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문화정책 ⑰] 뿌리의 문화, 일상성의 문화- 농촌을 대상화하는 문화정책과 사업들을 경계하며

 

 

 

차라리 이럴 바에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름은 거창하다. 산간오지, 도농간의 문화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찾아가는 문화활동’ 또는 ‘찾아가는 문화공연’을 하겠다는 것. 해마다 공모가 나오고 광역거점도시에 있는 문화단체들은 그나마 이런 것들이 일말의 생계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연례행사로 치러지는 순회공연은 그야말로 의무방어전처럼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펼침막이야 서너 개 붙어 있지만,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아 주민들은 어디서 하는지도 잘 모르고 관객 몇 안 되는 공연장에서 정말 후딱 하고 사진 한번 찍고 철수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가 많다. 그렇게 문화격차 해소를 한 것이다. 물론 본 사람들은 안 본 것보다 낫겠지만, 이는 달달한 아이스크림과 탄산음료와 같아서 갈증만 더 부추긴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헛헛함과 며칠이 못 가 금방 사라지는 휘발성이 맞물려서 여운이 그리 개운치는 않다.

 

 

훅 들어왔다가 싹 빠지는

 

이런 방식은 참 좋지 않다. 문화격차를 그렇게 해소하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일상성과 항상성이 담보되지 않고 대상화된 지역에서 일회성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보완한기 위해 상주단체도 뽑고 시민이 참여하는 연극도 하지만, 이마저도 상주단체가 또 바뀌면 들쑥날쑥하기 마련이다.

 

5만 명 남짓 되는 전형적인 농촌인 옥천에서는 여느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누릴 수 있는 문화라는 것이 ‘영화’밖에 없다. 그것도 그나마 축복과 같은 것이다. 개봉영화관이 없어 인근 대전으로 맨 날 가야 했던 이전을 생각하면 지척에 작은영화관이라도 있는 것은 격세지감이다. 농촌에서 다른 문화예술 장르는 보고 감상하거나 참여한다는 것은 호사스런 사치다.

 

뮤지컬, 연극, 음악회, 콘서트 등은 1년에 1~2번 예산 많이 쓰는 축제 등에서 눈길이나 한번 마주칠까 지역 안에서는 거의 향유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뿐일까. 미술관, 박물관 등 하드웨어 인프라도 전무한 지역에서는 나들이 갈 곳도 만만찮다. 지역 농촌이니까 당연히 감수해야 할 것들이다. 시골에 살면서 그런 것을 바란다는 것은 당장 욕먹을 짓이다.

 

이런 ‘결핍’들은 도시 문화단체의 공모사업이나, 문화적 도시재생의 중요한 목적으로 단골메뉴처럼 언급된다. 좋은 먹잇감이라는 것이다. 사업 목적이나 목표에 이런 것을 대충 얹혀 주고 그 의미에 대해 걸쳐주면 그것만큼 공감대가 있는 공공성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 무사통과다. 없는 것보다 낫겠지만, 대부분 이런 것들이 지역에서 행해지는 것들을 보면 돈만 빼먹고 실적만 남기고 게 눈 감추듯 사라져 버리는 것이 패턴이다. 애시당초 뿌리내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사업비가 끝나면 동시에 증발하는 것이다. 또 실적 정리하고 보여주기 식으로 하는 것은 기가 막혀서 각종 상을 다 휩쓸어도 그뿐이다. 지역은 캔버스의 배경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의 실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소품 정도로 쓰였던 것이다. 그래서 잘 믿지 않는다. 주민들이 주체가 되지 않는 여러 사업들이 화려한 미사여구와 어떤 지고지순한 의미를 담아 포장을 해도 잠깐 왔다가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약하다.

 

농촌은 많은 것이 결핍되어 있는 곳이다. 사람이 얼마 살지 않으니 시장성이 없고 자본과 시장이 채우던 서비스가 빈 공간으로 남아있으며 공공에서는 이를 쉽게 채우려 하지 않는다. 옥천에서는 수영장도 영화관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수영장 건립대책위가 생길 정도로 주민들의 요구가 있었지만 군수란 양반이 동네사람 다 아는데 수영복 입고 거기 가겠냐며 안 하다가 주민들의 계속된 요구로 어쩔 수 없이 만들었다는 것을 과연 상상이나 하겠느냐 말이다. 영화관도 대전과 가까우니 굳이 필요가 있겠냐며 뒷짐지고 있다가 옥천신문에서 의제화하니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것이다. 공무원 상당수가 거리가 가까운 대전에서 출퇴근 하기 때문에 정작 그런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도 한몫한다. 도시에 살면 항상 곁에 있어 이런 것들의 소중함을 모르거나 당연한 줄 알지만, 농촌에서는 결핍이 내재화되어 내핍 상태에 있거나 아니면 이런 걸 요구해도 될까 하는 자기 검열에 빠지기도 한다.

 

농촌은 공모사업의 시장으로 대상화되어 있다. 예산은 편성되지만, 이를 도매금으로 가져가는 것은 결국 도시 용역사와 문화단체들이다. 안타깝지만 그들의 공모계획서에 담긴 의미와 각오는 사실 심사위원 책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주민들에 가 닿지 못하며 사업기간과 사업예산을 한 치도 넘어서지 못한다. 뿌리내린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기보다 늘 곁에 있는 문화공간과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 같이 참여하고 이끌 수 있는 주체적이고 자기제어가 가능한 문화공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사람이 작다고 눈 코 입이 없는 게 아닌 것처럼 지역이 작다고 해서 누리고 싶은 욕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결이다. 삶의 결과 꼴을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노동과 숨 쉬는 것만으로 살아가는 팍팍한 삶들에게 주는 선물과 같은 것이다.

 

 

시장이 철수하는 농촌에서 대안적 공공성을

 

옥천은 그래도 자생적인 문화에 다소나마 희망을 가진다. 다양한 예체능활동이 동아리나 클럽처럼 보이지 않게 가느다란 실타래를 유지하고 있다. 어찌저찌한 연유로 옥천 하나뿐인 검도관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검도회원들이 관장 없이 자발적으로 검도 도장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많이 활성화된 것은 아니지만, 실력도 출중한 것이 아니지만, 배우러 오는 사람이 있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 이마저 사라지면 검도라는 종목 자체가 옥천에서 배울 수 없는 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이들이 하는 활동은 매우 중요하다. 번듯하게 지어놓은 생활체육관이나 체육센터의 숨을 쉬게 하는 것은 수많은 배드민턴 클럽 회원들과 아마추어 배구동호회 때문이다. 관성회관 등의 공간을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풍물동아리와 지역 민예총 회원들 때문이다. 지역의 어떤 분은 사설 탁구장을 동호회처럼 운영하면서 거기서 기타와 하모니카를 동시에 가르치기도 한다. 탁구장 하나 제대로 없는 지역에, 탁구 강사를 모시기도 힘든 지역에서 그것 자체가 축복이다. 탁구도 배우면서 기타와 하모니카도 덤으로 배우는 일상성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손대면 가 닿을 곳에 눈에 보이는 곳에 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활동들이 누군가의 선의와 희생에 의해 움직거리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안타까운 부분이다. 도시재생도 지역의 힘으로 하나씩 건사되고 있다. 안남면 권역사업은 어느 용역회사가 붙었지만 주민 논의구조가 탄탄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그 기조로 가고 있다. 주민 주도로 계획이 서 있기 때문에 인구 1천 명도 안 되는 작은 면에서 자족적인 문화교육 시설과 프로그램을 구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원면 도시재생사업도 지역 주민과 지역단체가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 설계 중이다.

 

결핍된 농촌은 사실 개발업자나 문화단체에게는 활용하기 좋은 공간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훅 들어왔다가 싹 빠지는 행태를 주로 보여 왔고 아마도 이런 것들은 앞으로도 무한루프 방식으로 반복될 개연성이 크다. 농촌을 그렇게 소비하는 한 답이 없다. 뿌리내린다는 것, 일상성과 항상성의 문화를 어떻게 담보하고 가져갈 것인가 하는 물음과 성찰 없이 어떤 기획과 사업계획서도 잠깐 스쳐가는 바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마 그들도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문제의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것들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있다.

 

제도와 정책의 한계도 분명 있을 테고 이미 도시 중심으로 뿌리내린 생활양태와 의식이 농촌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는 사회적인 부분과 개인의 호불호도 작동할 것이다. 우리는 허위의식을 솔직히 내려놓고 이 부분에 답을 해야 한다. 계급 간의 격차도 존재하지만, 지역 간의 편차는 더욱 심해 농촌에 있는 사람들은 이중삼중 소외를 겪고 있다. 외려 시장이 철수하고 있는 농촌에서 문화예술의 대안적 공공성을 실험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일 수 있다. 새로운 실험의 씨앗이 척박한 토양에서 자랄 수 있도록 꾸준한 담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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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단. 옥천신문 상임이사 대전에서 나고 자라 20대 후반 청년기부터 옥천 사람이 되었다. 반생은 옥천에서 살고 있고 그 파이는 앞으로도 더 커질 것이다. 옥천은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도시와 농촌, 물과 환경, 자치와 자급, 순환과 공생, 협동과 연대의 가치를 알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작은 코뮌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그것을 체감케 해주었다. 작은 코뮌들이 연대할 때 우리의 일상은 탄탄해지고 차별과 소외는 불식될 것이라 믿는다. 풀뿌리민주주의의 초석이자 보루라고 생각하는 풀뿌리언론 옥천신문에서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