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정책시선: 읽다]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정책시선: 읽다]는 문화정책 분야의 의미 있는 책을 소개하거나 문화정책의 시선으로 다양한 분야의 담론을 소개하는 서평을 다룰 예정입니다. 단행본만이 아니라 함께 이야기 나누고자 하는 보고서, 자료집 등도 다룹니다. 격월로 발행될 예정이니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미키7』을 읽은 계기는 SF 장르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봉준호 감독이 준비하는 영화의 원작이라는 마케팅 문구가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제목만으로는 어떤 내용일지 선뜻 감이 오지 않는데, 사람 이름이라고 보기에는 7이란 숫자가 아직 어색하다. 그럼 암호명? 혹시 로봇? 비밀 프로젝트? 어떤 기기나 소프트웨어, 또는 우주선의 명칭? 어떤 사건이나 이벤트에 붙혀진 이름? 태풍과 같은 특별한 기후나 우주 개척지대와 같은 특정한 환경(장소)을 지칭하는 것일까? 아니면 은밀한 어떤 집단(그룹)을 부르는 이름일까? 소설 제목인 ‘미키7’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려면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다.
‘미키7’은 복제인간의 이름이다. 7이라는 숫자는 7번째 복제인간을 뜻한다. 그래서 미키7은 미키라는 이름으로 7번째 복제된 인간의 명칭이다. 우주개척시대에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다니고 언제나 그렇듯이 그 과정에는 알 수 없는 위험을 직면한다. 그 위험이 위험인 것은 직면하게 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한편 그것을 위험으로 판단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말 그대로 위험일 수 있다. 위험한 상황에서 해야만 하는 업무는 늘 그렇듯이 사고가 발생하고, 심지어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원대한 개척 업무를 멈출 수는 없다. 미키7이 7번째 미키를 지칭한다는 것은 미키7 이전에 6번의 미키가 있었다는 것이고, 7번째라는 것은 6번째 미키까지가 지금은 없다는 것이다. 즉 미키7은 6번의 미키가 사망한 결과물이다. 이는 개척정책은 지속되어야 하고, 이에 따라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위험한 업무도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미키7이 업무 중 사망한 것으로 판단되어 미키8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사실은 미키7은 운 좋게도(?) 죽지 않았다. 위험한 업무를 하다가 사고가 난 미키7을 호위(?)하는 다른 동료가 미키7이 사고로 죽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보고한다. 이에 업무를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미키8로 명명되는 다음 차순의 복제인간이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미키가 1명만 있어야 하는데 2명이 공존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한 이후의 사건들이 소설의 내용이다.
미키는 업무를 하면 반드시 그동안의 기억을 저장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미키7은 미키6까지의 기억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복사된 기계와 같은 것은 아니다. 앞선 미키의 기억을 공유하지만 새로운 미키는 앞선 미키와 동일자는 아니다. 즉 미키들 각각은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계획하고 행동한다. 즉 미키들은 개별적으로 자의식을 갖고 있다. 즉 미키7은 미키6까지 저장된 기억을 공유하지만, 미키6의 복사물은 아닌 것이다. 복제인간인 미키들은 기억의 연대기를 기억하고 있지만 개별자들인 셈이다. 그런데 미키7은 사망 직전의 업무를 저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키8은 미키7의 모든 기억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소설의 주인공은 미키8이 아니라 미키7이다.
여기서 기억의 연대기는 생활 전반이기도 하지만 업무의 연대기라는 측면이 더 강하다고 하겠다. 미키들의 복제는 한 개인의 영속적인 삶을 위한 복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억을 저장하지 않는다면 매번 초기화되고, 초기화된 복제인간들은 매번 유사한 위험과 사고에 유사하게 대응할 뿐이다. 기억의 연대기는 시간의 축적이요 행위-반응-결과의 축적이다. 매번 초기화가 되면 기억의 연대기는 없고 매번 처음이 된다. 결국 모든 시간의 흐름이 항상 초기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되면 굳이 미키7이라고 명명할 이유가 없다. 그냥 단절된 개별일 뿐이다. 그런데 기억의 연대기만을 기억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기억의 연대기만으로 위험 상황을 대처할 수 있을까? 기억의 연대기는 성공과 실패의 기록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앞선 판단과 행위와는 다른 판단과 행위가 새롭게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억의 연대기가 존재할 수 있다. 바로 다른 판단과 행위는 앞서와는 다른 자의식의 의지이다. 그래서 미키7은 6번의 기억의 연대기를 기억하는 7번째 개별자인 것이다.
‘미키7’이란 소설 제목에서 시작된 이러한 생각을 하다 보니, 인류가 현재까지 이르게 된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인류는 위험 상황을 어떤 측면에서는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반복은 기억의 연대기가 아니라 욕망의 연대기를 공유하기 때문일까? 어쩌면 인류사는 연속이 아니라 불연속을 상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뜬금없는 단상을 던져본다. 하지만 여기서는 유구한 인류사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기에 이쯤에서 멈춘다.
자의식과 기억의 연대
미키들의 이야기로 정책, 특히 문화행정을 되짚어 보면 어떠한가. 순환보직을 기본 운영원칙으로 하는 우리의 공무원들은 주기적으로 자리 이동을 한다. 즉 맡은 업무가 다르게 된다. 미키들과 같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은 아니지만 한 개인이 장기간 동일 업무를 맡지 않는다는 면에서 업무 담당자들은 미키들이기도 하다. (복제인간들이란 뜻은 아니다.) 이는 유관 기관들도 모든 기관은 아니지만 유사한 환경이라고 하겠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행정은 미키들의 지속적 행위들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행정에서 기억의 연대기가 없이 매번 초기화된 개별자로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매번 유사한 상황과 결과가 반복되지 않을까? 시행착오는 다음번의 기회를 위한 것이지 반복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한편 자의식 없이 기억만 남아있다면 어떻게 될까? 자의식 없는 기억은 다음번의 기회가 만들어질 수 없기에 동일한 리스트만 반복될 뿐이다.
한편 문화행정을 단지 공무원의 업무로 한정하지 않고 문화정책의 추진과 관련하여 폭넓게 보면 어떨까? 문화정책 추진과 관련하여 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있다. 공무원처럼 순환 업무를 하지 않고 지속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경우는 기억의 연대기가 여러 개별자가 아니라 하나의 개별자에게 있다. 그렇다고 복제되는 미키들과 다를까? 앞서 기억의 연대기가 시간의 축적이라고 했는데, 이는 단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개별자이라도 연대기가 없을 수 있다. 혹은 멈춰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 기억의 연대기가 공유된 여러 개별자보다 더 좋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하나의 개별자이지만 역시 미키들이어야 한다.
현재 문화정책과 행정이 제자리 걸음에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이는 정책 내용과 과제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과 자의식의 문제가 아닐까? 지금 우리는 몇 번째 미키일까? 아니면 숫자 없는 미키일까?
김민규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대학 시절 연극이 좋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문화운동과 조우하였다. 90년대 초반 석사 과정 시절 국내 최초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생활실태조사를 했다. 2000년대 초 인디문화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게임산업 진흥기관에서 정책, 기획 업무를 총괄하고 문화산업과 예술 분야 정책 및 법제도 개선에 참여했다. 관심이 흘러다니는데, 예술과 문화산업에서의 공정 환경, 문화예술 분야의 노동 환경, 디지털시대의 문화운동은 무엇일까 그리고 최근 지루함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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