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기획연재_ 도시와 문화정책⑤] 한국의 도시는 주술로부터 해방되었는가

CP_NET 2019. 10. 1. 18:47

 

 

1933년 나치당의 선거 승리로 수상으로 취임한 히틀러는 1937년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와 함께 제국수도 게르마니아를 구상한다. 슈페어는 32세의 젊은 나이로 제국수도 건축 총감독관에 임명되었고, 18만 명을 수용하는 국민대의회당, 파리 개선문에 10배가 큰 개선문을 포함해 제국 시민들을 위한 완벽한 도시를 구상했다. 나치는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강력한 국가(정치)권력으로 국민생활을 통제하기를 원했고, ‘게르마니아는 이에 부합하는 도시였다. 2019년 한국에서 히틀러와 슈페어가 강제소환됐다. 이유는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와 함께 수도 서울을 건설한 건축가 김수근을 변론하기 위해서다.

 

김수근은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사장으로 5.16혁명광장이 있는 여의도 개발에서 독재정권의 폭압의 산실 남영동 대공분실까지 설계한 인물이다.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은 죽은 건축가를 위한 변론이라는 신문기고(중앙일보, 2019. 08. 30.)에서 나치는 지금 보면 광기지만 당시에는 열기였다라고 표현하며, “건축의 실천은 항상 자본을, 때로 권력을 필요로 하고, “김수근은 능력을 갖추고 기회를 잡은 걸출한 건축가일 뿐이라고 변론한다. 그리고 이 글은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닌 대한민국을 지금 채우고 있는 매캐한 기운이 광기인지 열기인지 모를 일이다. 광장에 세운 건축가는 무슨 죄를 지은 걸까로 끝을 맺는다. 마지막 문장은 시간적으로 지금과 장소적으로 광장을 지칭하며 건축가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이 글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당선안이 발표되고, 이미 큰 그림이 결정된 승효상 안이라는 비판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시기에 쓰여 졌기 때문에 건축가 승효상을 위한 변론으로 읽히기도 한다.

 

승효상은 서울시 총괄건축가였고, ‘국가정책위원회 위원장으로 광화문광장 기획에서 심사까지를 맡았다. 승효상이 현재 광화문광장(2009년 조성)중앙분리대라 비판하며 제시했던 안과 발표된 당선안은 실제로 유사했다. 중앙정부와 도시(지방)정부는 한명의 건축가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속전속결로 기획하고 안을 마련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장은 주권자인 시민이 권력을 행사하고 의사를 피력하는 열린 공간이며 민주주의 도시공간의 상징이다. 하지만 새로 만들어진지 10년 만에 시민들과의 소통도 없이 시위 따위나 하는 공간은 안 된다고 말하며, ‘광장이 아닌 관주도의 공원을 만들려 한다. 이런 일련의 사건은 2019년 한국의 도시에 대한 인식과 도시를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사물을 공중에 띄우는 주문

 

나치의 전체주의를 경험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1944계몽의 변증법에서 "왜 인간은 진정으로 인간적인 상태로 진입하지 않고 새로운 야만상태로 빠져버렸는가"라고 계몽된 사회에 되묻는다. 2019년 한국사회에도 되묻는다. 현재 한국은 광화문광장을 포함한 모든 도시정책은 도시재생으로 수렴되고 있다. ‘도시재생은 정부가 세상 모든 문제를 단기에 해결해 주는 주문(呪文)’처럼 읽힌다. 정부는 도시재생을 어떤 주문으로 쓰고 있는 걸까.

 

도시재생은 마법사가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우면 되는 것이 아니다. 마법도 정확한 주문과 발음, 동작을 배우고 연습해야만 온전히 발휘된다. 영화 <해리포터>에서는 호그와트 마법학교는 만11세에서 18세까지 마법을 가르치는 7학년제 교육기관이다. 이 학교는 호그와트 익스프레스를 타고 간다. ‘호그와트 익스프레스의 시작점은 킹스크로스 역(King's Cross railway station) 93/4 승강장이이다. 이 승강장은 머글에게는 통과가 불가능한 벽일 뿐이고, 보이지도 않는다. 이 킹스크로스 역은 1852년 런던 북부에 개설된 실제 존재하는 역이다. 영국의 산업혁명과 함께 유럽의 교통과 산업의 중심지로 발달했으나, 기존 제조·물류업이 쇠퇴하면서 주변지역과 대규모 철도부지 또한 쇠퇴하고 버려졌다. 이렇게 100년이 훌쩍 넘은 1980년에는 슬럼화되어 빈민촌으로 낙후되었고, 이에 재개발사업 대상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2008년부터 순차적으로 개발을 시작했다. 옛것과 새것을 조화롭게 만들어 근대의 문화적 가치를 살리고 원주민들의 거주를 보장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도시재생의 우수사례가 알려졌다. 이곳은 한국 도시재생 전문가와 공무원들에게도 선진지견학 필수코스 중 한곳이 되었다. 이들에게는 93/4 승강장이 보일까.

 

킹스크로스 도시재생 사업은 부동산전문개발업체(Argent(Property Developer)LLP)의 달랑 한 페이지짜리 제안서가 선정되면서 시작된다. 제안서 내용은 이렇다. “그 어느 누구도 이렇게 장기간 진행될 복잡성이 높은 사업에 완벽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계획 대신 모든 이해관계자가 재생사업 계획에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적인 프로세스를 어떻게 진행할지 원칙과 과정을 제시한다.” 이후 6년 동안 353(주당 1회 이상)의 공청회·워크숍·이벤트 등 지역민과의 다양한 소통과정을 통해 개발의 합의내용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10개의 광장, 저렴한 임대주택 공급, 전체 부지의 20%는 다음세대를 위해 남겨두는 등 공공성을 확보하고, 지역민이 계획의 주체로 참여하는 과정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사업 기간은 20년이 목표다.

 

한국의 도시재생 전문가와 공무원들은 선진지 견학을 통해 예쁜 앵커시설을 만들 수 있을 모르지만, 무엇보다 5년 만에 모든 것을 완성해야 하는 한국에서는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문제를 지적해도 제도와 정책은 거의 변화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는 도시의 주인(주체)이 아니거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사이렌의 유혹의 바다를 무사히 통과한 신화 속의 선원들과 같다. 선원들은 사이렌의 유혹의 노래를 듣지 못하게 밀랍으로 귀를 막은 채 노만 저으며 건넜다. 이에 반해 이 바다를 건너는 방법을 기획한 오디세우스는 돛대에 몸을 묶은 채 사이렌의 유혹의 노래를 들으며 지났다. 우리는 스스로 아무도 지나지 못한 사이렌의 유혹의 바다를 지나야 한다. 선원이 아니라 오디세우스처럼 말이다.

 

 

레질리먼시! 상대의 마음을 읽는 주문

 

도시는 언제나 지속적인 개선을 필요로 한다. 도시의 주인인 시민의 필요이고, 언제나 그들을 스스로 개선하며 살아왔다. 이것이 도시이고, 문화이고, 공동체다. 전체주의 도시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나, 산업혁명이나 압축성장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지속성을 잃은 가장 큰 이유는 시민의 필요가 아니라 일부 권력의 필요로 빠르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발생된 도시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것이 도시재생이다. 따라서 앞서 예를 든 킹스크로스 도시재생처럼 물리적 환경 개선에 앞서 시민의 주체적 참여가 중요한 것이다. 도시재생은 시설이나 건설정책이 아닌 시민의 도시에 대한 권리운동이다. 도시재생의 좋은 사례 지역들이 오랜 도시사회운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유다. 또한 도시전문가 제인 제이콥스는 1961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라는 책에서 "도시 다양성은 대부분 크게 다른 생각과 목적을 가진 믿을 수 없이 많은 각기 다른 사람들과 민간 조직들이 공공기능의 공적인 틀 바깥에서 계획하고 고안하면서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도시는 서구사회의 도시와는 차이가 있다. 서울로 보자면, 군사독재정권은 인구 500만 도시를 목표로 건설을 시작했고, 관주도로 산을 깍고, 개천을 덮어 도로를 건설하고, 아파트를 지었다. 기존의 주거지는 강제이주와 강제철거로 파괴되어 아파트가 되었다. 1980년대 인구는 1,000만 명을 돌파하고, 불과 60년도 안 되서 절반 이상의 주택이 아파트로 획일화되었다. 서울은 관주도 개발 일변도로 빠르게 만들어졌다. 수십 년간 관주도로 이루어진 도시정책은 시민들에게서 도시를 공공이 만들어주는 시혜적 대상으로 타자화시켰다. 도시정책은 노후되고, 낙후된 지역의 필요를 보완·개선하기 위한 주거환경정비사업으로 시작했지만, 차츰 주거환경정비사업전면재개발로 획일화 되었다. ‘도시재생은 기존의 주거환경정비사업의 변형에 가깝다. ‘전면재개발도시재생의 태생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둘 모두 관주도, 시설 중심의 사업으로 진행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재개발도시재생은 현재 극단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인식된다. 그 사이 시민의 역량이 아니라 관료화만 축적되었다.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운동’, 박근혜 정권의 도시 취약지역 개조사업’, 문재인 정권의 도시재생사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현재 도시재생은 일자리거점 육성형’, ‘생활중심지 특화형’, ‘주거지 재생형등의 중앙정부의 법정계획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내용과 규모, 예산 등이 정해져 있고 이에 따라 동일하게 전국으로 확산된다. 더불어 도시재생이 추구하는 가치는 분권과 협치,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안전한 정주환경, 공동체 회복, 사회통합 등을 내걸며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은 환상이 담겨있다. 이것이 법적으로 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의 추구일지 모르지만, 특정한 가치를 배제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런 지적을 보완한 정책이 문화적 도시재생이나 문화도시. 그럼에도 이 정책들이 유효할 수 없는 이유는 여전히 중앙정부 주도의 기획과 몇몇 전문가의 기획에 근간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도시가 동일한 답을 가질 수 없음에도 이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에 빠져있는 것이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시민의 마음을 읽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면, (책임과 권리를 행사하는) 시민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설사 현재 시행되는 정량적 평가기준으로는 실패라 하더라도 이것이 시민들에게는 성공적인 도시재생일 것이다.

 

 

프로테고! 마법을 반사하는 방어 주문

 

공동체, 문화, 도시는 정부의 계획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시민들 스스로 오랜 시간동안의 정치적 축적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 기획은 시민들의 필요에 근간하고, 시민 스스로 그 기획을 발현할 때 도시는 지속된다. 따라서 5년 동안 전국이 동일하게 공동체, 문화, 도시를 만들고 재생하겠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선한 권력자가 선한 의지로 선한 세상을 만드는 일 또한 망상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런 주술을 시민들에게 걸겠다면, 시민들은 그들에게 프로테고!’ 주문을 걸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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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황

사단법인 문화도시연구소 소장

 

도시를 문화집적체라 생각하고, 각 시대의 문화가 새겨진 공간과 도시를 계보학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이며, 이를 기초로 공간을 설계하는 건축가다. 근대 서울의 적응과정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현재는 문화도시연구소에서 사회적소외계층의 건축서비스를 제공하는 집짓기’, 아동청소년 건축교육프로그램인 ‘K12 건축학교’, 장소인문학적 도시건축연구 등을 하고 있다. 더불어 도시사회운동이며, 커먼즈 운동인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의 공동대표, 지역 문화예술 커뮤니티인 공유성북원탁회의의 공동위원장(2017)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