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이슈: 지역성연구사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일을 알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역을 이해하고

CP_NET 2019. 12. 2. 15:06

광진구에서 눈을 뜨고 광진구로 출퇴근해 광진구에서 잠드는 삶을 살아 간지 어언 4. 나의 동네이자 전투지이기도 한 광진구를 지역문화라는 사업으로 바라본지는 3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한 ‘2017 지역문화 진흥사업자치구 지원사업’(현재는 지역문화 네트워크 지원사업N개의 서울)을 통해 처음으로 지역 들여다보기를 시작했다. 서울문화재단에서는 다양한 지역 주체의 참여로 만드는 자치구별 문화 자치와 문화적 정체성 형성 지원이라는 사업 목적 아래 지역문화 네트워크 및 지역문화 협의체 구축을 중점으로 하는 자치구별 사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나는 이 지원사업의 광진문화재단 담당자로서 2017년부터 나의 지역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년이라는 시간동안 내가 지역을 발견하고 이해한 방법은 단 하나,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면 지역을 발견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지역에 대해 이해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지역을 발견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에 들어가 지역을 구성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자세히 보고, 오래 만나 관계를 맺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2017년부터 지역 곳곳을 무턱대고 누비기 시작했다. 골목골목 돌아다니며 궁금한 곳이 있으면 문을 열고 들어갔고,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리 외향적인 성격이어도 누군가의 공간에 불쑥 들어가 말을 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곳이 모두에게 열려있는 문화 공간이어도 말이다. 처음엔 어색한 마음에 회사를 방패로 삼아보고자 재단에서 나왔다며 대뜸 명함을 먼저 내밀기도 했고, 무턱대고 지역문화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하지만, 재단이라는 이유만으로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나중에 들어보니 공공기관과 일을 한 후, 큰 손해를 본 적이 있어 기관이라면 무조건 거절한다고) 내 능력 밖의 요구사항을 들을 때도 많았다. 또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지역문화 협의체’,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행정 용어 때문에 대화의 물음표가 가득하기도 했다.

 

이대로는 친해지기는커녕 아무도 못 만나겠다 싶어 나의 정체를 숨기고(?) 찾아가기 시작했다. 공간이 궁금해 구경 왔거나 물건을 사러 온 손님 혹은 커피 마시러 온 동네 사람처럼 말이다. 사업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사는 이야기, 옆집 이야기, 동네 이야기, 단골손님 이야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활동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는 대체 뭐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역으로 받기도 했다.

 

2017년 뜨거운 여름, 광진구의 지역문화를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광진구의 지역문화는 무엇일가? 답을 찾기 위해 70여 곳의 공간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서슴없이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를 나눴고, 고민을 공유하며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해가며, 때로는 위로해주며 자연스레 일상을 알아갔다. (2017년도 지역문화 진흥사업 문턱 없는 회의 인터뷰북’(중 발췌)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지역에 새로 생기는 공간에 대한 소식을 친한 책방 사장님을 통해 알게 되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에 대한 정보를 카페 사장님을 통해 소개받게 되었다. 또 평소 출퇴근길 무심코 지나쳤던 공간들이 새로 보이기 시작했고, 2~30년이 훌쩍 넘은 지역의 터줏대감 공간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지역에서 이런 활동을 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요!’라고 누군가 말하면 자연스레 재단 그리고 사업을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사람들을 통해 골목 그리고 동네를 더 깊게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을 통해 지역을 발견하다보니 지역을 이해하기도 쉬워졌다. “지역 주민들은 이 동네에서 주로 활동하구나. 이 동네에 가죽 공방이 모여든 이유가 다 있었구나. 이 동네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가 공방 대표님 때문이었구나.” 사람과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지역을 알아가게 되었다.

 

작년부터는 발견에서 한층 더 나아가 지역 사람들과 함께 지역 예술가 작품과 지역의 문화 공간을 소개하는 월간지 나루사이를 만들기도 하고, 매달 두 번째/네 번째 목요일 함께 모여 서로의 관심사와 취향을 공유하는 지역문화 수다 살롱인 작당모의 프로젝트도 함께 하고 있다. 특히, 작당모의 프로젝트는 올해부터 참여자가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지역 구성원이 지역 문화와 동네 분위기를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다.

 

사전적 풀이로 지역성은 그 지역의 특별한 성격을 의미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지역성의 가장 큰 키워드는 그 지역의 특별한 성격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유인즉슨,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을 통해 그 지역의 특별한 성격을 읽었고, 지역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지역문화 사업을 통해 광진구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2017. 이렇게 사람을 만나는 것이 맞는지, 지역을 이렇게 발견하고 이해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하던 시기에 동네 친구(행정 용어로는 지역문화 협의체)에게 이런 포스트잇을 받은 적이 있다.

 

Q. 지역 문화 사업에 바라는 점은? / A. 인내

 

나에게 지역을 발견하고, 지역을 이해하는 과정은 마치 나태주 시인의 풀꽃과도 같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풀꽃처럼, 지역도 그랬다. 인내심을 가지고 자세히 오래 바라보자 내 지역이 새롭게 보이고,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지역에서 또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그들을 통해 지역의 어떤 모습을 새로 볼 수 있을까. 주변에서는 종종 이제 이 지역이라면 누구보다 잘 아시겠네요.”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모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역 속에서, 지역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나의 과정은 언제나 현재 진행 중일 것이다.

 

 

-------

문지은

 

대학에서 홍보광고학을 전공한 후 미술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못해 ‘5번의 퇴사, 4번의 이직을 감행했다. 격동의 시기를 겪은 후, 시각디자인학과 학생으로 두 번의 대학시절을 보냈으며, 2016년 광진문화재단 입사를 시작으로 느지막이 문화기획자의 삶을 살고 있고 있다. 현재는 문화사업팀에서 지역문화, 청년예술단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지역과 예술가는 어떻게 호흡 할 수 있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