 주목받는 다른 아이템들- 예를 들어 일자리 만들기나 4차산업혁명 같은 -과 어색한 동거를 하기도 하고, 괸돌 빼서 웃돌 올리기를 하기도 하고, 정책사업 이름 바꾸기만 하기도 해왔다. 예산당국이 문화부 사업에 대해 자주 문제를 삼는 사유인 정책방향이 모호하고 중복적이라는 지적도 사실 예산이 남아서 비슷한 사업들을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상황이라기보다는 제한된 예산 안에서도 이것도 건드리고 저것도 건드려야 하는 매우 곤란한 고충에서 비롯된 측면이 상당히 있다.
(그 입장이 바뀌어 왔지만) 여야 정치권도 마찬가지였다. 선거국면에서는 문화정책에 대한 여러 가지 청사진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정권을 잡으면 그렇게 하리라는 일시적 자기 최면을 걸곤 하지만 막상 정권을 잡고 국가를 운영하려고 하면 문화정책이 무척이나 비용 대비 가시적 성과를 만들기 어려운데 디테일은 복잡하고 말은 많이 나오는 정책분야란 것을 알게 된다. 잠시 국회에 보좌진으로 일할 때, 문화분야가 아닌 일반 정무분야에서 주로 일해온 다른 보좌직원들에게 자주 들었던 얘기가 이런 거였다. “문화예술정책은 사업 숫자는 너무 많은데 각각의 예산은 너무 적어서 그 흐름을 파악하기 힘들다” 즉 투여되는 예산이 워낙 적으니 사실 그것의 사회적 효과가 있다 없다를 평가하기도 힘들고 그 효과에 대한 해석도 자의적이거나 사업취지와 잘 부합하지 않는 경영적 관점에 치우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취사선택과 우선순위의 문제가 고민되어야 하며 만일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문화정책에 대하여 좀 더 많은 역할을 기대한다면 공공자원의 투여를 늘리는 것도 불가피한 일이다. 그런데 현실이 어땠는가를 돌아보면 선거철의 미사여구만 있었을 뿐 어떤 결정적 결단도 이뤄지지 않았다.
현실의 열악함을 능수능란 포장하며 지나친 시간들
한가지 예를 들자면 문예진흥기금문제만 해도 그렇다. 문예진흥기금은 1990년대 중반 이미 기금 모금의 위헌성이 문제가 되며 모금 중단이 논의되었고 IMF 이후 국가재정 건전성이란 이유로 2000년대 초반 기금 모금이 완전히 중단되었다. 따지고 보면 1970년대 초반 문예진흥기금이 설치될 당시 유신정권의 초법적인 정책 강행에 그 제도적 허점과 논란의 불씨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문예진흥기금 자체가 한국 예술의 거의 유일한 공공지원 예산이며 일반회계에서의 지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지나친 정부 개입의 구조적 문제를 일부나마 덜어주며 예술지원의 자율성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장치란 점은 대부분이 공감하는 것이었다. 문예진흥기금에 대해서, 과거의 모금방식을 제외한 활용의 측면에서 쓸모가 없어졌거나 사용에 있어서 문제가 있는 기금이란 논리는 그 어떤 정부기구나 공공정책영역에서도 정식으로 발언되거나 입증된 적이 없다. 그런데 참여정부 이후 어떤 정부도 문예진흥기금의 재원대책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만들지 못했다. 계속 이런저런 대안만 예술위원회에 만들어보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그리고 20여 년간 대안은 이미 다양하게 나와있다. 단지 어떤 정부도, 어떤 정당도 결단을 내리는 대신 방관해왔고 한때 5000억에 이르렀던 문예진흥기금 재원은 고갈 위기에 도달했다. 새예술정책의 시대에도 그랬고, 문화융성의 시대에도 그랬고, 또다른 새예술정책의 시대에도 그랬다. 그 사이 숱한 후보들과 당선인들이 문화예술의 발전과 성장을 얘기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 아닌가?
편협하고 야박하게 지난 20여 년을 복기하자면 문화정책에 있어서 현실의 열악함을 영리하고 능수능란하게 관리하고 포장하며 지나친 시간이었다는 평가에 이르게 된다. 물론 그 덕분에 어떤 도를 넘어선, 지나친 파행을 막았던 측면도 있지만 블랙리스트 사태에서 드러났듯 행정의 구조적 폐쇄성은 오히려 강화되었고 현장의 당사자성 역시 오히려 폭넓은 가치지향이 아닌 폐쇄적 분야 이해관계로 퇴행한 측면이 있다. 문화정책 영역 전반에 있어서 역동하는 공론장이 사라졌다고 느껴지는 것이 단지 기우일까? 새로운 어젠다 생성을 위해서 현실의 틈을 조금 더 파고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소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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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신규.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겸임교수.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문화예술분야에서 발을 들여놓았으며 창작자, 기획자, 정책활동가 등 깊이 없이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았다. 최근에는 문화정책(제도) 연구와 문화 연구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작업들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관심 있는 분야는 국민국가 성립 과정에서의 문화적 제도화의 문제, 노동자 문화정체성에 대한 비전형적인 방향에서의 탐색 등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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