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원예술대학교 제9대 총장으로 송수근이 임명되었다. 임기는 2019년 8월 1일부터 2022년 7월 31까지 3년이다.
주어진 사실들
그는 1988년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하여 2014년 10월부터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조정실장을 담당했다. 나라가 어수선하던 2016년 12월에 제1차관까지 올랐다. 이어 조윤선 장관이 구속되자 장관직무대행 역할을 지냈고 2017년 6월에 공무원 생활을 마쳤다.
- 2019년7월30일 한국대학신문 기사 http://news.unn.net
- 인터넷 자료 https://librewiki.net/wiki/송수근
2017년 5월, 새로운 정부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전임 정권에서 벌어진 국정 농단이 밝혀지면서 촛불 혁명이 일어나 당시 대통령이 탄핵되고 나서다. 현재는 당연히 여러 적폐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였고 그 죄를 묻고 있는 중이다.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특정 문화⋅예술계 인사들 명단’(소위 블랙리스트)을 작성하여 지원 대상 등에서 배제시킨 국가범죄 행위도 그 중 하나다. "정부가 자신과 다른 견해를 표현하는 문화를 억압하고 차별하는 순간 자유민주주의 길은 퇴색되고 전체주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 <김기춘, 조윤선 외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에 대한 항소심 판결문>(2018년1월23일) 이하 ‘2심판결문’)
국정농단 블랙리스트 범죄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후임 조윤선)에 의해 부당하게 지시되면서 시작되었다. 그 당시 문체부 실무 총책임부서는 기획조정실이었다. 송수근 기획조정실장은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및 지원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만들고 집행했다. 문화계를 공안통치 방식으로 검열하는 헌정질서 파괴 행위였다. 그 실행과정은 그가 주도한 ‘특정 문화예술인⋅단체 부당 지원배제 지시 이행 총괄관리 TF 부당 운영’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문화예술 417건, 영화 5건, 출판 22건 등 총 444건의 블랙리스트를 따로 작성해 특정 후보자나 문화예술인⋅단체를 부당하게 배제해 불이익을 준 것이다.
- 2017년 6월 13일 감사원 감사결과(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1661751 기사 등)
- 2019년2월27일 발간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
http://www.blacklist-free.kr/ 에서 자료를 볼 수 있다.
- 3년만(2020년1월30일)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상고심>을 끝냈다. 판결은 직권남용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또 다른 구성요건 요소인 ‘의무없는 일’의 범위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하여 일부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학생들이 먼저 나섰다
학생들 반발이 시작되었다. ‘계원예대 블랙리스트 총장 비상대책위’를 꾸려 문화연대를 포함한 문화예술계에서 빗발치던 블랙리스트 성토 목소리들을 수렴한 곳은 교수들이 아니라 학생회였다. 이미 문화연대는 2019년 8월 7일 “자신의 과오에 대한 성찰 없이 몰염치하게 문화예술계 현장으로 돌아온, 송수근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은 자진 사퇴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교수들은 뜨뜨미지근할 뿐이었다. 급기야 학생들은 직접 행동에 나섰다. 그래서 2019년 9월 2일, 송수근 총장 취임식은 학생들의 피켓 시위로 파행되었다. 국가범죄에 부역했던 자가 조금의 반성도 없이 버젓이 예술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하려던 민낯의 현장을 학생들이 온 몸으로 폭로한 것이었다.
우리가 몰랐던 것은 학생들은 이미 그들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모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새 총장 취임 전에 벌인 재학생(2500여 명 수준에서) 설문조사 결과는 1681명이 참여하여 1668명이 송수근 총장 취임 반대였다. 그들은 ‘계량적으로 정⋅치⋅적⋅일뿐인’ 계원교수들에게마저도 손을 내밀어 자신들 뜻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교수님 연대합시다” “학생들과 같이 싸워주세요” “함께 하면 쫄리지 않아요!”라고 쓴 포스트잇을 전체 교수 연구실 문에 붙여.
(사진1. 계원학생들이 교수들의 동참을 호소하며 붙였던 포스트잇)
학생들은 기자회견, 시위 및 집회, ‘예대생답게 저항하기’ 같은 각종 전시, “모든 계원인은 반대한다” “대학을 지켜야 할 투쟁을 방기하는 노동조합의 근시안적 입장을 비판한다” 등등 시의적절하게 붙이는 대자보나 성명서, 예술대학생 네트워크나 연합 종강행사 등을 통한 연대 활동과 서명 등에서 오늘까지도 당당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밝혀나가고 있다.
이들의 활동 소식은 인터넷(https://kaywonblacklistout.tumblr.com/ 등)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다.
예술대학생들의 네트위크 활동도 인스타그램 예대넷(https://www.picuki.com/tag/Artsunivnetwork)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반면 교수님들은
분명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공석이던 총장을 학교법인이 일방적으로 뽑아 앉히는 방식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총장후보 추천위원회를 도입하자는 데는 교수협의회를 통해 힘을 실은 바 있다. 그러나 교수협의회(그리고 노조 역시)는 학교법인 이사장의 전횡 가능성이 있는 추천위원회 구성 방식에 반대하며 위원 추천을 보이콧하였다. 그런 상태에서 총장 후보 지원자 소견 발표가 2019년 6월 20일에 열렸다. 송수근을 포함해 5명의 후보가 나서 학교 발전 및 대학 운영 계획을 밝히는 자리였다. 송 후보자 소견 발표문은 문화부 출신답지 않게 교육부 관료나 쓰던 내부 용어가 많아 어색했단다. 교수 참석자가 적었던 객석에서는 폰을 열어 이미 블랙리스트 담당자임을 검색 했던 차라 당연히 탈락을 예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법인은 당당하게도 송수근을 총장에 임명하였다. 파라다이스 재단인 학교법인이 가진 문화부와의 밀월 관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교수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럴 때 교수협의회는 너무 회의만 하게 된다.
결국 계원교수협의회는 2019년 9월 9일에 가서야 <현총장 “문화부 재직시 블랙리스트 작성” 관련 안건 논의>를 이사회에 부의했고 임시총회를 거쳐 늦장으로 총장사태에 대한 교수 비대위를 꾸리면서 진상 파악이 먼저라며 질의서를 법인에 공문으로 접수시키고 그 회답을 이사회 거쳐 전체 총회 안건으로 만들어 몇 차례 토론하고 그 결과에 따라 교협 입장을 담은 성명서 발표 여부를 투표에 부쳐 “너무 정치적”이라느니 하여 교협 차원의 비대위 활동을 다수결로 종료하도록 만든다(2019년 12월 2일). 그래서 ‘블랙리스트 총장 퇴진과 학교 정상화를 위한 계원예대 교수모임’이 따로 구성되어 1차 성명서를 12월 5일에 발표하게 된 것이다.
그사이 대학은 인사위원회를 열어 학생집회(2019년 10월 15일)를 방관했다며 당시 참석한 두 교수에게 징계 경고 공문을 보냈다. 이사장을 불러 총장 선임과 관련된 절차 등을 묻는 청문자리에서 “일부 동료 교수들이 물의를 일으키고 학생들을 선동하여 수업을 방해했으니 징계할 용의는 없는지”를 이사장에게 질의하는 교수도 있었다. 게시된 1차 성명서가 훼손되기도 했다. 법인 이사장은 전체 교수들에게 ‘총장 선임과정 관련 학교법인의 입장’ 메일을 보내왔다. 그 공문 마지막 문장은 “앞으로 이와 같은 행위들이 계속될 경우에는.... 명예훼손 등 법적 책임을 엄격히 물을 것임”이었다.(2019년 12월 17일)
(사진2. 훼손된 교수모임의 1차 성명서)
계원 학생들과는 현격하게 다르게 교수들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자 신임 송 총장은 입지를 굳혔다고 생각한 듯하다. 장학금을 기부한다거나(3400만원, 2019년 9월) 언론 인터뷰 등을 하면서(2019년 12월 16일 <조선일보>) 퇴임 논란에서 빠져나온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한때 강성 민주노조였던 계원 노조가 ‘총장 사퇴요구에 반대한다’는 개량주의적 입장에도 힘을 받은 듯하다. 노조는 2019년 10월 16일 도표까지 담긴 성명서를 통해, 법인 적립금과 대학평가를 통한 지원금 중단 등의 이유를 들어 송 총장 임명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사진3. 계원 노조가 게시한 성명서 2019년 10월 16일)
몇 가지 물음, 올바른 고민과 태도
이제 우리는 몇 가지 물음을 스스로에게 하며 답해야 할 차례다.
첫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란 무엇인가? 왜 문제인가? 은밀하게 혹은 공공연하게 예술을 검열하고 탄압하는 국가 장치가 발각되었을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내가 그 비민주적 검열 통제 장치가 일상화되어 있었던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라면?
둘째, 그러한 일을 자행한 자들이 적폐청산이라는 모호한 구호 아래 허술한 제도적⋅법적 틈바구니 속에서 자기 범죄행위를 세탁하며 나설 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해방 이후 우리 사회가 일제 잔재 청산과 관련해서 겪어 온 잘못을 되풀이할 것인가?
셋째, 이번 계원 블랙리스트 총장을 불러들인 더 큰 뿌리에는 교육부, 문화부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관료들 집단이 가진 네트워크가 웅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관료들의 통렬한 자기반성과 거듭남뿐만 아니라, 국가정보원 등을 포함한 권력기관 사이의 은밀한 카르텔을 밝혀내고 바로 잡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이지 않을까?
넷째, 당면한 대학의 학과 정원 감축 등 구조조정은 새로운 총장이 과거 문화부 기획조정실에서 했듯 처리해야 하는 문제일까? 인구절벽, 과거 교육정책 등 복잡한 문제인 만큼 도덕적 신뢰를 지닌 지도자를 중심으로 올바른 비전을 세우고 계원 구성원 다수의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국가조직을 총동원하여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하고자 하였던 문화적 제노사이드 아닌가? 상부 지시에 따른 공무원들의 개인적 일탈에 따른 범죄이거나 “내가 잘못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음주운전을 해도 수치에 따라 처벌을 받는 것처럼 자신이 총장을 사퇴할 만큼의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온당한가? 정작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은 2차, 3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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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배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장. 계원예술대학교 애니메이션과 교수. 30년 전 제작에 참여한 16mm 장편독립영화 <파업전야>(110분, 1990년 영화제작소 장산곶매 제작)를 최근 정식으로 극장에 개봉하였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우리 문화 현실이 된 것이다. 국가기관인 한국영상자료원이 4D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지원한 덕분이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세상은 변했어도 노동 현실은 비정규직-갑질 등 그대로”였다. 헐리웃 메가 흥행작 <어벤저스; 엔드게임> 돌풍 속에도, 여러 언론이 관심을 보였지만 관객 집계는 결국 전국 3,000명이 조금 넘었다. 그나마 블루레이 DVD로 제작하여 영구적인 소장 자료로 남긴 일은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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