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사회는 청년 담론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현재 우리가 마주한 청년은 과거의 어떤 청년보다도 자신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치를 지향하며, 그런 청년들의 노력으로 청년을 위한 다양한 사회제도가 최초로 도입되고 있다. 청년이 이처럼 뜨거운 감자임에 틀림없지만, 이 글은 그러한 청년 담론에 숟가락을 얹기 위한 것은 아니다. 청년예술(인) 정책이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되고 있고, 자연스럽게 문화예술계에서도 청년의 나이에 놓인 주체들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 글은 그와 별개로 ‘문화정책 연구’의 맥락에서 ‘청년 연구자’라는 주체, 또는 ‘전환기’라는 작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글을 시작해본다.
문화정책 연구의 독특성
‘문화정책 연구’는 여러 지점에서 독특하다. 우선 다른 분야(복지, 경제, 행정 등)의 연구와 상당히 다른 원칙으로 조직되는데, 이 원칙의 핵심은 ‘멀티 플레이어’이다. 문화예술 행정기관의 생리를 잘 이해해야 하고, 창작자의 미묘한 의도와 맥락을 읽을 줄 알아야 하며, 예술적인 그리고 본능적인 직감과 감각이 요구되며, 물론 치밀한 분석 및 집필, 정리 능력은 기본이다. 이렇게 요구되는 역량이 많고 다양하다 보니, ‘문화정책 연구 전문가’는 결코 쉽게, 다수가 배출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사회가, 예술가들이, 또 시대가 요청한 과업은 연구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연구의 내용이 대부분 예술지원 사업에 대한 기초 조사-평가-검증-제언으로 구성되다 보니, 연구의 결과가 실제 축제 기획으로 이어지거나,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개발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순서였다. 이 과정에서 연구자는 축제의 음악 감독, 공연장의 대표, 비엔날레 큐레이터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연구와 창작, 이론과 현장을 자유롭게 오가는 이런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과 지식은 우리 시대가 요구한 문화정책이 무엇이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도 같다.
특히 ‘문화정책 연구’가 제도화된 2005년부터 지금까지 지난 15년의 역사는 이를 더욱 공고히하는 과정이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2000년대 중반에 설립되고, 광역 및 기초 문화재단들도 우후죽순으로 설립되었으며, 최근에도 구체적인 이슈에 대응하여 여러 공공기관이 설립되었는데, ‘연구’는 기관과 사업의 체계화와 정당성 확보에 가장 크게 이바지했다.
문화정책 연구의 전환을 말하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시대는 새로운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전환은 결코 기성의 문화정책 연구자들을 비난, 비판하거나 그들의 업적을 과소평가하기 위함은 아니다. 내가 이 글을 통해 ‘문화정책 청년 연구자’라는 특정 집단을 호명하며 선언적 담론을 제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촘촘히 구성된 기존의 전통 위에 벽돌을 쌓으려는 것이다. 단지 기존의 방식과 같이 위로 벽돌을 쌓는 것이 아니라, 벽돌 쌓기의 ‘새로운 방식’을 모색해 보려는 점에서만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왜 새로운 방식이 필요한가? 여기서 나는 두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첫째는 ‘시대적 변화’이다. 기존에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고도의 전문성, 내적 고유한 작동원리, 강한 네트워크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다. 이제 예술의 손꼽을 만한 사례에 기업, 스타트업, 로스터리 카페, 공장 등에서 주도한 작품과 서비스를 논하고, 평생 예술을 업으로 하지 않던 사람들이 돌연 다큐멘터리 감독, 작가, 큐레이터, 음악가로 돌변하여 성공하는 사례가 종종 나타난다. 이제 특정 학교의 졸업장이나 미술관의 전시 경력이, 또는 누구와 알고 모르고의 여부가 예술계의 성공을 결정짓는 시대는 끝날 거라고 (끝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새로운 인물의 필요성’이다. 문화예술 관련 세미나, 포럼, 집담회, 심사 등등 자리에 가면 흔히 듣는 말이 있다. “여기서 또 보네요”, “이것도 하시네요”, “우리가 아는 전문가 말고 다른 사람 또 없을까?” 기성을 배척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전통과 맥락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은 당연히 앞으로도 여러 연구 프로젝트와 작업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나누어야 할 전문가로서의 책무가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 공공기관이 양적, 질적으로 팽창하고, 예술의 시대적 사명이 점차 막중해지는 시대에 우리는 새로운, 더 많은 인물을, 그들의 다양한 시선과 아이디어를 ‘문화정책 연구’에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문화정책 청년 연구자의 양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다른 장르 예술에서 꾸준히 창작자들이 새롭게 배출되고 활동하는 것과 대비해 볼 때 연구 필드에 신선한 얼굴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은 여기에 몸담은 모두가 우려해야 할 공동의 과제이기도 하다.
문화정책 청년 연구자가 지향해야 할 세 가지 상
이의 실현을 위해 나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문화정책 청년 연구자의 상을 다음의 세 가지 원칙으로 논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원칙들을 바탕으로 더 많은 청년 연구자들이 활발히 활동하기를 기대한다.
첫째, 지금의 청년 연구자들은 장르/분야/방법론을 초월하여 종합적, 총체적 차원에서 이슈에 접근하고 사고해야 한다. 무엇도 예술이 아니고, 동시에 모든 것이 예술인 시대에 다른 분야에 더 관심을 가지고,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과 변동 안에서 연구의 의미와 목적을 위치시켜야 한다. 둘째, ‘연구 전문성’에 관해서는 ‘더 글로벌하게, 더 로컬하게’를 지향해야 한다. 모순된 이 말을 부연하자면, 인터넷 덕분에 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더 가깝게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만큼 보편적인 연구의 이론/담론/방법에 익숙해지되, 내가 그것을 전부 섭렵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중에서 나만의 전문성을 무엇으로 가져갈지, 즉 더 로컬해져야 할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으로 새로운 방식의 연구자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제는 내 것을 공유하지 않고 독점하겠다는 생각은 성공할 수 없다. 더 열린, 개방적인, 차별 없는 네트워크에서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잘 나누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아쉽게도 이 세 가지 원칙은 ‘원칙’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구체성은 조금 부족하다. 사실 사람들에게 익숙한 ‘변화’란 프로세스보다는 결과물, 가치관이나 인식 체계보다는 구체적인 언어나 태도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변화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그래서 뭘 하겠다는건데?”라는 질문이 들 것이고, 실질적인 변화는 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선언적 주장이 아직까지는 필요하다고 본다. 연구의 디테일을 말하기 이전에, 어떻게 연구를 바라보고, 생각하고, 접근하는지, 위의 원칙들을 통해 청년 연구자들의 새로운 시각과 접근이 더 확장된다면, 또한 문화정책 연구에 포섭되지 않았던 새로운 연구진들이 유입될 수 있다면, 한국 문화정책에도 청년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한 연구 2.0의 시대가 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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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주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학부에서 음악학을 전공하고, 동시대적 예술의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사회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본부에서 짧게 근무하였으며, 2018년부터 마음이 맞는 동료 몇몇과 함께 ‘후레쉬-문화정책젊은연구자모임’을 운영 중에 있다. 문화정책에서는 ‘청년예술’ 주제에 관심이 있으며, 서울문화재단과 서울연구원이 공동 진행한 ‘서울청년예술인캠프준비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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