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과 문화도시에 대한 고민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사업이 의욕적으로 만들어지고 있고 이에 따라 지자체들은 여기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나서고 있다. 비전에 대한 지역의 공감대, 결과에 대한 구체적 검증이 충분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전국적으로 도시재생 사업은 현재 진행형의 대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부동산 가격은 급상승하고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원주민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원인이라는 비판도 따르고 있다.
최근 10년 간 부산 지역 도시재생을 비판적으로 리뷰한 기사는 도시재생 사업 10년 만에 부산의 산토리니라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감천문화마을이 지역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도시재생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주민 상생에서 실패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원주민은 떠나고, 거점시설엔 거미줄만... 난립하는 ‘도시재생’”, 부산일보, 2019.10.27. ) 감천마을이 대형 관광지로 변모하고 관광객이 급증하였지만 원주민은 해가 다르게 줄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의 개발과 관광지 상권화에 따라 투자가 집중되면서 집값이 폭등하였기 때문에 원주민은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이 지역 노후 주택들의 토지 면적당 평당 가격이 800만원에 육박하고 있는데 이것은 도시재생 사업이 시작되기 이전인 2008년 평당 78만원이었던 것에 비해 10배 이상 오른 가격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세입자들은 아예 버티기가 어려워졌고 일부 집들은 외지인들의 소유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지역의 인구 역시 감소하고 있는데 사업이 시작되기 이전인 2009년 2969명이던 인구가 지난해 1925명으로 35%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마을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데 우리의 삶은 발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라는 주민의 호소는 도시재생과 문화도시가 자명한 이 시대의 과제라는 정책적 선전에 중대한 의문표를 던지게 해준다. 이 대목에서 도시재생은 과거의 토목 사업 위주의 전면 재개발과 달리 지역민의 주도 속에서 지역민의 상생을 위한 것이라는 명제를 다시 고민하게 되는 대목이란 것이다.
여기서 도시재생이 극복하고 나섰다고 주장해온 과거 재개발 시대의 단편적인 경험을 하나 떠올려보자. 거의 사반세기전인 1990년대 초중반 독립문 인근 서대문구 현저동의 재개발지역에서 ‘철거싸움’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독립공원과 영천시장의 뒤편, 지금은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현저동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소위 달동네라고 불리는 불량주거지역이었다. 동네의 절반 이상이 시멘트벽돌(브로꾸)과 슬레이트로 대충 지어진 노후 무허가주택이었고 따라서 난방이 힘들고 풍수해, 화재 등 재해에 취약한 구조였다. 좁은 골목 사이로 촘촘하게 지어진 집들은 화재시 소방차 한 대 들어오기도 힘든 상황이었고 수세식 화장실이 갖춰진 집도 거의 없었다. 그런 작은 집들마다 한집에 한 가구에서 두 가구, 많게는 세 가구까지도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불량주거지역이라는 관의 표현은 전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주거 환경의 개선이 필요한 것이 분명해보였다.
재개발을 추진하는 쪽에서는 아파트를 지으며 지역의 자가 주택 소유자들에게는 입주권을 주는 조건을 내걸었고 보상에서 배제된 세입자들이 철거 반대 투쟁을 하자 임대주택 단지로의 집단 이주를 약속했다. 일견 관이 내세운 대안이 합리적이고 무조건 퇴거를 강요했던 상계동이나 목동 등 다른 철거지역에 비해 관용적으로 보였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합리적 대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민들, 특히 세입자들에게는 제시된 안이 마을이 완전히 바뀌어 버리면서 일상의 터전이 파괴되는 것에 대한 실질적 보상이 전혀 고민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2년 가까이 함께 지내면서 그러한 주민들의 의견은 상당 부분 타당한 것이었다.
외부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단지 허름하고 불량한 주거환경의 슬럼가였지만 그 구성원들이 수 십년 간 마을을 형성해서 살아가면서 그 나름대로의 생활환경을 구성해내고 있었다. 다소 기괴한 형태의 집, 집과 집 사이의 공간 등 마을의 구조는 환경에 대한 적응이자 생활의 편의를 위한 고안인 것이었다. 관의 개입이 거의 부재한 상태에서 그들은 자신들끼리의 협업을 통해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고 제한된 조건 속에서나마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마을의 구성하고 있는 계층들은 3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가족들이었는데 “간신히 비만 피하고 입에 풀칠만 하며 사는 이들”일 것이라는 외부의 시선과 달리 저소득층이지만 거의 대부분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고 있었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에 농촌을 이탈하여 서울로 일자리를 찾아올라온 이들이 대다수였는데 그 마을은 그들이 더 나은 생활조건으로 이주하기 이전까지 생활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교두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재개발 측이 권유하는 아파트로의 이주를 꺼려했다. “답답하고 생활비가 많이 들고 지금의 이웃을 모두 잃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거의 공통적인 불안감이었다.
부동산 욕망에 포획된 ‘도시화’
도시재개발이건 현재의 도시재생이건 늘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도시화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다. 더 쾌적한 주거, 편리한 교통, 우수한 교육의 기회, 그리고 문화적 일상의 확대를 내세운다. 도시화라는 것이 농촌적 생활양식을 도시적 생활양식으로 변화시키는 전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1970년대까지 이루어진 산업도시의 성장과 이에 반비례한 농촌공동체의 해체가 초기 도시화의 단계였다면 앞서 사례를 든 도시재개발은 초기 도시화에서 급격하게 집중되었던 인구의 폭증과 이에 따른 취약한 주거 환경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그 이슈가 맞추어졌다. 이 과정에서 인구대비 토지 효율이 좋은 고층아파트 단지는 거의 유일무이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졌고 여기에 대규모 토목 사업을 통한 개발 이익 환수라는 자본의 이해관계가 함께 작동하며 초기 도시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한 마을을 완전히 지우고 아파트 단지 중심의 새로운 마을(뉴타운)을 깔아버리는 방식이 일반화된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재도시화의 과정이 여러 지역에서 시차를 두고 지속 반복되었는데 늘 공통적인 것은 도시화-재도시화에 따른 지가의 상승과 엄청난 잉여가치의 발생이었다. 불행하게도 이런 경험의 누적은 한국의 시민들에게 도시의 변화에 대해 부동산 가치 변동과의 연계 이외의 어떤 것과도 잘 연결시키지 못하는 관성적 사고를 뿌리 깊게 심어놓았다. 이것은 그런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는 당위를 아예 사업의 주요 목적에 부여하고 있는 도시재생 사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십여 년 전 서울의 한강 주변에 대규모 문화시설(공연장)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을 당시 드물게 이 소식에 대해 환영의 의사를 밝힌 주민집단이 그 예정지 건너편에 있던 아파트 단지 입주자 모임이었다는 사실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당시 입주자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환영 글은 문화적 환경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아니라 시설 건립에 따른 아파트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대부분이었다. 현 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 이전에도 2010년대 이후 진행된 도시재생 사업들은 대부분 마을공동체의 주체형성과 자발적인 참여, 민간주도적 마을활성화를 전제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으로 들어가보면 일부 토지주를 제외한 민간의 관심은 매우 떨어지고 자발적 참여의 필요성 자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의 도시화 과정의 반복적 관성은 도시변화를 주택, 토지에 대한 재산권 외 권리에 대해 시민들을 무감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2, 3년전 경기도 시흥의 한 지역에서 매우 흥미로운 현상을 관찰한 적이 있다. 당시 그 지역은 “경기도 맞춤형 정비사업”이라는 소규모 도시재생사업의 지구로 지정된 수십 군데 중 한 곳이었다. 같은 사업을 진행하는 대부분의 지역들은 앞서 언급한 부정적인 형태의 사업이 반복되고 있었다. 주민들 대부분은 사업 자체에 대해 모르거나 무관심하고 사업은 관과 일부 도시개발 전문집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마을만은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일단 주민협의체가 정기적 회의체계를 갖추고 운영되는 거의 유일한 지역이었으며 마을 한복판에 있는, 과거 경로당이었던 장소를 확장 증축하여 만든 마을 커뮤니티 공간에서는 지역민이 직접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꽤 활기차게 이뤄지고 있었다. 마을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프로그램도 중노년층 여성들을 중심으로 직접 이루어지고 있었고 이제는 다소 뻔한 마을 프로그램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마을 텃밭도 주민 스스로에 의해 잘 관리되고 있었다. 마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공동의 비품들, 예컨대 재활용 쓰레기통 같은 것들도 마을 작업장에서 자체적으로 제작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마을의 구조적 변화에 대한 다양한 의사결정이 다소 지난한 과정을 치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협의체의 다양한 토의와 이해충돌의 극복을 겪어내며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을 청소년들의 통학로를 가로막고 있던 담장 하나를 주변 소유주와의 오랜 협의와 설득을 통해 철거하게 된 과정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주민들의 표정에서는 깊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비슷하게 출발했지만 실패하고 있던 여타 지역과의 비교에서 이 마을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해당 지역은 역세권과도 멀고 여러 가지 지리적 이유 때문에 부동산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가 거의 존재할 수 없는 마을이었단 것이다. 주민들은 마을의 교환 가치를 상승시켜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의지를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 아니 아예 그런 기대를 접고 살고 있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마을의 이런저런 부족한 주거환경을 개선해서 점점 노령화되는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와 살며 활력을 얻기를 기대했다. “어린 아이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게 너무 좋아요” 마을 커뮤니티 센터에서 아이들에게 하루 2시간씩 책 읽어주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노년 여성의 이야기였다. “한동안 빈집이 늘어서 걱정이었는데 요즘 마을이 환해져서 이사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좋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대형 산업도로 건너편의 아파트 단지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것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집값이 오르는 것보다는 마을이 마을답게 굴러가는 것에서 더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매우 드물게 부동산을 둘러싼 욕망을 넘어선 마을이었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는데 두 번째 이유도 이와 결부되어 있었다. 1970년대 후반 처음 그 마을을 형성했던 이들이 바로 도시재개발 과정에서 서울 변두리에서 밀려나 허허벌판이던 이 지역에 집단이주를 하여 터를 잡은 사람들이었고 아직까지도 주민의 상당수가 그 시절 이주했던 이들과 그 가족들이란 것이다. 도시재개발에 의해 밀려나는 과정에서 지역민들은 꽤 단단한 자생적 커뮤니티를 스스로 형성했고 40여 년간 절반 가까이 구성원들의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에 대한 애착과 지가 상승이 결부되고 관이 주도하는 지역변화에 대해 본능적인 저항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우리가 배제되는 방식으로 재생하면 우리는 또 다시 어디론가 떠나게 될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자리한 마을이었다. 부동산 가치 상승 가능성의 원천적 부재, 즉 비의도적 결핍과 강제적 집단이주 기억의 공유, 즉 공동체의 상처가 오히려 현재의 도시재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거론되고 있는 주민공동체의 형성과 주체화, 자발성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역설적 상황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내야 할까.
공간과 삶의 관계성 그리고 다양한 욕망의 주체들
도시재생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문화적 행위를 방법론, 혹은 솔루션으로 바라보고 접근하는 관점이 점점 지배적이 되고 있다. 물론 그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며 실제로 그런 측면에서 지난 십 수년간 많은 진화가 있어왔다. 국토부에서 진행하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이 가장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이 주민주도성과 지역맞춤형 사업방식이고 문화부에서 추진 중인 문화도시 사업 역시 하드웨어 중심의 사업구조를 지양하며 시민협의체 중심으로 추진체계를 짜서 지역의 문화적 자산을 자발성에 의해 발굴해 낼 것을 지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천마을 사례와 같은 (물론 감천마을은 현 정부의 도시재생, 문화도시 사업 이전에 추진된 사례이긴하다) 우려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은 단지 그간 도시 변화에서 관찰된 부정적 관성에 기인한 기우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현 정부 사업 이전에도 이미 시민이 중심이 된 재생방식이란 이름의 사업 전개는 지속적으로 있어왔고 여러 측면에서 실패를 거듭해서 반복하는 와중이기 때문이다. 즉 부분적인 사업방식의 변경이나 몇 가지 단편적인 방법론의 개선으로는 사업이 지향하는 바를 이루는데 한계가 분명하다. 오히려 개별 지역 사업의 사례를 통해서 해결되지 않는 도시 문제에 대한 총론적인 접근을 고민해야 하는 게 현 시점이다. 예컨대 현재의 도시 변화는 지역 한켠에서는 도시재생 뉴딜이란 이름의 구도심 활성화 사업이 만들어지고 바로 그 인근 지역에서는 고층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있고 그 지역과 도로망으로 연계된 외각 지역에서는 뉴타운이 형성되는 것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기이한 도시변화의 동시성은 결론적으로 지역 안에서 계층화, 서열화된 체계(hierarchy)를 재생산하며 도시재생의 시민주도성을 결정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부동산의 욕망구조를 전혀 걷어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재생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관이나 전문가 집단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하지만 어렵다는 얘기를 반복적으로 한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의 도시와 도시정책 구조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도시에 대해 기대할 수 있는 상상과 욕망이 지극히 제한적으로 형성되어있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은 단절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지역과 지역, 계층과 계층, 주거와 노동, 생산 소비 폐기 등 삶의 전 과정에 걸처있는 다양한 관계성 속에서 이루어진다. 외양적으로 쾌적한 도시 환경을 상상하는 것에 앞서 실타래처럼 잠복해있는, 도시화 과정에서의 오랫동안 억눌린 시민들의 이해관계의 다양성이 부동산의 욕망이라는 뜬구름을 헤치고 나오지 않는 한 도시재생은 부분적으로 조금 개선되었거나 위선적인 껍데기를 쓴 도시재개발 이상이 되기 어렵다. “가난하지만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왜 그걸 못하게 하는 것이냐?” 25년 전 현저동 철거지역에서 들었던 호소이다. 달동네 불량주거지에서의 일상이 어떻게 누군가에겐 행복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이제는 다시 던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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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신규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겸임교수.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문화예술분야에서 발을 들여놓았으며 창작자, 기획자, 정책활동가 등 깊이 없이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았다. 최근에는 문화정책(제도) 연구와 문화 연구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작업들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관심 있는 분야는 국민국가 성립 과정에서의 문화적 제도화의 문제, 노동자 문화정체성에 대한 비전형적인 방향에서의 탐색 등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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