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프로젝트에 대해 다양한 나라의 수많은 프로젝트를 분석한 벤트 플뤼비에르그(Bent Flyvbjerg)는 대규모 사업의 실패에 대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일종의 법칙을 제시한다. 예산이 초과하고 기간은 지연되며 예상했던 혜택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메가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고려대학교출판부, 2023). 이런 특징은 거의 모든 국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철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방법론의 측면에선 낙관 편향이 대표적이다. 대규모 사업일수록 실패의 위험이 커지지만 역설적으로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위험에 대한 경계는 약해진다. 위험을 경계하는 이들은 ‘사업 실패를 바라는 사람’ 정도로 취급되며 비판적 관점을 체계적으로 차단하는 논리가 만들어진다.
특히 메가프로젝트는 상대적으로 장기간 추진되는 사업의 특징 상 복합적인 이해관계자들이 등장하고 사업의 책임자는 계속 교체된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담합구조가 발생하며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사업의 수정이나 보완과 같은 과정이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메가프로젝트가 실패하게 될 경우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워낙 많은 사람의 손을 탔기 때문에 누구 잘못이라고 특정하기가 어렵다. 한국적 맥락에서는 ‘우는 아이 면박 주냐’는 소위 지역정서가 겹치면 모두가 잘못이어서 결국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의 합의가 발생한다. 플뤼비에르그는 이런 행태가 전근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현대적인 경향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엔 기술적 합리성에 대한 맹신 특히 비용-수익 구조를 골간으로 하는 경제성 분석 자체가 고도화되면 될수록 오차가 더욱 커지는 모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보다 현대 메가프로젝트의 실패는 더욱 빈번하고 예측과 결과의 편차는 더더욱 크다.
‘잼버리대회’라는 사건: 총체적 이벤트
물론 여기서 다루려고 하는 메가이벤트는 엄밀하게 보면 플뤼비에르그가 말한 메가프로젝트의 범주엔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실패함에도 불구하고 메가이벤트는 왜 반복되는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있다.
부산 엑스포 대회 유치에 대한 논란을 생각해 보자.. 하나의 이벤트 개최에 사용한 예산이 5,744억에 달한다(미디어오늘, 2023. 12. 4.). 2022년에 2,516억 원이 편성되어 집행되었고 2023년에는 3,228억 원이 편성되었다. 뉴스타파의 보도에 따르면 2023년에 부산시가 엑스포 유치를 위해 사용한 홍보비만 330억인데 해외언론과 해외광고물 홍보비보다 국내언론과 국내광고물 홍보비의 비중이 더욱 많았다. 이는 메가이벤트의 목적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메가프로젝트가 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니까 하는 것이라는 것인데, 사업의 목적이 정치적 목적으로 전치되는 현상은 보편적인 속성이지만 한국은 특히 이게 심하다. 부산 엑스포 개최를 위해 가덕도 신공항이 2030년 이전에 준공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와 부산시의 요구였다. 전 세계에서 부산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날 텐데 변변한 국제공항이 없으면 어쩌냐는 인식이었고, 이것이 소위 특별법 제정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그러면 엑스포 유치가 무산된 이후에 가덕도 신공항의 필요성에 대한 재평가가 있었을까? 없다, 이제 와서는 엑스포와 상관없이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는 한국의 메가이벤트가 그 자체의 목적보다는 그와 연계된 연쇄 이벤트를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요한 건 이런 연쇄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실들을 하나의 목적으로 묶어서 편승효과를 꾀하지만 부산 엑스포와 같이 하나의 연쇄가 끊어지더라도 개별 이벤트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즉 한국의 메가이벤트는 별도의 사업목적이 있기보다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수단과 목적의 도치 현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특징은 지난 4월 10일에 감사원이 공개한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 추진실태>에서 고스란히 반복된다. 해당 보고서는 단일 사업에 대한 감사결과로는 이례적으로 545쪽에 달하는 분량을 보인다. 감사대상은 생활서비스 제공 및 현장 대응 분야, 부지 선정·조성 분야, 시설 설치 분야, 점검·관리·보고 분야, 계약 체결 등 분야, 재발 방지 방안 분야 등 총 6개이다. 최종적으로 개별처분요구사항은 총 5건으로 여성가족부, 전라북도특별자치도, 전북교육청 등이다. 조직위원회는 해산했기 때문에 처분대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처분내용을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데 청와대에서 현안대응 회의를 하는데 완공시점이 점차 늦어지는 것에 대한 보고를 의도적으로 누락하거나 현장 확인에서 책상 및 사무기기 자체가 설치되지 않았고 잼버리병원에도 의료기기가 없는 상황이었데 세팅만 하면 된다는 조직위 이야기를 그대로 수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직위가 여성가족부 고위공무원이 내려간 조직이다. 애당초 상호 견제와 통제라는 기본적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급기야 국무회의에 완료되지 않은 사항을 완료된 것으로 보고한다. 이에 대한 징계는 1인에 대한 경징계 이상의 처분을 제외하고 없다. 장관부터 차관, 실장 등이 모두 퇴직하여 징계를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예 사업계획서를 조작한 경우도 있다. 전북도 공무원은 민간사업자가 없어서 기존 계획대로 새만금 개발이 안 되는 사정을 알면서도 이전 사업계획서를 바탕으로 2019년까지 부지조성이 완료되어 야영장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개최계획을 제출했다. 이때 해당 부지인 관광레저용지 1지구는 아예 기존 2019년 목표년도가 2022년으로 변경되어 공시된 상황이었다. 전북 입장에선 모를 리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의도적인 왜곡을 한 셈이다. 이에 대해 당사자들은 ‘잘못 인식했다’거나 ‘성공적인 행사로 이어지지 않아 유지 담당자로서 아쉬움이 크다’는 식의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미있는 건 이들이 2020년에 바로 퇴직했다는 사실이다. 의사결정에 핵심적인 개최계획을 속인 중대한 사건에 대해 책임질 사람이 없는 셈이다.
아예 전기공사업을 등록하지 않은 업체와 전기설비 설치공사를 하거나 화장실과 샤워장을 청소해야 하는 업체가 일부러 낮은 가격에 응찰한 후 기술협상 과정에서 용역 제안서 내용과 다르게 화장실과 샤워장 청소용역을 위한 추가 비용을 요구한 상황도 있다. 결과는, 화장실과 샤워시설의 청소대란이다. 반면 구태여 필요하지 않은 방수형 콘센트를 설치하겠다는 이유로 추가 비용을 받아갔다. 용역단가도 더 비싸게 받아가고 애초 약속한 준공일정도 어기고 청소는 하지 않은 이런 부실한 용역계약을 추진한 공무원들은 명백한 재정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환수처분이나 고발조치가 아니라 고작 정직 처분을 받았다. 이런 계약 관련 사건은 차고 넘친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비상대피 수송 용역을 체결하면서 임의로 제출한 단가 대당 110만 원을 맞춰주기 위해 아예 상계할 %를 고려하여 단가를 115만원으로 올렸다. 더구나 비교견적을 받았는데 자신이 밀어주는 가격보다 낮게 나오자 비교견적 비용을 임의로 올렸다. 아마 공공 계약 관련 업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이런 공무원의 행태가 얼마나 놀랄 만한 일이면서도 음성적으로 만연된 일인지 알 수 있는데 이런 일이 똑같이 벌어졌다. 그러나 해당 공무원에 대한 징계는 경징계 이상의 처분에 머물렀다.
책임이 휘발된 메가이벤트: 편승과 결별 사이
감사원 감사결과가 나오자 언론은 해당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정작 감사보고서에 세부적으로 언급된 사실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나아가 그것이 얼마나 차별적인 처분을 받은 것인지 집지 않았다. 예술인의 경우에는 관행적인 자부담 비율의 미준수로 인해 세상 파렴치한 사람들로 간주되어 아예 공모 대상에서 배제하던 정부의 전례를 생각해 보자.. 주요한 민간단체의 공공사업 부실에 대해 ‘자판기 운운’ 하면서 모욕했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어떤가. 특정 대선후보의 공용카드 사용을 두고 검찰까지 나서서 기소하고 재판을 진행했던 사례 역시 떠올려 보자. 애당초 개발사업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고 오로지 농지를 만들기 위해서만 사용해야 하는 기금을 사용하도록 강제한 청와대가 있었다. 이런 사업이 지역 균형발전의 핵심이라고 정부를 압박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과를 했나? 안했다.
국가의 재정낭비가 우려되고 무엇보다 대규모 개발사업은 민간주도로 해야 하며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해왔던 교수들이, 뜬금없이 정부의 선제적 투자 운운하면서 정부가 재정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은 적절하게 평가가 되었나? 그렇지 않다, 지금도 이 사람들은 주요한 개발사업의 전문가가 되어서 전국 공공기관에서 자문을 하고 있다. 2016년 12월 국회에서 개최된 잼버리 연관 새만금 토론회에서 농지목적이 아닌 부지까지도 농자기금 사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이 중 한 명인 국립대학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총장을 지낸 남궁근은 잼버리대회 이후에도 새만금정책포럼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마찬가지로 국립대학 전북대 손재권은 여전히 새만금 정책에 관여하면서 새만금을 농생명 분야 신성장 허브로 육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작 잼버리대회의 실패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책임지지 않는 자문을 반복하면서 헐거운 개발계획에 타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감사보고서에는 해당 국회토론회가 5군데 언급이 될 정도로 정책 결정과정에서 주요한 영향을 행사한 것으로 언급된다. 부당한 계약 건으로 “전 2023새만금세계스카우트잼버리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의 비위행위에 대해 엄중한 인사조치가 필요하다”고 명시하면서 재취업, 포상 등의 인사자료로 활용하고 공직후보자로 될 경우 참조 자료로 활용할 것을 권고했다. 해당 최창행 사무총장은 감사원 감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의 학습지도교수로 일하고 있다. 감사원이 인사업무에 참조하라고 전달한 국가인사혁신처에서 운영하는 기관에 비위 대상자가 교수로 있다.
이번 잼버리 사태가 중요한 것은 특히 문화예술 영역에서 이와 같은 메가이벤트가 자주 활용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각종 국제행사에서 문화사업이나 예술창작은 주요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전라북도가 새만금을 밀었던 이유 중 하나가 문화행사나 공연을 개최하기 위해서는 250만 평의 부지가 필요하다는 논리가 있었다. 조기 종료된 잼버리 대회의 뒤처리는 각 지방자치단체 문화예술 사업들이 떠맡았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스카우트 대원들이 한국대회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 ‘문화행사에 참여한 것’이라고 답하는 모습은 씁쓸한 풍경이다. 이번 감사원의 감사보고서에서는 직접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런 대규모 사업에 동원된 문화예술 사업자와 예술인들은 얼마나 될까? 과연 이 사업의 실패에 쯧쯧거리는 것으로 감상이 끝나야 할까? 국가의 보조금이라는 함정에 빠진 예술창작의 공적 지원체계를 떠올린다면 복잡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새만금잼버리대회에 대한 감사원보고서 보는 곳
김상철.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밥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집담회를 계기로 예술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공정한 보상과 문화산업 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모임인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창립에 참여했다. 현재 예술인생활안정자금 관리위원회 위원, 한국예술교육진흥원의 윤리경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나라살림연구소에 적을 두고 재정과 참여예산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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