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맑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썼던 유명한 문장을 빌리자면, 전국의 지자체에, 그리고 문화기획이나 문화정책, 도시계획을 업으로 하는 이들 사이에 “문화도시”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당면한 현실로는 문재인 정부에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에 30여 개 문화도시를 선정하여 약 5년간 각각 200억 원(국비 100억 원) 정도의 사업비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구체화하며 시작되었다. 문화도시는 일부 광역지자체가 포함되어 있지만, 대부분이 기초지자체들을 지정대상으로 삼고 있다. 서울 등 수도권 일부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초지자체의 재정 여건이 열악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군침 당기는 지원사업인 게 사실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거의 전국의 모든 시군들이 문화도시 사업에 경쟁적으로 도전장을 내고 있다. 작금의 치열한 문화도시 경쟁 국면은 각 도시의 문화적 역량을 발굴하거나 재발견하고 모아보려는 시도와 연결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요소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문화도시가 무엇인지에 대한 충분한 개념의 정립이나 자생적 담론 형성 없이, 정부 주도로 수입된 도시 개발 전략의 새로운 포장일 뿐이라는 다소 비판적인 시선과 우려도 낳고 있다. 문화도시 사업과 예산은 존재하고 있지만 정작 문화도시에 대한 철학적 지향이나 공론장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문화도시 개념이 한국 사회에 2010년대 중반 이후 갑자기 던져진 것이 아니란 점에 있다.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서유럽 사회에서 문화수도, 문화도시, 창조도시와 같은 개념적 진전이 있어왔고 한국 사회에서도 최소한 2000년대 초반부터 문화도시란 용어는 사용되고 있었다. 참여정부 초기부터 추진한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이후 여러 지역 도시에서 문화도시 지정에 대한 정책적 수요가 있어왔고 실제 이것은 꽤 오랫동안 “지역문화진흥법”의 입안 과정에서 주요 안건 중 하나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부터 시작된 각종 지역재생 사업들, 예컨대 마을만들기 사업 등에서 문화적 방법론이나 지향성은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킬 것이 권고되거나 제도적으로 강제되기도 했다. 그런 탓인지 문화기획이나 정책 현장에는 방법론으로서의 문화도시 전략에 대해서 통달한 이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문화도시가 무엇인지는 알듯말듯 하지만 문화도시 사업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어떻게 하면 이에 관한 공적지원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기술적으로 아는, 혹은 안다고 믿는 이들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술적 발전과 축적에 비하여 문화도시가 시민 일상의 공론장에 어떤 파급력이 있는가를 되물으면 매우 궁색한 답변으로 돌아가게 된다. 다수의 시민들에게 문화도시가 수도권 3기 신도시 개발 계획과 같은 첨예한 관심사가 아니란 점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아주 피상적인 관심 자체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시민들에게 문화도시란 과거에도 스쳐지나갔고, 지금도 뭔가 지나쳐갔지만 그게 뭔지는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는 도시의 이벤트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관광과 같이 지역경제와 맞닿아 있는 매우 구체적인 이슈와 결합되어 사업화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문화시설이 많아진 도시? 문화강좌가 많아진 도시? 누군가에게는 소란스러운 길거리 버스킹이 많아진 도시? 문화도시가 어떤 것이라 상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문화도시 사업 바깥에 존재하는 보통 사람들에게서 돌아온 대답들은 거의 이런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말들이 이어지곤 했다. “글쎄, 그런 거 하면 좋은 것 같기는 한데, 꼭 나랏돈을 써가면서 해야 하는 것인가요?” 이런 시민들의 시니컬한 반응에 대하여 단지 문화에 대한 무지의 소치로 인식하는 것은 매우 교만한 시선이다. 적어도 2010년대 후반의 대다수 시민들은 이미 숱하게 많은 도시 재생을 둘러싼 이벤트들을 경험했거나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니컬함은 그런 기억들이 남긴 흔적에서 나오는 회의적인 질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변화했는가?”
담론의 장 역시 마찬가지인데 문화도시 이전에 도시를 포함한 지역 일상의 문화성에 대한 성찰이 과연 얼마나 논의되고 있는가? 과연 이것들이 문화도시를 둘러싼 정책과 사업 입안에 얼마나 투영되고 있는가? 꼬리를 무는 근본적 질문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약간 교과서적인 질문을 추가하자면 문화도시 전략의 이론적 토대가 근대적 합리성에 따라 작동하던 근대 산업도시의 한계라는 지점에서 도시의 문화적 자산의 활용을 통해, 혹은 도시 자원의 문화적 재구성을 통해 포스트 근대 도시의 위기 국면을 돌파하고 저성장구조에서의 지속가능한 공생의 구조를 만들어보자는 것인데 과연 한국의 도시나 지역이 근대적 합리성을 가진 공간이어왔는가에 대한 질문에도 직면하게 된다. 동원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의 참여가 가능한 근대적 시민 역량이 길러져왔는가에 대한 질문도 마찬가지다. 관과 자본에 의한 수용과 개발 대상으로서의 일방향성에 길들여져온 한국사회에 서구의 문화도시 전략이 함의하고 있는 포스트 근대 지향이 어우러지는 도시의 상을 형성해 낼 수 있을까? 그래서 결론적으로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문화도시, 아니 도시와 지역에서의 문화적 일상 구조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 문화도시를 포함한 도시의 문화정책에 대한 질문들은 이후의 연재에서 여러 분야 전문가들과 현장의 숙고를 통해 풀어보기로 하고 질문을 던지는 서장 격인 이번 호에서는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한 짧은 고민들을 던져보고자 한다.
문화적 개인의 재발견으로서의 문화도시 : <테이킹 우드스탁>(이안 감독, 2009)을 떠올리며
문화도시로 가는 경로는 다양하다고 한다. 지역이 보유하고 있는 역사적 문화경관에서 출발할 수도 있고 지역이 배출한 예술인과 콘텐츠가 될 수도 있다. 반드시 전통적인 역사문화자원이나 예술자원이 없다고 하더라도 문화예술 공공시설이나 공공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구성될 수도 있다. 혹은 그 어느 것 하나 없다고 하더라도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협력적인 활동과 네트워크의 문화적 성격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사실 문화도시를 만드는 동력은 콘텐츠의 문화적 성격 못지않게 그것이 지역을 재구성하고 자원을 활용하는 방식에서 문화적 측면과 상호작용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그런 힘이 만들었던 기적은 문화도시란 건조한 정책 용어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인간이 살아가며 도시와 지역을 구성해가는 과정에서 문화의 힘이 작동하는 역사는 문화도시란 용어 등장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여기서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발을 둘러싼 영화 한편을 살펴보자.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20세기 대중음악 사상 가장 성공적인 축제로 기억된다. 1969년 8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 동안 미국 뉴욕 주의 베델 평원에서 열린 이 축제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이란 이름으로 열렸지만 정작 우드스탁에서 열리지 못했다. 본래 포크의 전설 밥 딜런의 고향인 우드스탁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보수적인 지역 주민들과 행정 당국이 페스티벌 개최와 함께 몰려들 히피들에 대한 우려로 인해 행사 개최를 불허했기 때문이다. 이안 감독의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2009)은 바로 우드스탁 페스티벌 개최가 불허되었던 시점에서 인근의 퇴락해가는 시골마을인 베델 지역의 성소수자 젊은이 엘리엇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의 부모가 운영하던 모텔 역시 운영난과 은행 부채로 인해 문 닫기 직전이었다. 엘리엇은 늙고 무력해져가는 부모들을 대신하여 지역의 주민자치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은행의 채무 상환 압력, 전망 없는 지역에서 무력감에 젖어있다. 그런 그에게 우드스탁 페스티벌 개최 불허라는 소식은 하나의 탈출구로 다가온다. 그는 페스티벌 기획자들에게 자신의 지역을 프로모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행사를 불허한 우드스탁 주민들 못지않게 보수적인, “마약쟁이” 히피들을 혐오하는 지역민들을 설득한 끝에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지역에 유치한다.
갑작스럽게 장소가 바뀌어 재개된 축제는 면밀한 기획인나 준비가 부족했다. 본래 유료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엄청나게 쏟아진 관객들로 인해 입장통제는 초반부터 불가능했고 그 바람에 행사 의도와 무관하게 무료행사로 진행된다. 식음료 부족, 화장실 부족, 숙소 부족은 심각한 수준이었고 행사장으로 가는 도로 자체가 비좁아 엄청난 교통체증을 유발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하던 마을 베델에 들이닥친 50만 명 이상의 군중은 지역을 들뜨게 만들었고 처음에 행사에 부정적이었던 지역민들마저도 행사의 일원으로 서서히 흡수되어간다. 여기까지만보면 전형적인 헐리우드식 성공담이지만 감독은 우드스탁의 신화를 단순한 성공담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영화는 지미 핸드릭스가 기타를 불태우는 (실제 당시 전설적인 기타화형식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우드스탁의 무대를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화려한 무대 자체를 보여주지 않고 너른 평원 저 멀리 펼쳐진 화려한 무대의 후광을 아주 희미한 배경으로 놓고 아주 잔잔한 파장처럼 퍼져가는 엘리엇과 그의 부모들, 지역민들의 심리적 변화를 보여준다. 하루 이틀 저녁의 기적 같은 축제의 환희가 지역민들의 지난한 일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엄연한 진실을 보여주는 한편으로, 그러나 거기서 시작된 작은 물결들이 무기력에 빠져 있던 지역민들의 삶의 태도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는 우드스탁의 관찰자인 엘리엇이 성공적인 문화기획자로 거듭나는 헐리우드식 해피엔딩이 아닌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향해 떠나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은 문화적 이벤트가 지역의 일상에 끼치는 영향을 실화를 통해 살펴보면서도 축제의 가시적 성과를 전시하는 대신 여기에 관계맺은 개개인들의 변화를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삶에 솔직해지며 주체적 삶을 찾아떠나는 주인공 엘리엇 뿐만 아니라 죽은 듯 살아가다가 일평생 처음 살아있는 삶을 맛보는 그의 부친 등 문화적 사건은 일상의 내면을 다양하게 변화시킨다. 문화와 일상이 만나는 지점에서의 진정성의 귀결은 결국은 일상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그 일상에 속해있던 개인들의 정체성이 그 체험을 통해 어떻게 문화적으로 재주체화 되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문화도시로 가는 길에 대한 질문은, 결국 도시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문화적 주체로 스스로를 재발견할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테이킹 우드스탁>이 보여주는 국면들은 그런 면에서 현재의 제도화 되어가고 있는 문화도시가 겪고 있는 난점의 실마리로 찾아들어가는 인상적인 이미지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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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신규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겸임교수.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문화예술분야에서 발을 들여놓았으며 창작자, 기획자, 정책활동가 등 깊이 없이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았다. 최근에는 문화정책(제도) 연구와 문화 연구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작업들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관심 있는 분야는 국민국가 성립 과정에서의 문화적 제도화의 문제, 노동자 문화정체성에 대한 비전형적인 방향에서의 탐색 등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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