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사건과 논쟁으로 돌아보는 한국 문화정책”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번 연재는 한국 문화정책의 지형을 두텁게 그려보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사건과 논쟁에 대한 입체적 복기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재의 기원을 살피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문화정책 분야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지도 꽤 되었지만 문화정책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의 어려움을 느낀다. 물론 다양한 정책가들과 학자들에 의하여 문화정책에 대한 정의들이 이뤄져 있긴 하다. 일반적으로 얘기하자면 시민들의 일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적 측면에 대하여 국가나 지방자치 단체와 같은 권력기구들이 제도적 장치를 통해 개입하여 작동하는 다양한 행위들을 모두 문화정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전적으로는 문화의 창조, 유지 발전을 위해 만든 정책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정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측면들이 있다. 문화정책을 둘러싼 방향설정과 논의과정을 겪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인데 결국 이런 다소 평평한 개념 정의 이전에 사회공공, 좀 더 노골적으로 얘기해서 국가권력이 구성원들을 규범화시키고 통치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기능이 매우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직면하게 되는 순간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매우 간단했던 문화정책이 점점 복잡해지는 과정을 개괄하다 보면 한편으론 그만큼 국가가 국민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으로 사회가 진화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들의 매우 세부적인 일상까지도 점점 국가가 관리하는 영역에 포함되고 있다는 또 다른 측면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좋고/나쁨, 혹은 옭고/그름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다양한 관점에서의 고찰이 필요하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문화정책에 대헤 아주 근본적인 부분을 다루는, 심도 있는 논쟁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다양한 논쟁과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단지 실행의 방법적인 차원에서만 이루어지거나 문화정책의 직접적 이해당사자들의 이해 조정의 차원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런 논의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문화를 통한, 혹은 문화의 통치가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측면은 간과하게 하는 것이 문제다. 문화정책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통치수단으로서의 측면, 이를테면 알튀세르가 제기했던 이데올로기 국가기구의 속성을 간과하게 만들며 문화정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다양한 시민, 주체들의 입장의 차이와 여기서 발생하는 지향의 차이를 무화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당연히 국민 모두를 위한 문화정책을 지향할 수밖에 없지만 다른 사회정책과 마찬가지로 문화정책의 대상이 되는 국민들은 결코 단일하지 않으며 일상 안에서 다양한 갈등과 충돌을 피할 수 없다는 모순이 존재한다. ‘문화정책을 통한 국민통합’이란 표현이 자주 사용되지만 실제로 그게 가능한 것인가? 때로는 문화적 방법론이 현실 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겉에서만 봉합하는 치장물로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소 비약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현대 사회의 정교한 문화정책이 때때로 비판받는 측면이기도 하다.
하나의 사례를 들자면 1990년대부터 호주 사회에서 다문화주의에 입각한 문화정책의 경우다. 1970년대 초반까지 아시아, 아프리카 권의 소위 ‘유색인종’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과 백인의 특권적 지위를 담은 백호주의가 호주의 주류사회의 정책방향이었다. 그런데 이런 백호주의에 입각한 이민규제법으로 인해 정작 호주 사회에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졌다. 그러다보니 1973년부터 백호주의를 공식적으로 철폐하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대대적인 투자이민을 유치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문화사회를 위한 정책방향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뒤로 하고 호주는 다문화정책에 있어서 가장 앞서나간 문화정책을 만들었으나 이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중 일부 과거의 백호주의에 기반한 비판도 있었지만 전혀 다른 입장의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다름 아니라 호주의 다문화정책이 호주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사회모순인 원주민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을 은폐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백인들의 대규모 이주와 개발, 사실상 침략에 의해서 만들어진 국가인 호주에서 원주민들은 아주 전통적으로 차별과 착취의 대상이었다. 1970년대 이후 다문화사회를 지향하면서 이들을 위해서도 다양한 정책들과 문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미 1800년대 이래 20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이어진 원주민에 대한 차별로 인해 호주 원주민들은 인종적 차별의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심각하게 취약한 집단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이다. 호주의 다문화정책이 표면적으로는 인종 간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지향하고 있지만 이미 기존에 뿌리 깊어진 백인계 이주민과 아시아계 이주민, 그리고 원주민 간의 차별적 질서를 넘어서기 힘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안고 있는 인종과 결합된 경제적 계급문제라는 본질을 망각하게 만들고 있다는 목소리가 원주민 공동체 일부에서 발화되었던 비판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예로 들었던 호주의 다문화정책이 전면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비판의 대상일 뿐이라고 단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호주 사회가 20세기 후반부터 취해온 다문화정책이 어두운 인종차별 사회의 과거를 극복하게 만들었던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무엇보다 그 시점에서 호주 사회가 택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는 점도 있다. 이미 백호주의에 기반한 인종차별주의를 고수할 수도 없어진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100년 이상 호주에서 하나의 국가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온 과거의 유럽인들이 다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의 다문화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이상적으로 잘 구현되었는가 만을 살펴보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다문화정책을 둘러싼 불편한 역사와 그것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을 살피지 않으면 문화정책이 마냥 전능한 만능열쇠와 같이 어떤 상황, 어떤 시대적 맥락에도 적용될 수 있는 아름다운 언어의 향연이 될 뿐이다. 수년간 지속되는 문화정책은 그 나름으로 시대적 산물의 성격을 갖으며 통치 집단이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특정한 사회문제에 대한 몇몇 측면에서 유효한 문화적 해법의 결과물이란 공통점이 있다.
그런 취지에서 준비된 이번 연재에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주요한 문화정책들의 기원을 다음의 세 가지 정도의 측면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해당 문화정책이 등장하게 되었던 사회적 원인이다. 그 원인에는 지배집단의 요구도 존재할 수 있고 사회변화에 따른 필요나 심각한 갈등 같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단일한 이유가 아닌 매우 복합적인 원인이 될 수도 있겠다. 두 번째는 그런 사회적 원인에 따라 제기된 새로운 문화정책이 제도로 형성되어가는 과정에서 등장한 ‘당대의’ 논의와 논쟁들을 다룰 것이다. 때때로는 열광적 지지나 날선 비판의 형태로 존재했을 수도 있고 이후로 이어진 장기간의 사후 비판이나 평가의 형태가 될 수도 있겠다. 세 번째는 그런 과정을 통해 수립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문화정책의 현재 관점에서의 평가다. 앞선 논의가 당대 관점에서 제기되었던 입장들의 인용이라면 그것이 제도로 형성되어 이어진 현재 관점에서의 평가다. 과연 그 정책이 당시 제기되었던 사회적 원인이나 필요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작동했는가, 사회구성원 중 어떤 집단들의 욕구를 반영하거나 배제했는가, 그리고 그 결과 어떻게 위기의 국면을 넘어섰고 대신에 어떤 후유증이나 사후적 과제를 남겼는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문화정책을 다루는 방식을 제도의 개별적 내용이나 완결성의 측면보다 사회적 맥락과 연관성에 더욱 주목하는 방법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이 연재에서 다루고자 하는 시기는 1987년 이후이다. 1987년 이전의 문화정책은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치며 정책으로 만들어지기 힘든 조건에 있었다는 게 가장 큰 현실적인 이유다. 물론 필요에 따라 현재까지 이어지는 문화정책의 흐름에서 다뤄야 할 부분이 있다면 시계바늘을 좀 더 뒤로 돌려야 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비중을 두긴 힘들 것이다. 어차피 연대기적 측면에서 한국 문화정책 역사를 다루는 것이 기획의 목표는 아니다. 시간 흐름에 따른 서술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작동되고 있는 주요한 문화정책이 시작되었던 지점으로 돌아가 그 정책의 기원을 입체적으로 복기하는 것을 통해 현재의 문화정책에 대한 비판적 말 걸기를 시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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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신규.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겸임교수.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문화예술분야에서 발을 들여놓았으며 창작자, 기획자, 정책활동가 등 깊이 없이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았다. 최근에는 문화정책(제도) 연구와 문화 연구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작업들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관심 있는 분야는 국민국가 성립 과정에서의 문화적 제도화의 문제, 노동자 문화정체성에 대한 비전형적인 방향에서의 탐색 등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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