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기획연재_ 도시와문화정책③] 먼길을 돌아 새로 짓는

CP_NET 2019. 8. 1. 22:39

  

                        

 

1998년 한 세미나에서 당시 한국문화행정연구소 소장이셨던 이종인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역문화행정의 역할은 주민과의 공동 작업이 필수적인데 관련 공무원과 예술인들은 공급자와 수혜자의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종속관계에 머무르고 있다고 꼬집고 있다. 지역 문화 활동은 주민 쪽에서 시작되고 그 뒤에 행정을 이끌어 지역 전체를 움직여 나가는 방향으로 진행시켜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현재, ‘법정문화도시가 전국을 흔들고 있다. 그렇다면 20년 전의 바램에서 얼마나 변화했고 진화했는지 의문이 가는 것이 지금 생각이고 본고에서는 그런 생각을 한번 정리해 보겠다.

 

소위 문화도시는 어느 도시나 상상 해볼 만한 아련한 바램 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문화도시라는 것을 건국 이후 구체적으로 해보려고 움직이기 시작 한 것은 본격적인 지방자치제도가 시작된 1995년 이후라고 생각된다. 지역이 지역의 운명을 개척한다는 기치아래 도시앞에 다양한 명사 혹은 형용사가 붙었는데, 이 중 손에 잡히지 않으면서도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 문화도시였다. 초기에는 도시를 건드리기 부담스러워 지역축제가 활성화 되었다. 군민의 날, 시민의 날, 혹은 화랑제, 개천제 등이 지역특성을 드러내는 축제로 명칭과 내용이 바뀌었고, 정부차원에서 집중 지원한 대표 페스티벌들도 나타났다. (광주비엔날레 1995, 부산국제영화제 1996) 축제와 문화예술행사 이후에 지역의 활동가, 예술가 등의 문화인들이 문화도시의 큰 꿈을 생각하게 되었고 지방자치단체도 문화도시에 대해 종합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문화기반시설에서 시작되는 문화도시

 

우선적으로는 문화시설에 대한 욕구가 지자체에서 나타났다. 필자가 살고 있는 의왕만해도 1996년 당시 630억 원을 투입해 백운호수 공연장, 세계연극제 개최, 공연박물관, 디자인박물관을 꿈꾸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하나도 실현되지는 않았다. 하여간 전국에서 88년 이후 건립된 문예회관을 이어서 다양한 문화기반시설 조성 움직임들이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 문화관광부가 1998년부터 문화기반시설 관리운영 평가를 실시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이에 대한 평가의 결과로 최우수 문화도시가 선정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2001, 2002년 제주시는 연속 가장 살기 좋은 최우수 문화도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당시, 별다른 문화도시 관련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문화기반시설 관리운영평가는 각 시설뿐만 아니라 축제 등 행사, 관련 조례 여부, 창작역량 및 성과 등을 종합적으로 보아 시설에서 나아가 전반적인 문화도시의 성과를 보려고 시도하였다. , 본 평가는 이후 지방이양사업에서 운영평가 인센티브가 지방 이양되면서 21세기 초 중단된다.

 

이후 물리적 환경의 중요성은 시설을 넘어 도시 공간으로 이어지는 비약을 하게 된다. 이는 다시 도시 관련 다양한 운동과 성과, 그리고 요구 등이 문화관광부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9년에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에서 시작된 문화의 거리 사업이다. 부산 용두산 문화의 거리, 수원 나혜석 거리, 서귀포 이중섭 거리 등이 최초 문화의 거리에 선정 지원되어 현재까지 남아있는 사업이다. 이어 문화관광부는 문화의 거리를 넘어서 문화지구, 문화벨트를 생각하게 되는데, 전자의 경우는 문화예술진흥법에 관련 조항으로 존속하다가 현재는 지역문화진흥법에 제4장 문화도시·문화지구의 지정 및 지원에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미 98년에 정부차원에서는 거리, 지구, 벨트를 넘어선 문화도시를 상상했고, 공교롭게도 당시 건교부 (1997)은 문화도시, 통일도시 등 시범도시 지원근거를 도시계획법 개정안에 반영하기도 하였다.

 

 

자발적으로 움직인 문화도시

 

당시 지방자치시대 직후 문화정책개발원(현 문화관광연구원의 전신), 문화예술진흥원, 문화관광부가 공동으로 정기간행물 [문화도시, 문화복지]를 발행했다. 주된 내용은 지역별로 문화도시, 문화예술관련 우수한 자발적인 사례를 홍보하고 간간히 국외사례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당시 자료들을 보면 지역 문화인들,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우수 사례를 만들고자 노력하는가 하면 혹자는 해외 문화도시, 도시재생 사례들을 열심히 퍼 나르기도 했다. 아비뇽, 에든버러에 이어 리버풀, 빌바오 등이 회자된다. 당시 자발적인 문화도시에 앞장 선 지방자치단체로는 대표적으로 부천, 춘천, 전주, 순천, 수원, 제주시 등이 있었고 강릉, 영월, 청주 등도 이어서 노력한 흔적이 있다. (이 외에도 물론 많지만) 모두 지역의 실정에 맞는 다양한 방식을 가지고 논의하고 싸우고 고민하는 것이 역력히 보이는 시기였다.

 

부천은 21세기 문화도시 건설을 표방하고 박물관도시, 문화예술발전기금 대폭확대, 만화를 통한 브랜드 구축 등을 내세웠고 인적자원을 모으고 양성하고자 하였다. 춘천의 경우 마임축제, 인형극축제 등 예술축제와 애니메이션 등을 중심으로 문화도시 역량을 모으고자 하였다. 부천, 춘천 모두 당시 새로이 등장하는 문화산업과 지역의 문화예술을 연계하려는 계획들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순천은 국내 기초단체 중 최초로 문화예술진흥조례를 1999년 제정하였고 산업도시가 아닌 문화도시를 표방하고 다양한 공청회,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전통문화, 시민문화, 관광 등을 연계하려고 하였다. 부산은 국제신문에서 문화도시 부산을 위한 연중기획을 1999년 실시하여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전주의 경우 고유문화를 발굴하며 한편 도시 인프라로는 최초로 차없는 보행도로가 중심이 되는 전통의’ ‘한옥마을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수원은 수원화성문화재를 상징으로 하여 화성복원을 통해 원도심의 문화적 도시재생을 이미 당시 꿈꾸고 추진하였다. 제주는 종합적인 인프라, 인력, 행사 등이 연계된 문화도시를 꿈꾸었고 당시 양중해 문화원장99년 제민일보에서 첫째 문화의 인적 자원의 확보, 둘째 수준 높은 문화예술 전시와 공연, 셋째 문화 관리의 여건, 넷째 문화시민으로서의 향수능력 등이 하드웨어로서 갖추어져야 문화도시라고 이야기 하였다. 당시를 기억하면 문화도시라는 주제로 단군 이래 최초로 전주, 부산, 대구 할 것 없이 전국적으로 다양한 세미나, 공청회, 심포지엄이 열렸고 아직 과거 내무부의 중앙집권 분위기가 가시기도 전에 지역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활발했다.

 

 

지역문화의 해

 

이러한 움직임은 문화관광부 차원에서 10문화예술의 해를 마치며 2001지역문화의 해로 이어졌다. 동시에 문화도시를 가꾸는 해라고도 하였는데 문화관광부는 당시 문화도시의 가치가 있는 도시로 춘천, 통영, 남원 등을 사례로 들기도 하였다. 지역문화의 해는 (문예진흥기금) 12억 예산으로 토론회, 컨설팅, 포털사이트 운영, 현장대화와 탐방, 향토문화강좌, 지역내 지역문화예술단체 순회 등을 실시하였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호지 108영웅마냥 숨어있던 지역의 문화일꾼들이 서로 만나고 고민하는 장을 마련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역문화의 해가 끝난 이후에도 이러한 서로의 만남과 공유를 지속하고자 지역문화네트워크를 결성하고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드웨어 중심의 문화도시

 

지역 자발적인 문화도시 움직임이 활발할 때 한 가지 중요한 정책이 2003년 발표되었다. 처음에는 문화수도였고 이후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발표된 사업이다. 이것만 가지고도 책 10권은 쓰겠지만 이 정책의 장단점을 아주 간략하게 살펴보자. 장점으로는 미래형 문화도시에 대하여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무수한 논쟁과 고민을 할 수 있었고 나아가 새로운 형태의 문화도시의 틀을 제고했다는 것이다. 단점으로는 전국적으로는 본다면, 자생적, 자발적 지역 운동과 자체 정책에 의해서 자신의 역량과 자원을 활용한 문화도시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고 광주광역시의 입장에서 보면 종합적인 문화도시로서의 아시아문화중심도시가 되지 못하고 대부분이 아시아문화전당 사업으로 수렴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앙의 예산이 중심이 되어 중앙주도의 문화도시 조성은 한동안 지역의 문화도시 논의를 멈추게 하였고 나아가 2006년부터는 전주, 경주, 공주부여시의 역사전통문화도시 사업이 시작되면서 광주광역시와 마찬가지로 하드웨어 중심의 문화도시에 이전에 인간중심, 문화중심의 도시이야기가 가라앉게 되었다. 더불어 부산영상문화도시가 2004년부터 부산 영상센터건립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현재는 지역문화진흥법 상 문화도시와 구분하기 위하여 거점문화도시로 이야기하는데 대략 사업기간은 다음과 같다. - 광주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 : 2004~2023, 부산 영상문화도시 : 2004~2011, 경주역사문화도시2006~2035, 전주 전통문화도시 : 2007~2026, 공주/부여 백제역사문화도시 : 2009~2030.

 

 

지역문화진흥법 제정 이후

 

사실 지역문화의 해에서 가장 강조된 내용이며 창의한국에서도 강조한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2014)된 이후에 거점 문화도시 이후 지역 단위 문화도시 이야기가 다시 등장하게 된다. 법에 명시한 문화도시즉 법정문화도시가 정부차원에서 선정되기 이전에는 문화특화지역즉 문화도시문화마을 조성사업이 2014년부터 시작되는데 첫해 문화도시로서는 남원, 문화마을로는 공주 상신마을, 부여 규암마을이 선정되었다. 문화마을은 생활’, ‘예술’, ‘지역자산’, ‘역사전통으로 구분하고 문화도시도 과거의 하드웨어 중심에서 거버넌스, 문화시민, 공동체에서 출발하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도시를 지향하였다. 2018년부터 소위 법정문화도시 예비도시 지정으로부터 문화도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문재인 정부 문화도시 정책은 특화된 거점도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내부에서부터 종합적으로 문화도시가 되기 위해 시민이 계획하는 중장기형 문화도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자본, 관료주의, 정치를 벗어나

 

먼 길을 돌아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이종인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관료 중심이 아니라 주민과 시민 중심의 문화도시라는 목표는 다시 찾은 보석이다. 무엇보다도 경쟁하는 문화도시 사업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도시가 민간/시민이 중심이 되어 문화도시를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자체적인 힘을 키우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85년 스타쉽(Starship)의 노래 중에 ‘We built this city’라는 것이 있다. 그냥 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We built this city on rock an' roll) 락음악으로 도시를 짓자고 외친다. 가사 중에는 음악산업과 상업주의에서 소외되는 (playing corporation games) 진정한 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락엔롤이 아니더라도 문화도시는 자본, 관료주의, 정치를 벗어나 시민이 ‘We built this city!’를 새로이 외치는 발화점이 될 수만 있다면 하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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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원. 2001년 한국문화정책개발원에 입사, 입사부터 문화환경가꾸기, 지역문화의 해 등의 사업으로 지역 연구, 문화시설연구, 전통공연예술연구등을 하다가 어쩌다가 현재는 콘텐츠관련 센터장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