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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칼럼: 사달이다 ⑤] 박정희 아닌 듯한 박정희 동상의 욕망, 누구의 것인가 (한상훈)

CP_NET 2025. 1. 13. 15:50
편집자 주: 정책과 정책을 실행하는 행정에 대한 현장의 비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 과정 거쳐 수립된 정책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이슈들이 발생하게 마련입니다. 그만큼 현장은 역동적이며, 그 과정에서 정책과 행정은 회색을 벗고 현실에서 작동합니다. 그러나 중앙정부 정책부터 기초문화재단 불통까지 그야말로 사건, 사고라 할 일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사건들은 익숙하다면 익숙하지만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문제적입니다. [문화정책리뷰]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행, 불통의 사건들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와 진단을 게재합니다.

① 문화도시에서 거버넌스는 왜 실패하는가? - 신뢰자산을 허무는 조급함과 얕음에 대하여(박진명)
② 문화예술의 마력, 참가자가 체험한 영도문화도시 사업 (하세봉)
③ 고양시 공립작은도서관 폐관 위기가 보여주는 것들 (박미숙)
④ 존재 이유를 잊어가는 지역문화재단, 살아 있기 위해 독립하라- 성북구청장 이승로-성북문화재단 서노원 대표 블랙리스트 사태에 비추어(이채원)

 

 

 

20241223일 이른 오후, 동대구역 앞 광장. 수천 명의 시민들이 두 진영으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다. 육탄전과 고성, 탄식, 환호가 오가는 첨예한 전선이다. 4개월 전 표지판 설치부터 시작된 치열한 나날을 거쳐 갈등이 점점 고조되던 순간, 드디어 베일이 벗겨졌다. 드디어 박정희 동상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팽팽하던 긴장과는 전혀 다른 웅성거림이 퍼기지 시작한 것이다.

 

저거 뭐꼬? 저게 박정희가? 저게?”

진짜, 한 개도 안 닮았는데.”

저거 박정희가 아이라 홍준표 동상 아이가?”

나는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 닮은 거처럼 보이는데?”

안 닮은 건 둘째치고 와 저래 얼빵해 보이노?”

“볏단들고 앞으로 확 자빠질거 같다. 불안하네.”

 

높이가 3미터나 되지만 이상스레 똥짤막해 보이는 동상의 뒷전에서 짧은 순간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맴돌았다. 어딘가에서는 킥킥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도 들렸고, 심지어 동상 설치를 찬성하는 쪽에서도 눈살을 찌뿌리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동대구역 박정희 동상 제막식이라는 연말쇼쇼쇼는 동상의 어색한 미소만큼이나 요상한 뒷맛을 남겼다.

 

 

충성의 증표? 일 잘하는 정치인의 수확물?

 

제막식 이후 몇 주가 지나도 박정희가 아닌 듯한 박정희 동상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돈을 벌려고 동상은 만들었지만 가책을 느낀 조각가의 양심의 항명이라는 의견부터 홍준표 본인의 얼굴과 닮게 만들라는 의도적 의뢰가 있었다는 썰도 떠돈다. 실제로 동상을 촬영한 사진에 안경을 그려 넣으니 심하게 닮았다. 밀짚모자는 홍준표시장이 경남도지사시절 수해현장을 찾아 장화논란을 불러일으킨 그때를 모티브로 했다는 의심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 남포시의 김일성 옆에서 벼를 든 여성상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소문이 떠돌더니 급기야 국가보훈처에 박정희 동상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려달라는 민원까지 제기되었다.

 


 

 

본디 동상이란 위인을 기념하거나 신이나 성인을 기리기 위해 세워지지만 독재자의 뒤틀린 사상을 일방적으로 선전하기 위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사후에 세워진 동상은 당사자보다는 산자, 아니 세운 자의 욕망이 반영된 산물이기도 하다. ‘박정희를 닮지 않은 박정희 동상또는 홍준표를 닮은 박정희 동상혹은 박정희라 적힌 홍준표 동상은 세운 자 홍준표의 적극적 욕망을 오롯이 투사하고 있는 오묘한 흉물로 자리매김하였다. 국내에 박정희 동상은 모두 열 개, 그중 여덟이 대구경북에 세워져 있다.. 그 동상들은 어떠한 욕망을 기반으로 세워진 것일까?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최근 수개월간 박정희 동상이 빠르게 증식하고 있다. 박정희 관광지를 자처한 구미를 시작으로, 새마을운동 본산을 홍보하는 청도는 물론 안동, 경주, 포항, 경산에 수개월 동안 경쟁적으로 박정희 동상이 세워졌고, 더 세워질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시대착오적 계엄환란 상황에 발맞춤 하는 것 같아 섬뜩하다. 시간을 거슬러 달리는 박정희 동상세우기 광풍은 얼마 뒤엔 시 단위가 아니라 구군단위로 옮아갈 가능성도 열려있다. 열 개가 아니라 수백 개, 수천 개가 세워지고 또 세워지고 작은 인형으로 만들어져 어르신들의 화장대에 올려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반인반신 박정희 토테미즘(Totemism)’의 저잣거리 노인들의 입을 타고 전파되던 시대에서 우뚝 솟은 동상들로 가시화되는 역행의 시대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쯤 되니 아직 박정희 동상을 세우지 못한 경북지역 지자체장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박정희 동상이 극우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충성의 증표 혹은 일 잘하는 자의 수확물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동상 정도는 번듯하게 세워놓는 것이 성공한 정치인의 기준선이 될지도 모른다. 시간을 거스르는 공간, 대구경북에서는.

 

지난달 25일에는 구미시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가수 이승환의 콘서트를 정치적 발언금지를 골자로 한 서약서에 날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취소시켰다. 공연취소 사유를 밝히는 자리에는 문화회관담당자나 문화재단, 문화예술관련부서가 아니라 구미시장이 직접 나섰다. 하루 뒤인 26일에는 구미시의원과 경북도의원 20명이 이승환 구미 콘서트 대관 취소 결정지지’ 성명을’ 냈다. 이처럼 대구경북의 정치인들의 시선은 시민들을 향하고 있지 않다. 대구경북은 서서히 극우의 게토로 변하고 있다. 새삼스런 이야기라고 하지도 모르겠다. 이미 대구경북은 그런 곳이 아니었냐고? 무슨 소리, 10년 전의 대구경북과 지금의 대구경북은 완전히 다르다.

 

 

대구 밖의 욕망이 대구에서 들끓는

 

 

필자가 기억하는 1990년대~2010년대 대구경북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을지언정 문화예술 표현에 대한 자유, 다양성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만한 곳은 아니었다. 상징적인 장면으로 2000, 삼성이 상용차사업을 포기하자 삼성이 대구를 버렸다며 배은망덕한 기업의 버릇을 고치자며 ‘반삼성’‘반삼성’ 운동이 들불처럼 타올라 불매와 규탄집회가 이어졌다. 삼성의 전단지를 돌리던 아르바이트 청년들에게 기성세대가 자존심을 자키라며 호통치기까지 했었던 시민들의 단결된 반기업정서가 생생하다.

 

2009,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4대강사업 반대집회에 참여한 시민사회문화단체의 보조금을 차단하는 1차 블랙리스트 작업이 시작되던 때 필자가 일한 단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대구문화재단의 공모사업에 1건 이상씩 선정된 상태였다. 정부지침에 따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필자가 근무했던 단체에 공문을 보내 집회미참여 확인서를 제출하라는 탄압을 가차 없이 가했던 반면 대구문화재단의 경우 실무자들이 잠깐의 내부논의를 거쳐 공모사업이라는 특성을 고려하여 그대로 지원하기로 결정했던 기억이 난다. 동료예술가들에 대한 이해와 예술행정이 지켜야 할 자존심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보다 더 높았던 시기다. 대구경북의 주류사회는 자칭타칭 보수의 본산이었지만 자신들에게 반하는 활동을 직접적으로 탄압하거나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공격할 정도로 경박하거나 조급하지 않았다.

 

품위 있는(?) 보수도시로서의 면모를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은 박근혜 탄핵 국면에 이를 극렬히 저항하던 극렬보수주의자들이 관광버스 수십대를 동원해 대구로 빈집털이하듯 진격하는 장면에서부터이다. 그들이 뿌린 악성씨앗이 또아리틀기 시작하자 대구는 들끓는 경박한 보수집회와 서명푯말, 사이비종교들의 선교활동 등 서울산() 오물들이 거리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고작 몇 년 사이에 대구의 공기가 확연하게 바뀌었음을 느낀다. 대구에 한번 오지도 않은 서울촌놈들이 인터넷에 배설하듯이 휘갈기던 악성 댓글들은 예언처럼 차츰 현실화되기 시작했고, 외부의 보수주의자들이 대구를 향해 바라던 표상들이 외려 대구 위에 서서히 덧칠되고 있다. 가세연의 사무실이 박근혜의 달성군 사저에 둥지를 틀었고, 홍준표는 윤석열의 망명지로 대구를 선택했다.

 

이제 극우파들은 대구경북의 정치적 게토화에 전력을 쏟아붓고 있다. 그들에게 박정희 동상은 소중한 상징물이고, 이를 지키고 증식시키는데 진심이다. 한파가 시작되었는데 공무원을 동원하여 동상 불침번을 세우고, 초소 설치까지 고려하고 있다. 영남대에 설치된 동상의 철거를 종용하는 기자회견 주최자에게는 단호한 압수수색으로 대응했다. 그들은 왜 이렇게 동상에 집착하는 것일까? 늙어 사그라지는 육신, 이제는 가치를 잃어버린 사상, 더 이상 설득되지 않은 주류세대를 향한 멸종위기에 처한 종들의 애처로운 투쟁이다. 대구경북은 극우파들의 게토이자 무덤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동상이 무너진 이곳에서, 묘비도 없는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게릴라가 아니라 개척자가 되어

 

그러나 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정해진 시간들을 고스란히 걷게 하고 싶지 않다. 단단하게 구조화된 것으로 보였던 대구 주류사회가 서서히 무너지고 대구를 오해하고 대구 밖에서 존재하던 보수주의자들의 욕망이 대구를 재구성하는 과도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폭주하는 외부권력에 의해 대책 없이 엎치고 덮쳐서 덩치를 키운 뒤 피라미드식으로 재구축된 문화예술행정의 둔탁함을 향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소멸되고 있다는 공포감 속에서 대구라는 도시의 미래상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거대권력에 맞서는 게릴라가 아니라 자신이 살고 싶어 하는 땅을 일구는 개척자이다. 지방중소도시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존심과 영혼까지 바친 기존의 대구주류사회, 그 패배 단락에 곧 마침표가 찍히면, 그다음 장을 우리는 어떻게 써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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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훈. 본지 편집위원.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대구문화예술현장실무자정책네트워크 FLAT_PLACE 대표, 올스타일스트릿댄스팀 아트지 기획팀장,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 이사. 대구에서 나고 자란 지40년이 흘쩍 넘기고 있다. 어린 시절, 폐수가 잔뜩 방류된 신천에서 헤엄치다 나와 삐죽한 풀숲에 숨어 덜덜떨며 구워진 감자를 씹다가 문득 도시에서의 문화적 삶에 대해 얕은 고민을 시작했다. 여태 숱한 의문들을 잡다한 활동을 통해 불규칙하게 퇴적시키며 살아왔고, 아직 철들지 않은 채 거리문화와 다원예술에 줄창 참견하고 있다. 자칭 ‘문화활약(?)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