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정책시선: 읽다]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예술경영은 경영학이 될 수 있는가?

CP_NET 2022. 5. 11. 08:40
편집자 주: [정책시선: 읽다]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정책시선: 읽다]는 문화정책 분야의 의미 있는 책을 소개하거나 문화정책의 시선으로 다양한 분야의 담론을 소개하는 서평을 다룰 예정입니다. 단행본만이 아니라 함께 이야기 나누고자 하는 보고서, 자료집 등도 다룹니다. 격월로 발행될 예정이니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 (Principia Managementa), 윤석철, 경문사. 1991.12. 283쪽



이런 코너를 만든 의도는 관련 분야에 종사하거나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보자는 것일 게다. 그리고 그 분야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상대적으로 덜한 분야의 책이 좋겠다는 것이 편집진의 요청이었다. 그런 청탁에 충실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여러 권의 책을 읽어보고 그중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책을 선정하여, 그 책을 충실히 소개함으로써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보아야겠다는 의욕을 불러일으키게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미리 자백하건대 이 글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뿐 아니라 무려 30년 전에 나온 이 책이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읽힐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청탁을 받고서 별다른 고민 없이 바로 이 책으로 하면 되겠구나 하고 정했다. 이 책을 만나게 된 사연에서 시작하여 특히 이런 류의 책 어디 없나 하고 찾아다니던 당시의 어떤 문제의식을 함께 나눠보고 싶었다. 그 문제의식은 예술경영(학)은 경영학이라 할 수 있는가? 하는 소박한 의문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예술을 둘러싼 여러 가지 질문이 담겨 있었다.

이 책은 경영학 책이다. 짐작컨대 이 글을 읽는 이들 대부분은 예술경영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관련 분야에서 활동하거나 적어도 그 분야에 대한 소양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이들은 다시 문화예술 분야를 베이스로 하거나, 혹은 베이스는 다른 분야인데 예술경영이나 문화정책 문화행정 분야에서 활동하는 경우로 나눠볼 수 있다. 그중에서 나처럼 문화예술쪽을 베이스로 하는 사람들 중 예술경영(학)을 공부하긴 했지만 경영학 관련 책은 별로 읽지 않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저자인 윤석철은 1940년 생으로서, 1958년 서울대 독문과에 들어갔으나 물리학과로 전공을 바꿔 졸업한 후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유학하여 전기공학, 경영학 등을 공부하고 귀국하여 2005년까지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의 교수로 재직하였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저자소개에 따르면 독문과에 간 이유가 ‘패전국 독일이 강국이 된 비결을 알고 싶어서’였다고 하며 ‘20세기 국력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눈을 뜨고 물리학과로 진로를 바꾸었다 ‘고‘ 한다. 이 책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그의 경영학에 대한 일련의 저술 중 하나이다. 그가 쓴 『경영학적 사고의 틀』(1981),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1991), 『경영학의 진리체계』(2001), 『삶의 정도』(2011) 4권이 ‘윤석철 교수 10년 주기작’으로 꼽힌다고 한다.

1987년 3월에 당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문화예술총서를 발간했는데, 그 중 3권이 『예술경영』이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군더더기를 덧붙이자면 문예진흥원에서 1979년 12월에 『기획경영』(공연예술총서1)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이 책이 예술경영 분야에서 최초로 나온 책일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비매품’이라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었다. 당시 시대상황(10.26 직후이다)에서 책의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이 잊혀진 것 같다. 나는 ‘예술경영’이라는 단어 자체를 이 책 『예술경영』의 표지에서 처음 보았고, 그나마 90년대 중반에야 실제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여는 첫 글인 ‘예술 경영의 필요성’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예술활동이 경영학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예술품의 창조과정은 타 분야의 활동과 본질적으로 성격이 매우 다를 뿐만 아니라, 그것의 수요와 공급, 향수 방법 역시 특별한 차이가 있으므로, 일반 경영학의 대상으로 쉽사리 동일시하거나 기존의 방법론으로 해결할 수 없는 특수성이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보면, 예술의 보급과 수용, 예술에 관련되는 제반 활동도 인간의 사회활동의 일환이므로 일단 경영학의 한 대상 내지 분야로 간주할 수 있다. 예술경영학이라는 개념은 이렇게 예술적인 특수성과 경영이라는 보편성을 조화 있게 창조적으로 포괄하고자 하는 취지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시에는 그냥 “그렇구나”하는 정도로 넘어간 것 같다. 그래서 예술경영(학)이 경영학의 한 분야라면 경영학도 좀 알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주로 ‘경영학개론’류의 책을 뒤적였고, 그런 ‘교과서’들은 일단은 재미가 없었다.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멀게 느껴졌다. (훨씬 나중에야 피터 드러커를 알게 되었다)

윤석철의 이 책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를 만나게 된 건 전적으로 우연이었다. ‘프린시피아’라니 뭔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 뉴턴의 저 유명한 프린키피타 마테마티카(Principia Mathematica),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가 생각날 것이다. 고전역학의 토대를 마련한 만유인력의 법칙, 뉴턴의 운동법칙이 기술된 바로 그 책. 어느날 서점의 경영학 코너에서 책들을 뒤적이다가 이 책이 있길래, 순간적으로 “어 이 책이 왜 여기 있지?” 하면서 자연과학 코너에 갖다 놓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집어 들게 된 것이다. 이 책에는 그런 언급이 나오지 않지만 제목으로 보아 저자인 윤석철도 ‘경영학의 원리’를 구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제목도 그렇게 정하지 않았을까? 하여간 제목 덕분에 이 책을 만나게 된 셈이다.

뉴턴이 힘의 법칙을 수식화하여 F=ma로 기술하듯이, 이책의 저자도 먼저 산업사회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기업의 ‘생존부등식’을 V>P>C로 간명하게 정리한다. 상품의 가치(value)는 상품의 가격(price) 보다(price) 커야 하고, 상품의 가격은 상품의 원가(cost) 보다(cost) 커야 한다는 것이다. 이 수식은 생산자인 기업의 입장 P>C와, 소비자의 입장 V>P가 합쳐진 것으로서 기업 활동의 본령은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상품의 원가를 낮추고 가치를 올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기업의 운동법칙’을 유도해내기 위해 창조성(creativity)과 생산성(productivity)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창조성은 소비자를 위해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능력이고, 생산성은 제품의 생산에 요하는 원가를 절감하는 능력이다.” “창조성과 생산성은 위 생존부등식 V>P>C을 구성하는 핵심 개념으로서 기업은 창조성과 생산성을 두 초점으로 하는 운동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부등식 V>P>C와 창조성, 생산성의 개념은 아주 신선하고도 간명해서 나도 예술경영을 강의할 때 자주 써먹었다. 특히 “상품의 가치란 실제적인 용도나 성능은 물론 무형적인 심리적・정서적 만족도 포함하는 넓은 뜻”이라고 하니 예술에 적용되어도 무리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요-공급 곡선을 갖고 예술경제학을 강의하는 대목에서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았다. “예술 작품에서 가격은 어떻게 책정되나요?” 수요가 많아지면 가격은 올라가고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은 내려간다는 수요-공급 곡선이 예술현장에서 적용되지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하긴 대학로의 공연티켓 가격은 담합한 것도 아닌데 거의 일률적이다. 이런 질문도 나왔다. “P>C 여야 한다는데 그렇다면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블록버스터 영화와 저예산영화의 티켓 가격은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이 정말로 하고 싶은 질문은 “예술 작품 생산에서 ‘원가’를 산출할 수 있나요?”였으리라. 이 질문에 나는 속수무책이다. 가령 이른바 ‘호당 가격’처럼 그림의 가격이 작품 크기와의 상관관계에서 정해진다 하더라도 그림의 ‘원가’를 따진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문학작품의 원고료에 원가가 반영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럴 때 흔히 ‘예술의 특수성’ 운운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특수성이 미학적, 예술학적 논의의 맥락이 아닌 경영(학)적 보편성의 틀 안에서 자리잡을 수 있을까? 예술적 특수성은 혹시 다른 분야(특히 사회과학)의 입장에서는 설득력이 부족하니 예외성을 인정해달라는 투정으로 여겨지지는 않을까?

이책에서는 경영을 “우리의 삶에 필요한 물자와 서비스를 생산・공급하기 위한 기업의 활동”이라 정의한다. 『예술경영』에서는 “예술에 관한 제반 활동을 합리적으로, 능률적으로, 창조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경영체의 활동을 의미한다”고 나와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예술경영은 예술활동 그 자체가 아니라 예술활동의 창작과 유통의 주체들(예술가, 공연단체, 기획자, 공연장, 전시장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예술경영 관련 서적에서 다루는 내용은 대부분 그러하다. 사업자등록을 가진 사업체(기업)든 아니든, 그들에 의해 예술 작품이 거래되므로 예술활동에도 생산자와 공급자, 그리고 소비자가 있으며 가격이 존재한다. 무료라 하더라도 소비자는 자신의 자원(주로 시간)을 투입한다. 그렇게 보면 예술경영이 경영(학)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근거는 예술활동도 경제활동이라는 점에도 있지 않을까? 생산, 공급, 소비 등의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서 창작, 유통, 향유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하더라도 예술경영이 경영(학)이 되려면 그 점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지금까지 한국의 ‘예술경영학’에 대해 묘한 의문이 생긴다. 일반 기업과는 좀 다른, 특수한 영역의 경제활동, 예를 들면 의료-병원, 교육-학교, 스포츠-구단과 선수 등등에도 경영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지만 예를 들면 ‘병원경영학’, ‘학교경영학’ 같은 분야가 관련 분야에서 제도적인 교육과정으로 설치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프로 스포츠가 활성화되면서 체육과에서 ‘스포츠 경영학’ 류의 강의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것 같다) ‘시장의 규모’로 보자면 ‘종교(시설) 경영학’도 수요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에 비해 시장규모가 더 작은 예술분야에 상당히 많은 숫자의 전공 과정이 자리 잡게 된 점이 궁금하다. 예술경영(학)의 수요는 얼마나 될까? 또한 ‘매니저’로 시작되어 지금은 ‘소속사’로 발전한 ‘예술가 경영’(아티스트 매니지먼트)에 대한 내용이 각종 예술경영 관련 서적이나 강의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점도 문제라 할 것이다.

이책에서는 “기업의 생존을 위한 제1의 필요조건은 소비자의 존재를 의식하는 일이다”라고 선언한다. 그러면서 “기초과학이나 순수예술은 소비자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안”으므로”으므로 “기업의 길과는 궤를 달리한다”고 말한다. “기초과학이나 순수예술은 절대적 진리나 추상적 美를 추구하는 일이 목표”라는 것이다. “예술가나 과학자의 관심은 그들의 동기가 순수하다면 소비자를 의식하지 않는 절대적 아름다움이나 참된 진리의 추구에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비해 “소비자의 필요와 기호를 파악하여 이것을 충족시키는데 기업 가치 창조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한다.” 나 역시 바로 이점이 작품-창작과 제품-생산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작가는 독자-관객에 영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예술경영 관련 서적에서 말하는 고객의 니즈(needs)는 뭘까? 혹시 소비자의 필요와 기호를 그토록 강조하는 경영학의 내용을 그냥 차용한 건 아닐까?

한편 내가 접한 대부분의 예술경영 서적은 주로 공연예술과 시각예술 장르를 중심으로 하면서 예컨대 영화와 만화와 같은 장르는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음악의 경우도 공연예술의 측면만을 언급하지, 음반/음원과 관련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예술경영에서 문학 장르를 다룬 책은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예술경영’에서 다루는 범위가 이른바 (순수)예술에 국한되고, ‘문화산업’을 제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산업은 일반 경영학의 영역으로 넘겨버린 걸까?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를 소개하자고 시작한 글임에도 이 책으로 촉발된 나의 예술경영(학)에 대한 문제의식을 주로 이야기한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20여 년 전에 나온 책이기에 서점에서 구하기도 어렵고, 들고 있는 사례들도 케케묵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현대건설에서 배를 만들게 된 사연(조선소를 짓기도 전에 먼저 건조할 배를 누군가에게 판매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롯데라면이 ‘안성탕면’을 성공시켜 오늘날의 ‘농심라면’으로 성장하게 된 과정, 일본에서 출발한 컵라면이 한국에서는 ‘사발면’으로 바뀌어 성공한 내력, ‘새우깡’의 개발에 얽힌 이야기 등등은 그 시대를 겪은 세대에게는 재미있겠지만, 지금의 세대들에게는 낯설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성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이 책은 충분히 일독의 가치가 있다. 예술경영학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경영학의 큰 그림을 알 수 있다. 나아가 한국적 경영학의 ‘일반원리’(principia)를 세워보려 한 저자의 고투와 연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만나 집어 든 것이 우연이라면, 읽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저자 후기’쯤이나 될 줄 알고 펴 든 이 책의 마지막 부분 ‘읽어주신 분께 올리는 부탁의 말씀’은 감동적이다. 기업 이윤 추구의 방법론 정도로만 생각하던 경영학에 대한 내 선입견을 버리게 해 주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그 감동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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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섭. 경기 포천人. 대학 시절 어쩌다 연극반 근처를 기웃거리다가 마당극판에 끼어들다. 1984년 애오개소극장 대표를 시작으로 민중문화운동협의회(민문협) 총무부장, 극단 현장 대표 등을 맡아 일하는 한편 정이담이라는 필명으로 「문화운동시론」을 쓰기도 했다. 90년대에는 민족극운동협의회(민극협) 사무국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정책실장 등을 맡아 일했으며, 2000년~2002년에는 국립극장 공연과장이라는 ‘어공’ 노릇도 했다. 2003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문화정책연구소의 소장으로 있으면서 몇 군데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2014년~2016년에는 중국 연변대학에서 초빙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2018년 2월~2021년 3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상임이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