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기획연재_인류세와 문화정책①] 자연의 권리

CP_NET 2019. 11. 4. 23:41

팻 시프먼은 침입종 인간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침입종이며, 늑대-개와의 공생을 통해서 네안데르탈인과의 생존경쟁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한다. 침입종이란 황소개구리나 베쓰처럼 외부 생태계에서 새롭게 진입한 종이자 다른 토착종을 멸종시킬 정도로 지배적인 종을 말하는데,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태계에 진입했으며, 진입한 생태계에서는 예외 없이 거대포유동물이 멸종을 당했고 같은 인류인 네안데르탈인도 멸종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팻 시프먼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지구상의 육상포유동물 전체에서 인간이 30%이고, 인간이 먹기 위한 사육동물이 67%이며, 야생동물은 단 3%에 불과하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침입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현생 인류는 스스로를 공식적인 침입종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국제자연보존연맹은 침입종의 목록을 주기적으로 발표한다. 참고 https://www.iucnredlist.org/) 인간은 다수의 침입종을 배나 기차, 자동차 등으로 운반해 다른 생태계로 확산시켰지만 스스로를 침입종이라 하지 않는다. 이보다 더 인간중심주의적일 수 있을까? 물론 침입종 개념에 대한 반대 입장도 있다. 다나 해러웨이는 침입종 개념이 죽여도 괜찮다는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이 개념에 반대한다.(해러웨이 선언문) 침입종 개념에 내재하는 폭력성에 대한 중요한 지적이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의 종적 지위를 침입종이라는 단어보다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단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 최강의 악당, ‘침입종이라는 것을 냉정하고 솔직하게 인정하자.

 

인간은 유별난 종이다. 인간만이 땅을 소유하고 땅에 속한 모든 것을 마음대로 개발한다. 다른 종을 죽이고 살리는 생사여탈 권력도 인간이 갖고 물과 같은 생명에 필수적인 자원도 인간이 독점해서 쓴다. 돼지나 소로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돼지로 태어났다면 이번 돼지열병에 아마도 산채로 파묻혔을지도 모른다.

 

침입종 인간, 문화는 문제인가? 해결책인가?

 

남미 아마존, 호주 원주민, 북미 인디언, 동남아시아 소수 종족 등 지구상에는 여전히 자연을 대상화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인류가 있다. 그러나 이 소수의 공동체를 제외하면 오늘날 지배적인 문화는 국가화와 도시화와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자연을 대상화하고 착취하는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

 

자연에 대한 가장 강력한 포획장치는 근대 국민국가의 헌법일 것이다. 국가는 헌법을 통해 영토(자연)에 대한 국민의 주권을 선언한다. 국가는 헌법으로 자연에 대한 초월적 배타적 소유와 지배를 정당화한다. 헌법이 정하는 국민에는 어떤 동물도 포함되지 않고 오직 인간만이 포함된다. 이러한 영토(자연)에 대한 포획을 전제로 국가는 토지를 분할하고 소유하고 판매하며, 이를 토대로 도시화와 산업화가 추진된다. 산림 녹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토지는 주택과 상업, 공업과 농업(목축)을 할 수 있는 용도로 개발된다. 흔히 이를 문화/문명화라고 한다.

 

권력은 문화에 있으며 자연은 대상화 된다. 법은 자연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주체로 등장하지 못하게 적극적으로 막는다. 예컨대 2003년 고속철도가 천성산을 관통하지 못하게 하려는 시민들이 도룡뇽과 자연의 권리를 위해 원고인단을 꾸려서 소송을 제기했지만, 원고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원고에게 소송을 제기할 자격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자연에 권리를 부여한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2008년 에쿠아도르는 최초로 자연의 생물이 영구적으로 생존하고 번식하고 진화할 권리를 헌법에 명기했다.1) 2011년 볼리비아는 자연을 법적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어머니 지구법을 제정했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생태주의 관점에서 급진적으로 재구성한 내용으로 유명한 이 법은 자연의 권리를 11개 항목으로 규정한다. 존재하고 생존할 권리, 인간의 변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진화하고 생명 순환을 지속할 권리, 평형을 유지할 권리, 오염되지 않을 권리, 유전자나 세포가 조작되지 않을 권리, 지역 공동체와 생태계 균형을 해치는 개발 계획이나 거대 사회기반시설 건설에 영향 받지 않을 권리 등이 대표적이다.2)

 

한국은 2017년 개헌 논의 과정에서 자연의 권리를 부여하는 안건들이 제안되었지만, 개헌은 실현되지 못했다. 아쉽게도 자연은 아직도 현재에 도착하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문화정책은 자연이 배제된, 자연의 권리가 배제된 문화정책이었다. 국가가 부처별로 사무를 분장하면서 자연과 문화는 분리되어 별도의 부서에서 별도의 정책으로 추진되어왔다. 생태는 환경부, 가축과 반려동물은 농림부가 사무를 관할한다. 문화부는 자연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자연이 배제된 문화, 자연의 권리가 박탈된 문화는 근거 없음이고 아무리 값을 쳐주더라도 반쪽짜리이다.

 

도시나 농촌이나 문화는 성장주의의 환상에 의해 호명당한다. 문화의 자리는 모객하는 자리이다. 말하자면 삐끼다. 호객이 부실하면 버림받는다는 것을 예술가들은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자연-문화정책이 가능할까?

 

나의 질문은 이런 것이다. 자연이 배제된 문화가 아니라 자연이 배태된 문화를 만들자. 더 쉽게 말하면 인간이 문화예술을 많이 즐기는 것도 필요하지만 침입종이 아닌 반려종이 되도록 하는 정책이 더 필요하지 않은가.

 

자연은 문화의 근거이자 조건이다. 따라서 논리상으로 보면 자연정책이 문화정책에 선행하거나 함께 가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자연에 권리가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문화권은 근거가 박약해 질 수밖에 없다. 문화민주주의는 자연을 제외한 인간만의 민주주의에 그칠 것이다. 문화다양성은 근대적 개념이다. 과학이 제시하는 하나의 자연과 이에 근거한 다양한 문화적 판본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새로운 인문학의 관점은 서구의 환원론적 자연이 아닌, 존재론적으로 다양한 자연에 주목한다. 전반적인 흐름은 자연정책과 문화정책은 커플링이 되는 방향이 될 것이다. 이를 자연-문화 장책"이라고 해보자.

 

기존의 문화정책의 관점은 사람을 대상으로 연령과 세대를 구분하고, 전문예술인과 아마추어를 구분하고 생산자, 매개자, 소비자 또는 생비자를 구분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문화 정책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만이 아니라 다양한 종들과 환경이 모두 정책의 대상이 된다. 예술의 장르와 생산 과정에 앞서, 침입종인지, 토착종인지 아니면 반려종인지를 구분하게 될 것이다. 도시도 침입도시인지 토착도시인지 반려도시인지 질문하게 될 것이다. 천성산도 동강도 4대강도 존재할 권리를 부여받을 것이며, 법정의 원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문화의 관점에서는 동물도 식물도 사물도 박테리아도 문화 생산의 정당한 행위자가 된다. 예술가는 기호생산 만이 아니라, 생태적 지위도 중요하게 고려될 것이다. 무엇을 먹는지, 서식지를 어떻게 형성하는지, 폐기물을 얼마나 분해하는지도 중요하게 볼 것이다. 자연과 문화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인간과 동물의 경계도 허물어진다. 자연-문화 정책은 강아지와 고양이, 버섯을 자연-문화의 매개자로 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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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쿠아도르 헌법 제71조는 생명이 재창조되고 존재하는 곳인 자연 또는 파차마마(Pachamama)는 존재와 생명의 순환과 구조, 기능 및 진화 과정을 유지하고 재생을 존중받을 불가결한 권리를 가진다. 모든 개인과 공동체, 인민과 민족은 당국에 청원을 통해 자연의 권리를 집행할 수 있다.”고 한다. 환경법연구 412. 박태현

2) 참여연대 누리집, 2018. 11. 장성익 환경저술가

 

 

 

이윤이

(사)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지역문화 및 영화 관련 독립연구자 전 부천문화재단 정책팀장. 90년대에는 영화주간지 객원기자로 칼럼과 기사를 쓰며 영화정책을 연구. 2007년 자유예술캠프 2009년 자유상상캠프를 기획. 인류세의 문화와 도시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