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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정책의 난제들2 “협치”] 예술기구의 협치는 어떻게 가능할까

CP_NET 2019. 10. 1. 18:35

 

 

 

거버넌스니 협치니 하는 말들이 유행이다. 기존 조직의 운영방식을 개선해야 하는 과제를 말하는 과정에서 빼놓지 않고 나오는 개념이기도 하다. 거버넌스는 기존의 중앙집중화된 거번먼트의 구조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인 만큼 조직 변화의 기본적인 방향성을 담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정작 거버넌스, 협치가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과 토론 이전에 거버넌스나 협치 자체가 마치 목적인 것처럼 다뤄지는 경우가 보인다. 하지만 이런 이해방식은 애당초 왜 거버넌스, 협치니가 필요해졌는지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를테면 빠르고 신속한 KTX를 타지 않고 무궁화를 타기로 했다면 단순히 무궁화를 타기 위해서만 노력할 것이 아니라 왜 KTX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무궁화를 타기로 했는지 고민해야 한다. 적어도 KTX에서는 사라진 식당칸을 이용하기 위해서라는 이유 같은 것 말이다.

 

 

협력인가 협치인가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가 말하는 협치라는 것을 보면 이런 한계가 명확하다. 문화부 보도자료 중에서 협치라는 단어가 사용된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해 3월에 <지역문화진흥법> 상의 지역문화협력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자율과 분권의 지역문화 정책을 위한 민관 협치 본격화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또한 새정부의 예술정책 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새 예술정책>을 발표하면서 향후 5년간의 예술 정책 기본방향으로 지역 분권 및 수평적 협치 체계로 전환을 들었다. 이 때 협치라는 것은 협력과 유사한 단어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그러니까 지역문화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위해 협력을 강화한다는 의미 외에 협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를 알 길이 없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기본적으로 거버넌스라는 것이 기존의 거번먼트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이를 전환한다는 관점이 없어서다. 애초 무엇을 전환한다는 방향성이 없는데 거버넌스라는 개념이 실질적으로 만들어질리 만무하다.

 

그런 점에서 블랙리스트 이후 정부 차원에서 운영한 블랙리스트진상조사위원회5개의 문화기구에 대한 조직개편안을 맨 앞에 내세운 것을 다시 환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가예술위원회라는 상을 통해서 현재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를 바꿔야 한다는 제안에 주목해보자. 다양한 쟁점이 존재하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단순화하면 기존의 문화부와 아르코가 가지고 있는 거번먼트의 방식이 블랙리스트의 구조적인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개별 장르체계를 중심으로 문화부의 사업부서와 개별 문화기구가 병렬적으로 계열화되어 있는 형태는 정책을 위에서 아래로흐르는데 최적화된다. 그러다 보니 블랙리스트와 같은 잘못된 정책도 아무런 저항 없이 위에서 아래로흐른다. 그래서 문화부의 예술정책과와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국가예술위원회가 예술정책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논란이 있을 순 있지만 이 제안은 정확하게 한국의 문화기구가 무엇을 위해 새로운 거버넌스의 구조로 바뀌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정부 기구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아르코라는 기구 자체 내의 작동 원리로서 지금의 사무처 중심의 구조를 현장 예술인들의 참여가 보장되는 소위원회 체계를 중심으로 개편하자는 제안은 거버넌스의 비전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  『블랙리스트 방지 주요 기관 제도개선 연구』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윈회 , 2018.

 

 

 

협치의 두 측면

 

이론적으로 보면 거버넌스는 네트워크형 조직구조라는 특징을 지니게 되는데, 이는 가치적인 측면과 실질적인 측면에서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 우선 가치적인 측면에서 보면 기존의 중앙집중형 구조에서는 중앙구조의 오류가 곧 전체 기구의 오류로 귀결된다. 그리고 구조 상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문제 해결을 위한 절차가 복잡하다. 무엇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복합적인 이해를 조정하는데 중앙집중화된 권위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게 된다. 즉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민주주의의 당사자가 효과적으로 참여하거나 개입할 수 없다. 즉 가치적인 관점에서 과거와 같이 연결하는데 드는 비용이 높을 때라면 모르겠지만 현대와 같이 초연결 시기에는 구태여 더 민주적인 조직형태를 우회할 필요가 없다.

 

이는 실질적인 측면에서의 효율성에서도 그렇다. 정책의 효율성이란 것이 기대했던 정책결과의 달성이라고 본다면 정책의 당사자가 체감하는 효용감은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런데 정책의 수립과 집행과정에서 정책 대상이 직접 참여한다면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책의 효용감은, 전문화된 관료체계에서 수립한 것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과거라면 정책 생산이라는 것 자체가 고도의 전문화된 영역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지금과 같이 개방적인 정책 환경 내에서는 정책 당사자를 배제할 경우 오히려 정책에 대한 반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의 아르코를 살펴보면 아쉬운 부분이 크다. 협치는 단순히 문화부와 아르코 간의 수평적 관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기관 간의 구조가 수평적이라 하더라도 실제 사업의 방법이나 내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협치는 집행 기구 간의 관계에 불과할 것이고 이는 오히려 새로운 거번먼트의 형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예술위원회라는 아르코의 미래 비전은 국가예술위원회라는 형식이 아니라 이를 통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실질적인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술현장의 의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기 위해 현장소통소위원회라는 기구가 설치되었지만 여전히 장르 분할의 위원회 체계와 두터운 관료구조에 의해 다룰 수 없거나 혹은 다루더라도 본질적인 접근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아르코혁신TF를 통해서 제안된 혁신과제 역시 이를 정기적으로 검토하고 점검하는 민관협치 구조가 구성되어 있지 않다. 또한 새로운 예술지원정책 및 사업을 제안하고 토론할 수 있는 구조 대신 사업설명회의 횟수만 증가되었다.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아르코라는 기구와 예술인 사이에 지원자와 수혜자라는 기본적인 구조가 깨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르코를 상상하자

 

개인적으로 이런 상황은 아르코가 협치나 거버넌스의 과제를 소홀히 여겨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지나치게 법제도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현행 <문예진흥법>의 한계로 인해 직접적인 기구 운영 구조를 바꾸기 힘들다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정책적인 기구들을 만들거나 혹은 사업을 통해서 보완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시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역별 예술의회에 준하는 거버넌스 기구를 만들고 이를 지원할 수 있는 협치 담당부서를 신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예술인 단체들이 모여서 예술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기적인 공론장도 가능하다. 왜 아르코 위원회의 안건은 사전에 공지되어 다양한 현장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수렴한 후 다뤄지지 못할까. 하다못해 일선 지방정부들도 다하는 참여예산제와 같은 수단을 예술인이라는 분명한 당사자가 존재하는 아르코에서 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협치나 거버넌스는 기본적으로 바꾼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것을 반복적으로 말하더라도 변화를 체감할 수 없다면 그건 거번먼트가 내놓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블랙리스트 이후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볼 때 문화부라는 두터운 관료기구가 스스로 이런 변화를 하리라 기대하긴 힘들다. 하지만 아르코는 다르다. 적어도 민간위원이 주도하는 구조가 존재하는 한 법제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시도가 가능하고 또 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협치 거버넌스로서 아르코라는 변화를 시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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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블랙리스트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혁신을 위한 TF 위원, 1기 현장소통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문화/예술 재정과 예술활동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