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정책과 정책을 실행하는 행정에 대한 현장의 비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 과정 거쳐 수립된 정책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이슈들이 발생하게 마련입니다. 그만큼 현장은 역동적이며, 그 과정에서 정책과 행정은 회색을 벗고 현실에서 작동합니다. 그러나 중앙정부 정책부터 기초문화재단 불통까지 그야말로 사건, 사고라 할 일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사건들은 익숙하다면 익숙하지만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문제적입니다. [문화정책리뷰]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행, 불통의 사건들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와 진단을 게재합니다.
① 문화도시에서 거버넌스는 왜 실패하는가? - 신뢰자산을 허무는 조급함과 얕음에 대하여(박진명)
② 문화예술의 마력, 참가자가 체험한 영도문화도시 사업 (하세봉)
③ 고양시 공립작은도서관 폐관 위기가 보여주는 것들 (박미숙)
12.3 내란 사태로 온 나라가 분노와 혼란에 휩싸였고, 마침내 대한민국은 시민들의 민주적 회복력으로 12일 만에 탄핵을 가결시켰다. 그 사이 서울시의회는 시민의 방청을 거부하는 반민주적 행태를 보였다. 온 나라가 여의도에 모인 틈에 지자체는 민주주의를 더더욱 바로 세우기는커녕 몰래 권력을 휘둘렀다. 이제 내란사태로 인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지자체의 문제들을 꺼내놓아야 할 때이다.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때 빼놓아서는 안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자체는 국가의 범죄를 철저하게 재현한다. 필자가 지난 5월부터 대항하고 있는 <성북구청장 이승로-성북문화재단 서노원 대표의 블랙리스트 사태>는 마치 12.3 내란 사태의 예고편과 같았고, 이명박-박근혜 블랙리스트의 후속작과 같았다.
“재단은 구청의 출연기관이므로, 구청을 불편하게 하는 단체와는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이 발언은 2024년 4월 30일 성북문화재단 서노원 대표가 성북의 지역문화네트워크인 공유성북원탁회의(이하 공탁)와의 간담회에서 했던 발언이다. 필자는 이 한 문장에 들어있는 문제점을 두 가지 질문을 통해 풀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질문, 서노원 대표는 왜 공탁을 ‘구청을 불편하게 하는 단체’로 규정했을까?
공탁은 하나의 고정된 예술 단체가 아닌 단지 단체 톡 방을 중심으로 한 성북의 주민, 문화예술인, 성북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네트워크이다. 그래서 수익사업뿐만 아니라 네트워킹 외에는 고유의 사업을 하지 않는다. 대신 공탁은 지역 안에서 연대가 필요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공탁에 도움을 요청할 때 그 일에 함께하며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낼 뿐이다. 이러한 공탁이 구청을 불편하게 할 일이 대체 무엇인지 기억을 되짚어보자.
현 성북구청장 이승로가 초선으로 당선되었던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공탁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던 예술가 B는 이승로 구청장의 당선과 함께 구청장을 풍자하는 스티커를 붙인 적이 있었으며, 구청장은 B를 모욕죄로 고소했다. 그리고 해당 사건은 혐의없음으로 종결되었다. 또 이런 일이 있었다. 2022년, 정릉종합사회복지관의 노동조합은 성북구청장에게 당시 위탁법인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를 위해 구청 앞 천막농성을 약 한 달간 이어갔다. 공탁은 이에 적극 연대하였다. 당시 천막농성이 시작되는 날, 구청에 천막을 펴자 청원경찰들에 의한 폭력사태가 일어났고, 공탁 운영위원 중 몇몇은 실제로 상해를 입었다. 해당 사건은 결국 노동조합의 입장이 수용되며 종결됐다.
그리고 2024년 4월 27일 공탁과의 간담회가 있기 약 한달 전, 상호인사를 위해, 공탁 공동 운영위원장 두 명과 사무국장, 서노원 대표이사, 문화사업부장, 지역문화팀장이 함께한 오찬 자리에서 서노원 대표는 공탁이 주최한 총선 정책토론회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공탁은 왜 정치를 합니까?” 그리고 간담회의 예고편처럼 같은 말을 했다. “계속 정치를 하면 구청을 불편하게 하니까 함께 일을 할 수 없어요.”
공탁이 유권자로서 지역에서 잘 살기 위해 여타의 시민사회와 함께 지역정책에 관심을 가진 것, 그리고 지역 문제에 대해 민주적으로 연대한 것들이 구청장의 심기를 건드린 것일까? 그래서 공탁은 구청을 불편하게 하는 단체가 된 것일까?
공탁과의 간담회가 있은 후, 5월 8일, 적치되어 있던 ‘불편함’이 가시화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동네예술광부전 참여 작가 배제 사태>(1)이다. <동네예술광부전>은 성북구 미아리고개 하부에 있는 도시재생 공간인 미인도(2)에서 진행하는 공동기획전시이다. 미인도는 초기 공탁의 워킹그룹인 미아리고개 예술마을 만들기 워킹그룹(이하 미예마)에 의해 주민 주도로 조성된 공간이고, 미예마는 2017년 협동조합 고개엔마을로 조직화하여 성북문화재단과 미인도 공간에 대해 공동운영협약을 맺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미인도라는 장소성을 기반으로 성북문화재단과 협동조합 고개엔마을이 공동기획하던 전시 <동네예술광부전>은 이미 2024년 2월부터 재단 담당자와 추진에 관해 논의하였고, 작가진은 이미 구성되어 창작 중에 있었으며, 전시 오픈까지는 딱 한 달이 남은 시점이었다. 그러나 담당 문화사업부장은 서노원 대표의 지시이므로 참여 작가 두 명은 계약에서 배제하겠다고 통보하였다. 두 명 중 한 명은 전시의 기획자였고, 한 명은 앞서 언급한 예술가 B였다. 이에 대해 협동조합 고개엔마을이 공개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토론회를 하며 비판하자, 6월 13일 곧바로 미인도 공동운영협약을 파기하였다. 이후 <미인도 보복감사>(3) <천장산우화예술제 직원인질 주민협박>(4) <평화시위 폭력제지 사태>(5) 등 협동조합고개엔마을과 공탁을 비롯한 시민사회가 목소리를 낼 때마다 서노원 대표는 행정력과 무력을 동원하여 이를 저지해왔다.
두 번째 질문, 재단은 왜 구청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가?
지역문화재단은 민법에 기초해 생겨난 법인이다. 지역문화재단은 기존의 행정체계에서 소화해 내기 어려운 ‘문화’라는 특수한 영역을 전문성 있고 유연한 방식으로 다루기 위한 대안으로 태어난 것이므로, 자율성과 독립성이 목표이자 기반이다. 이러한 기반은 재정독립성과 인사권으로부터 나온다. 이 중 인사권에 관해서 성북문화재단의 경우를 보자.
첫 번째로, 가장 최근 성북문화재단의 이사회 구성을 들여다보자. 10명 중 6명이 성북구청의 유관한 인사들이다. 성북구청 직원(전직 1명 포함)이 50%이며, 이 중 감사는 성북구청의 감사담당관이다. 성북구청 직원이 아닌 다섯 명 중 한 명은 현 성북구립여성합창단의 지휘자로, 그의 인사권은 당연히 구청에서 가지고 있다. 대표이사의 인사권은 이사회에 있다. 이사회 중 절반 이상이 구청의 유관자라면 성북구청에게 대표이사의 인사권이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이러한 구조 아래 성북문화재단과 성북구청 문화체육과의 차별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이것은 재단의 존재이유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조례를 들여다보자. ‘서울특별시 성북구 문화재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의 제8조(임원 및 임기)에서는 구청장에게 이사장 임명, 대표이사 임명, 선임직 이사 임명, 대표이사 연임의 결정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사회의 거의 모든 결정 권한을 구청장이 가져가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표이사 채용공고를 들여다보자. 2023년 7월 25일 공지된 대표이사 채용 공고에 문화예술에 대한 전문성을 증명할 수 있는 자격요건이 아무것도 없이 포괄적 조건만 나열되어 있다. 구체적인 경력 요건이 명시되어 있는 타 문화재단들의 대표이사 공개모집 공고와는 사뭇 다르다.
1990년대 후반, 예술기관의 법인화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있었지만, 법인화 찬성의 주된 논지는 문화예술의 전문성, 자율성, 독립성 확보였다.(6) 그런데 조례, 이사회, 채용공고라는 이 세 가지 단서를 엮다보면 도대체 성북문화재단의 전문성, 자율성, 독립성을 어떤 장치로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지자체장이 마음만 먹으면 문화예술에 대한 전문성과는 무관한 대표이사를 임명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구청장의 정치적 의지를 휘두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지 않은가?
성북의 시민사회가 이승로-서노원 사태를 ‘블랙리스트’라고 호명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구청장은 성북문화재단의 인사에 과도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이러한 영향력 아래에 있는 대표이사가 구청(장)을 불편하게 하는 단체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발언하고, 예술검열의 차원을 넘어 민주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모든 시민을 블랙리스트로 규정하고 시민의 범위에서 배제하고 있다. 이는 지역문화재단이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가 또 우후죽순으로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본연의 문제와 복합적으로 얽혀 하나의 권력을 재창출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위험신호이다.
12.3 내란 사태를 통해 우리는 폭거하는 권력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사의 위험성을 목도했다. 결국 시민들의 결집, 그에 따른 범야당의 정무적 판단으로 일단은 진압했지만, 우리 사회에는 빛을 잃은 대통령제에 대한 고민이 남아있다. 권력분립의 원칙은 제왕적 권력을 자임한 자에 의해 훼손당했으며, 그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폭거만으로 이루어 진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지역문화재단은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은 성북 시민들의 결집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나, 시민력, 정치, 운동과 더불어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이 글에 나열한 가시적 문제 지점들부터 바꿀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자체 재정을 갉아먹는 관료화된 기관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지역문화재단에게 더 남아있는 존재의 이유는 없다.
1) 공유성북원탁회의, (2024.11.6.), [이승로-서노원 사태] 동네예술광부전 블랙리스트 사태, 공유성북원탁회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sbroundtable/223649377796
2) 공유성북원탁회의, (2024.11.6.), [미인도의 모든 것] 신윤복의 미인도 아니고요!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간, 미인도입니다. 공유성북원탁회의 블로그 : https://blog.naver.com/sbroundtable/223649973381
3) 협동조합 고개엔마을, (2024.07.29.), [공동성명]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성북문화재단에 대한 사유화와 행정 폭력 반복하는 서노원을 즉각 해임하라! : 성북문화재단 서노원 대표의 <미인도> 보복 감사 지시에 부쳐, 협동조합 고개엔마을 블로그, https://blog.naver.com/hillnvill/223528777612
4) 월장석친구들, (2024.09.19.), <성북문화재단 서노원 대표의 사과 요구에 대한 월장석친구들의 입장문>, 월장석친구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DAFQzMmSwHO/?igsh=MjlocXB0cHUyYmlp
5) 공유성북원탁회의, (2024.10.21.), [현장영상] 여성 1인 시위 참여자 둘러싸고 위협하는 성북문화재단 서노원 대표, 주민을 향한 폭력 방관하는 이승로 성북구청장, 공유성북원탁회의 유튜브 채널,
6) 한승준, 2011, 「예술 공공기관 법인화의 성과에 관한 시론적 연구 : 세종문화회관 법인화 사례를 중심으로」, 『행정논총』, 제 49권
이채원(홀연). 직책은 공유성북원탁회의·협동조합고개엔마을 사무국장, 직업은 기획자, 삶은 활동가, 취미는 예술가. 미인도라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활동을 하며 20대를 보냈고, 30대가 되자마자 내 삶의 정체성인 미인도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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