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Anthropocene)’는 지질학적 연대를 지칭하는 비공식적인 용어이다. 대기화학자인 파울 크뤼천과 생태생물학자인 유진 스토머에 의해 2000년대부터 제기되어 자연과학 분야는 물론 인문사회 분야에서도 널리 인용되고 있지만 국제지질과학연맹으로부터 아직 공식적으로 승인을 받지 못한 비공식적 개념이다. 그러나 인류세 개념이 등장하자 과학계와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논란의 중심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는데, 이는 인류세가 기존의 층서명과는 달리 그 속에 함축된 의미가 지질학적 범주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환경 등 인류의 활동과 관련된 다양한 인문사회학적 요소와 관련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세를 보는 관점은 낙관주의에서 비관주의 까지 폭넓게 위치한다. 기후위기가 이미 변곡점을 지났고 인간은 변화한 기후체제에서 살아내야 한다는 비관주의부터 인간이 자연에 미치는 요인들을 통제함으로써 기후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는 낙관주의(에코 모더니즘), 그리고 인간의 기술로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다는 가공할 낙관주의까지 관점의 차이는 크게 벌어져 있다.
지질학적 개념임에도 인문 사회과학이 다뤄온 ‘인류 Anthropos’를 층서명에 포함된 것을 비판하며 그 사이 여러 개념들이 대항 개념으로 제시되었다. 예컨대 제이슨 무어는 인류 전체에 책임을 지우는 인류세 대신 자본에 책임을 지우게 하는 ‘자본세’ 개념을 제시했고(Capitalism in the web of life. Verso. 2015), 다나 해러웨이는 ‘인류세’ 보다는 ‘자본세’를 그리고 ‘자본세'보다는 ‘플랜테이션세’ 개념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해러웨이 선언문. 책세상. 2019)
개념에 대한 논란도 있지만, 인류세에 대한 관심은 계속 확산 중에 있다. 인류세를 주제로 하는 컨퍼런스, 포럼, 세미나, 강연이 자연과학과 인문사회학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진행되어왔고, 영화나 TV 시리즈는 지구의 멸망이나 인류의 멸종, 또는 멸종 이후를 다루는 이야기들을 줄기차게 내놓았다. 다큐멘터리는 우주에서 지구를 한눈에 보여주며, 열대우림에서 사바나까지, 남북극 해빙에서 태평양 심해까지, 산업농이 만든 황폐한 거대 농장에서 셰일가스로 파헤쳐진 브라운필드까지, 지구 기후체계의 복잡한 시스템에 가하는 인간의 영향력을 시각화하기 위해 방대한 지각의 병참학을 펼쳐보였다. 한국도 2018년에 인류세연구소를 만들고 2019년에는 인류세에 관한 3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도 하였다.
인류세(Anthropocene), 기후위기(Climate Crisis), 지구시스템과학(Earth System Science), 자본세(Capitalocene), 4차산업혁명(4th Industrial Revolution)을 키워드로 구글 트렌드에서 웹 검색량을 비교해보았다. (이 검색어 비교는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소 개원에 대한 한 신문사의 뉴스에서 인류세와 4차산업 혁명을 구글 트렌드로 비교한 도표에서 힌트를 얻었다.)
파란색의 ‘인류세’ 검색량이 2010년대 초반부터 점차 솟아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4차산업혁명’의 관심도는 ‘인류세’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유사한 그래프가 인류세연구소 출범을 알리는 신문기사에 등장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링크 https://news.joins.com/article/23226755) 인류세에 대한 관심이 4차 산업혁명보다는 더 관심을 받은 것 같다.
사람들은 인류세를 햔재로 이해한다. 그래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인류가 지구에 끼친 영향력으로 인해, 종이 멸종하고, 기후위기가 닥치고, 바다가 산성화된 이 시대가 이제 인류세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류세가 공식화되기 전인 지금 인류가 사는 시간대가 홀로세(Holocene) 메갈라얀 스테이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홀로세는 11700년전에 빙하기가 끝날 무렵 시작되었다. 현재와 같은 온화한 기후가 형성된 시기이다.
(다소 복잡한 이야기가 될테니 이번 호에서는 인류세가 비공식적인 지질학적 연대 개념이고, 그래서 논란이 많은 개념이라는 정도로 설명해두려고 한다. 다음 호에서는 인류세라는 지질학적 개념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고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 진영의 논쟁하는 중요한 지점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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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이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지역문화 및 영화 관련 독립연구자. 전 부천문화재단 정책팀장. 씨네21 객원으로 칼럼과 기사를 쓰며 영화정책을 연구했다. 2007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10개의 통섭 연구소를 만드는데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2009년 한예종 사태로 학교를 나와 자유예술캠프/자유상상캠프를 기획했다. 인류세의 문화와 도시에 대해 질문하며, 부끄럽지 않은 생활방식과 기준을 모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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