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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지역성연구사례3] 지역문화정책, 지역 혐오와 착취를 절단하는 힘

CP_NET 2020. 2. 3. 09:05

#. 1

 

지역이란 무엇인가. 나는 지역에서 태어나, 지역에서 공부하고, 지역에서 창간한 비평잡지를 통해 문필 활동을 시작하여, 지금은 그 문예지를 만드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지역문화연구와 지역문화정책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든다. 아니, 정말로 그런 것이 존재할 수 있기는 한 것인지, 지역문화 현장을 톺아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력감에 휩싸이곤 한다. 오해하지 말 것은, 지역에 문화라 부를 수 있는 역사와 전통, 웅숭깊은 생활양식이 없다거나, 지역문화에 대한 정책과 연구가 부재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지역학은 융성하고 있다. 내가 살고있는 부산의 대학과 민·관 기관에는 십수 년의 연구 성과가 축적되어 있는 지역학연구센터와 사업단이 있으며, 생활문화와 예술문화 현장에서 좋은 귀감이 되는 작가, 비평가, 연구자, 현장실무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역문화연구나 지역문화정책에 대한 논의를 낙관적으로 전망하지 않는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첫째, 지역 바깥의 지역 혐오와 계몽적 인식론이 지속되고 있다. 둘째, 지역 내부의 자기 착취와 운동적 문화론이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개인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몇 가지 문제와 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 2

 

먼저, 일국(一國)적 국가체계 하에서 지역 혐오에 관한 논의이다. 지역분권과 지역문화의 역동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중앙중심주의와 지역주의에 대한 인식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지역과 지역문화를 낙후한 삶의 양식으로 보는 태도는 여전하다. 아니, 더더욱 은밀하게 전파되는 듯하다. 민족, 분단, 국경, 젠더, 세대, 계급, 환경 등의 사회적 이슈가 공동체 존속의 비판적 의제로 부각된 것과 달리, 지역적 아젠다에 대한 문제 제기와 토론은 오히려 정체된 듯하다. 근자의 뉴스에서 확인할 수 있듯, 중앙부처 공무원과 수도권 직장인의 지역 발령은 여전히 좌천 인사로 인식되고 있다. ‘지역지방으로 호명하는 레거시 미디어의 보도 태도 또한 서울중심주의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地方)’이라는 명명방식에는 이미 이항대립적인 사고 격자(중심/주변)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역은 그 어느 곳도 안정적인 삶의 자리가 될 수 없고, 머나먼 유배의 장소로 각인될 따름이다. 지역은 혐오의 대상으로 일상화되어 있다. 그러니 지역에 대한 혐오는 선심성 정책개발과 예산지원으로는 극복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불편한 사례를 언급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얼마 전 귀한 저녁모임 자리에 초대받았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 시인의 근작시집 출간기념회였다. 이런 자리는 정말 피하고 싶어서 거의 참여하지 않지만, 지역문학 장에서 창작 활동을 하고 인간적으로 교류하다보면 도저히 거절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집으로 돌아올 때는 마음이 상했다. 시집 발간을 축하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온 출판사 발행인의 언급 때문이다. 내용인 즉, 본인이 발행하는 시전문 잡지에는 ‘A급 시인의 작품만 수록한다는 것이다. 악의가 있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 평론가, 잡지 발행인에게 문학매거진의 경영혁신 사례를 들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계몽적 수사에는 지역문화를 후진적인 상징자원으로 인식하고 판별하는 정치적 무의식이 깔려있기 마련이다. 지역 혐오인 셈이다. 시인에도 A, B, C, 혹은 1, 2, 3군이 있는가. 메이저 문예지가 담지 못하는 다양한 시적 목소리를 전하겠다며 잡지를 만든다는 분의 마인드가 왜 저 모양일까? 아직도 중앙문단’, ‘지방문단운운하고 을 따지며, 부산의 낙후한 문화를 지도하고 싶은 것일까.

 

얌전하게 앉아 끝까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 분한테 나는 몇 급평론가일까?”라고 상상해 보니 끔찍한 마음이 들었다. 바로 따져 물었어야 하는데, 새해에는 문화판에서 싸움질 좀 그만하자는 생각으로 눌렀다. 작가 선배들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저분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는 것일까. 먼저 일어나겠다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길, 지역에 대한 퇴행적 인식론을 다시 목격한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 3

 

다음으로, 지역의 운동적 문화론이다. 지역 혐오는 곧장 지역 내부의 문화적 커뮤니티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지역문화정책을 검토할 때는 지역 내부의 문화론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지역문화와 항상 단짝을 이루는 키워드가 있으니, 바로 운동()’이다. 이는 지역문화를 운동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으로, 지역사회의 구성원 스스로 지역의 문화적 인적자원을 착취하는 상황을 발생시킨다.

 

건강하고 비판적인 지역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지역문화의 실천적 역동성을 확보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문제적인 것은, 지역문화운동이 현실적 조건 때문에 종종 자기희생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삼십 대 초중반에 지역문단에 나가 실무자로 일하며 느낀 것은, 지역문화계의 창작자, 기획자, 실무자가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적인 인연으로 따뜻한 후의를 베푸는 분들이 없지 않지만, 비제도적이고 반정책적인 문화운동이 지속성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지역을 문화의 불모지라며 성토하는 이들일수록 지역의 인적 구성원에 대한 착취는 더욱 심하다는 점이다.

 

멀리 갈 것도 없고 남 욕할 것도 없다. 바로, 내 이야기이다. 아프고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솔직하게 고백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십 년째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작년부터 편집주간을 맡고있는 부산의 문예지 󰡔오늘의 문예비평󰡕도 마찬가지이다. 󰡔오늘의 문예비평󰡕1991년에 창간하여 한국문학비평과 지역문화운동의 한 획을 그은 비평전문 계간지이다. 문화적 인프라와 인적 네트워크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도, 편집진 세대 교체를 통해 현재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통권 115호를 발간하고 올해로 2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지역/비평 매거진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운동을 하고 있다.

 

모기업이나 출판사가 없는 상황에서 잡지를 내고 있다 보니, 재정 상황이 말이 아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우수문예지 지원 사업과 부산문화재단의 문학 지원 사업보조를 받고, 뜻있는 분들의 후의로 힘겹게 발간비와 원고료를 감당하고 있지만, 언제 폐간이 돼도 결코 이상하지않은 상태이다.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몇 호 째 편집장 활동비를 제대로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편집장 본인은 잡지가 어려우니 받지 않겠다고 얘기하지만, 잡지 발행의 실무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면목이 없다. 비단 편집장만이 아니라, 편집위원 모두 자기 시간을 쪼개 노동하고 있으며, 지역 매거진의 공적 가치와 역사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우리는 비평가일까, 활동가일까? 자기 착취에 가까운 출판/비평 노동이 지역문화를 위한 숭고한 운동으로 포장되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우리는 모두 운동착취사이에서 길항하고 견디며 버티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혼신의 힘을 다하지만, 잡지 발간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잡지는 지역의 소중한 공유가치이자 문화적 자산이다. 지역의 소중한 문화적 성과를 잘 계승하고 가꾸어가기 위해서라도, ‘운동적 착취의 악순환을 끊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 4

 

지금까지 두 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하여, 지역/문화가 혐오와 착취의 대상으로 전유되는 사례에 관해 이야기해 보았다. 굳이 마사 누스바움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혐오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특정한 삶의 방식과 존재를 공동체의 영역 속에서 식별하고 배제하는 일임을 알 수 있다. 혐오는 타자의 삶을 누추하게 만들고 파괴하는 인지적 폭력이다. 지역문화연구와 지역문화정책은 이러한 지역 혐오의 격자 구조를 기각하고 타파하는 인식 개선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또한 다음 세대의 지역문화정책은, 지역문화의 운동적 착취의 모순 고리를 끊어줄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역내 구성원 스스로도 지역문화운동의 지속가능성과 자립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지역의 소중한 문화자산과 공유가치를 함께 가꾸어나가기 위한 정책 입안이 필요하다. 지역문화와 관련한 비평과 논문을 여러 편 썼지만, 이런 질문에는 여전히 자신이 없다. 때로는, 재정적 어려움보다 더 큰 파고가 우리를 막아서기도 한다. 흔들림 없이 걸어갈 뿐이다. 그 길에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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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문학평론가. 비평전문 계간지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주간. 부산외국어대학교 한국어문화학부 교수. 평론집으로 로컬리티라는 환영󰡕(두두, 2018)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