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정책과 정책을 실행하는 행정에 대한 현장의 비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 과정 거쳐 수립된 정책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이슈들이 발생하게 마련입니다. 그만큼 현장은 역동적이며, 그 과정에서 정책과 행정은 회색을 벗고 현실에서 작동합니다. 그러나 중앙정부 정책부터 기초문화재단 불통까지 그야말로 사건, 사고라 할 일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사건들은 익숙하다면 익숙하지만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문제적입니다. [문화정책리뷰]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행, 불통의 사건들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와 진단을 게재합니다.
② 문화예술의 마력, 참가자가 체험한 영도문화도시 사업_ 하세봉
영도의 시민들이 쏘아 올린 “이제 문화도시는 시민들의 일”이라는 말,
‘법정문화도시’라는 약속을 돌이켜보다
영도는 1기 법정문화도시로서 여러 방면에서 눈부신 성과를 축적했다. 인구소멸 지역인 영도에서 찾아가는 예술을 통해 고립 대응을, 아동청소년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지역사회 돌봄의 가치를 끌어올렸다. 또 주민들이 참여하여 섬의 특성과 이음의 가치를 담은 한선잇기라는 규칙과 영도체를 개발해 도시브랜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그 결과로 세계 4대 디자인 어워즈를 수상했다. 한달살이와 지역 내 활동을 연결하고, 문화기획자 양성을 통해 지역 내 활동과 창업의 빈도수를 꾸준히 높여왔다.
도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일들, 인구소멸지역이라면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일들을 10여 명의 지원조직으로 가시적 성과들을 만드는 기염을 토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성과와 지역사회 변화에 대한 효능감에도 불구하고 예산 부족을 이유로 문화도시사업을 올해로 종료한다는 영도구의 결정에 시민들도, 언론도 납득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도에서의 문화도시는 이제 시민의 일”이라는 선언은 영도에서의 문화도시를 위한 그간의 노력이 지역사회 깊이 어떻게 작동하고 스며들었는지 추적할 수 있어 더 감동적이다. 하지만 그만큼 뼈아픈 일이기도 하다.
법정문화도시는 시민들이 도시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참여와 과정의 의미를 강조했다. 지원이 이루어지는 5년 안에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도록 하는 등 계획 수립부터 지속가능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1기 법정문화도시의 지원이 종료되어 가는 상황에서 문화도시 사업 자체가 일몰 되거나 지속되지 않는 상황은 단순히 사업 종료로 볼 것이 아니라 법을 통해 추진했던 사업인 만큼 약속 이행의 여부와 경과, 사유들을 끝까지 추적할 책임이 1차적으로는 정부에 있다.
또한 그 약속을 듣고 문화도시에 참여했던 시민들도 약속에 대한 이행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영도 시민들의 요구에 대해 그저 단순한 불평으로 넘길 수 없는 무게감을 지니는 이유다. 우선은 법정문화도시라는 정책사업에 포함된 지속 가능한 체계의 수립이라는 지자체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불성실의 문제가 있고, 또 한편으로는 그 과정에 참여한 다양한 도시구성원들의 노력과 열망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문제가 뒤따른다. 문화도시를 지속 추진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정책에 대한 약속과 시민에 대한 약속의 불이행이라는 양면으로 지자체의 중대한 결함이자 결례다. 그렇다면 1기 법정문화도시가 끝나가는 상황에서 이 약속의 이행은 중요하게 다뤄지고 체크되고 있는가? 누가 그 약속에 가장 큰 민폐를 끼치고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문화도시의 출현, 약속이 더 가벼워지기 시작한 풍경들
비단 ‘영도’만이 아니다. 또 다른 1기 문화도시인 원주문화도시는 좋은 사례로 평가받아왔지만 2023년 행정의 고발로 지원조직이 해촉된 일도 있었다. 2024년 1월 무혐의로 결론이 났지만 이미 어렵게 축적해 온 경험과 관계를 회복하기는 늦었다. 법정문화도시 사업의 한가운데에 있던 지원조직에 대한 거친 방식의 불신임은 그간의 사업 성과나 과정에 대한 평가 없이 느닷없이 이루어졌다. 거버넌스를 포함 문화도시 추진을 위한 핵심 매개/실행 조직에 대한 불신임과 공격은 앞선 시간들을 부정하는 일이다. 이는 계획수립 등의 준비부터 3년 이상 함께해온 문화도시 추진의 주체인 원주시가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무리한 고소는 이미 수립된 계획에 대한 평가를 통해 법정 문화도시의 자격을 부여받고 사업을 추진해 온 원주에서 시민참여, 지속가능성을 마련하는데 핵심인 조직을 행정 스스로 공중분해하면서 약속 불이행의 경로로 들어섰다.
윤석열 정부표 대한민국문화도시가 무리하게 추진되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법정문화도시 예비도시까지 잘 준비해 오던 수영에서도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2023년 8월 14일 문체부는 평가를 앞두고 한창 준비 중이던 5차 예비도시의 국과장들을 불러 모아 일방적으로 법정문화도시 지정 폐기를 통보했다. 그때부터 수영구는 용역사와만 계획을 수립하는 등 기존 문화도시 지원조직을 배제해 직원 7명 전원이 공개적으로 퇴사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정부부터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 지자체가 약속을 지키도록 어떻게 장려하고 독려할 수 있겠는가?
양상은 달라도 몇 년에 걸쳐 준비 중이었던 도시, 선정된 도시에서 매개했던 조직이나 인력에 대한 아쉬운 대응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매개조직이 곧 거버넌스의 전부는 아니지만, 몇 년의 시간 동안 도시의 문화적 비전을 고민하고 시민들을 만나고 연결하면서 행정과의 조율도 담당했던 거버넌스의 중요한 축인 것은 분명하다. 투여된 시간과 노력, 축적된 경험과 관계망 등의 성과에 대한 평가 없이 단기적 관점의 유불리에 따라 지원조직을 해체하거나 축소하려는 상황들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은 큰 문제다.
중앙정부 정책의 가벼움이 지역의 화를 부른다, 단기 성과 중심의 조급함의 한계
법정문화도시 실행 3년 차에 들어서던 2022년 몇 번의 토론회와 설명회 이후 윤석열 정부표 대한민국 문화도시가 발표되었다. 진행 중인 법정문화도시 사업에 대한 제대로 된 성과 분석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르게 유사한 정책을 발표하는 것에 대한 의아함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개적인 자리에서 진행된 대한민국문화도시에 대한 방향 제시는 법정문화도시에 대한 인상비평 수준의 분석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비슷한 이름을 지닌 법정문화도시의 후속버전으로 생각했다가 공개되는 자료들과 발언들을 보면서 이건 완전히 다른 사업이라는 생각과 함께 자연스레 그간의 문화도시를 추진해 오거나 준비해 온 주체들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졌다.
강조해왔던 시민주체나 거버넌스는 기본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대한민국문화도시에서는 중요한 평가기준은 아니라는 점, 과정 중심이 아니라 문화도시를 통한 실질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정도로 요약된다. 이후 대한민국문화도시가 추진되면서 나온 가이드에서 강조하는 “자유”는 시민들의 향유에 방점을, “연대”는 선도모델에 방점을 찍는 것으로 이어졌다. 먼저 자유에서는 향유하는 시민을 양적으로 확대하는 것에 방점을 두어 시민들의 주체적인 활동이나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도시발전의 원동력이라는 법정문화도시의 관점을 뒤집었다. 그리고 연대는 그동안 도시가 놓쳐왔던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기 위해 여러 주체가 함께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선도모델 제시를 위해 공인된 기관들이 협력하라는 것으로 관/산/학 간의 협력의 의미로 축소되었다. 시민의 능동성이나 자유의지를 뺀 향유하는 시민, 약한 존재들이 일구어내는 연대의 가치를 선도라는 힘의 논리로 치환했다. 자유와 연대라는 가치를 제시하면서 이 두 개의 단어를 심각하게 오염시켰다.
두 방향 모두 도시경영과 도시변화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을 축소하는 것으로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 제정 이후 꾸준하게 지역의 역량과 인재를 축적하려 했던 정책 방향의 폐기 선언에 가깝다. 대한민국문화도시만의 문제도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지역문화전문인력 사업 폐지, 문화예술교육 예술강사의 축소, 생활문화 사업 폐지 등 시민의 능동적 참여나 지역의 인적 주체의 발굴과 성장에 의미를 둔 사업들을 대거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K컬처를 중심으로 한 관광 예산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시적인 역동과 응축의 그릇인 지역은 거세하고 글로벌이라는 결과(선도, 임팩트)는 얻고자 하는 단기 성과 중심의 조급함이 정책 방향의 뼈대를 이룬다.
혁신을 이뤄내기에는 한없이 가벼운 지역의 정치와 행정, 신뢰자산을 축적하지 못하는 책임에 대하여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폐기, 단기적인 성과 추수의 관점이 1차적인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여 지역의 혼란을 야기했다. 당연히 이 혼란의 2차적인 책임은 장기적인 비전과 그에 맞는 대응을 축적하지 못한 지자체 역량의 한계에 있다. 법정문화도시에서 강조해온 시민참여와 거버넌스는 한국사회의 경험 수준으로 봤을 때 그 자체가 혁신에 가깝다. 기본적으로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밀도 있게 참여하는 방향은 단기적인 비효율성을 감수하고 집중된 권한을 나누겠다는 철학적 선언과 실천의 의지로 뒷받침될 수 있다.
이는 이제껏 지역 행정이 일해온 방식과 너무 달라서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단적으로 시민 참여, 의견 개진의 빈도수를 높이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에 대한 보상의 개념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는데 많은 지역 행정은 어려움을 겪는다. 1년에 두 번, 1시간씩 진행하면 될 위원회나 자문회의가 행정이 경험해 온 거버넌스의 보편적인 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다양한 주체를 도시경영에 참여시키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법정문화도시 사업의 의외성은 중앙 정책이 이처럼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시민을 도시 발전을 위한 논의와 경영에 참여하기를 강력하게 권고했다는 점이다. 이 자체가 혁신적이라고 하는 이유다. 법정문화도시가 추진되면서 지역마다 시민참여의 다양한 상들이 제시되었다. 대부분 시민참여의 양적인 확대와 더불어 참여하는 주체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방향이었다. 기존 지자체의 의사 교류 체계가 소수의 관변단체 중심이었다면, 법정문화도시는 지역/계층/성별과 정체성/연령 등 훨씬 다양한 주체들을 논의와 실행에 초대하는데 무게를 두었다.
지역 고유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도시 발전 모델을 독려하면서 시민참여와 거버넌스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행정권력 중심, 소수의 전문가 중심의 도시 경영 방식으로는 급변하는 세계에서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는 비판적 성찰에 그 바탕이 있다. 지역의 자생성을 위한 처방인데, 이를 체화하기에는 지역 단위의 행정과 정치는 경험이 부족하고 준비가 덜 되어있다. 중앙정부가 중요하지 않다는데 장기적인 도시비전을 위해 시민참여의 구조를 묵묵히 이어갈 지자체장과 행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적극적인 시민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여러 이야기가 뒤따른다. 그들이 내편이 될 것인지 니편이 될 것인지에 대한 우려, 우호적인 시민일지 시끄러운 시민일지에 대한 걱정들이다.
수년의 노력으로 쌓아올린, 도시 외부까지 확산된 성과, 도시 내 응축된 관계, 문화적 분위기 등 그 어느 것 하나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좁은 이해와 우려로만 판단하는 지역 정치의 낮은 수준이 지역 혁신의 발목을 잡는다. 그 앞에서는 기껏 쌓아 올린 눈부신 성과도 한 줌의 흙일뿐이다.. 약속을 만들고 잘 이행되는지 지켜보아야 할 정부가 오히려 약속 파기의 원인을 제공하고, 단기적인 이해관계의 유불리로 판단하는 정치적 행태가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지역의 신뢰자산을 무너트린다.
“문화도시는 이제 시민의 일”이라는 말의 울림이 큰 이유는 우리는 약속을 지켰으니 이 정책을 만들고 판을 깐 정부와 지자체도 약속을 지키라는 겸손하고도 엄중한 경고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진명. 생각하는 바다 대표. 공복방지위원회 과일장사, 생활기획공간 ‘통’, 금정예술공연지원센터 문화공간 운영. 개념미디어 [바싹] 잡지 제작. 구의원 출마 낙선. 청년정책 활동 및 단체설립. 수영에서 문화마을과 문화도시 총괄 등 지역에서 문화하는 일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함께 경험해 왔다.. 예술가와 지역운동가 사이쯤에 있는 문화기획자로 내 삶과 연동되는 기획을 하고자 애쓰며 만나고, 궁리하고, 기록하는 일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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