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궁금증은 인간의 속성일까? 자신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상상을 해 본적이 누구든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나쁜 일을 경계하고, 좋은 일을 복돋울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앞일을 미리 안다는 것이 긍정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앞날을 꿈꾸며 그려볼 수 있으나, 미리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그 때문에 미래을 알고 싶다는 욕망은 통제되지 않는 욕망으로 수많은 예술작품, 대중문화의 소재가 되었다. 게다가 과학기술의 진화로 이러한 통제되지 않는 욕망이 희망을 넘어 실제 삶으로 깊이 침투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욕망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1세기 초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년)라는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근미래에 있을 것만 같은 화려한 인터페이스에 희망의 시선으로 현혹되었는데, 주요 소재는 미래 행위에 대한 예측이었다. 범죄행위를 미리 예측하여 실제 범죄를 예방한다는 것은 사회적 불안 요소를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측면이 있다. 여기서 미래 행위 예측의 근거가 3명의 예언자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에서 보여주는 기술적 패턴과 적용이 아무리 현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하더라도 환상이라고 하겠다.
앞의 영화 이후 10여년이 지나서 개봉한 <캡틴 아메라카: 윈터 솔저>(2014년)는 마블의 빅피처 과정이기도 하고 슈퍼 히어로라는 점에서 환상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한 장면(사실상 주요 내용의 핵심 요소)은 10여 년 전 미래 예측 영화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미래의 경쟁자를 사전에 제거하려고 하는데, 미래의 경쟁자를 결정하는 토대가 사람들의 일상 행위에 대한 데이터다. 이는 과거의 행위 데이터를 통해 미래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으로 소위 빅데이터라고 하겠다. 영화에서 언급한 사람과 데이터의 양이 매우 많다는 점에서 현실성은 있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넥플렉스를 통해 2019년에 공개된 다큐 영화인 <거대한 해킹(the great hack)>은 슈퍼 히어로 영화의 한 장면이 환상이 아니라 실제라는 놀라움을 넘어 공포를 느끼게 한다. 이 영화는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개개인의 SNS의 일상적인 인격적 활동이 비인격화된 데이터가 되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페이스북 27만 명의 개인정보와 네트워크로 연결된 5천만 명의 개인정보가 해당 개인에 대한 동의가 없이 데이터가 되어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선거마케팅에 사용되었다.
이 영화의 놀라움은 그것이 실제로 지금 가능하다는 것이고, 공포는 나의 일상이 데이터가 되어 나의 동의 없이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해석된 데이터에 의해 제시된 프레임이 개인의 교육, 경험, 행위에 대한 개인의 판단을 대체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해석된 데이터는 나와 관련 없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상적 행위에 근거하지만, 나의 일상성을 요소로 한 타인의 해석이 나의 평가, 판단,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생각해보자. 고객맞춤형 서비스가 일상화되고 있는 사회란 나의 편의성이 확대되는 사회인가, 아니면 나의 프레임이 관리되고 있는 사회인가. 고객 맞춤형이란 누군가의 특정한 목적을 위해 나의 행위가 해석되어진 것은 아닐까.
최근 ‘데이터 3법’에 대한 기사를 접하면서 발의된 관련 법률을 살펴본다. 과거 어떤 내용이 변경되었을까? 3법중 하나인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을 현 법률과 거칠게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구분 |
현 법률 |
개정안 |
목적 |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위해” |
“개인정보의 안전한 활용을 통하여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해” |
정의 |
개인정보 정의에서 “개인” |
개인정보에서 “특정 개인” |
- |
신설 정의 : “가명처리”, “가명정보” |
|
보호 원칙 |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적법하고 정당하게” |
“개인정보를” |
개인정보 수집 제한 |
정보주체의 동의 |
삭제 |
정보주체의 동의 정보 선택권 |
삭제 |
|
정보주체의 동의 정보 선택권에 따른 사용권(접근권) |
삭제 |
|
개인정보의 목적 외 이용· 제공 제한 |
“침해할 우려가 있을” |
“침해한 것이 명백한” |
현행 법률에서 몇 개의 변경된 내용을 보면서 떠오르는 것은 나의 일상적 행위에 근거한 개인정보가 실존적 존재로서의 나로부터 분리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더 이상 나로부터 분리된 개인정보 데이터에 대해 주체가 될 수가 없고, 나의 데이터는 누군가의 해석에 소용되는 요소가 될 뿐이다. 데이터 활용의 활성화를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이 개인의 존엄성보다 우월적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적 가치 창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동 소외 사회라는 용어가 낯설게 느껴지는 시대에 ‘데이터 소외 사회’를 떠올리는 것은 과도한 생각일까? <거대한 해킹> 끝부분에서 ‘데이터 인권(data human right)’를 언급하고, 포스터에는 “그들은 당신의 데이터를 획득했다. 그래서 그들은 통제(권)을 가졌다.(They took your data. Then they took control)”라고 적혀있다.
[데이터리뷰]에 데이터 리뷰가 아닌 글을 쓰면서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다시 곱씹게 된다. 나는 하이드라의 제거 대상일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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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사)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대학 시절 연극이 좋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문화운동과 조우하였다. 90년대 초반 석사 과정 시절 국내 최초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생활실태조사를 했다. 2000년대 초 인디문화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게임산업 진흥기관에서 정책, 기획 업무를 총괄하고 문화산업과 예술 분야 정책 및 법제도 개선에 참여했다. 지금의 관심은 예술과 문화산업에서의 공정 환경, 문화예술 분야의 노동 환경, 디지털시대의 문화운동은 무엇일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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