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최근 공공문화정책연구 경향에 대한 고민들(염신규)

CP_NET 2024. 9. 6. 14:00

 

 

 

한국에서 문화정책연구는 공공기관이 대부분 독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을 포함하여 민간 연구 집단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독자적인 관점이나 지향을 가진 연구를 수행하기에 매우 어려운 조건에 놓여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런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물적 토대, 즉 재원이 거의 전무한 까닭이다. 물론 아주 산발적인 연구가 있긴 하다. 대기업 등에서 자신들의 사업상 목적에 따라 문화 트렌드나 콘텐츠의 방향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과거에는 문화운동과의 연계 속에서 소규모의 리서치 정도가 진행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아주 드문 경우지만 2009년 전후하여 민주노총 산하 공공연맹에서 설립한 사회공공연구소(현 사회공공연구원)에서 문화의 공공성에 기반한 공공문화시설 운영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대부분 해당 집단의 필요와 이해관계에 따른 연구라 할 수 있으며 그나마 매우 간헐적이다. 결국 문화정책 연구를 그래도 꾸준히 수행하고 있는 집단은 공공이 재원을 대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하 문광연)과 각 지자체가 설립한 시정연구원(서울연구원, 경기연구원 등)의 문화 파트가 전부인 셈이다.

 

이런 정부 산하 기관은 중앙정부건 지방정부건 큰 차이 없이 각 정부가 지향하는 정책방향에 따라 과제를 도출하여 연구를 수행한다. 정부의 주무부처(예컨대 문화체육관광부)가 직접 필요한 과제를 떠맡기기도 하고 정부의 정책방향을 분석하여 연구기관이 먼저 정책 과제를 제안하기도 한다. 그리고 공공연구기관이 모든 연구과제를 수행할 수 없으며 때로는 제3자로서의 객관성이 형식적으로나마 필요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입찰이나 수의계약을 통한 외부용역으로 민간연구집단에게 과제가 맡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형태이건 간에 연구의 주도권은 정부가 갖고 있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정부가 필요한 과제를 연구하는 구조인 것이다.

 

 

90년대 이후 문화정책 영역의 확장에도 불구하고

 

문화정책연구의 절대량이나 다양함은 지난 20여 년 동안 엄청나게 확장되어 왔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문화정책의 분야가 다양해진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지금은 이쪽 분야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문화정책의 여러 영역들, 예컨대 지역문화정책, 문화예술교육, 문화복지, 문화향유 등은 1990년대 중반까지는 거의 본격적인 정책 영역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문화부처의 사업영역은 거의 문화기반시설의 관리와 예술진흥이라 칭해졌던 관변 예술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예술계 관리에 치중되어 있었다.

 

문화정책연구가 그나마 체계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7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일개 부서로 문화발전연구소가 만들어졌던 시점부터지만 그것이 본격화된 것은 1994년 문화발전연구소가 ()한국문화정책개발원으로 독립되었던 시점, 혹은 ()한국관광연구원과 통합되어 현재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전신인 (재)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이 개원한 시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를 문화정책연구의 양적, 질적 성장이 가장 급격하게 이루어진 시기로 볼 수 있다. 기관의 변화는 사실 그런 시대적 흐름에 따라 강제된 측면이 있다. 워낙 아주 오랫동안 공공 문화정책연구가 미진한 상태로 정체되어 있었던 탓에 연구해야 할 과제가 무궁무진하게 쌓여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소위 문화의 시대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던 1990년대에 전 시기 경제적 성장을 토대로 문화적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특히 대중문화산업이 엄청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여가나 관광같이 문화에 연계된 다양한 이슈가 등장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노릇이다. 또한 세계화(전지구화, globalization)의 흐름 속에 문화가 갖는 경쟁력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한국 사회에도 세계적 수준에 뒤떨어지지 않는 문화적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했던 것 같다. 그 세계적 수준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이나 표준, 구체성이 모호하다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1960년대 이래 고도성장을 지향하는 발전국가의 모습을 견지해 온 한국적 상황과 맞물리며 일종의 문화적 발전국가에 대한 지향이 급격하게 끓어올랐던 셈이다. 참여정부 시기에 만들어졌던 창의한국같은 문화정책 종합백서가 그런 흐름의 대표적 산물이었다.

 

이런 배경이 한국의 본격적 공공문화정책의 초기 연구 방향을 선도했던 흐름이었다면 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이제 기본적인 제도나 형식을 거의 갖춘 상태에서 각 정권의 지향이나 발생하는 사회적 상황에 대응하는 과제 설정이 이루어져 왔다.. 단편적인 예를 들자면 일자리 창출이 정부 정책의 최우선 과제였던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거의 모든 문화정책과제에 공공재원 투입을 통한 일자리 정책을 연결시키는 것이 주요한 목표로 설정되어 연구되었다. 또한 지방소멸과 이에 따른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해결이 강조되던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문화도시 등 문화를 통한 지역재생과 성장의 방법론이 주요한 어젠다로 떠올랐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는 비대면 상황에서의 문화적 정책 대응 방안 같은 것이 주요한 과제로 취급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2022년 이후의 문화정책연구는 어떤 방향을 갖고 있을까? 대표적인 공공 문화정책연구기관인 문광연의 정책연구를 살펴보면 대강의 흐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광연이 수행하는 연구사업은 크게 기본연구와 기타연구로 나뉘어진다. 기본연구는 중장기 정책의제를 발굴하기 위한 기초연구와 이를 구체적인 정책방향으로 제시하기 위한 정책연구, 사업연도 중에 발생하는 정책수요나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수시연구로 다시 나뉘어진다. 기타 연구로는 현안이 발생할 때 즉각 대응을 위한 단기(3개월) 연구인 현안연구와 타 기관과의 공동수행으로 이뤄지는 협력연구, 그리고 특별연구가 있다. (이외에 외부용역을 수탁하는 수탁연구사업이 있다.) 이중에도 정부가 주도하는 문화정책 방향을 읽을 수 있는 것은 기본연구에 속하는 연구과제들이며 이중에서도 기초과제와 정책과제들이다. 수시과제는 방향설정보다는 당면한 제도개선책을 내놓기 위한 연구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문화예술현장에 영향력을 끼치는 측면이 있긴 하다.) 이중 현재 문광연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연구과제는 2022, 2023년에 진행된 연구과제들이다. 이중 문화, 콘텐츠 분야에 국한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중장기적 방향설정을 위한 기초연구들이다.

 

연도 분야 과제명 연구자
2022 문화 대학과 지역문화 연계 방향연구 김규원 외
사회문제와 문화예술정책 정보람 외
콘텐츠 대중문화콘텐츠가 국가브랜드 증진에 미친 영향 연구 채지영 외
2023 문화 문화예술분야 보조사업 경제효과 추정방안 연구 김혜인 외
지속가능한 문화매력국가를 위한 국가문화지수 개발 연구 양혜원 외
콘텐츠 콘텐츠산업 트렌드 2028 박찬욱 외

 

 

또한 보다 구체적인 정책 제시를 위한 정책연구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연도 분야 과제명 연구자
2022 문화 시각예술 분야 디지털 콘텐츠 생산 및 유통 구조 변화 전망과 과제 김현경 외
전통문화산업의 저변확대 방안 연구 : 한복, 한식, 한지를 중심으로 박종웅 외
지역단위 문화정책 사업 분석 노수경 외
예술인의 산업재해 분석 및 정책방향 연구 공연예술분야를 중심으로 - 차민경 외
인문지표개발 및 지수화 방안 연구 이성우 외
국제문화교류 성과 관리체계 정립 연구 김혜인 외
문화영향평가 평가대상별 평가체계 구조화 연구 김연진 외
지역 문화통계체계 구축방안 연구 장훈 외
콘텐츠 콘텐츠 R&D 개념 및 범위 확대방안 연구 양지훈 외
유통환경 변화에 따른 영상콘텐츠 해외진출 지원정책 연구 오하영 외
콘텐츠 산업 팬덤 기반 지형변화와 대응방향 연구 이윤경 외
콘텐츠 산업 경쟁환경 분석 : 구조, 행위, 성과를 중심으로 김규찬 외
2023 문화 문화영향평가 환류체계 제도화 방안 연구 김연진 외
장르 전용 공연장 현황 및 조성 방안 연구 이정희 외
문화시설의 기후위기 대응 방안 연구 변지혜 외
박물관·미술관 전문인력의 인적자원 관리 방안 연구 김현경 외
고령층 문화누림 분석 및 정책방안 연구 윤소영 외
문화재정 성과관리 체계 개선방안 연구 정보람 외
인문정신문화 사업 추진 체계 발전 방안 연구 이성우 외
지역특성을 반영한 공공도서관 조성·운영방향에 관한 연구 김홍규 외
예술인 지원을 위한 소득세제 관련 쟁점과 개선 방안 연구 차민경 외
콘텐츠 정책소통평가 지표 개선 방안 김규찬 외
웹툰 산업 제작 구조 변화에 따른 정책방안 연구 양지훈 외
콘텐츠산업 프로젝트 투자 지원 강화방안 연구 홍무궁 외

 

2년 간 진행되었던 기초연구와 정책연구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은 힘들지만 대략적 인상평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의외로 꽤 다양한 영역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공공문화정책의 지향이 한마디로 현재 이거이거다!”란 규정짓기가 섣부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드러나는 몇 가지 지향이 있긴 하다. 우선 윤석열 정부가 초반부터 밀고 있는 세계 일류 문화 매력 국가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따라, 국가 브랜드에 기여하는 도구로서의 문화에 대한 접근이 엿보인다. 이와 함께, 물론 이전 정부에서도 꾸준히 강조되어 왔던 부분이지만, 문화정책사업에 있어서의 성과 관리를 개선하자는 지향이 뚜렷이 엿보인다. 반면에 한동안 강조되어왔던 문화의 사회적 역할이나 문화복지, 문화향유의 질적·양적 개선에 대한 관심은 다소 줄어들었음을 엿볼 수 있다.

 

정부의 성격이나 지향, 무엇보다 사회를 둘러싼 내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문화정책에서 강조되는 지점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화정책은 독립적인 영역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다른 여러 가지 사회요소와의 관계성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초연구에서조차 의제를 선도해 나가는 미래 가치에 입각한 지향 제시가 잘 드러나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소회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의 단지 기관(문광연)이나 해당 연구자의 연구역량 문제 때문이 아니란 것이, 그 내부 사정을 다소 아는 입장에서 더욱 뼈아픈 부분이다.

 

정부 산하 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한다는 것의 의미가, 단지 주무부처가 추진하고자 사업에 대한 방향과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일도 필요에 따라 해야겠지만 단지 정부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 전반의 문화적 방향에 대한 거시적 안목의 과제를 개발하고 수행할 수 있는 자율성이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조금만 더 나아가서 얘기하자면 정부 바깥에서 정부와는 조금 다른 입장을 갖고 공공문화정책연구를 수행하는 것을 뒷받침할 사회적 자원이 형성될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어느 입장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기 힘든 문화정책 환경은 건강함과 역동성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염신규. 본지 편집위원.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겸임교수.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문화예술분야에서 발을 들여놓았으며 창작자, 기획자, 정책활동가 등 깊이 없이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았다. 최근에는 문화정책(제도) 연구와 문화 연구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작업들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관심 있는 분야는 국민국가 성립 과정에서의 문화적 제도화의 문제, 노동자 문화정체성에 대한 비전형적인 방향에서의 탐색 등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