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있다. 그 ‘마을’에는 주민이 살지 않고, 활동가들만 산다. 해를 이어가는 삶은 없고, 단발의 사업만 있다. 함께 어울려 이루는 관계는 없고, 끝없는 이합집산만 있다. ‘마을’은 세밑에 백서로 남고 어디에나 있다.” 며칠 전, 함께 일하는 이에게 글을 한 토막 보냈다. 다시 연말이 되고, 마을에서 해온 올해 일들을 갈무리하는 길에 든 소회였다.
지역에 천착하겠다고 살고 있는 마을로 사무실을 옮겼다. 그리고 ‘마을’에서 다시 3년 여를 보냈다.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축제나 행사의 민간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문화예술, 마을자치, 청년, 도시재생 등의 분야에서 일을 해오고 있다. 일을 지역과 만나는 지점이라 생각하고, 내내 일을 하고 있다.
마을에서의 일들은 태반이 관이나 중간지원조직에서 만들어지고, ‘선수(활동가)’들에 의해 진행된다. 행정은 사업을 위해 ‘선수’를 필요로 하고, 민간은 생계를 위해 사업을 필요로 한다. 이 둘의 필요에 의해 ‘마을’이 만들어진다. 때문에 사업은 삶에 가닿지 못하고, 네트워크는 동업자들의 관계망에 지나지 않게 된다. 사람도 일도 그것의 의미도 마을 아닌 ‘마을’에 갇히게 된다. ‘고인 물’이 된 ‘마을’에서 사람의 성장, 영역의 확장, 의미나 가치의 확산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 나물에 그 밥”이 된 ‘마을’에서 문화는 더 이상 매개가 되지 못하고, 사업에 그치게 된다.
칸막이는 행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을’ 안에서도 영역의 구분이 엄격하다. 공동체, 문화예술, 복지, 청년, 사회적 경제, 도시재생 등의 분야가 단절되어 있다. 행정의 구분이 민간의 활동을 경계짓는다. 서로 다른 분야는 함께 일하지 않으며, 이를 현실적 한계라 여기며 아쉬워만 할 뿐이다. 서로의 영역에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마을’에서 다른 영역에 내미는 손은 거절당하고, 경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는 공격 받기 때문이다. 행정에 칸막이가 있다면, ‘마을’에는 담이 있다.
‘마을’의 기득권 또한 이미 형성되어 있다. 기득권은 대체될 뿐 해체되지 않는다. 물러난 자리를 새로 채울 따름이다. 학연과 종교 등 지역사회의 사적 네트워크는 ‘마을’의 기존 질서를 공고히 하는데 일조한다. 관계는 오로지 이해만을 매개로 하고, 기득권은 파렴치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선거는 이 같은 ‘마을’의 질서와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이벤트이다. 줄을 대고, 줄을 서는 판에서 ‘마을’은 구시대적인 프레임으로 재단된다. 수많은 억측이 난무하며 이전투구를 벌이는 가운데 결국에는 남아있던 사람이 다시 남는다.
‘마을’에서 청년은 아직 자기세력화에 이르지 못했다. 지역사회 내부의 위계와 견제가 성장의 족쇄로 작용한다. ‘마을’의 필요에 따라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소모될 뿐, 아직 송곳 꽂을 제 땅을 갖지 못했다. 뜻을 품고 마을을 향했던 청년들이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이유다. ‘마을’은 여전히 “노유스존(No Youth Zone)”이다.
마을로 향했던 의지들이 ‘마을’에 난파하였다. 정책이 기대했던, 사회적인 가치와 의미를 만들어가는 마을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따금 현장에서 확인하는, 요행 같은 가능성에 만족하며, 무탈한 것에 안위하여서는 안 된다. 실낱같은 가능성을 보았다면 그것을 동아줄로 꼬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업의 범위로서 ‘마을’을 벗어나, 삶의 터전으로서 주민이 사는 마을을 현장으로 삼아야 한다. 영역의 경계를 오가며, 담을 너머서는 호의적 연대,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이상한 ‘마을’의 안일한 미몽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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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원
공공문화개발센터 유알아트 대표. 지역-문화-청년에 관심을 두고 있다. 지역에서 금천구협치회의 위원, 금천문화재단 이사, 금천청년네트워크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관계의 매개로서의 문화를 늘 염두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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