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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지역성연구사례] 사소한 것들을 다시 발견하기

CP_NET 2019. 12. 2. 15:13

 

예술수색단은 은평구 수색동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모임이라는 의미와 예술을 수색하다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은평구 수색동이라는 지역에서 예술수색단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지역성 그리고 문화·예술이라는 장치로 지역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화·예술 활동들을 기획하고 실천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20년 동안 재개발 진행 중인 수색동의 옛 모습은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정이 넘치는 마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주민이 이주하게 되었고, 남아있는 주민도 재개발 찬성과 반대로 갈등하는 정서적 기능은 파괴된 마을이 되었다. 쉽게 버려지는 쓰레기들, 점점 늘어나는 빈 집과 빈 상점들, 지자체나 지역주민들의 재정비 투자가 지연되면서 환경적 기능도 파괴되었다. 이 시대의 지역에서 살아가면서 생기는 사회적 관계와 문제들(정서적 마을기능의 파괴, 환경적 마을기능의 파괴)을 재개발의 진행과정에서 짧지만 굵게 몸소 체험하면서 문화·예술의 과점으로 다양한 대안들을 찾아보는 시도들을 기획하였다. 다양한 지역의 이야기들을 문화·예술기획으로 상상해보고, 실행해보고, 깨져보고, 다시 상상해보는 시간들을 가졌으며, 이러한 고민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지역의 특성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으로 확장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지역에서 문화기획활동을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지역과 만나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11년도 당시 회사 사무실이 인근 상암동이었고, 주변보다 낮은 전세 임대료 때문에 은평구 수색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실제로 어디 사냐고 물어보면 나도 모르게 상암동 근처라고 대답했던 것이 생각난다. 앞에 언급했듯이 수색동은 쉽게 버려진 쓰레기들로 지저분하고, 빈 집과 빈 점포들도 많아 저녁에는 스산한 마을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무관심하였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던 중 2014년도에 친한 후배가 우리집 바로 옆 건물에서 화가작업실을 운영하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잘하는 예술(미술)활동을 마을에서 시작해보자는 의견을 모으게 되었고 그것이 예술수색단 활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활동 초기에는 우리가 잘하는 문화·예술 활동을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펼쳐보자는 욕구가 컸다. 같이 활동하였던 후배들은 작업실에서 자신의 작업만 하던 예술활동을 마을이라는 외부공간에서 확장하고 싶었던 욕구가 있었으며 예술수색단 리더였던 나는 지속적인 창작활동을 위한 수익구조에 대한 고민과 그 발판을 위해서는 내가 살고 있는 마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해졌다. 그렇게 시작했던 예술수색단의 문화기획과 실행들은 스스로의 활동에 대한 정체성을 확인하고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활동임을 자각하고 지금까지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활동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예술수색단의 비전은 문화·예술을 통한 삶의 재발견이다. 그리고 지역 예술가와 지역 주민들이 함께 함께 만족할 수 있는 활동을 추구하며, 문화·예술 창작활동의 과정과 결과가 지역과 지역주민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이 예술수색단의 미션이다. 사소한 것들을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문화·예술의 본질 중 하나라 생각한다.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서로 교류하면서 주변에 능동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을 예술수색단의 기본 방향으로 삼았는데, 다양한 문화·예술기획을 통해 실제로 경험하였다.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사소한 것들을 문화·예술의 시선으로 소중하게 다루고 의미를 수색해 보았던 몇 가지 사례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예술수색단의 다양한 활동이 있었지만 물빛마을스케치여행을 꼭 이야기 하고 싶다. 처음 기획은 지역예술가들의 활동(전시, 교육)을 소개하여 지속적인 창작활동을 지원하면서 더불어 지역의 오래된 역사이야기를 함께 소개하는 프로젝트였다. 스케치여행은 지역예술가들이 잘 하는 것 중에 하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획하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사라져가는 마을을 기록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발전하게 되었다. 실제로 마을여행에 600여명 의 참가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시선으로 그려진 그림들과 사진들을 기부 받아 사라져버린 마을을 기억하기 위한 사진·그림책을 기획하여, 현재 제작 중에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예는 실제로 수일시장에서 사용했던 공간이다. 천장의 누수로 인해 공사를 하게 되면 많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수년 간 방치 되고 비워져 있던 공간을 문화적 지역공간으로 활용한 예이다. 이곳을 세미나, 전시, 교육, 작업 공간 등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물관리인과 협의하여 가득 차 있던 쓰레기들을 치우고 문화·예술 공간으로 점유하고 임대중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빈 점포에 예술가들을 초대하고 전시를 진행하면서 임대중임을 홍보하는 프로젝트였다. 비어있는 유휴공간에 전시가 필요한 예술가와 임대홍보가 필요한 건물주, 그리고 지역주민에게는 문화향유의 기회를 마련하는 13조의 프로젝트였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무의미에서 의미를 찾아보고, 그 안에서 서로 만족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해 보는 예술수색단의 대표적인 문화·예술기획 중 하나였다.

 

예술수색단의 활동을 응원하는 지역 주민들도 있었지만 주변의 반응은 마냥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굳이 이런 마을에서 쓸데없는 노력을 하느냐는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도 들었고, 거의 쓰러져가는 마을의 골목길에서 마치 심폐소생술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워낙 토박이 주민이 많은 지역이고, 낯선 청년들이 지역에서 활동 하는 것에 대해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민들도 많았다. 젊은 사람들이 일을 해야지 쓸데없는 짓을 한다든가 쓸데없는 예산 낭비한다면서 대놓고 욕을 하는 주민도 있었다. 낯선 청년들의 유입에 거부감을 느끼고 지역에서의 문화·예술활동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부정적 반응도 컸다. 지역예산이 분산된다고 생각하는 지역주민의 냉소적인 반응, 끊임없이 관공서에 민원제기 하기 등은 지역활동의 외부적인 걸림돌이었다. 내부적인 걸림돌도 있었는데 현실적으로 운영하는데 있어서 힘들었던 부분이다. 지속적인 활동을 위한 수익창출에 대한 고민이라던가 지원사업에 의존도가 높아 늘어나는 행정서류와 정산에 대한 에너지 낭비 등이다. 이것은 지역을 이해하고 만나는 과정에서의 걸림돌뿐만 아니라 문화예술단체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전반적인 고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은평구 수색동은 약 10년 동안 나의 삶의 터전이자 주된 활동 공간이었기에 소중하다. 내가 선택한 삶의 공간인 은평구 수색동은 내 삶의 주체로서 문화예술의 방법으로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예술수색단을 시작할 수 있었던 마을이었고 그 과정은 험난했지만 즐거움을 더 많이 선물 해준 마을이기 때문이다

 

2018년 거주하던 빌라는 재개발 진행으로 인해 이주통보를 받고 고양시로 이사하게 되었고, 20195, 사무실로 쓰던 임대공간도 재개발 진행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지금은 고양시에서 예술수색단의 활동을 다시 펼쳐볼 수 있는 기회와 계기가 생기면서 지속적으로 문화·예술의 활동들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수색단 활동의 근본지였던 은평구 수색동이 계속 눈에 밟힌다. 지금은 내가 살았던 수색동 집도, 열심히 활동했던 공간들도 폐허가 되어 이제 새로운 아파트가 올라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 동안 수색동에서 활동 했던 모든 것들이 재개발로 인해 사라지면서의 아쉬움이 없는지 간혹 물어 보는 지인들이 있다.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현실로 이루어지고 나니 마치 일장춘몽 같은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사실 아쉬운 부분이 있으나, 그렇다고 안타깝다고 느끼거나 후회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은평구 수색동에서 예술수색단의 활동이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거부하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태도를 경험함으로써 자유로움을 선물 받았다. 이 경험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지역에서 문화·예술로 나와 주변의 삶을 재발견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2020년은 예술수색단이 다시 한번 도약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는 희망과 확신을 가지고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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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식

1974년 생. 서울 출생. 서양화 전공. 세상을 캔버스 삼아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은는 문화·예술기획자와 쇼셜디자이너,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은 예술가이다. 서울 은평구 수색동 재개발지역에서 문화·예술을 통한 삶의 재발견이라는 비전으로 청년 예술가모임 예술수색단활동을 시작하였고, 현재는 문화·예술기획과 공공디자인 분야가 확장 된 조직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에 있다. 문화·예술 분야를 사회적경제와 접목하는 다양한 실험을 도시재생 지역과 문화도시 추진 지역 등에서 지역주민과 만나면서 진행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