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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지역성연구사례2] 인력, 공간, 프로그램, 네트워크, 플랫폼

CP_NET 2019. 12. 30. 22:31

올해처럼 일가족 자살, 여성연예인 자살소식이 많았던 해가 또 있었을까? 단절과 고립, 편견과 차별이 가져온 안타까운 소식은 마음이 아프다를 넘어 사회적 타살이라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공감을 가지게 된다. 에밀 뒤르켐은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라고 말한다. 결국 사회의 냉담과 무관심이 자살을 유발시킨다고 본 것이다. 한해를 보내며 자살에 대해 상기하는 것은 좀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무정한 도시의 겨울 찬바람은 내 몸 하나 바람 피할 곳조차 허락하지 않는 냉랭한 사회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며칠 남지 않은 날짜를 세어보다 문득 지난 가을에 흔하게 불리던 동백이이름이 떠오른다. 어느 드라마의 주인공 이름이 이렇듯 이웃집 친구 부르듯 불린 적이 있었을까? ‘동백이는 어느 동네 골목, 어느 시장 통에도 있는 우리이웃이 되었다.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남겨준 듯하다. 외롭게 사는, 더불어 사는, 갈등을 회복하며 사는, 다양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편견에 갇힌 여자가 저를 가둔 가타부타를 깨다 못해 박살을 내는 이야기, 그리고 그 혁명에 불을 지핀 기적 같은 한 남자의 얘기, 분명 뜨끈한 사랑 얘긴데, 진짜사람들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 된다여기에서 작가가 밝힌 것처럼 각박하다 말하는 세상에, 사람 사는 냄새가 그리웠던 사람 사는 곳에 고립되고 외로운 이웃과 함께하였던 드라마여서였을까?

 

한 뉴스매체는 2년 전 OECD 통계, 그리고 최근 조사를 인용해 한국인들은 외로운 사람들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그렇게 된다’, ‘사람들이 점점 외로워하면서 서로서로 고립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히고 있다. 살면서 갑자기 나에게 일이 생겼을 때, 아플 때, 아이를 부탁해야 할 때, 도움을 청할 곳이 몇이나 있을까? 내가 우울할 때 함께 차 한 잔 마시며 위로를 받거나 힘든 일을 나누어 줄 거 같은 사람이 결국 2년 전보다 적어졌다는 통계이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내가 노력하면 내 삶이 좀 더 나아질 거다라는 기대감이 확실히 낮아지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삶의 철학과 가치가 주는 희망과 여유가 결핍되면서 우리라는 사회적 의식과 공동체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 뉴스를 보는 내내 씁쓸하기만 하다. 동백이를 이웃집 친구처럼 부르던 나와 진짜이웃의 이름을 부르는 현실의 우리는 어디쯤 서 있을까? 내가 사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사는, 사람 사는 세상은 언제 그렇게 사라지거나 희미해진 걸까? 지역성과 다양성이 중요한 화두가 되면서 공동체의 위기와 회복은 주요 문화정책들의 가치를 관통한다. 그러나 정책이 문화생태계 현장에 발을 딛기까지 행간은 너무 멀기만 하다. 그런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의 한계는 더욱 커져만 간다.

 

 

사람들이 모이고 창의적 활동이 일어나면

 

신작로를 건너 언덕을 오르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해안마을이 있다. 처음 마을지명을 이야기하면 바닷가 마을이냐는 질문도 많다. 우리도 제주도 파란바닷가에 있을 마을의 멋진 공간을 상상하며 설레임에 찾았던 기억이 난다. 마을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그리고 한라산이 조금 가까이 올려다 보이는 중산간에 있다. 언덕을 오르다 보면 처음 만나는 작은 학교, 푸른 잔디 위를 아이들이 뛰놀고 그 운동장 바로 코앞에 아담한 마당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 하나 있다. 마을체험관이었다가 가축방역센터였다가 이제는 살림공작소가 된 이 공간이 우리가 무언가를 열심히 함께하고 있는 공간이다. 공간의 이력도 참 재미나다. 이곳은 마을 포제터였던 곳으로 (제주는 매년 음력 정월 정해일에 마을마다 제사를 지낸다) 2000년 초반 농촌 ○○○마을만들기 사업의 광풍에 해안마을도 예외 없이 판박이 간판을 걸고 마을 체험관을 운영해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단다. 결국 활동가의 부재로 임대사업으로 전환되어 가축방역센터 간판이 걸렸다. 몇 년 후 학부모들의 불만과 요구가 마을회에 전달되면서 마을체험관은 그 기능을 일부 회복할 수 있는 문패를 걸게 되었다.

 

살림공방은 문화라는 옷을 입고 상상창고soom을 만나게 되고 예술가들의 활동은 예술교육을 통한 커뮤니티와 지역의 장소성을 고민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게 된다. 토요일엔 아이와 부모가 함께 삶의 지혜를 찾아나서는 소풍공작단, 목요일엔 지역여성(엄마들)쓸모없음의 쓸모의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업사이클 활동을 한다. 화요일과 수요일엔 어르신들이 전해주는 마을이야기를 글로, 그림으로, 영상으로 기록하고 프로그램으로 풀어가는 삼촌 마실 학당을 운영한다. 그 외에도 소규모 영상 동아리나 바느질 동아리가 자발적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고 있다. 사람이 모이고 창의적 활동들이 일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의 장이 만들어진다. 해안살레 달장은 한 달에 한번 살림공작소 마당에서 두 시간 동안 반짝 열리는 마을장터이다. 소소하고 소박한 이 장터는 살림(살리다의 명사형으로 쓰임)이 일어나고 세대 간 교류가 일어나는 장이 된다. 이 작은 공간이 하나 생겨나면서 마을에는 일주일이, 한 달이, 일 년이, 다양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진다. 어르신의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제주문화를 알리는 지침서가 되고, 마을의 이야기가 있는 달력이 되고, 세대가 함께 손잡고 불러보는 노래가 된다. 문화는 그렇게 일상에서 작동하는 콘텐츠가 되고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동한다.

 

이렇게 멋진 활동이 일어나는 현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은 끊임없는 갈증과 몇 가지 쟁점을 마주하게 된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인프라의 부족과 문화적 접근에 대한 프로그램의 부재이다. 지역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질을 높여가는 과정은 인력과 공간의 확보와 프로그램 활성화라 할 수 있다. 결국 유무형의 지역 자원을 프로그램화 할 수 있는 역량은 매우 중요하다. 잘 짜인 프로그램은 사회적 문제 해결 등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지역성을 반영하고 문화여건에 맞도록 정교화 되어 지역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말하자면 지역의 정체성을 발현시키는 생활 속 다양한 활동들, 지역이 갖는 유무형 자산에 대한 자부심, 우리라는 공동체를 합의하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자연과 사람의 관계, 생활방식의 총체 혹은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함께 누리는 것들 말이다. 더 나은 삶의 지수 통계에서는 한국인 삶의 만족도가 40개국 중 30, 특히 공동체 지수는 거의 0%로 나타났다고 한다. 공동체 지수가 높게 나타나는 지역을 생각해 보면,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은 지역의 문화적 가치, 지역을 이루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더불어 개인의 욕구들이 조화롭게 균형을 유지하는 일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는 지역의 다양한 계층의 예술가, 활동가, 시민아키비스트 등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축이다. 동시에 다양한 네트워크가 일어나는 플랫폼 역시 필요하다. 끊임없이 커뮤니티의 지향점을 고민하는 예술가, 활동가들은 커뮤니티만 있는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어떤 철학을 합의하고 가치를 지향할 것인가의 문제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지역공동체에 진입한다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산재해 있다. 특히 이방인이 대부분인 예술가 또는 활동가에게 진입장벽은 더욱 높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공동체 회복을 위한 일련의 과정들은 끊임없는 질문과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매우 중요한 일임을 인지한다. 우리는 주체적 접근과 자발적 활동이 창조적 삶의 방식들을 만들어 가며, 협력과 향유의 접점에서 삶에 밀착된 문화가 형성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통의 장이 열리고 다양한 계층의 협업이 일어나는 그 과정들을 공유하는 플랫폼은 매우 중요하다.

 

세 번째 인적 인프라의 유기적인 확장이다. 언제부터인가 지역에서 활동하는 커뮤니티 아티스트들은 정책, 사업실행, 마케팅까지 요구받고 있다. 또한 다양한 계층의 소통보다는 세대가 편중되는 현상을 마주한다. 네트워크와 플랫폼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다. 지역에 대한 애정 없이 현장의 실천은 지속되지 못한다.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무한애정을 폭발시키는 예술가들은 그 호기심과 재미가 철학과 맞닿으면 두려움 없이 달린다. 그 과정 속에서 재미가 의미가 되고 그 의미들이 가치로운 일이 되어 갈 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그 예술가들이 하나 둘 현장을 떠나고 있다. 소위 예술이 도구화 되어가는 과정과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자괴감에 상처 입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결국 정책의 실효성은 인적 자원의 경험과 역량을 키워가고 지역 아카이빙을 토대로 정책이 개발되고 삶에 밀착된 현실적 매뉴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 과정이 개인의 욕구와 마을의 이슈가 만나는 프로그램을 통해 갈등과 혐오에서 오는 불안을 협력과 다양성으로 수용해 가는 안전한 공동체를 기대하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문화의 거점으로서 공간의 확보와 정책에 대한 다양한 내외부 이해관계자들과의 거버넌스의 필요성이다. 지역의 고유문화(장소를 중심으로 역사와 전통이 있는)를 기반으로 한 지역공동체의 지속성과 더불어 취향, 장소, 가치 등에 의한 다양한 커뮤니티의 출현은 다양한 계층, 다양한 콘텐츠 등 질 높은 문화다양성의 확장임과 동시에 그로 인해 파생되는 갈등과 결핍을 유연하게 풀어가야 할 미션이기도 하다. 유휴공간 발굴을 통한 문화공간 거점 활용은 마을 활동주체들의 플랫폼으로 효율적 공간 운영을 유도할 수 있다. 더불어 유연하고 건강한 지역문화의 기반을 강화해 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공간이 갖는 힘은 지역공동체의 메시지를 공감하고 확장시키는 장으로서 역할하며 그 과정의 집합은 고스란히 미래세대를 위한 문화가 된다.

 

한해를 마무리 하는 12월이 오니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일이 많아졌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나로선 어색한 회의테이블에 불려가는 일이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하는 일종의 책임감 같은 그런 것이었다. 다행히 나를 불러주는 누군가의 배려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함이라 생각했다.

 

삶의 가치 지향적 문화정책이 필요한 시기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다양한 정책들의 홍수 속에서 저마다 갖는 고유한 철학들의 가치를 공감하기도 전에 이미 지역을 향해 예산들은 쏟아져 나온다. 도시재생 뉴딜사업, 문화도시, 문화적 도시재생, ○○마을 만들기 등 숨이 찰 만큼 많은 문화정책들이 나름의 명분을 장착하고서 말이다. 지역마다 예산을 잘 쓸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주체들은 지역 문화생태계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변화와 흐름을 나름 분석한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지역민의 이해와 욕구는 다양해지고 세대의 차이가 가져오는 소통의 부재는 공동체 회복에 대한 갈증을 키운다. 자치와 분권이 강조되는 이유이며 더 이상 탑다운 방식의 문화정책이 유기적인 지역 문화생태계를 견인할 수 없다는 한계를 드러내는 지점이다. 실패를 잘 드러내고 규정하는 일 또한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의 정책이 작동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윈도우 기능의 부작용으로 인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른 방식, 새로운 지역문화의 성찰적 대안,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그것이 공간이든 사람이든 관계의 회복을 이끌어 낼 무엇인가를 기대해 본다.

 

에드워드 핼릿카는 역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 적으로든 자신의 시대적 위치를 반영한다고 했다. 검푸른 하늘가득 박혀 있는 별들의 반짝임을 모아오듯 골목을 향하는 발걸음 한발 한발이 그러하다.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삶의 태도를 변화시켜가는 과정 한가운데 언제나 예술가, 혹은 활동가들의 땀방울은 송글댄다. 결국 지역성은 지역의 문화생태계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지역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터무늬를 만들어 가는 개개인의 욕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종종 모두의 삶을 위한 문화 그리고 다양한 성찰의 예술을 말한다. 예술교육을 기반으로 커뮤니티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나는 예술이 삶에 조금 더 솔직하게 다가서고 설레임으로 만나지고 즐거운 기억의 여정으로 함께하고 싶다. 예술이 삶속에서 감수성을 깨우고 자유로운 상상을 함께하는 시간들이 때론 느리고, 또는 반드시 성공한다고 장담할 수도 없지만 너와 나의 온도를 알아가고, 서로의 속도를 맞춰가는 일상이 그런 감각을 품고 사는 오늘이 여러 날이 되어지길 간절히 바래보기도 한다. 나의 손짓에 너의 몸짓에 우리의 소리에 서로 귀 기울이고 서로의 가치를 알아가는,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삶 말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인 한 시람이 죽는다는 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더 이상 이웃마을만의 일이 아니길 바란다. 마을 골목 어느 평상에 앉아 동네예술가의 감수성을 만나고 싶다. 윗집 삼촌의 목공예 기술을 만나고, 옆집 이모의 손바느질에 매듭 기술을 만나고, 골목 안 어르신의 시조 한 자락을 만나고, 마을이 온통 배움의 놀이로 가득한 그런 만남 말이다. 만나고 만나서 서로에게 선배가 되는 삶의 학교가 되는 지역의 풍경, 그런 것을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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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커뮤니티아티스트. 탐라미술인협회. 제주여민회. 상상창고soom 대표. 80년대 끝물을 먹고 모호한 정체성에 헤매인 수많은 날들을 미술모임 우리’ ‘일끼‘ ’청년미술‘ ’숨 조형연구소등 예술가들과 함께 밤새 끝도 없는 토론과 작업을 통해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고 실천한다. 현장에서 피멍든 십 여년의 세월을 안고 2013년 제주로 자발적 유배를 떠나온다. 여행자의 삶을 갈망했으나 어느새 살아난 세포들이 마을의 한 공간에 인도하사 예술로 일상을 넘나드는 작업에 몰입하게 한다. 결국 조각가에서 커뮤니티아티스트라는 명함으로 다시금 새겨 넣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