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정책과 정책을 실행하는 행정에 대한 현장의 비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 과정 거쳐 수립된 정책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이슈들이 발생하게 마련입니다. 그만큼 현장은 역동적이며, 그 과정에서 정책과 행정은 회색을 벗고 현실에서 작동합니다. 그러나 중앙정부 정책부터 기초문화재단 불통까지 그야말로 사건, 사고라 할 일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사건들은 익숙하다면 익숙하지만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문제적입니다. [문화정책리뷰]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행, 불통의 사건들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와 진단을 게재합니다.
① 문화도시에서 거버넌스는 왜 실패하는가? - 신뢰자산을 허무는 조급함과 얕음에 대하여(박진명)
② 문화예술의 마력, 참가자가 체험한 영도문화도시 사업 (하세봉)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이 있다. 작은도서관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가야 할 것 가운데 하나는 ‘작은도서관’이라는 개념은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은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 작은도서관 개념을 벤치마킹하는 사례도 있지만.)
이렇게 된 데는 긴 사연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공공도서관’은 시민계급과 함께 등장한다. 그전에는 왕이나 귀족, 종교인 같은 권력자만이 정보를 독점할 수 있던 것을 누구나 정보에 접근 가능하고 활용 가능하게 하자는 의미로 탄생한 것이 공공도서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일제 강점기에 ‘공공도서관’이 건립되기 시작했다. 조선 민중 누구나 정보를 취득하게 할 리 없었던 일제는 ‘공공도서관’을 일종의 성인 학교의 개념으로 활용했다.
그 뒤 전쟁과 독재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도서관은 제대로 된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 독서문화 공간, 커뮤니티 공간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는 다른 나라 도서관 문화와 달리 ‘공부하는 곳’, ‘조용히 해야 하는 곳’이라는 통념이 강하게 고착되어 있다. 70년대 농촌 계몽을 위한 마을문고 운동, 80년대 노동자를 위한 노동서원과 가장 많이 닮은 곳이 작은도서관일 것이다. 작은도서관은 90년대 말부터 ‘책 읽어주기’조차 할 수 없는 경직된 공공도서관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여성들이 동네마다 ‘민간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면서 그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2002년 TV프로그램이었던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가 주목받으면서 ‘기적의도서관’ 건립운동으로 이어졌고, 2006년에 처음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작은도서관 진흥팀’이 만들어지면서 작은도서관 관련 제도가 정비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방식인 민간이 먼저 시작하고 확산한 개념으로 정부가 작은도서관의 주요한 장점을 살려 제도를 만들고 진흥정책을 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90년대 말부터 창원에서 공립작은도서관을 설립 운영하기 시작했고, 2002년 부천에서 공립작은도서관을 대대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2008년 주택법에는 ‘500세대 이상 공동주택을 만들 때 작은도서관을 놀이터, 어린이집, 경로당과 더불어 필수시설로 지정하였고, 이후, 아파트 안에 사립작은도서관이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게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을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작은도서관 VS 공공도서관’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이는 작은도서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아니다. 작은도서관도 ‘공공도서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도서관법은 공공도서관, 대학도서관, 학교도서관, 전문도서관, 특수도서관. 이렇게 다섯 가지로 구분하고 있으며 공공도서관의 범주 안에 어린이도서관, 장애인도서관, 노인도서관, 다문화도서관, 작은도서관이 포함된다. 어린이도서관 등은 대상을 중심으로 분류한 개념이지만, 작은도서관은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주민의 참여와 자치를 기반으로 지역사회의 생활 친화적 도서관문화의 향상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작은도서관” (도서관법 제4조 1항)
긴 지면을 할애하여 작은도서관 역사를 나열한 것은 작은도서관이 경직된 우리나라 도서관 문화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으며 그러한 작은도서관 문화가 지역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살펴봐야 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2년 도서관법을 대대적으로 개정하면서 작은도서관을 ‘주민의 참여와 자치를 기반으로 지역사회의 생활 친화적 도서관문화의 향상’이라는 정의한 것은 작은도서관을 ‘작다’는 규모의 의미로만 해석하지 않고 ‘작은도서관’만의 고유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작은 도서관’으로 띄어 쓰지 않고 ‘작은도서관’이라 붙여 써서 고유명사화 한 것도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
고양시의 경우를 살펴보자. 고양시 작은도서관 또한 1990년대 말부터 민간에서 만들고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창원, 부천의 공립작은도서관 만들기 사례에 영향을 받은 시민단체 등의 ‘걸어서 5분 거리에 작은도서관을 만들자’는 운동으로 이어졌다. 2004년도부터 공립작은도서관을 운영하기 시작하여 16개소였던 것이 이번 시장이 취임한 지 2년 만에 11개소로 줄었고, 이번에 또 5개관을 폐관하겠다고 한 것이다.
갑자기 2년 만에 공립작은도서관을 줄줄이 폐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 고양시도서관센터가 내놓은 공립작은도서관 폐관 근거는 처음에는 ‘이용률 감소’와 시립도서관이 많아지면서 ‘서비스가 중복’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양시 공립작은도서관은 대출률, 이용률, 독서문화프로그램수, 동아리수 등이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돌고 있다. 폐관을 발표한 5개관의 경우 경기도 평가 등급 기준 A등급에 해당하는 도서관이 세 곳이다.
이후 고양시도서관센터는 보도자료에서 이용률 이야기는 빠지고 ‘예산의 효율성’을 앞세웠다. 공립작은도서관 10%이면 사립작은도서관을 더 많이 육성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서 공분을 샀다. 그동안 인건비 없이 사비를 들여 사립작은도서관을 운영해 왔던 사립작은도서관 사람들은 ‘우리의 노력을 공립작은도서관 폐관의 도구로 삼지 말라’고 시에 거세게 항의했다. 또한 시는 5천만 원 가까이 들여 연구용역한 ‘제3차 고양시도서관종합발전계획’에 따라 공립작은도서관을 폐관한다고 주장했지만, 연구보고서에서는 ‘작은도서관 정비가 필요하다’며 2024년~2025년에는 민관 협력과 역할재정립을, 2026년부터 수립된 계획에 따라 운영하라는 문구가 확인될 뿐이다.
10월 30일 고양시 홈페이지와 고양시도서관센터 홈페이지에는 ‘공식 입장문’이 실렸다. 폐관하려던 5개소 중 2개소는 아무 근거 없이 갑자기 다시 운영하겠다는 내용과 더불어 3개소 폐관 근거를 ‘서비스 중복’에 뒀다. ‘작은도서관은 시립도서관의 보조역할을 하는 곳이고 시립도서관이 20개나 되니 1~1.5km 거리에 있는 시립도서관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또한, ‘작은도서관도 이용하고 시립도서관도 이용하겠다’는 것은 중복서비스이니 정보소외지역에 있는 작은도서관을 지원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행정의 원칙이고, 상식이라 했다.
도서관법, 작은도서관진흥법, 고양시 작은도서관 관련 조례 등 어디에도 작은도서관이 시립도서관의 보조 역할을 한다는 조항은 없다. 거리 기준 또한 자의적이다. 2024년 공공도서관 건립운영매뉴얼에는 작은도서관 거리 기준은 500~750m로 나와 있다. 국가도시재생 기본방침에 따른 기초 생활 인프라 범위 및 국가적 최저 기준에도 작은도서관은 걸어서 10~15분 거리 내에 있어야 한다고 나온다. 고양시가 말하는 반경 1~1.5km 기준은 어떻게 산출된 것인가? 고양시는 아직 답을 하지 않고 있다.
‘소외지역 작은도서관에 집중한다.’는 근거는 얼핏 들으면 그럴싸하다. 하지만, 공공도서관 서비스는 ‘지역’만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대상’을 포함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도서관 평가지표에도 ‘정보소외계층 서비스를 했는가 안 했는가’로 평가점수가 매겨진다. 공공도서관이 말하는 정보소외계층은 누구인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회적 약자이다. 어린이(평가기준에는 저소득층 등), 노인, 장애인 등이다.
고양시 전체 예산 3조, 공립작은도서관 1년 운영 예산은 평균 5천1백만 원. 시립도서관 운영예산이 1년에 10억(건립, 리모델링 예산 제외)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렇게 장기적인 정책 없이 무더기로 공립작은도서관을 폐관하겠다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설마, 도서관 법상 작은도서관 정의이기도 한 ‘주민의 참여’도 싫고 ‘자치’도 싫고, ‘생활친화’가 싫어서일까? 아니면 ‘책읽는 시민’이 싫어서? 설명회나 토론회를 열어달라는 시민의 요구를 받아들여주지 않고 입장문만 내놓으니 정확히 확인할 방법은 없다.
2025년 고양시 예산 결정은 앞으로 한 달, 이번에 폐관하려던 공립작은도서관 예산이 수립되지 않으면, 아마 기존 공간은 다른 공간으로 활용되거나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그럼, 상상해보자. 이대로 작은도서관들이 줄줄이 없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보다 큰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작은도서관에서 웃고 떠들고 깔깔거리며 책 읽는 아이들은 사라지고, 책을 좋아하게 되는 기회 정도 줄어들겠지. 지나는 길에 들러 책을 빌리거나 반납하는 일도 사라지고 일부러 시간 내서 도서관에 가면 되겠지. 사서들의 촘촘한 서비스를 받아야 운영되는 어르신 동아리는 사라지면 되고, 잠깐 아이들이 믿고 머물 안전한 공간 정도 사라지게 되는 거겠지. 그동안 해마다 동네에 딱 맞는 소소한 문화프로그램 1,286회 정도 사라지고, 사람들은 덜 만나게 되겠지. 덜 얘기하고 더 갈등하게 되겠지.
과장이나 비약을 포함한 말이지만, 결국 이 모든 것들도 같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시는 설명회나 토론회를 열고 시민에게 설명하라는 요구에, 우선 폐관하지 말고 운영하면서 함께 역할을 재정립하자는 말에도 아무 답변이 없다. 이것이 행정의 원칙이고 상식이라는 입장문만 하나 덜렁 올려놓고.
박미숙. 어쩌다 시작한 아르바이트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다 어린이 책과 그림책에 푹 빠지게 되었다.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일하다 동네에서 아이들과 뒹굴뒹굴 책 읽으며 살고 싶어 작은도서관을 만들었는데, 책 읽는 시간보다 사람들과 노는 시간이 더 좋아져 버렸다.. 대학원에서 문화를 공부하고 난 뒤에는 기획 일에도 흥미를 느껴 여러 가지 일을 벌이고 다닌다. 사립작은도서관과 공립작은도서관을 운영하고 심지어 시립도서관 관장으로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문어발식 일주의자. 지금은 (사)어린이와 작은도서관협회에서 작은도서관에서 도서관실험을 하는 일에 한 발 담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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