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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특집: 문화정책과 국가주의 ⑤] 제18대 대선 그리고 이후, 문화정책의 퇴행과 담론장의 침체

CP_NET 2022. 3. 7. 10:17
[대선특집: 문화정책과 국가주의 ] 권력을 위한 보기 좋은 포장지가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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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실용을 앞세웠지만 결국은 경제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지나칠 정도의 친기업적 정책과 4대강 사업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토목사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노동, 인권이 악화되고 환경에 대한 훼손이 심각하게 이루어졌다. 물론 대규모 토목공사 등의 경기부양책이 단기적인 효과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선거 이전에 내세웠던 만큼의 경제효과가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 국가적인 대규모 정책 사업을 할 때 미리 발표되는 경제 효과가 과연 신뢰할 수 있는 것이냐는 부분이다. 주로 한국개발연구원(KDI) 같은 국책연구기관에서 발표하는 이런 분석자료들은 정책 결정에서 무소불위의 명분으로 기능하곤 한다.

 

그런데 그런 예측치가 잘 들어맞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고 대부분 그런 예측 수치에 얼마나 부합했는가에 대해 사후에 평가되는 경우도 드물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 시절 진행되었던 경인아라뱃길 사업의 경우, 사업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있었고 KDI는 사업의 효과에 대해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여러 차례 발표한 바가 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경인아라뱃길 사업은 본래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치수 사업이었다. 이명박 정부 이전에도 여기에 물류 기능을 포함시키며 사업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참여정부 시절 2번의 평가에서 KDI는 모두 치수에 물류의 기능을 합친 대규모 사업으로서의 사업성은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놨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KDI는 갑자기 사업의 기대효과를 엄청나게 긍정적인 것으로 바꿔서 다시 발표했다. 27000억 원이라는 엄청난 사업비를 들여서 사업을 진행했는데 10여 년이 지나서 그 결과는 KDI가 바꿔서 발표했던 기대치의 8% 정도를 달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업을 어떻게든 추진하고자 하는 권력의 욕구가 강하게 관철된 결과, 세금만 낭비한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다시 오세훈 시장이 들어선 서울시는, 유람선 등 경인아라뱃길과 연계된 배를 이용한관광사업을 재개하려 하고 있다. 장담하건대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업이다.)

 

 

효율과 추진력 중시, 행정 주도성 강화

 

여하간 이런 이명박 정부의 상황에서 문화정책은 우선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은 효율과 추진력을 중시하며 행정의 주도성을 다시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는 참여정부 시기 등장한 참여와 절차, 과정, 공론화, 협치 중시에 대한 전문관료 집단들의 보이지 않는 반발과 블랙리스트의 앞선 버전인 문화권력 균형화문건으로 대표되는, 문화계 내 진보세력 찍어 누르기 방향이 결합된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문화비전(2008~2012)에서 품격 있는 문화국가 대한민국으로 제시하며 정책을 추진했는데 대표적인 성과로는 국립문화예술시설 건립의 확대 등 시설 중심 정책으로의 회귀가 있었다. 예술지원에 있어서는 선택과 집중’ ‘사후지원’ ‘간접지원 확대’ ‘생활 속의 예술향유환경’ 등을 내세웠는데 사실 이중 일부인 다년간 지원시스템, 공연장 상주제도 등은 참여정부 후반부터 논의 중이던 정책들이었다. 또한 문화향유 정책에서는 모세혈관정책을 강조하며 문화이용권 사업, 문화예술교육 사업들을 양적으로 엄청나게 확대해 나갔다. 2011년 문화바우처 예산은 347347억 원으로 전년(67억 원)(67억 원) 대비 무려 5배 늘어났으며, 예술강사도 엄청나게 규모가 확대되었다. 이런 엄청난 양적 확대의 원인은 문화정책 내적인 필요도 있었지만 당시 정부가 시급한 과제로 추진하던 일자리 만들기를 위한 공공 자원 투여의 성격이 더욱 강했다. 물론 일자리 만들기 그 자체는 문제였다고 볼 수 없다. 문화분야에 필요한 서비스를 만들고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도 늘리는 것은 여러모로 긍정적인 요소가 많았다. 문제는 그 방식이었다. 협치와 소통 대신 성과에 매몰된 일방적인 관주도 행정을 통해 정책이 집행되면서 문화향유정책과 문화예술교육정책의 본래 목표와 가치들이 계량적 수치에 매몰되는 모습이 나타났고 일자리 정책의 측면에서 양질의 안정적 일자리가 아닌 행정과의 수직적 위계관계에 종속되는 불안정한 나쁜 일자리로 자리 잡아갔다. 대표적 사례로 예술강사들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광역문화재단 간의 계약에 관한 지난한 갈등을 들 수 있다. 협치와 소통 없는 일방적 사업 확대에서 오랜 갈등의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요약하자면 양적 확대와 경제성 위주의 성과평가 정착, 관료 권력의 강화와 이에 반비례한 민간 자율성의 약화 등이 이명박 시대 문화정책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박근혜 후보, 공약과 집권 이후의 간극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2012년 초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박근혜 씨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박근혜 후보 대선공약은 전반적으로 앞선 이명박 정부의 경제 활성화 우선 정책이 지나치게 친기업적으로 흐르면서 민생이 어려워졌다는 비판을 의식한 탓에 국가 책임에 근거한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표면에 앞세우고 있었다. 문화정책에 있어서는 문화가 있는 삶을 타이틀로 차별 없는 문화향유와 국제적인 문화교류 및 수출을 강조했으며 총 9개의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예산·제도 문화재정 2% 달성
문화기본법 제정 등 문화기반 조성
맞춤문화 장애인 문화권리 국가보장
지방문화 지방을 지역에 특화된 문화예술도시로 개발
창작보호 예술인 창작안전망 구축 및 문화예술단체 지원 강화
문화예술창작 지원 및 문화콘텐츠 공정거래 환경 조성
문화시설 문화·관광시설 확충
전통문화 문화유산 관리 체계 강화
스포츠 체육인 복지 강화 및 스포츠 산업 육성
문화교류 남북문화교류 확대 및 세계문화 다양성 증진
관광 관광을 통한 국민 행복, 관광복지 실현

 

일단 과거의 후보들에 비해 전 영역에 걸친 상당히 체계적인 문화공약을 내세웠던 점은 긍정적 측면이다. 반면에 공약을 문화부 업무체계에 맞추어 내놓다 보니 거의 새로운 내용이 없는, 기존에도 시행하고 있는 정책에 그럴듯한 워딩만 얹혀놓은 듯한 공약도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박근혜 후보가 강조했던 국가 주도 복지 확대에 방향이 맞춰져 있는 것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우선 눈에 띄는 공약은 문화재정의 2% 확대였다. 정부 재정 대비 문화재정 비율이 2012년 기준 1,14%(37천억)으로 OECDOECD 국가 평균인 1.9%에 크게 못 미친다고 주장하며 문화재정을 2017년까지 거의 2배 수준인 2%까지 대폭 확대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는 15년 전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문화재정 1% 달성을 내세워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을 다분히 의식한 공약이기도 했다. 또한 문화기본법, 지역문화진흥법 등 오랫동안 문화부 안팎에서 논의되었지만 언론 정책 관련 논의로 인해 국회가 공전되면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던 문화정책 기반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내용도 눈에 띈다.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강하게 추진했던 문화도시와 관련된 정책도 담겨 있었고 예술인 창작안전망을 구축하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그러나 집권에 성공한 박근혜 정부에서는 소위 초이노믹스라고 불렸던 최경환 부총리 중심의 경제 정책, 즉 부동산시장 활성화에 집중된 경기부양책을 쓰면서 문화재정을 늘리기는커녕 문화부의 이런저런 정책사업들을 없애거나 통폐합시켜버리는, 자신들의 공약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것은 비단 문화재정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문화융성위원회를 만들어 외형적 겉치장에 치중하는 문화정책을 폈고 이명박 정부 시절의 “문화권력균형화전략”을 확대한 대규모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예술인에 대한 정치적 이유에서의 지원 배제를 자행하는 등 자신들이 내세운 공약과 별 상관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결국 탄핵되는 최악의 파국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후보, 성과위주 속도전 정책 경향

 

한편 이에 맞선 문재인 후보의 2012년 당시 문화정책공약은 다음과 같았다. “사람이 먼저인 대한민국이라는 구호 아래 만들어진 당시의 공약에서 문화에 관련된 내용은 10대 비전 중 2가지인 “비전 3. 국민 모두가 행복한 복지국가와 성평등사회와 “비전 8. 혁신경제로 신성장동력 확충, 과학기술·문화강국 실현에 나뉘어 담겨있었다.

 

 

 

 

비전3.
복지국가와 성평등사회
3-15 국민의 문화향유권 확대 문화기본법 제정
작은 도서관중심의 교육문화공동체 육성
사회취약계층의 문화복지 기본권 확장
지역문화진흥정책 확대
생활체육 시설 확충과 스포츠 클럽 육성
대체휴일제와 휴가분산제 도입
문화·예술교육과 문화힐링프로그램 확대
초등학교 체육전담교사 배치
3-16 문화·예술·체육인 복지 확대 예술인 복지안전망 구축
문화예술인 창작 공간 지원
스포츠기본법 제정과 체육인 복지제도 확대
비전8.
과학기술·문화강국 실현
8-8 문화콘텐츠 창조산업 육성 콘텐츠산업 지원체계 확립
문화콘텐츠 창작 환경 조성
창조산업 일자리창출, 창조인력 고용지원제도
문화콘텐츠 공정거래 환경구축
창조적 융합기술로서의 문화콘텐츠 R&D 확대
문화콘텐츠 다양성 기반 형성
8-9 한류가 열어가는 세계문화강국 한류 진흥을 위한 인프라 구축
문화 소프트파워가 강한 나라
한류콘텐츠 해외지적재산권 보호 지원
문화유산 산업 인프라 확대

 

 

비전 3에 담긴 내용이 주로 문화 향유를 통한 복지 확대와 문화인력에 대한 복지 확대라는 2가지 과제에 집중했다면 비전 8은 성장세가 뚜렷했던 문화산업 경쟁력을 중심으로 경제적 성과를 올리겠다는 내용에 집중되어 있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문화분야와 다른 영역의 관계성을 염두에 둔 공약이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박근혜 후보의 공약과 대동소이하게 문화를 도구로 보는, 기능적 시각이 뚜렷이 보이며 민간 참여나 자율, 협치를 통한 자연스러운 성장보다는 관료 주도의 성과주의 속도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다분한 정책 지향이 발견된다.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 시절 초창기의 문화정책보다도 퇴보한 시각이 발견된다.

 

 

이정희 후보, 무색무취는 벗어났지만

 

진보정당은 1990년대부터 꾸준히 대통령 후보를 내세웠지만 뚜렷하고 세부적인 문화공약을 제시한 적이 없었는데 18대 대선 당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우리의 꿈 : 문화예술이 꽃피는 사회라는 타이틀로 5가지 공약을 제시했다.

 

1. 문화사회를 향한 문화의 위상 강화 문화기본법 제정
문화환경 영향평가 제도 도입
문화예산 3% 확보
2. 누구나 누리는 문화예술 기본권익 공교육을 통한 문화예술교육
누구나 참여하는 문화예술 동호회
누구나 참여하는 생활체육 동호회
3. 지역·계층 간 문화예술 불균형 해소 문화예술 향유 소외 해소
지역마다 작은 문화예술 공간 만들기
지역의 고유한 문화 찾기
4. 예술인 창작 활동지원과 권리 보호 문화예술인 창작 지원을 위한 실질적인 실업급여제도 도입
전국에 예술가들의 스튜디오 만들기
5. 민족문화예술 발전과 문화다양성 실현 문화뉴딜로 민족문화예술 발전
외국 소재 문화유산 환수
남북 민족문화예술 교류의 확대심화
다문화 인정을 통한 문화다양성 실현

 

이정희 후보의 공약은 실현 가능성이 부족한 측면(문화예산 3%와 같은)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문화환경 영향평가제도 도입과 같이 문화정책 내부에서 꾸준히 논의되었던 정책요구를 먼저 수용하는 등 나름대로 발 빠른 모습을 보였다. 문화환경 영향평가제도는 박근혜 정부가 문화기본법을 만들면서 문화영향평가제도로 실제 제도화되었다.. 창작자 지원을 위한 실업급여제도와 같은 내용도 현재까지 이어지는 예술인복지제도와 관련된 주요한 이슈이기도 하며 문화뉴딜과 같이 시간을 초월하여 미래를 내다본 듯한 공약도 있었다. 다소 낭만적 민족주의 성향이 지나치게 두드러지고 있긴 하지만 앞선 두 주요 정당 후보의 공약보다 표면적 형식을 제외하고는 크게 떨어진다고 보기 힘들며 오히려 자신들의 정치적 색채를 나름대로 담아보려고 했던 흔적이 보인다는 점에서는 무색무취를 벗어났다는 긍정적 평가도 가능하다.

 

 

성찰과 반성 없는 덮어쓰기 문화공약

 

18대 대선 문화공약을 다시 복기하다 보면 후보와 정당에 따른 구성체계의 차이는 있지만 문화공약의 내용 하나하나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심지어 두 주요 정당 후보뿐만 아니라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공약마저도 약간의 디테일을 빼면 비슷하다. 내용이나 개념, 사용하는 단어들이 거의 다 비슷하다. 사실 그 앞선 17대 대선부터 기존의 문화정책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나 반성이 없이 계속 덮어쓰기로 문화공약이 만들어지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문화정책담론장의 주도권은 문화부 전문관료들이 확실히 틀어쥐고 있으며 각 정당과 민간이 이를 따라가며 답습하는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런 모습은 2017년에 급박하게 치러진 제19대 대선에서도 또 한 번, 매우 낮은 수준의 하위 호환으로 반복되었기 때문에 별도의 복기는 생략하겠다. 대신 다음 장에서 왜 대선 문화공약이 답습과 반복의 장이 되었는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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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신규.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겸임교수.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문화예술분야에서 발을 들여놓았으며 창작자, 기획자, 정책활동가 등 깊이 없이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았다. 최근에는 문화정책(제도) 연구와 문화 연구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작업들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관심 있는 분야는 국민국가 성립 과정에서의 문화적 제도화의 문제, 노동자 문화정체성에 대한 비전형적인 방향에서의 탐색 등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