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마이닝, 빅데이터, 데이터사이언스, 데이터비즈니스, 데이터큐레이션 등은 이제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데이터에 대한 관심의 증대는 인터넷의 대중화 이후 정보의 홍수라는 말이 회자되었듯 이제는 데이터 홍수의 시대를 접하고 있다고 할 만큼 데이터는 이 시대에서 핵심적인 단어로 부상하고 있다. 데이터는 개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을 근거로 하여 구성된다. 고객 맞춤형 서비스라는 데이터비즈니스는 개인들의 지속적인 행위 정보에 대해 누군가가 상대적 비율로 재구성한 숫자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의미가 부여된 숫자들과 그 조합이 데이터에 근거하는 비즈니스인 것이 하겠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모든 행위는 데이터란 이름으로 어딘가에 기록되고 측정되며, 누군가에 의해 재구성되어 다시 개인에게 전달되고 과정이 순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데이터란 용어는 매우 중립적인 것 같지만 사실상 매우 목적의식적인 결과물이 되고 있다.
이렇게 사회의 광활한 정보가 축적되어 재구성된 데이터가 특정한 의미가 있는 숫자가 되어 사회적 규율로 작동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건강검진결과는 온통 숫자로 채워져 있다. 그 숫자에 따라 개인의 건강상태를 판단하기에 여기서 숫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숫자이다. 숫자는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갖기보다는 다른 숫자와의 상대성에 의해 의미를 갖는데, 건겅검진결과의 숫자는 절대적이다. 그 숫자가 절대적일 수 있는 것은 신체적 건강상태라는 기준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절대적 기준은 새로운 데이터의 측정과 축적에 따라서 변할 수는 있지만, 어떤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그 시기에 수용되는 기준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준과 데이터는 사회보건 정책을 위한 토대가 된다.
정책은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를 파악하고,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지향 행위를 하고, 그 성과를 측정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목적의식적 행위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책 과정은 특정한 감각이나 직관을 근거로 진행하기는 어렵다. 객관성이 담보되는 근거를 필요로 한다. 숫자로 표상되는 데이터는 그 자체로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인식되기에 정책에서 데이터에 대한 요구와 중요도는 더욱 증대하고 있다. 문화예술정책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문화의 세기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문화예술 분야는 타 분야에 비해 여전히 주변부이라서 정책 예산 확보와 집행에서 더욱 데이터에 대한 요구가 높다고 하겠다. 대체로 단순한 숫자로 제시되는 데이터가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데이터에 대한 해석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는 달리 이야기하면 데이터는 해석 가능성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데이터는 사회적 구성물이다. 문화예술 정책과정의 토대가 되는 데이터는 의도된 정책의 의미를 체화하도록 구성된 것이다.
한류로 인해 사회적으로 또한 정책적으로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비쳐지지만, 이는 내용적으로는 산업화된 문화예술에 한정되어 있다. 물론 문화상품의 소비가 넓은 의미의 문화생활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문화예술의 산업화가 문화예술 분야 전반을 포괄하거나 대표한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하겠다. 문화산업 분야는 제작수, 구매량, 매출, 투자규모 등 시장의 형성과 구성에 대해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관련 데이터를 산출하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는 영화티켓 구매와 같은 구체적인 행위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구체적 행위 데이터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시장의 규모가 데이터를 통해 커지고 있다는 것이 국민의 문화생활이 향상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영화시장 규모의 특정한 숫자는 국민의 문화생활의 특정한 수준을 의미하는 것일까? 문화예술 분야에 절대적 기준을 적용하기 상당히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데이터로 제시되는 숫자의 상대적 의미를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의미는 정책적 의도와 목적, 즉 정책의 관점에 의해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단편적인 사례를 하나 보자. 정기적으로 조사되고 있는 문화실태조사를 엿보면, 과거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나 3만 달러 시대나 문화생활 장애요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의 문제이다. 20여 년 동안 데이터 상으로 변화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20여 년 전과 현재 똑같다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한가? 똑같다고 한다면 20여 년 동안 추진되었던 문화예술정책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지난 20여 년간 문화상품의 시장은 매우 큰 성장을 하고 있고, 문화생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문화생활에서 시간과 비용의 문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사회구성원으로서 국민의 일상은 단편적인 영역과 행위만으로 이해될 수 없겠지만, 특히 문화예술 분야는 종합적이고 복합적이라고 하겠다. 그렇기에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하나의 데이터가 아니라 일련의 연관된 데이터의 해석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문화예술 분야 데이터의 범위, 종류, 내용이 이러한 복합적 해석을 할 수 있을 만큼 적절한가는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데이터가 한계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데이터는 중요하다. 특히 정책과정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데이터가 단지 기록으로서만 존재한다면 데이터가 만들어진 순간 데이터는 화석이 된다. 화석을 기반으로 하는 정책은 더 이상 정책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문화예술정책에서 데이터의 접근, 수집, 해석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고려를 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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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사)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대학 시절 연극이 좋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문화운동과 조우하였다. 90년대 초반 석사 과정 시절 국내 최초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생활실태조사를 했다. 2000년대 초 인디문화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게임산업 진흥기관에서 정책, 기획 업무를 총괄하고 문화산업과 예술 분야 정책 및 법제도 개선에 참여했다. 지금의 관심은 예술과 문화산업에서의 공정 환경, 문화예술 분야의 노동 환경, 디지털시대의 문화운동은 무엇일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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